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보호소의 경보가 도착했을 때 민규는 아직 흰등성이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눈보라로 도로가 막혔고 구조 차량은 기상관측소 주변에서 운행을 중단했다. 대신 제7시설의 셀레나가 원격 관측망을 열었다. 보호소의 담당자와 직접 연결하고, 실제 병실과 대피 출입구를 차례대로 확인했다. 자동 기록에 '안전'이 떠 있어도 사람이 눈으로 본 상황이 다르면 기록을 고쳐야 했다.
보호소에서는 어른 한 명이 분명 병실에 누워 있었는데 출입 기록상 같은 이름이 두 곳에 나타났다. 하나는 침대, 하나는 복도 끝의 빈 의자였다. 보호소 의료인은 환자의 상태를 먼저 보고했다. 숨을 쉬고 있었고 의식도 있었다. 기록망이 둘로 나뉘었다고 해서 환자가 둘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민규는 무전으로 실제 환자 확인을 우선하라고 했다.
케스는 흰등성이에서 복사한 겨울 경로 설계도를 펼쳤다. 예비 경보 회선에는 '공백 채움' 기능이 붙어 있었다. 연락이 끊긴 시설의 관리자가 응답하지 않으면, 다른 시설에서 사용한 가장 최근의 이름을 가져와 임시 관리자 칸에 넣는 기능이었다. 본래 '임시 수신처'라고 쓰여야 할 자리가 어느 시점부터 '대체 인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또 단어 하나가 문제군요.” 민규가 중얼거렸다.
“단어를 바꾼 사람의 의도가 문제겠죠.” 케스는 조용히 답했다. “누가 그걸 바꿨고 왜 승인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들은 제4보호소의 담당자에게 이름 복제 기록과 실제 병실 기록을 분리해 보관하게 했다. 보호소에서 쓰던 예비 경보용 등은 그대로 켜 두었다. 다만 복도 끝 빈 의자에 자동으로 인원 배정을 하는 회선은 차단했다. 셀레나는 전선 몇 개를 끊는 대신 마법 신호에서 신원 정보를 제거하는 장치를 임시로 연결했다. 신고 장소, 위험 등급, 필요한 도움만 전달하고 사람의 이름은 그 시설에서 별도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제4보호소에서는 신원 복제 명령이 차단된 뒤에도 작은 문제가 남았다. 빈 의자에 나타났던 두 번째 기록은 사라졌지만 환자의 개인 소지품 기록까지 함께 흐려졌다. 의료진이 서둘러 시스템을 되돌리려 하자 셀레나는 잠깐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 출입 권한과 물품 관리 권한이 같은 신호 안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종이 장부로 환자의 소지품을 확인하고, 본인이나 보호자가 동의하는 범위에서만 사본을 만들었다. 시스템의 잘못된 값을 고치기 위해 사람의 물건을 멋대로 옮길 필요는 없었다. 예비망을 변경한 뒤에도 병실의 경보등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시험했다. 복제된 이름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 점검 완료라고 적지 않았다.
민규는 원격 화면으로 작업을 지켜봤다. 흰등성이에서 자신이 직접 손댄 것은 낡은 밸브와 벽돌 몇 개였다. 그런데 지금 다른 시설에서는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문제를 자기가 고치는 경비원이 되는 것보다 누구나 고장을 발견하고 고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오르반은 제7시설의 학생 대표들과 만나 임시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위험이 다른 시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루카는 침묵하다가 손을 들었다. “그럼 우리도 또 사라질 수 있는 거예요?” 오르반은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 대신 현장에서 확인한 안전장치와 새로운 경보를 받을 때의 대피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루카는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질문을 더 했다.
미라는 동생 옆에서 메모했다. 지난번에는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했을 때 더 불안했다고 했다. 지금은 자신이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서 조금 낫다고 말했다. 오르반은 둘의 의견을 받아 기숙사 게시판에 안내문을 붙였다. 안내문 맨 아래에는 담당자의 이름보다 먼저 연락 방법과 대피 장소가 적혔다. 그것이 새로 만들어지는 학교의 모습이었다.
흰등성이에서 민규와 구렌은 교실을 마지막으로 돌았다. 건물은 당장 문을 닫아야 했다. 학생들이 머무는 동안 난방 관을 완전히 수리하지 못했고 도서관 아래 구조도 아직 위험했다. 그러나 건물을 떠나는 일과 여기서 보낸 시간을 버리는 일은 달랐다. 구렌은 종이별 장식과 학생들이 만든 그림을 하나씩 상자에 담았다. 각 물건의 주인을 정확히 아는 경우엔 직접 물어보고 돌려주기로 했다. 모르는 물건은 기록해서 보관하기로 했다.
