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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135화
PAYLUA ORIGINAL · 제135화

135화. 허가받지 못한 아이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154자

오프라인 책장
나린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쓴 곳은 학교 입학서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등록소 대기실 한쪽에 놓인 종이컵의 옆면이었다. 나린은 마른 연필 끝으로 ‘나린’이라고 적고 셀레나에게 보여 주었다. 도윤은 당장 그 글씨를 지워야 한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서류에 없는 이름을 쓰면 위험하다는 규칙을 너무 오래 들은 탓에, 컵 하나에 자기 이름을 적는 일이 어떤 피해를 주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대신 나린에게 물었다. “그 이름은 네가 원해서 쓰는 거니?” “엄마가 불러 줬던 이름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나린은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조금만 기억한다고 했다.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마지막 문장은 무서웠다. '기다리라'는 말인지 '나가라'는 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폐역 앞에 혼자 남아 울던 날도 흐릿했다. 해진이 자신을 찾아준 것은 기억하지만 해진을 엄마라고 착각했던 적도 있었다. 여러 기억이 섞인 아이에게 진짜 부모를 당장 찾아내라고 다그칠 수는 없었다. 민규는 나린의 컵을 증거물로 가져가지 않았다. 아이가 갖고 싶으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대신 본인이 허락한 범위에서 글씨를 사진으로 찍었다. 등록소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이름을 붙여 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아이가 자기 이름을 쓴 증거가 존재한다는 건 그 원리와 충돌했다. 그래도 민규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반격이 아니라 나린이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지였다. 아이에게 자기 이름을 적게 한 뒤, 민규는 종이컵을 창구 앞에 가져다 놓지 않았다. 나린은 기계가 그 글씨를 가져가 버릴까 걱정했고, 민규도 걱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둘은 컵을 작은 가방에 넣고 다른 컵으로 물을 마셨다. 그 행동이 거창한 결심처럼 느껴지는 건 이 건물의 규칙이 얼마나 이상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 아이가 자기 물건에 글씨를 쓰는 일에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나린은 해진의 손에 들린 장난감 기차를 만졌다. 기차의 바퀴 하나가 삐뚤어져 있었다. “그거 잘 안 굴러가죠?” 아이가 물었다. 해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린은 주머니에서 작은 단추를 꺼냈다. “이걸 끼우면 돌아가요. 제가 그렇게 했어요.” 민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았다. 그 기차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는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직접 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해진은 단추를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눈물을 글썽였다. 폐역 앞에서 나린을 처음 만난 날, 아이는 장난감의 앞바퀴를 수리하려고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이에게 보호자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진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을 때 나린은 먼저 기차를 보여 줬다. 그때부터 해진은 이 장난감이 아이가 자기 말을 하기 전에 꺼내는 물건임을 알게 됐다. “저는 그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해진이 말했다. “아이를 데려가면 안 되는 것 같고, 그냥 두면 더 안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신고를 하려고 했던 거잖아요.” 민규가 답했다. “그 선택이 잘못된 계약으로 바뀐 건 다른 문제입니다.” 나린은 누구에게 소속되는 것인지보다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묻고 싶어 했다. 배가 고프면 목이 먼저 조용해진다고 했다. 등록소에서 주는 음식은 항상 똑같았고, 식사를 받으려면 대기번호를 창구에 보여 줘야 했다. 번호표가 흐려진 날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민규는 외부 구조대에 아이와 다른 대기자들의 간단한 식사와 식수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등록이 완료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음식이 갈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 봤다. 도윤은 식료품 출납 대장을 보며 망설였다. 규정상 승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배급한 음식은 직원 개인의 급여에서 차감된다고 했다. 