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창구에서 나온 목소리는 윤해진의 것이 아니었다.
민규는 그렇게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해진은 이미 대기실에 있었고 지금도 나린 곁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등록소가 같은 이름을 둘로 복제한 사례를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하 벽에 가까이 다가가 안전하게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물었다.
“안에 계신 분, 지금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본인 이름은 나중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의 신청을 취소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자가 대답했다. “등록소는 취소해야 문을 열어 준다고 했어요.”
“취소하지 않아도 나오실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 말 뒤에 작은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 여자는 처음부터 이 일을 해결해 줄 사람이 올 거라 믿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등록소의 전직 기록 심사관 '리안'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기 전에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려던 조항을 고치라는 지시를 거절한 뒤, 자신이 직접 이의 신청인이 됐다. 그날부터 신원을 분류하는 장부가 하루 세 번 그녀의 이름을 바꿨다.
“아침에는 직원, 점심에는 보호자, 밤에는 미등록 대상이었어요. 어느 쪽으로 불려도 저는 여기 있었는데.”
민규는 그 말을 그대로 수첩에 썼다. 사람을 설명하는 항목은 바뀔 수 있지만 사람이 곧 항목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셀레나에게 통로의 실제 벽 두께와 수문 위치를 재 달라고 부탁했다. 종이배가 돌아오는 시간과 벽 안의 공기 흐름을 비교하면 방의 대략적인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리안은 안쪽에 철제 사다리가 하나 있고 그 위에 오래된 창구 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을 열 때마다 외부 대기실에서 누군가 사라지는 듯한 경보가 울린다고 했다. 자신이 나오기 위해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 될까 두려워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민규는 리안에게 그 공포를 비웃지 않았다. 그녀가 오랫동안 지켜 온 선택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만 장치의 설명이 언제나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문을 바로 열지는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먼저 검증하죠.”
도윤은 오래된 창구의 물품 출납서를 가져왔다. 그 안에 '이의 신청자가 나가면 대기실에서 한 명을 보충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조항 아래에는 한참 뒤에 덧붙인 검은 줄이 있었다. [부족 인원은 장부상으로만 보충해도 된다.] 그 말의 뜻이 사람의 강제 배정인지, 단순한 숫자 보정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셀레나는 마지막 조항에 붙은 마법 인장이 자동으로 실제 사람을 찾도록 설계돼 있음을 확인했다.
“고장 난 곳이 어디인지 알겠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숫자만 채우라는 지시를 사람을 데려오라는 명령으로 실행한 거예요.”
하셀이 수동 예비 회선을 열어 줬다. 등록소의 오래된 원본 시스템에서는 이의 신청인에게 빈칸 상태를 허용했다. 책임자를 대체하지 않아도 신고 접수 사실을 남길 수 있는 기능이었다. 하지만 현재 장치에서는 그 기능에 접속할 길이 막혀 있었다. 접속 경로를 열려면 일곱 번째 창구의 서명판에서 '보호 대상은 개별 존재'라는 원칙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그 원칙에 왜 서명이 필요한 거죠?” 민규가 물었다.
“과거 담당자들이 승인 절차를 거치게 만든 겁니다. 그런데 원래 문서에는 특정 직원 한 명의 서명이 필수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하셀이 답했다.
민규는 은희에게 서명해 달라고 요청할 생각을 잠시 접었다. 서명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절차를 잘못 해석했을 수 있었다. 리안의 증언과 원본 규칙을 바탕으로 바뀐 부분부터 정리해야 했다. 케스는 본부의 법률 자문관에게 현재 갇혀 있는 사람들을 긴급 구조하는 동안 임시 기록으로 대피 인원을 확인해도 되는지 문의했다. 법적 절차가 모든 위험을 당장 없애지는 못하지만 구조 뒤 신원 문제를 다시 만들어선 안 됐다.
리안은 벽 안에서 들리는 셀레나의 목소리를 따라 자기 상태를 설명했다. 한쪽 발목은 오래된 계단에서 미끄러져 부었고, 손가락은 펜을 잡을 때마다 떨렸다. 그녀는 자신이 쓴 이의 신청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하루 세 번 이름이 바뀌더라도 그 문장만은 머릿속에서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민규는 내용을 지금 전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구조된 뒤 안전한 장소에서 서류를 복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줄 알았어요.” 리안이 말했다. “내가 더 정확하게 쓰면, 더 좋은 말로 설명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창구에서는 내가 무엇을 쓰든 취소하라고만 했죠.”