교실의 커다란 시계는 여전히 몇 분씩 늦었다. 민규는 그것을 고칠 수 있을지 살폈지만 당장 분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익숙해진 장소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종탑과 도서관은 점검 구역으로 막아 둔 반면, 안전한 교실 안에서는 짧게 물건을 정리할 시간을 줬다.
설아는 교실 앞에 놓인 지우개를 들었다. 모서리가 닳은 물건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잃을 뻔한 날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지우개였다. 친구는 이제 그날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지만, 설아가 지우개에 그린 작은 별을 보고 자신의 필체라고 말했다. 두 아이는 지우개를 어떻게 나눌지 한참 고민했다. 결국 설아가 가져가고 친구는 새 지우개를 받기로 했다.
“이거 하나 때문에 안 나올 줄 알았어요.” 구렌이 웃었다.
“사람한테는 사소한 게 아닐 때도 있죠.” 민규가 말했다.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개인 물품도 있었다. 작은 장갑 한 짝, 주인이 없는 필통, 오래된 체육복. 구렌은 버릴까 하다가 전부 목록에 남겼다.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학교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 조사관의 창고로 몽땅 가져가는 것보다 느린 절차였지만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솔은 교탁에서 낡은 출석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제 그 장부는 자동으로 이름을 빼앗지 못했다. 그러나 종이를 펼치는 순간 여전히 손이 떨렸다. 민규는 출석부를 억지로 태우거나 부수지 않았다. 이솔이 원하는 방식으로 보존 여부를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의 두려움을 덮어 두는 것과 위험한 장치를 끄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설아는 자신의 책상에 남아 있는 긁힌 자국을 만졌다. 그녀가 한번 지워질 뻔한 날에도 책상에는 세모 모양 흠집이 남아 있었다. “여기 있던 건 진짜였죠?”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봤고 네가 기억하고 있잖아.”
“근데 기억하는 사람이 다 없어지면요?”
그 질문 앞에서 민규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지만, 기록은 또 사람을 지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기록이 틀릴 때 고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 부당하게 지워졌을 때 말할 길이 있어야 한다. 그는 설아에게 수첩을 보여 주었다. 그 안에는 자신이 본 사실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 구분돼 적혀 있었다. “어떤 기록이든 이게 끝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온결은 도서관의 책을 모두 가져가고 싶어 했다. 구렌은 책이 많아 불가능하다고 했고 온결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이솔이 아직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 가지 방법을 내놓았다. 특별히 아끼는 두 권은 온결이 먼저 고르고, 나머지는 상태를 확인해 다른 곳으로 옮긴 뒤 그가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책이 사람을 가두던 물건에서 사람과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물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솔의 신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과거의 윤소리 사진과 동일한 얼굴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윤소리라고 확정할 수 없었다. 이솔은 그 결론을 서둘러 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자신이 선택한 이름을 기록해 주되, 예전 사람의 행방은 계속 찾아 달라고 했다. 케스는 그 요청을 받아 적었다. 그녀의 신원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 것이 진짜 보호의 시작일 수도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날, 구렌은 마지막으로 종탑에 올라갔다. 낡은 쇠판 열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더 이상 학생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면 여전히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는 손으로 첫 번째 쇠판을 한 번 쳤다. 맑고 작은 소리가 났다.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민규는 굳이 열두 번을 치게 하지 않았다. 이 종이 안전한지 확인하려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고 실제 작동을 시험해야 했다. 첫 소리는 상징일 뿐 검증 결과가 아니었다. 그는 종탑 출입문에 임시 안전 표지를 붙이고 학교의 현장 기록을 마무리했다.
제7시설로 돌아오자 루카가 경비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설아에게 전달할 편지를 썼다고 했다. 그 편지에는 자신의 실종 이야기가 길게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학교에 돌아가서 해 보고 싶은 일 몇 가지가 적혀 있었다. 함께 축구하기,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 고르기, 친구 이름을 마음 놓고 부르기. 민규는 편지를 봉투에 넣으면서 루카의 얼굴을 보았다. 예전에는 빈자리를 찾느라 힘들어하던 소년이 지금은 남은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생각하고 있었다.
