누군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아침의 종이었다.
종은 평소처럼 여덟 번 울렸다. 학생들은 식당으로 향했고, 운동장에서는 공중에 떠 있는 빗자루를 타고 신입생들이 연습을 시작했다. 어제 누구의 이름이 사라졌다 돌아왔는지 모르는 학생도 많았다. 정상적인 학교의 풍경은 그렇게 쉽게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민규는 경비실 문에 붙은 출입표를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했다.
[야간 경비 정민규: 오전 8시 퇴근 완료.]
그는 퇴근 도장을 찍지 않았다. 어제부터 교장의 지시로 특별 점검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자신의 서명이 너무나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이름 끝의 받침, 필기구를 들어 올리는 방향, 습관처럼 남기는 작은 점까지 똑같았다.
“누가 내 서명을 연습했나 보군.”
셀레나는 웃지 않았다.
“기록망이 선생님의 동작을 학습했을 수도 있어요. 지난번 두 번째 경비원이 경비실에 나타났을 때부터 관리 기록이 쌓였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제가 직접 쓴 기록과 관리 시스템이 만든 기록을 따로 보관합시다.”
민규는 가죽 수첩을 펼쳐 페이지 모서리에 작은 칼집을 냈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 한 번, 아래에 두 번. 복사가 가능한 서명과 달리 물리적인 잘림은 적어도 같은 종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었다.
“아저씨, 매번 이렇게 해야 해요?” 루카가 물었다.
“항상은 아니지. 하지만 지금은 누가 기록을 조작하는지 알아내는 중이잖아. 증거가 증거인지부터 확인해야 해.”
오르반 교장은 약속대로 기록실의 열쇠를 내놓았다. 그는 전날보다 더 늙어 보였다. 수업을 맡은 교수들과 회의를 마친 뒤라 눈 밑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학교 자료는 공개한다. 단, 보호자가 있는 학생의 개인정보는 외부에 무분별하게 뿌리지 말아 줬으면 한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만 공개할 겁니다.”
민규는 열쇠를 받으면서도 교장이 진짜로 모든 자료를 공개했는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약속은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실제로 잠겨 있던 문이 얼마나 열리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교장실 뒤편의 자료실은 높은 책장으로 가득했다. 마법서 수천 권이 천장까지 이어지고, 필요한 제목을 말하면 책이 스스로 날아오는 서가였다. 셀레나가 '회수 승강로'를 말하자 책 세 권이 날아왔다. 첫 번째는 마도공학 개론서, 두 번째는 봉인술 안내서, 세 번째는 학생용 안전 수칙이었다.
“셋 다 핵심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민규는 고개를 들었다. 서가 뒤편 벽의 페인트 색이 달랐다.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색이 옅어지고, 오른쪽 모서리에서는 습기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춘 뒤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와 속이 빈 소리가 교대로 났다.
“여기 뒤에 공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료실은 마법으로 넓힌 거라서 그런 벽이 많아요.”
“이 벽만 아래쪽에 환기구 흔적이 있네요. 예전에 누가 막은 것 같습니다.”
그는 벽 아래의 먼지를 살폈다. 다른 곳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이곳은 바람이 지나가듯 얇은 선이 만들어져 있었다. 뚫린 구멍이 아주 작더라도 양쪽 공기가 오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루카가 책장 옆에 서서 말했다.
“선생님, 여기 책 한 권만 안 움직여요.”
책 제목은 ‘완전한 학교 운영을 위한 중앙 기록관리’였다. 오래된 붉은 가죽 표지에 쇠줄이 감겨 있었다. 셀레나가 책을 꺼내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민규가 표지 아래의 나사를 살피자 책이 아니라 손잡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책처럼 만든 손잡이군.”
“학교가 왜 이런 걸 만들었죠?”
“숨기고 싶은 곳에는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책이 제일 흔한 물건이었겠죠.”
민규는 손잡이를 바로 돌리지 않았다. 누가 건드렸을 때 경보가 울리는지 먼저 확인했다. 셀레나가 비활성 주문을 걸고, 루카는 문밖에서 누가 오는지 살폈다. 손잡이를 반 바퀴 돌리자 책장 한쪽이 미끄러지며 뒤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책 대신 큰 종이 도면을 붙인 좁은 방이 있었다. 벽면 전체가 지하의 배관과 마나 회로로 채워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손으로 작동하는 큰 밸브가 있었고, 그 아래에 작은 명패가 붙어 있었다.
[제2도면 보관실 — 1차 봉인 이후 수정 금지.]