민규는 직원에게 무조건 자기 돈을 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대장의 해당 조항을 사진으로 남기고, 긴급 상황의 식수 공급은 다른 승인 절차로 처리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케스가 외부에서 보낸 보온 병과 식량은 등록소의 지급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었다. 따뜻한 수프를 받아 든 나린은 놀란 듯했다. “제 번호를 안 물었는데요?” “배가 고픈 건 번호가 있어서가 아니니까.” 아이는 천천히 첫 숟가락을 떴다. 그 사이 해진은 자기가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렸다. 그녀는 등록소에서 받던 식사가 늘 충분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시간도, 날짜도, 계절도 반복돼 보이던 공간에서 몸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민규는 의료진이 오기 전까지 무리하게 많은 음식을 먹지 않도록 안내했고,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건강 확인을 받게 하자고 했다. 해진은 민규에게 문득 물었다. “밖에 있던 그 작은 가게는 아직도 있나요? 바퀴 고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더군요. 하지만 사진이 남아 있을 수 있어요.” “그곳 주인이 나린을 봤을지도 몰라요. 비 오는 날마다 가게 앞에 서 있었대요.” 민규는 휴대전화로 케스에게 연락했다. 그는 가게에 사람이 있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고, 예전 주인의 연락처가 남아 있더라도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조회하지 말자고 덧붙였다. 목격자를 찾는 과정에서도 누군가의 삶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열람해서는 안 됐다. 케스는 알겠다고 답했다. 나린은 자기 도시락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작은 노란 달걀을 나눠 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창밖에 비가 오고 있었고, 누군가 창문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노래했다. 셀레나는 기억을 강제로 끌어내는 마법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마법이 존재하더라도 아이에게 위험이 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아이가 원하는 속도로 이어져야 했다. 민규는 수첩에 [기차 앞바퀴, 녹색 장화, 비 오는 날의 도시락, 가게 앞 목격자]라고 적었다. 모두 확인되지 않은 단서였다. 그러나 등록소의 복잡한 공식 기록에서 찾을 수 없는, 실제 아이의 생활에 관한 정보였다. 그는 종이를 덮으며 나린을 바라봤다. 아이는 수프를 다 먹고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손의 떨림이 줄어들어 있었다. 등록소의 복도에는 어른 키에 맞춘 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분침이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번호표에 적힌 시간은 뒤로 줄어들었다. 노인의 번호표에는 원래 남아 있던 다섯 시간이 어느새 사십 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민규는 회수선의 유량을 낮췄는데도 시간이 감소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경로가 있음을 알아챘다. 셀레나는 벽 쪽을 두드리다 속이 빈 부분을 찾았다. 오래된 종이류 보관함 뒤로 가느다란 튜브가 연결돼 있었다. “여긴 마력선이 아니라 공압관인데요?” “종이 전표를 이동시키던 관일 겁니다.” 민규가 말했다. “검사 수치에는 안 나타나겠죠.” 튜브를 따라가자 작은 원통 우편함이 나왔다. 그 안에는 이름을 배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요청서가 분 단위로 들어왔다. 누군가 전표에 찍힌 시각을 지우면 대기자에게 남은 신고 유효 시간이 함께 줄었다. 마법으로만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거대한 시스템이 낡은 우편 배관에 기대어 돌아가는 꼴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끔찍했다. 해진은 그 시설에서 하루가 언제 바뀌는지 모른다고 했다. 천장등은 늘 같은 밝기였고 식사 시간도 창구의 종소리에 맞춰 움직였다. 민규는 휴대 시계와 창밖의 해를 비교해 기록했다. 창문에서 보이는 강변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지만, 실내 시계는 매번 정오 근처에서 되돌아왔다. 아이가 얼마나 오래 그곳에 있었는지 기억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여기서 나가고 싶은 사람의 순서를 우리가 정하지 않겠습니다.” 민규는 대기실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다친 사람과 당장 치료가 필요한 사람부터 외부 의료진과 연결하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의 뜻을 확인하겠습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살폈다. 오래 기다린 사람이 먼저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어린아이를 먼저 보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다. 누군가는 타인을 양보하다 다시 뒤로 밀리는 데 지쳤다고 말했다. 민규는 그 의견을 모두 적었다. 위험도와 이동 가능 여부를 고려한 구조 순서를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표처럼 만들지 않기로 했다. 도윤은 초창기 교육 자료에서 원래 등록 절차의 세 가지 원칙을 발견했다. [긴급 보호는 등록 여부를 묻지 않는다. 보호자의 부재는 구조 거절 사유가 아니다. 이름은 보호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에게 속한다.] 