현장을 떠나기 전 민규는 분교의 사고를 '전원 무사'라는 말로 끝내지 않았다. 확인된 학생, 보호자 연락 대기자, 신원 미확정자, 의료 관찰 필요자, 추가 조사 필요한 공간을 구분해 적었다.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의 수는 확정하지 못했으므로 별도 항목으로 남겼다. 누가 빠졌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원'이라고 적는 것은 또 다른 거짓말이 될 수 있었다.
온결은 자기 새 이름을 적은 종이를 수첩에 붙였다. 학교에서 오래 쓰던 이름을 찾게 되면 새 이름을 바꿔야 하느냐고 물었다. 민규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름을 정하는 문제는 차근차근 배우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며,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이야기해 결정해도 된다고 했다. 온결은 안심한 듯 책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마지막 장까지 읽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렌은 관측소에서 따뜻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퉁명스럽게 웃었다. “옛날에는 눈이 와도 장작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람한테는 뜨거운 물도 필요하군요.” 가온은 그를 내려보내는 차량의 앞자리에 앉혔다. 구렌은 아이들을 보려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민규는 그에게 아이들과 연락할 방법을 알려 줬다. 헤어진다는 것이 영영 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7시설로 돌아온 뒤 민규는 근무복을 벗으려다 주머니 속에서 작게 접힌 종이를 발견했다. 은희가 출발 전에 넣어 준 수첩의 첫 장이었다. '잘 모르겠다고 말해도 된다.' 그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분교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예전처럼 어떤 명찰에 자신의 이름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루카는 경비실의 난로를 고치다가 주전자 물을 너무 뜨겁게 데웠다. 미라는 그를 놀리며 찻잔을 늘어놓았다. 웃음과 실랑이 사이에서 민규는 잠깐 자신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는 소리는 어떤 비상 경보보다 소중했다. 하지만 책상 위 보고서의 마지막 칸은 여전히 빈 채였다.
밤이 되자 하셀에게서 복구 결과가 도착했다. 흰등성이 분교의 자동 교원 지정 기능은 차단됐고 제4보호소의 신원 복제도 중단됐다. 그러나 중앙의 겨울 경로 목록에는 아직 한 칸이 비어 있었다. 분교도 보호소도 아니었다. 어떤 학교인지 주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케스가 말했다. “열한 시설을 묶은 문서에는 원래 열두 번째 칸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칸이 존재합니다.”
“누군가 새 시설을 만들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있었는데 우리가 보지 못한 걸 수도 있습니다.”
저녁 점검을 마친 뒤 민규는 기숙사의 빗물 새는 곳으로 갔다. 출동 전에 접수된 고장 신고였다. 다른 경비원이 임시로 물받이를 놓고, 위험한 콘센트 주변을 차단해 둔 상태였다. 그는 사다리에 올라 벽 틈을 비췄다. 눈 덮인 분교에서와 달리 이곳의 문제는 평범한 실리콘 마감재 하나였다. 하지만 물이 전선에 닿으면 누군가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중요한 고장이었다.
수리를 마친 그는 작업 날짜와 사용한 부품을 적어 두었다. 복도에 지나가던 루카가 물었다. “형은 엄청난 마법사들하고 일하다 와서도 이런 거 고쳐요?”
“이런 것도 안 고치면 경비원 아니지.”
“그럼 앞으로도 여기 있을 거예요?”
민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늘 새로운 구조 요청이 그를 불렀지만 자신이 모든 곳을 혼자 갈 수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는 루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말했다. “내 근무지가 여기인 건 그대로야. 다른 데 도움이 필요하면 사람들하고 같이 다녀오는 거지.”
루카는 안심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민규는 걸레를 빨아 물기를 짜며 잠시 웃었다. 먼 곳의 음모를 쫓다가도 돌아와서 고장 신고를 처리할 수 있는 일상. 바로 그런 일상이 사람들에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경비원의 역할이었다.
그때 경비실 전화가 울렸다. 낯선 지역 번호였다. 상대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민규 경비원 맞습니까? 출석부를 고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고쳤습니까?”
민규는 출입대장 위에 펜을 올려놓았다. “고장 난 걸 전부 고쳤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전화하십니까?”
상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학교가 아닙니다. 누가 학교를 세우기 전부터 이름을 배급하던 곳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수화기 아래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눈처럼 희지만 차갑지 않은 종이였다. 글자는 단 하나였다.
[입학 전 등록소.]
민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열두 번째 칸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누가 학교에서 사라지는지를 물을 차례가 아니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누가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했는지** 물어야 할 차례였다.
제13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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