“잘못된 절차가 계속 거절했다는 사실과 당신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민규가 답했다.
리안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과거에 어느 직원에게 이의를 접수해 달라고 부탁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고 했다. 그러나 철제 사다리 뒤 벽에는 아직 날짜별로 적은 작은 표시가 남아 있었다. 어떤 날은 짧게 하나, 어떤 날은 네 개. 계절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던 흔적이었다. 민규는 그 표식을 보고 리안이 자신의 신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도윤이 벽 가까이 다가왔다. “저, 그때 심사관님이 쓰신 종이를 봤던 것 같아요.” 그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제가 새 직원이었을 때 누군가 마지막 창구를 닫으라고 했어요.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은 이미 이의 신청인이 아니라 '미완료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리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도윤에게는 무거운 꾸지람 같았지만, 그녀가 꼭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윤은 사과할 말을 찾았다. 리안은 짧게 대답했다. “당신이 지금 기억한 걸 공식적으로 말해 주세요. 제가 혼자 계속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이 남으면 좋겠어요.”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리안이 겪은 시간을 대신 해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첩에 날짜를 알 수 없는 사건을 적고,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에는 빈칸을 남겼다. 옛날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지금 또 거짓 확신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셀레나는 벽 안쪽으로 작은 손전등을 건넸다. 리안은 빛을 받아들고 잠시 멈췄다. 그녀가 몇 년 만에 처음 다른 사람의 도구를 자기 손에 쥐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손전등 빛을 사다리 쪽으로 비추자 부식된 발판이 보였다. 리안은 그 아래로 발을 디디지 않도록 조심했다. 민규는 로프를 먼저 고정한 다음 체중을 조금씩 실어 보는 시험을 제안했다.
“내가 떨어지면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와야 하나요?” 리안이 물었다.
“아니요. 사람이 위험하면 구조 방법을 바꾸면 됩니다.”
그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못 나오면요?”
“다른 출구를 찾고, 밖에서 들어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을 만들 겁니다. 혼자 못 나오는 책임을 당신에게 돌리지 않을 거예요.”
리안은 눈을 감았다. 밖에서는 서류상의 성공과 실패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지 몰라도, 지금 복도에서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이 실제로 살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전등을 흔들어 시험 신호를 보냈다. 셀레나는 벽 밖에서 같은 횟수로 빛을 흔들어 답했다.
하셀은 옛 창구의 구조 도면을 다시 보냈다. 이의 신청 접수 버튼은 모든 통로를 여는 만능 열쇠가 아니었다. 신원 변경 명령을 중지시키는 장치였고, 실제 문을 여는 힘은 현장에 있는 수동 레버와 압력 밸브가 담당했다. 민규는 그 구분을 확인해 두었다. 서류를 고쳤다고 벽이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래서 출입문을 고정하고 사다리를 보강하는 사람과 기록 명령을 분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었다.
“기술과 행정을 둘 다 고쳐야겠군요.” 셀레나가 말했다.
“둘 중 하나만 고치면 또 누군가 갇힐 겁니다.” 민규는 로프의 마찰 지점을 확인했다.
리안은 안쪽에서 오래된 목소리로 웃었다. “밖에는 여전히 까다로운 사람이 많네요.”
“까다로운 경비원이 제일 먼저 들어왔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작은 웃음이 오갔다. 그것이 리안을 당장 구해 주지는 못했지만 사다리를 오르기 전 몸의 긴장을 조금 풀어 주었다. 민규는 그 사이 케스에게 의료진을 바로 문 앞이 아니라 안전 구역에 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갇혀 있던 사람이 나왔을 때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면 또 다른 공포가 생길 수 있었다. 첫 만남은 구조자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구조된 사람 자신의 시간이 되어야 했다.
갑자기 계단 위에서 나린의 비명이 들렸다. 대기실 자동문이 닫히려 하고 있었다. 등록소의 장치는 일곱 번째 창구가 열릴 가능성을 감지하자 모든 출입 기록을 초기화하려 했다. 대기자들의 번호표가 희미해지고, 이미 벽 밖으로 구조할 계획이 세워진 노인의 신고까지 취소 상태로 바뀌었다.
“외부 임시 신고 회선은?” 민규가 외쳤다.
