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이 구조된 다음 날에도 등록소는 영업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
유리문 위 전광판에는 [이의 신청 1건 접수. 대기 인원 0.]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기실에는 아직 열한 사람이 있었고 밖에서는 구조대와 의료진이 순서대로 안전을 확인하고 있었다. 민규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는 일을 '종결'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같은 곳에 갇히지 않도록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밝히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조사에 협조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인은 가장 먼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의 이름은 최병우였다. 그는 본인이 직접 이름을 말하고 싶다고 했을 때만 출입 기록에 남겼다. 번호표 대신 낡은 장갑을 든 채 햇빛을 올려다보았다. 강바람은 차가웠지만 살아 있는 날씨였다. 병우는 잠깐 어지러워 의료진의 팔을 잡았다. 민규는 그 모습을 보고 서류상 대기 시간을 되돌렸다고 신체가 곧바로 회복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했다.
해진과 나린은 함께 대피소로 이동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묻는 칸에는 '동행인'이라고 적었다. 해진이 원해서 그렇게 적었고, 나린 역시 싫지 않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친권이나 법적 보호의 문제는 이후 적절한 기관과 함께 확인해야 했다. 그동안 서로 곁에 있을 수 있는 방식이 가능하다면 굳이 지금 관계를 확정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리안은 밖에 나오자마자 자신이 남긴 서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그녀의 손에서 펜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오래 갇혀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조사 업무를 맡기는 건 또 다른 강제 배정일 수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거부하려 했지만 민규가 증언을 나중에 해도 된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이 쉬는 동안 도윤이 남은 자료를 정리했다.
민규는 등록소 바깥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를 한 바퀴 돌았다. 이름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직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른이 자기 이름을 잊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담당자는 서류를 채워야 한다며 기억나지 않는 이름을 비슷한 것으로라도 적어 달라고 했다. 민규는 그들에게 '미확인'이라는 칸을 쓰고 현장에서 확인된 특징과 필요 지원만 기록하라고 요청했다. 빈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람의 삶을 지어내서는 안 됐다.
병우는 담요를 몸에 두르고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등록소에서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뒤에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사람이 너무 쉽게 다시 사라지는 공간에서 오래 지낸 탓이었다. 의료진이 그의 손끝을 살피자 병우는 얼른 장갑을 빼려다 멈췄다. 그 장갑은 딸이 초등학교 때 꿰매 준 것이었다. 그는 벗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의료진은 그 뜻을 존중하면서도 혈액 순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병우는 검사 뒤 장갑을 다시 끼고 소리 없이 웃었다.
옆 침상에는 대기실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던 젊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밖에 나오자 자기 이름을 '우림'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름을 적은 종이가 다시 사라질까 두려워 복사해 달라고 했다. 민규는 그가 원하는 장수만큼 복사해 주었다. 하지만 똑같은 종이를 여러 장 갖는다고 외부 기록이 즉시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림은 그 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말을 아무도 지우지 않고 들어 준다는 사실이었다.
도윤은 대피소 앞에서 우림을 마주쳤다. 그는 미안하다고 입을 열었지만 남자는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아직 당신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우림이 화해를 거부했다고 그를 비협조적이라고 적는 사람은 없었다. 사과는 말하는 사람의 필요로 시작될 수 있지만 듣는 사람에게 즉시 받아들일 의무를 만들지 않는다. 민규는 그 장면을 본 뒤 도윤에게 조사 절차는 별도로 마련될 거라고 설명했다.
해진은 나린과 함께 임시 대피소의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린은 밖에서 파는 빵을 먹고 싶다고 했고, 해진은 지금은 의료진의 지침에 따라 조금씩 먹어 보자고 했다. 여태 억지로 참아야 했던 아이에게 작은 제안을 하는 데도 조심스러웠다. 나린은 한참 고민하다 손으로 빵의 모양을 그렸다. 별처럼 생긴 빵이었다. 해진은 나중에 찾아 보자고 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질문이 많았지만 당장의 저녁 메뉴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었다.