그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은 뒤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자신이 매일 한 행동은 세 가지 원칙을 모두 어긴 것이었다. 그는 대기실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해진은 사과를 받겠다고도, 용서하지 않겠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저희를 내보낼 수 있어요?” 도윤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지금 제 권한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통로는 전부 보여 드리겠습니다.” 민규는 그 말을 듣고 도윤에게 작은 손전등을 건넸다. 방 안의 모든 종이를 아는 사람이 실제 복도도 알 필요가 있었다. 대기실 사람들 가운데 한 여자가 종이컵에 이름 대신 작은 꽃을 그렸다. 자기 이름을 당장 떠올릴 수 없어서였다. 그녀는 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두 번 고쳐 그리다가 민규를 바라봤다. “꽃을 그리는 것도 기록이 되나요?” 민규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당신이 원하면 그렇게 남길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면 지금은 그냥 그림으로 둬도 돼요.” 여자는 컵을 한참 들여다보다 웃었다.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창구에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이제 꽃을 그리는 방법만큼은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그는 컵에 파란 줄을 하나 더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자기 컵을 뒤집어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도윤은 처음에 그에게 왜 비워 뒀는지 묻고 싶어 했다가 멈췄다. 비워 두는 것도 선택이었다. 민규는 그 광경을 보고 새로운 안내를 붙였다. '원하는 만큼만 알려 주세요.' 이름을 못 쓴 사람을 대신해 누군가의 이름을 채우지 말고, 아직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내쫓지도 말자는 뜻이었다. 등록소는 오랫동안 선택지를 하나만 보여 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 선택지가 생기자 작은 컵의 색깔부터 달라졌다. 마침 강변의 케스에게서 구조 차량이 도착했다는 무전이 왔다.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준비는 시작됐다. 다만 문이 열린다는 확인이 없으므로 외부 의료진을 무리하게 들어오게 하지 않기로 했다. 민규는 대기자들에게 그 사실을 설명했다. 기대를 부풀리지 않되 구조가 준비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목소리였다. 민규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주어진 안내문을 살폈다. 아이의 안내문에는 [가족 관계 확인 전 임시 이름 금지]라고 쓰여 있었고, 어른의 안내문에는 [자녀 관계 확인 후 책임 귀속]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문장은 서로를 기다리는 고리였다. 부모를 확인할 때까지 이름이 없고, 이름이 생길 때까지 부모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방식대로라면 누구도 처음부터 기록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일부러 출구 없는 조건을 만든 거예요.” 셀레나가 말했다. “그 조건을 유지하면서 뭘 얻었을까요?” 민규는 원통 우편함을 가리켰다. 등록소는 보호를 요청하는 사람의 절박함을 에너지처럼 모아 중앙으로 보냈다. 사람이 나가려 할수록, 타인을 돕겠다고 약속할수록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민규는 나린에게 간단한 질문을 했다. “여기서 나오면 뭘 하고 싶어?” 나린은 처음에는 그 질문이 등록 심사인 줄 알았다. 민규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자 그녀는 주저하다 대답했다.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물웅덩이를 밟고 싶어요. 엄마랑 같이면 좋겠는데, 지금은 해진 아줌마랑도 괜찮아요.” 해진은 아이를 바라봤다. 서로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몰라도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듯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끝에 숫자 0이 떠올랐다가 희미해졌다. 그 순간 창구에 경고문이 떴다. [보호 대상이 동의 없이 이동 중입니다. 가족 관계 증명을 위해 가장 가까운 성인을 강제 보호자로 지정합니다.] 해진의 이름 앞에 붉은 인장이 저절로 찍혔다. 그녀는 뒤로 비틀거렸다. 나린을 도우려는 마음 때문에 다시 의자에 묶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멈춰요. 그 사람은 서명하지 않았어요.” 민규가 외쳤다. 그러자 창구 안쪽에서 여태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나왔다. “이 시설에서 동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보호는 명령이니까요.” 복도 끝의 빈 의자가 바닥 위를 스스로 미끄러져 움직였다. 누군가 앉아야 하는 자리처럼 해진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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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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