민규는 먼저 도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페이지마다 번호를 매겼다. 한쪽은 학교 설립 당시의 설계, 다른 쪽은 삼십 년 전 사고 직후 수정된 것이었다. 차이는 분명했다. 원래 아래쪽으로 연결된 통로가 세 개였는데, 사고 뒤 두 개가 막혔고 하나만 경비실 근처의 배관을 통해 이어지도록 바뀌었다.
“가짜 신호가 이 통로를 탔군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런데 왜 교장실 밑으로 이렇게 굵은 배관이 지나갑니까?”
“감독용이었겠죠.”
“아니요. 방향이 반대예요. 저쪽에서 학교 중앙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민규는 도면의 화살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작은 삼각형은 동쪽 담장 너머의 마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학교가 버린 마나를 외부에서 이용하게 만든 공급선이었다. 그 공급선이 최근 서기관의 명령을 전달하는 통로가 됐다는 뜻이었다.
“기록망을 끊는 순간 마을 집들의 전기도 끊길 수 있겠습니다.”
셀레나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통로를 함부로 폐쇄할 수 없네요.”
“그래서 먼저 마을 쪽에 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루카는 서가에서 가져온 낡은 지도를 펼쳤다. 마을에는 우물 하나와 수동 물레방아, 오래된 기계식 종탑이 있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마나 등불을 사용했지만, 마을 양조장과 제분소는 여전히 사람 손으로 기계를 움직였다.
“저쪽으로 가면 되겠네요. 누나가 어릴 때 저 제분소에서 일했어요.”
“너희 집은 마을에 있나?”
“네. 그런데 부모님은 몇 년 전에 떠나셨어요. 누나랑 제가 같이 살았죠.”
민규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루카가 누나를 찾는 일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루카에게 남은 가족은 없었다.
“일단 학교 밖으로 가기 전에 마을 대표와 만나자. 우리가 가진 정보가 틀리면 더 큰 사고가 납니다.”
도면의 아래쪽에는 베르안 교수의 필체로 보이는 주석이 있었다.
[경보는 위를 향하지 않는다. 가짜 이름이 차오르면 먼저 외부 배출구에서 압력 상승을 확인할 것.]
“가짜 이름이 차오른다니.” 셀레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기록이 마나 압력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측정해 봅시다. 아직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적고.”
민규는 오래된 아날로그 압력계를 찾아 도면 옆에 놓았다.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셀레나가 벽의 마나 유동을 감지하자 압력계의 미세한 금속관이 진동했다. 마나 자체는 일반 공기가 아니었지만, 그 흐름을 조절하는 설비 내부에는 실제 압력이 존재했다.
“관 안의 공기를 밀고 있군.”
그가 눈금을 읽을 때 바늘이 조금 올라갔다. 셀레나는 마법을 멈췄다. 압력은 다시 낮아졌다. 시험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세 차례 반복하자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원인과 결과를 확인했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일부만요. 우리가 마나를 썼을 때 압력이 올랐다는 사실이지, 누가 이름을 지웠을 때도 오른다는 뜻은 아니죠.”
그는 밸브를 봉인하고 사진에 시간을 적었다. 도면이 사라지는 사태에 대비해 같은 내용을 세 장소에 나누어 보관하기로 했다. 하나는 셀레나의 실험실, 하나는 경비실, 나머지는 마을에 둘 예정이었다.
제2도면 보관실의 가장 구석에는 작은 업무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는 낡은 가죽 장갑과 차가운 보온병, 열리지 않는 금속 서랍이 놓여 있었다. 민규는 장갑의 손바닥이 닳은 위치를 확인했다. 회수 승강로 밸브를 오래 돌린 사람의 장갑 같았다. 한쪽 엄지 아래가 다른 부분보다 유난히 매끈했다.
“사람이 주기적으로 여기서 작업한 흔적입니다.”
셀레나는 책상에 쌓인 일지를 넘겨 봤다. 마지막 작성 날짜가 삼십 년 전이었지만 페이지를 넘긴 손자국은 최근 것이었다. 그 위에는 오래된 점검 순서가 적혀 있었다.
[첫째, 압력계 영점 조정. 둘째, 외부 배출선 상태 확인. 셋째, 동행자 수동 확인. 넷째, 자동 기록 장치 정지.]
마지막 항목은 붉은색으로 두 번 줄이 그어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지운 것 같았다. 루카가 말했다.
“자동 기록을 왜 꺼야 하죠?”
“점검자가 사람을 확인하기 전에 시스템이 임의로 이름을 고치면 위험하다는 뜻이겠지.”