민규는 나린에게 이름을 적었던 종이컵이 무사한지 물었다. 아이는 가방에서 컵을 꺼내 보였다. 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종이컵은 조금 구겨졌고 잉크가 손에 묻어났지만 여전히 '나린'이라고 읽혔다. 아이는 자신이 커서 학교에 가면 또 등록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민규는 학교에서 필요한 절차가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등록 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나린은 그 말을 몇 번 되뇌더니 컵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셀레나는 외부 임시 신고선의 첫 연결 기록을 가져왔다. 대기자들을 구조하던 동안 등록소 바깥에서 분명한 위험 신고가 세 건 들어왔다. 강둑에서 미끄러진 노인, 다리 아래 고장 난 전등, 가까운 집의 누수 신고였다. 셋 모두 이름이 아니라 위치와 필요한 도움으로 접수됐다. 구조대와 시설팀은 실제로 출동했고 그 결과를 알려 왔다. 민규는 사소해 보이는 그 세 건을 특별히 기록했다. 새 절차가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가장 좋은 증거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은 문구가 아니라 실제 도움의 도착이었다.
한편 케스는 등록소 안의 서류를 모두 외부로 운반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기록에는 대기자들의 민감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조사에 꼭 필요한 문서만 적법하게 확보하고, 나머지는 보호하면서 당사자의 열람과 정정 권리를 마련해야 했다. 무엇을 공개하고 무엇을 보존할지도 제각각 달랐다. 민규는 그 결정이 마음에 들었다. 잘못된 시스템을 없앤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삶을 새 시스템으로 몽땅 옮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도윤은 가장 오래된 서류 상자에 작은 분실물 목록이 있었다고 알려 줬다. 그는 그것이 나린의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름 하나가 두 번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모 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케스는 문서의 작성 시기와 다른 기록을 대조하는 담당자를 지정했다. 아이에게 성급한 소식을 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나린에게 또 틀린 이름표를 달아 주어서는 안 됐다.
임시 대피소의 시간이 저녁으로 바뀌자 병우는 자기 딸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없던 동안 어떻게 지냈니.” 첫 줄을 쓴 뒤 그는 한참 생각했다. 편지가 전달될지, 딸이 살아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민규는 그에게 편지를 반드시 보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가족 찾기 지원 창구와 기록 조회 방법을 안내했다. 병우는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적은 말로 가장 먼 시간을 건너는 방법이었다.
그날 오후 제7시설에서 정은희, 오르반, 케스가 연결된 긴급 공개 협의가 열렸다. 하셀은 원점 관리실의 기술 문서를 보여 주었다. 기존 시스템의 '이름값' 항목은 사실상 긴급 구조 신호의 대기 유효 시간을 의미했다. 사람의 이름을 거래하려고 처음부터 만든 값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정 과정에서 '유효 시간의 이전' 기능이 붙었고, 그 후 사람을 다른 사람의 자리로 옮기는 서류가 자동 생성되기 시작했다.
케스는 그 수정의 책임을 법적으로 추적해야 한다고 했다. 오르반은 제7시설에서도 비슷한 실수가 반복된 것을 떠올렸다. 사고 당시 책임자로서 실제 사람보다 결재가 우선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변명하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잘못된 절차를 따랐는지 설명했다. 은희는 처음 규칙을 만든 사람으로서 원본의 의미를 증언했다.
“다만 제 말 하나로 모두 결론을 내리지 마세요.” 은희가 말했다. “저도 틀릴 수 있고 잊어버렸을 수도 있어요. 다른 기록과 피해자들의 말을 함께 봐야 합니다.”
민규는 자신이 경비원이라고 소개했다. 자리에 앉은 몇몇 사람은 그가 이번 사건의 핵심 시설을 조사했다는 사실을 듣고 마법 전문가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마법 자체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람이 지나가는 문이 제대로 열리는지, 경보가 닿는지, 응급 상황에서 책임을 누구에게 떠넘기는지는 실제 현장 점검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서류의 숫자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협의회의 첫 제안은 등록소 회선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었다. 시민 대표들은 당연하다는 듯 찬성했다. 갇힌 사람들이 나온 지금이라면 더는 그런 건물이 필요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하셀은 일부 산악 시설이 여전히 그 회선을 통해 응급 신고를 전송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금 끊으면 고립된 환자와 학생들이 전화를 걸 수 없게 된다. 등록소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 서비스까지 잃게 해서는 안 됐다.
