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설의 경비실에서 발견된 하얀 종이는 새벽까지 색이 변하지 않았다.
민규는 그 종이를 책상 위에 놓고 바로 만지지 않았다. 종이에서 마력이 느껴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장갑부터 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입학과 출석을 둘러싸고 생긴 사건들은 한 번의 무심한 서명을 통해 시작됐다. 그는 낡은 투명 보관함을 찾아 종이 위에 덮었다. 셀레나가 보관함 밖에 감지용 실을 두르자 잉크처럼 보였던 글자가 얕게 솟아올랐다. [입학 전 등록소.] 그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가 생겼다. [방문 목적: 신원 증명. 동행 인원: 미정.]
“우리를 초대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데 벌써 방문 목적까지 적혔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증명하러 오라는 게 아니라 증명할 사람을 데려오라는 뜻일 수도 있죠.”
민규는 직접 서명을 요구하는 문서와 안내문을 구별해 표시했다. 그리고 경비실 전화의 통화 내역을 살폈다. 전화기에는 발신 지역이 뜨지 않았지만, 통화 직전 교내 제설 장치가 사십삼 초 동안 멈춘 기록이 있었다. 원래 이 계절의 제설 장치는 시험 운전 중이었다. 눈이 내리지도 않은 날에 왜 제설기가 멈췄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정은희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경비실로 왔다. 민규가 종이를 보여 주자 은희는 문구보다 왼쪽 귀퉁이를 오래 바라봤다. 종이에는 어린아이의 손가락으로 찍은 듯한 둥근 압흔 두 개가 있었다. 종이에 찍힌 손가락이 아니었다. 오히려 종이가 처음부터 두 손가락을 위한 공간을 남겨 두고 만들어진 것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이런 접수표를 본 적이 있어.” 은희가 말했다. “다른 시설에 맡기기 전에 아이들을 잠시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든 임시 신원표였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이도 보호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지.”
“그런데 왜 이름을 배급하던 곳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사람과 나중에 바꾼 사람이 같을 필요는 없어.”
은희는 아는 것과 추측하는 것을 분리해 말했다. 민규는 어머니가 모든 진실을 알고도 숨겼다고 몰아세우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직접 본 서류와 다른 사람이 전해 준 이야기를 구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은희는 오래된 보호시설에서 아이가 거절할 수 있는 등록칸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종이에는 거절란이 없었다.
케스가 가져온 중앙 겨울 경로 목록에는 보이지 않는 열두 번째 주소가 있었다. 목록을 종이에 출력하면 열한 줄인데, 접는 순간 빈 공간 한 줄이 생겼다. 하셀이 그 부분을 분리해 확대하자 주소 대신 좌표를 나타내는 구식 기호가 나타났다. 강, 교량, 여섯 개의 가로등, 지워진 정류장. 셀레나는 이 조합이 오래된 도시 지도에 남아 있는 서리나루 하류의 폐역 부지와 맞는다고 말했다.
“주소가 없는 건 지도에서 빠진 시설이라서가 아니군요.” 케스가 짚었다. “주소가 결정되기 전 단계의 시설입니다.”
민규는 창밖의 학생들을 봤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침 체육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입학하기 전에도 한 사람은 존재하고, 학교를 나간 뒤에도 그 사람의 삶은 계속된다. 그런데 등록소가 정말로 모든 출석과 보호 기록의 출발점이라면 출생부터 졸업까지를 한 사무실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셈이었다. 가장 위험한 곳을 가장 조용한 이름으로 숨겨 놓은 기분이었다.
“먼저 현장 담당자부터 찾아야 합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역이라고 단정하면 안 돼요.” 민규가 말했다.
케스가 시청의 오래된 건물 관리 대장을 찾아봤다. 폐역 부지는 철거 대상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철거 완료 기록에는 담당자의 서명이 없었다. 최근 육 개월 동안은 상수도 사용량이 조금씩 잡혔다. 주민등록상 거주자는 없는데 매주 일정한 날 새벽에 물이 쓰였다. 전기도 같은 날 들어왔다. 민규는 그 두 기록을 보고 현장을 비어 있는 건물로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루카는 떠나는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는 또 학교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민규가 못마땅했다. “형, 어제 비 새는 거 고치고 들어왔잖아요. 이번엔 제가 같이 가면 안 돼요?”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아직 모르잖아. 이번엔 조사팀만 먼저 갈 거야.”
