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일곱 번째 창구는 종이 한 장 너비만큼 열린 틈 뒤에 있었다.
도윤은 열쇠를 들고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가 다시 접었다. 마치 손가락으로 어떤 숫자를 세고 있는 듯했다. 민규는 먼저 벽의 공기 흐름을 확인했다. 좁은 틈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와 차가운 물 냄새가 함께 새어 나왔다. 사람의 숨이 들리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셀레나는 벽 안쪽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무조건 돌파하지 말자고 말했다.
계단 앞쪽에서 작은 종이배가 떠내려왔다. 지하에는 물길이 없는데도 배는 바닥의 희미한 빛 위를 따라 미끄러졌다. 나린이 접은 배와 비슷했지만 접힌 모서리가 더 정교했다. 배 안에는 마른 잉크로 쓴 세 글자가 있었다. [기억해.] 민규는 배를 집어 들기 전에 낚싯줄 같은 연결이 있는지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종이배는 마법의 부력에 의해 움직였지만 종이 자체는 평범했다.
“보낸 사람이 말을 할 수 없으면 이걸로 소통할 수 있겠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종이배의 안쪽에 '몇 명이 있습니까?'라고 적었다. 사람의 이름이나 신원을 먼저 요구하지 않았다. 배를 다시 빛의 흐름에 놓자 유리처럼 얇은 수로가 드러났다. 그것은 지하 기록고 벽과 강을 잇는 오래된 우편 이동 장치였다. 바닥을 따라 움직이는 마법이지만 물의 압력과 공기 유량을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부품을 억지로 떼면 벽 속에 있는 사람과의 연락이 끊길 수 있었다.
배가 돌아오는 데는 십이 분이 걸렸다. 답은 예상 밖이었다. [한 명. 그러나 하루에 세 번 이름이 바뀝니다.] 민규는 그 글씨를 들여다봤다. 한 사람이 실제로 세 명으로 나뉘는 뜻인지, 출입 기록이 하루에 세 번 다른 신원으로 덮이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음 질문을 적었다. [지금 다쳤습니까? 물과 공기는 있습니까?] 돌아온 종이배에는 [물을 못 마십니다. 종이에 이름이 젖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도윤은 오래전 직원 교육에서 들었던 일곱 번째 창구의 전설을 기억했다. 등록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마지막 창구는 '이의 제기 창구'였다고 한다. 이미 적힌 이름이 틀리거나 보호자를 강제로 정한 경우 본인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든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의 제기가 접수될 때마다 전체 처리 속도가 늦어진다며 창구를 폐쇄했다. 사람들의 이의를 줄이려면 항의할 곳을 없애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이 마지막 이의 신청자일 수 있겠군요.” 케스가 무전에서 말했다.
“신청자일 수도 있고 담당 직원일 수도 있습니다.” 민규는 창구 앞 먼지를 살폈다. “아직 아무도 확정하지 맙시다.”
작은 종이배를 보낸 사람에게 질문을 기다리는 동안 민규는 자기 아버지의 오래된 공책을 떠올렸다. 그 공책에는 고장 신고를 기록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어디에서, 언제부터, 누가 실제로 위험한가. 민규는 그 문장을 어린 날부터 읽었지만 학교의 마법 사건을 겪은 뒤에야 뜻을 온전히 알게 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딪친 가장 위험한 장치들은 언제나 '문서상 해결'이라는 말을 먼저 내세웠다.
그는 수첩을 펼쳐 지하 기록고의 사방을 그렸다. 벽이 끝나는 위치를 기준으로 왼쪽은 강과 이어졌고 오른쪽은 대기실 아래로 연결됐다. 바닥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수문이 움직일 때마다 서랍 안의 종이들이 살짝 들렸다가 가라앉았다. 그것이 실제 공기압 변화인지 마법의 반응인지 분리해서 측정해야 했다. 셀레나는 종이 조각에 작은 표시를 하고 공기 흐름만 읽는 도구를 붙였다.