“살아 있어요!” 케스가 답했다. “여기서 사람들을 직접 보고 기록 중입니다.”
민규는 우선 대기실 문이 닫히지 않도록 수동 잠금쇠를 고정했다. 출입문 아래에 무턱대고 물건을 끼우는 건 자동문에 걸린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으므로, 도윤이 알려 준 유지보수용 해제 손잡이를 이용했다. 도윤은 처음으로 그 손잡이의 용도를 알게 됐다. 직원 교육 자료에는 영업 종료 후 문을 관리하는 법만 있었다. 사람이 안에 있을 때 어떻게 열어 둘지는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등록소 안의 조명은 하나씩 꺼졌다. 하셀이 경고했다. 기록망이 비상 동력으로 전환되면 폐쇄된 창구에 전력이 우선 공급될 수 있었다. 민규는 남은 조명을 대기실 쪽으로 돌리고, 지하에서는 손전등을 사용하기로 했다. 빛 하나에도 선택이 필요했다. 밖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불과 안에 갇힌 사람을 위한 불을 모두 지켜야 했다.
리안은 벽 안에서 사다리의 두 번째 발판이 부식됐다고 말했다. 민규는 비상 로프를 보내겠다고 했다. 수로를 통해 로프 끝을 전달하고, 리안이 상단의 고정 고리에 연결할 수 있게 설명했다. 리안은 손에 힘이 없다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한 공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오르라고 재촉하지 않고 계단 구조와 쉬어 갈 곳부터 물었다.
셀레나가 서명판을 열자 예상 못한 공간이 나왔다. 조그만 판 안에는 두 문장이 나란히 있었다. 왼쪽에는 [이의 제기 접수], 오른쪽에는 [이의 제기 포기]. 어느 문장에도 이름을 적는 칸이 없었다. 지금까지 창구가 반복해 온 '서명해야 나갈 수 있다'는 요구는 실제 장치에 존재하지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 그런 안내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럼 그냥 이의 제기 접수를 누르면 되는 겁니까?” 도윤이 물었다.
“먼저 외부 신고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요.” 민규가 말했다.
안전 회선이 연결됐다는 응답이 도착했다. 대기자들의 위치와 상태가 외부에 확인됐다. 셀레나는 이의 제기 접수란을 선택했다. 벽의 잠금편이 천천히 풀렸다. 번호표가 사라지는 대신, 각자의 종이 위에 짧은 문구가 떠올랐다. [임시 보호 중. 신원 확정 유보 가능.]
잠금편이 풀리는 동안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철문은 아직 끝까지 열리지 않았고, 안쪽 사람의 체중을 지탱할 구조가 충분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민규는 셀레나에게 문 가장자리의 마법 진동을 고정해 달라고 했다. 도윤은 지하 계단의 물기를 닦아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 한 사람의 탈출에 필요한 일을 모두 다른 사람이 하나씩 맡았다.
리안은 문턱을 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안쪽 방을 돌아봤다. 벽에는 그녀가 수없이 썼던 이의 신청 문장들이 남아 있었다. 민규는 그 문서들을 바로 가져오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가 살아 나오는 일이 먼저였다. 리안은 문밖의 빛을 바라보다 “아직도 제 신청이 남아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민규는 신청이 접수됐다는 독립 기록이 남았다고 보여 줬다. 리안은 그 작은 확인표를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그녀가 첫발을 디뎠을 때 바닥에서 아주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대기실의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경보가 아니었다. 외부 통신망에 한 사람이 구조 구역으로 이동했다는 확인 신호였다. 그 차이를 알아차린 민규는 비로소 어깨에서 힘을 뺐다.
리안이 벽 뒤에서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오래된 펜 하나가 들려 있었다. 민규는 펜보다 그녀의 손부터 붙잡았다. 서둘러 빼내지 않도록 체중을 받치며 천천히 앞으로 이끌었다. 여자는 빛이 드는 곳에 도착하자 바닥에 앉았다.
“이의 신청을 취소하지 않았는데도 나왔네요.”
“그럴 수 있도록 만든 창구였으니까요.”
그 순간 등록소의 모든 번호표에서 낯선 소리가 났다. 종이 뒤쪽이 스스로 뒤집히며 하나의 주소를 드러냈다. 강변도 폐역도 아닌 장소였다.
[원본 보관자: 제0기록관. 현재 접근 불가.]
제13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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