“저도 실종된 사람을 찾을 수 있어요.”
민규는 루카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루카가 미라를 기다리던 시간, 한 번 지워진 이름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위험한 장소를 발견했다고 어린 학생에게 책임을 넘길 수는 없었다. 그는 루카에게 대신 현재 학교의 임시 출입 명단을 점검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식 입학서류가 없는 아이도 도서관과 의료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루카는 입술을 비죽이다가 그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물었다.
“중요하지. 나도 지금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거든.”
미라는 루카의 어깨를 한 번 쳤다. “우리 둘이 학교에서 확인할 건 해 보자. 누군가는 여기 있어야 하잖아.” 동생이 자기 힘을 제대로 쓰길 바라면서도 다시 사라지는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목소리였다. 민규는 두 사람에게 경비실에 남겨 놓을 통화 절차를 설명했다. 위험한 신호가 오면 장치에 대답하지 말고 사람에게 먼저 연락할 것. 누군가 신원을 확인하라고 재촉하더라도 보호 중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읽지 말 것.
출발하기 전, 민규는 제7시설의 점검 게시판에 자신의 업무를 두 칸으로 나눠 적었다. 하나는 당장 학교에서 해야 할 일, 다른 하나는 원격 조사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르반이 찾아와 그 종이를 보았다. 교장은 다른 학교와 등록소 사건 때문에 민규가 계속 출장을 다니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민규는 사람이 없는 경비실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고 답했다. 자신이 빠지는 시간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경보와 민원을 받아야 했다.
오르반은 교직원 가운데 자원하는 사람을 찾겠다고 했다. 민규는 '자원'이라는 말을 듣고 한 번 더 확인했다. 단순히 직급이 낮은 교사에게 떠맡기는 형태라면 오래전 중앙의 자동 배정과 다르지 않았다. 오르반은 참석자들이 업무 내용과 교대 시간을 듣고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민규는 임시 근무표에 자기 복귀 예정 칸을 비워 두지 않고, 직접 연락이 불가능할 때 연락할 두 번째 번호까지 적었다.
그 일을 마치자 셀레나가 오래된 하류 지도를 들고 왔다. 지도에는 세 가지 지명이 겹쳐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여섯 등불 나루', 그다음은 '서리나루 하류', 마지막은 도시 개발 때 붙인 이름 없는 도로번호였다. 장소에 붙인 이름은 이렇게 여러 번 바뀌어도 장소에 살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셀레나는 옛 교통 안내 책자에서 노선이 없어진 날의 공고문을 찾았다. 폐역은 강물이 범람한 뒤 폐쇄됐다고 했지만, 폐쇄 직전에도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표를 샀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기차가 안 다니는데 표를 샀다고요?” 민규가 물었다.
“전표에는 목적지가 없어요. 대신 승객의 이름란이 빈칸이고 날짜만 적혀 있어요.”
케스는 표 구입 내역이 익명의 구조 지원 기금처럼 쓰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긴급 숙소를 운영하던 곳이라면 가짜 운임 대신 생활비를 정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폐역의 사진 속 매표소에는 환자용 들것과 작은 이불들이 놓여 있었다. 누구도 손님과 환자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민규는 오래된 사진을 보며 거기 머물렀던 사람들이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오늘날의 기록에서 빠져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정은희는 셀레나가 보내 준 지도를 확대해 보다가 강이 갈라지는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엔 다리가 없던 때가 있었어. 폭우가 나면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뉘었지. 연락이 안 되는 가족을 찾는 임시 거점이 필요했어. 그래서 안전한 쪽에서 신고를 받아 주는 공간을 만들었어.” 민규는 어머니가 기억하는 지형이 현재와 다른 걸 듣고도 곧장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장기간 사라져 있던 사람에게 도시의 변화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은희는 잠깐 웃었다. “네가 어릴 때 다리가 있는 곳을 보면 언제나 아래가 먼저 궁금했지. 사람들이 위로만 다니는데 물은 어떻게 아래로 가느냐고 물었어.”