도윤은 종이배를 접을 줄 안다고 했다. 어릴 때 강가에서 놀며 배를 많이 접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뒤에는 종이를 마음대로 낭비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빈 계산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가 멈췄다. 그 종이가 누군가의 신원 기록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민규는 아무 기록도 없는 깨끗한 종이를 따로 건넸다. 구조 과정에서 기록을 훼손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도윤이 접은 배는 바닥에서 바로 넘어졌다. 사내는 민망한 얼굴로 웃었다. 나린이 계단 위에서 그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접는 순서를 알려 주었다. 작은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자 도윤의 두 번째 배는 반듯하게 섰다. 오랫동안 번호표만 다뤄 온 직원이 아이에게서 종이배 접는 법을 배우는 장면이었다. 민규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나린을 지하 쪽으로 더 내려오게 하지는 않았다.
“아이한테 이런 걸 배워도 되겠지요?” 도윤이 물었다.
“배운다고 해서 그 아이가 당신 책임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 말에 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등록소의 규칙이라면 도움을 준 사람이 상대방의 평생 책임자가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나 현실에서 도움은 그렇게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길을 알려 주고 다른 누군가는 물을 건네고, 또 다른 사람은 다리를 고친다. 그때마다 평생을 담보할 계약을 할 필요는 없었다.
종이배가 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나린은 자신이 본 첫 번째 종이배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누군가 작은 배를 접어 주었는데, 그 안에는 '이름 없이도 울 수 있다'는 글씨가 있었다고 했다. 나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울고 싶을 때마다 배를 품에 넣었다. 어느 아침 배가 사라졌고 대신 대기실의 벽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오늘의 작은 비상벨과 같았는지 아이는 확신하지 못했다.
민규는 나린에게 배를 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얼굴은 모르겠고 손이 유난히 따뜻했다고 했다. 어른들은 그런 답을 단서로 취급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민규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벽 안의 사람은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글을 전하려 했고,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를 위로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민규는 비상 수문의 작동표를 다시 확인했다. 문을 열려면 물이 빠져나갈 곳부터 찾아야 했다. 오래된 지하 우편 수로는 홍수 때 역류를 막도록 만들어졌지만 누군가 그 역류 방지판을 서류 보관함과 연결해 놓았다. 보관함이 열려 있으면 판이 닫히고, 판을 열면 서류가 우편관 안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업무 효율을 높이려 했다는 설명은 있었지만 실제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 이 구조를 시험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그는 하셀에게 보관함의 전표를 안전하게 보존할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하셀은 보존해야 할 원본의 위치를 표시하고, 복제 가능한 문서는 별도 저장소에 옮긴 뒤 물길과 연결된 장치를 분리하자고 했다. 민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람을 구하려고 필요한 서류를 잃을 수도 있지만, 서류를 살리려고 사람을 물에 가둘 수는 없었다. 우선순위를 정한 뒤에야 밸브를 돌릴 수 있었다.
셀레나는 지하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먼지 냄새 사이로 젖은 흙 냄새가 강해졌다. 그는 마력계 수치보다 먼저 실내 공기의 변화를 민규에게 알렸다. 민규는 천장 배관의 이음새를 비추었다. 가느다란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방울 사이 간격이 빠르게 줄었다. 실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벽 안쪽에 사람이 있다면 안전한 구조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었다.
도윤은 한 걸음 물러서며 자기가 배관을 망가뜨린 건 아닌지 물었다. 민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자책할 시간에 밸브 번호를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내는 손전등을 들어 글자를 읽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자기 눈으로 확인한 시설 상태를 보고하는 일이었다. 번호가 정확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민규는 우회 통로의 위치를 더 좁힐 수 있었다.
그때 아래쪽의 우편 배관에서 짧은 금속음이 났다. 셀레나는 바닥의 마법 실이 당겨지는 방향을 확인했다. 종이배는 단순히 벽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물의 압력 차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물길을 막으면 배가 오지 않을 뿐 아니라 안쪽 방의 환기도 달라질 수 있었다. 민규는 도면에 종이배가 지나간 시간과 밸브의 상태를 함께 적었다. 사소해 보이는 종이 한 장의 길이 구조의 단서가 됐다.
케스에게서는 강변 가게 주인에 대한 답장이 왔다. 예전 가게는 몇 해 전에 문을 닫았지만 임대인이 남긴 연락처는 있었다. 케스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고, 전 주인은 폐역이 폐쇄된 뒤에도 가끔 '대기표가 없으면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문서가 무서워 근처 아이가 울어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민규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도움을 주면 책임을 떠맡는다는 공포가, 마침내 서로를 돕지 못하게 만드는 규칙이 된 것이다.