대신 셀레나는 기능을 세 부분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위치와 긴급 위험을 보내는 신고 회선은 유지한다. 둘째, 개인에게 책임을 강제로 지정하는 명령은 즉시 차단한다. 셋째, 이름과 가족 관계 같은 민감한 정보는 당사자나 정당한 보호 절차를 통해 별도로 확인한다. 실제로 가능한지 작은 시설부터 시험해야 하며, 책임 소재를 확인할 독립 감시도 필요했다.
“그럼 시간이 오래 걸리겠군요.” 도시 담당자가 말했다.
“그동안 사람을 묶어 놓고 기다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민규가 답했다. “긴급 구조는 지금 진행하고, 시스템 개편은 따로 검증해야 합니다.”
협의회에서 의견이 엇갈린 건 나린의 가족을 찾는 문제였다. 일부 참석자는 등록소의 기록을 뒤지면 부모 이름을 바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리안의 서류에는 거짓 관계를 만들어 내는 기능이 남아 있었다. 민규는 그 자료를 수사 단서로만 쓰고 최종 신원 확인의 근거로 삼지 말자고 제안했다. 나린에게 확인되지 않은 어른을 부모라고 소개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었다.
해진은 나린과 함께 대피소에서 원격으로 회의를 들었다. 그녀는 자기도 아이의 부모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을 대신 부모로 지정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린의 안전을 위해 도움을 줄 마음은 있지만 원치 않는 법적 책임을 모든 사람 앞에서 떠맡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민규는 해진의 말을 받아 적었다. 도움과 강제 책임 사이의 경계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정확하게 설명됐다.
그날 저녁, 임시 의료진은 등록소 대기자 모두의 상태를 확인했다. 몇 사람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탓에 치료가 필요했고,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심하게 떨었다. 이들의 구출이 전광판의 '처리 완료'로 정리돼서는 안 됐다. 케스는 치료와 재정착 지원에 관한 책임 기관을 따로 기록하고 연락처를 남겼다.
도윤은 끝까지 남아 등록소 창구를 닫았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숫자로만 취급했던 일을 인정했다. 그러나 곧바로 책임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의 업무 기록을 살펴야 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판단할 권리가 있었다. 도윤은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민규는 그를 영웅처럼 칭찬하지도, 이제부터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민규는 해진과 나린에게 돌아갈 장소가 준비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아이의 가족을 찾는 조사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린이 안전하게 생활할 공간과 의료·교육 지원이 필요했다. 해진은 아이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지만 무조건 함께 살 수 있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민규는 두 사람의 뜻을 각각 기록하고 전문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등록소의 잘못을 고치면서 다른 종류의 강제 배정을 만들 수는 없었다.
건물 바깥의 안내판에는 오늘 임시 신고 회선이 열렸다는 공지가 붙었다. 작은 글씨가 아니라 멀리서도 읽을 수 있는 크기였다. 병우는 그 문장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구조를 요청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손바닥으로 장갑을 쓸어 내리며 강변의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번호표가 아니라 버스의 도착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대기자가 밖으로 나온 뒤 창구의 작은 종이함이 스스로 열렸다. 그 안에는 서명 없는 오래된 계약서가 있었다. 첫 장에는 [열두 시설 공동 이용 약정]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는 어떤 학교의 이름도 없었다. 빈칸 아래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제0기록관의 원본에는 입학한 적 없는 졸업생이 포함돼 있습니다.]
케스는 그 문장을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졸업생인데 입학 기록이 없다면 단순한 누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등록소의 기능으로는 다른 가능성도 떠올랐다. 누군가 기록상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한 사람의 삶을 종료 처리했을 수 있었다.
민규는 계약서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오늘은 분명 사람들을 구해 냈다. 그러나 모든 이름의 출발점이 이 등록소였다고 믿은 순간, 그보다 앞선 기록을 가진 시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13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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