민규는 그 기억이 낯설었다. 자기가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배수구가 막힌 곳을 보면 사람보다 먼저 물길을 찾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기분 좋게 웃다가 문득 물었다.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안으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했지. 그리고 구경하다 떨어지면 안 되니까 난간부터 잡으라고.”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입술을 다물었다. 잃어버린 삼십 년의 모든 기억을 서로에게 바로 되돌려 줄 수는 없었다. 민규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꺼내 준 작은 기억 하나를 지금의 대화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잠시 더 강의 사진을 함께 보았다.
차에 타기 직전 케스에게서 확인 전화가 왔다. 폐역 부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 최근 야간에 아이들용 우비를 입은 사람이 강변을 걷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는 실종 신고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신고하면 자신이 의심받을까 겁이 났다고 했다. 민규는 그 목격자를 범인 후보로 몰지 말고 직접 본 시간과 장소만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조사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어서는 안 됐다.
운전대를 잡은 셀레나가 길게 늘어선 방음벽 옆을 지났다. 교외의 창고와 작은 아파트가 끝나자 강변에 오래된 벚나무가 나타났다. 겨울이 가까워 나뭇가지가 거의 비어 있었지만 가지 아래에는 어린아이들이 매단 바람개비가 세 개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종이로 만든 작은 표가 매달려 있었다. '돌아와'라는 글씨가 희미했다. 민규는 차창 너머로 그것을 보고 수첩에 표시했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폐역이 단순한 철거 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차를 세울 곳을 고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다리 아래의 비탈은 젖어 있었고 주차하면 구조 차량이 들어오는 길을 막을 수 있었다. 민규는 조금 먼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장비를 나눠 들었다. 마법 사건을 다룬다고 해서 아무 데나 차를 세워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셀레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상을 구하러 와도 주차 위반은 안 하는군요.” 민규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들한테 설명할 수 있는 일부터 합시다.”
그들이 오래된 하류 교량에 도착했을 때 강은 낮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가로등 여섯 개 중 셋은 켜져 있었고 둘은 깜박였으며 마지막 하나는 등갓이 아예 없었다. 민규는 낡은 표지판 아래에서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가로등의 전기선이 건물로 들어가는 대신 강 쪽으로 내려가 있었다. 길을 밝히기 위한 선이라면 설명되지 않는 구조였다.
“마법 회선일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마법이든 전기든 선이 끝나는 데는 있을 겁니다.” 민규는 먼저 전류가 흐르는지 확인했다. 오래된 케이블 외피에는 작은 균열이 있었고, 젖은 교량 난간에 닿아 있어 그대로 손대면 위험했다. 그는 임시 경고 표지를 붙이고 시청 시설팀에 위험 설비 신고를 남겼다. 실종자 사건을 조사한다고 해서 지나가는 주민의 안전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가로등 아래쪽에서 낯선 아이가 나타났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짙은 녹색 장화를 신고 있었고, 한 짝의 장화 끈만 묶여 있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등록하러 왔어요?”
“아니. 사람을 찾으러 왔어. 너는 여기서 누구를 기다리니?”
“엄마요. 등록하면 엄마를 보내 준다고 했어요.”
“엄마 이름을 알아?”
아이는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가로등이 한 번 깜박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목에 걸린 종이표에 숫자 하나가 생겼다. 0. 민규는 곧바로 아이의 몸 상태부터 살폈다. 손끝이 차고 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간 듯했다. 그는 셀레나에게 따뜻한 겉옷을 부탁했다.
“이름부터 묻지 않네요.” 아이가 중얼거렸다.
“안 물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먼저 있어.”
아이는 처음으로 경계를 조금 풀었다. “나린이에요. 여기서는 아무도 그걸로 안 불러요.”
그 순간 강 건너편에 오래전에 철거됐다는 작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문 위 간판은 낡아 있었다. [입학 전 등록소. 대기 시간 없음.] 문 앞에는 여러 개의 젖은 우산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건물이 없다고 적힌 지도와 달리, 누군가는 지금도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건물의 자동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부드러운 안내 음성이 울렸다.
“미등록 보호 대상 한 명이 확인되었습니다. 동행인은 대표 보호자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민규는 아이를 자기 뒤로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설 공간을 남겨 두고 말했다.
“아직 누구도 등록하지 않습니다. 먼저 이 아이의 엄마가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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