민규는 책상 옆에 붙은 작은 경고문을 읽었다. 마법 장치가 멈추면 수동 기록으로 전환하라는 설명과 함께, 정비 중에는 담당자의 서명을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게 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불과 얼마 전 서기관이 그의 퇴근 서명을 대신 찍은 일을 떠올리게 했다.
“이 시설을 만든 사람은 기록이 잘못될 때를 염두에 뒀군요.”
“그런데 왜 사고를 막지 못했을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안전 장치가 있어도 누군가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는 금속 서랍을 열려고 힘을 주지 않았다. 손잡이 아래에는 작은 원형 홈이 세 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압력계 눈금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는 홈을 사진으로 찍어 두고 일단 그대로 두었다.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잠금장치를 건드릴 때는 부서진 부품보다 먼저 위험한 장치가 반응할 수도 있었다.
보관실 입구에서는 루카가 오래된 납품 명부를 찾았다. 제분소 주인 바르트의 성과 비슷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삼십 년 전 제분소에 ‘압력 완충용 수동 터빈’을 납품했다는 내용이었다. 납품처는 학교가 아니라 마을 관리소였다.
“학교 설비를 고치면서 마을에도 장치를 만들어 줬나 봐요.”
“혹은 마을이 사고의 영향을 받으니까 필요한 장치였을 수도 있겠지.”
셀레나는 기록을 복사했다. 처음에는 도면을 찾으러 들어왔지만, 이제는 도면 바깥에 적힌 물건의 이동 경로가 더 중요해졌다. 배관은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결국 주변 주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터빈을 설치했는지 알아내면 안전하게 쓸 수 있는지 판단할 근거가 생길 것이었다.
교장실을 나오는 길에 민규는 자료실 입구의 동판을 발견했다. 마법학교 설립자와 건축가의 이름이 적힌 판이었다. 그런데 건축가의 서명 아래에 아주 작은 국화 문양이 있었다. 은시계의 꽃과 똑같이 꽃잎 하나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이건 누가 새긴 겁니까?”
오르반이 걸음을 멈췄다.
“그 문양을 왜 묻지?”
“제 어머니가 수놓던 꽃과 닮았습니다.”
“당시 통로의 설계자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이름은 기록에서 지워졌지. 우리는 그가 남긴 표식만 알고 있어.”
“다른 세계?”
“네가 자랐다는 그곳과 같은 세계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민규는 동판의 작은 홈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학교의 전설적인 마도공학자가 만든 설비 한가운데, 자신이 어렸을 때 본 것과 닮은 평범한 꽃이 있었다.
루카는 동판에 새겨진 꽃을 보며 자기 공책을 꺼냈다. 멀리서 보아도 부러진 꽃잎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은시계의 꽃을 옆에 그려 두고 두 무늬의 간격을 재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거 똑같은 도장으로 찍은 것 같아요. 꽃잎 사이 간격이 일정해요.”
“그럴 수 있겠네. 같은 설계자가 표시를 남겼거나, 나중에 누군가 일부러 흉내 냈을 수도 있고.”
셀레나는 학생이 그린 그림을 칭찬했다. 루카는 머쓱해하면서도 공책을 덮지 않았다. 그는 누나가 실종된 뒤부터 학교 구석의 이상한 표지들을 모아 왔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면 장난이라고 웃음거리가 됐지만, 이제 그 종이들이 사건을 밝히는 자료가 되고 있었다.
“버리지 않길 잘했네요.”
“잘했어. 다만 네가 혼자 위험한 곳을 찾으러 간 건 잘한 일이 아니야.”
“역시 잔소리는 꼭 하시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다음에는 함께 가자.”
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들린 공책에는 작은 국화 그림과 함께 서툰 글씨로 새로운 제목이 붙었다. [이름이 남아 있는 곳.] 그는 사라진 누나를 찾는 일이 누군가를 추격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그때 책장 뒤쪽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났다. 제2도면 보관실의 압력계가 저절로 움직였다. 아무도 마나를 쓰지 않았는데 바늘이 붉은 선 위로 올라갔다.
셀레나가 달려가 수치를 읽었다.
“외부 배출구 쪽이 역류하고 있어요!”
루카는 창문 밖을 보았다. 마을의 시계탑에서 새카만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민규는 그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종탑에서 만난 기록 서기관이었다.
“이번에는 학교 밖에서 일하고 계시는군.”
목소리는 바람 속에서 웃었다.
“학교의 문제는 언제나 마을에 먼저 나타나지요. 이제 주민 명부를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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