민규는 수첩에 적었다. [문제는 등록소 안의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밖의 사람이 구조 요청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그 문장은 보고서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한 장의 보고서만으로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당장 필요한 행동을 선택했다. 벽 안의 사람과 연락을 유지하고, 강의 수위를 확인하고, 누군가 강제로 이름을 부르기 전에 안전한 통신 방법을 열어 두는 것. 그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었다.
등록소를 둘러싼 강물은 낮보다 빨라지고 있었다. 케스는 구조대와 함께 제방 수위를 확인했다. 도시의 수문 관리자는 상류에서 내보내는 물이 평소보다 많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했다. 등록소 지하 우편 수로가 강물과 연결돼 있다면 곧 잠길 수 있었다. 민규는 현장을 조사할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고 안전한 구조 계획을 버릴 수는 없었다.
셀레나는 지하 기록고의 도면에서 물길과 환기구가 만나는 구간을 찾았다. 둘이 겹치는 부분에 압력 조절 밸브가 있었다. 등록소는 그 밸브를 이름값 정산 장치와 연결해 두었다. 많은 사람이 항의할수록 밸브가 느리게 열리고, 긴급 신고를 빨리 처리할수록 물길이 좁아지는 이상한 구조였다. 기계가 효율적이라고 평가하는 행동이 실제로는 탈출 통로를 막는 셈이었다.
민규는 케스에게 강변 제방을 넘지 않도록 현지 구조대를 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셀레나는 하셀에게 원점 관리실 쪽 예비 통신선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도윤은 대기실의 사람들에게 지하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들은 오래 기다린 사람만 먼저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안내했다. 이동 가능한 사람부터 안전한 출입문 쪽으로 모으되, 이름을 적지 않아도 안내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나린은 계단 위에서 잠깐 기다렸다. 그녀는 또 누가 사라지는지 궁금해했지만 민규는 아이를 지하로 데려오지 않았다. 대신 해진과 함께 사람들에게 종이컵을 나눠 주도록 부탁했다. 나린은 종이컵에 별을 그리다가 문득 질문했다. “여기서 이름이 틀렸다고 말하면 정말 아무도 안 들어 줘요?”
“그래서 이제 들어 줄 사람이 생기게 만들려는 거야.” 민규가 대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 통로 안쪽에서 종이배가 또 하나 밀려왔다. 이번에는 바닥에 작은 피 묻은 천 조각이 실려 있었다. 도윤은 그 천의 문양을 알아봤다. 오래전 등록소 직원들에게 지급하던 손수건이었다. 그는 그것을 만들던 상점이 이미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사람과 물건이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민규는 손수건을 일방적으로 증거물로 가져가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안쪽 사람에게 구조에 도움이 될지 묻는 질문을 다시 보냈다. 이번에는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 바닥의 빛이 크게 흔들렸고 원통 우편함 전체에서 금속 긁히는 소리가 났다. 하셀이 보낸 계측값에 따르면 물길 아래의 압력이 갑자기 올라가고 있었다.
“지하 수로가 역류합니다!” 셀레나가 외쳤다.
민규는 배관의 수동 우회 장치로 뛰어갔다. 두 밸브 중 하나는 녹슬어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손잡이가 아예 없었다. 그는 공구함에서 적절한 렌치를 골라 축을 잡아당겼다. 오래된 밸브는 힘으로만 돌리면 부러질 수 있었다. 압력을 조금 낮춘 뒤 차례로 움직여야 했다. 셀레나가 마법 회선의 흐름을 고정해 주자 민규는 반 바퀴씩 우회 밸브를 열었다.
수로를 타고 넘치던 물이 천천히 빠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종이배 하나가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배 안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창구를 열면 내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열지 않으면 모두 익사합니다.]
민규는 누가 써 보냈는지 모르는 그 문장을 읽고 입술을 다물었다. 이전까지의 많은 장치가 사람들에게 두 가지 나쁜 선택만 제시했다. 그는 빈 의자에 앉은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고 통로를 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바로 그때 지하의 낡은 비상벨이 오랫동안 울리지 않던 소리를 냈다.
딸랑.
종소리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이의 신청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13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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