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나루역의 옛 노선도에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선로는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뻗다가 언덕 뒤에서 갈라졌다. 하지만 갈라진 두 선의 끝을 잇는 구간만 마치 지우개로 문질러 놓은 것처럼 흐렸다. 정민규가 투명한 자를 대어 보니 두 갈래 선이 서로 이어지는 듯하면서도 같은 지점을 지나지 않았다. 서류에는 폐선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지우개 자국 밑에 남은 침목 표시는 최근 교체한 것처럼 또렷했다.
“이건 숨겨 놓은 문이라기보다 누가 지도를 편집하면서 남긴 흔적이네요.”
바르트는 책상에 노선도 세 장을 펼쳤다. 역장이 보관한 종이 지도, 제0설계국에서 가져온 감독용 지도, 철도 보수팀이 쓰는 실제 측량도였다. 셋은 같은 지역을 가리켰지만 다리 하나의 위치가 서로 달랐다. 감독 지도에만 없는 다리였다. 다른 곳은 마을 이름이 조금씩 달라도 교량 위치만은 같아야 했다. 수십 톤짜리 열차가 종이에 따라 길을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역장은 노선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을 불렀다. 도만은 어느 방향에서 기적 소리가 들렸는지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삼십 년 전 긴 화물열차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 날을 기억했다. 실종 신고를 하러 왔던 주민들이 그날부터 기차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밤중에 간혹 땅 밑에서 짧은 기적 소리가 울렸다.
“그때 역장님은 지반 울림이라고 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지요.” 도만은 말했다. “하지만 울림은 기적을 두 번 불지 않아요. 신호수들이 쓰는 방식처럼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울렸어요.”
셀레나는 철길 옆의 오래된 통신선에서 측정한 값을 지도 위에 적었다. 좌표를 찾을수록 숫자가 바뀌었다. 대신 각 노선의 연결 순서는 변하지 않았다. 서리나루에서 폐교가 된 백종 창고로, 다시 옛 급수탑을 지나 폐선 터널까지. 실제 거리를 계산하면 자꾸 어긋나는데, 지나가는 순서는 고정돼 있었다.
“장소가 아니라 길의 관계를 숨겨 놓았군요.” 셀레나가 말했다.
민규는 책상 위에 동전을 세 개 놓았다. “A에서 B로 갈 수 있고 B에서 C로 갈 수 있어도, C가 어디 있는지는 모를 수 있겠죠. 우리가 필요한 건 지금 갈 수 있는 출구가 어디와 연결되는지예요.”
그는 임의의 좌표를 찍지 않기로 했다. 서리나루에 다시 가기 전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부터 모았다. 백종 학원의 아이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풍경을 각자 그렸다. 온유는 붉은 급수탑과 작은 창문을 그렸고,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아이는 좁은 계단 끝에 붙은 노란 안전띠를 그렸다. 민규는 그림을 서로 맞춰 보게 하되 ‘같은 장소를 보았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본 것이 서로 다른 시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미라가 옛 보호소에서 한 장의 종이를 가져왔다. 아이들이 구조됐을 때 소지품과 함께 나온, 절반이 찢긴 버스 승차권이었다. 뒷면에는 어린 글씨로 ‘나가는 길은 열차가 안 다니는 쪽’이라고 적혀 있었다. 열차가 안 다니는 곳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도만은 그 글씨를 보자 고개를 들었다. 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오래된 방풍 터널이 있었는데, 화물차 대신 사람이 걸어서 급수탑을 점검하러 가는 통로였다고 했다.
“그 터널은 사고 이후 폐쇄됐습니다. 지붕이 일부 무너졌거든요.”
“그러면 먼저 사람을 보내지 말고 안전 상태를 조사해야겠네요.” 민규가 대답했다.
서리나루에 도착하기 전 민규는 임시 보호소부터 들렀다. 역장에게서 받은 지도에 표시된 곳이었다. 학생들이 머무는 복도에는 오래된 기차 시각표가 붙어 있었지만, 누군가 종이로 만든 꽃을 시각표의 모서리에 붙여 놓았다. 평범한 장식이었다. 민규는 그 작은 장식이 사라진 교실에서 막 나온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 생각했다.
온유는 그림을 보여 주는 데 동의했지만, 자신과 닮은 다른 아이의 그림까지 대신 보여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는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편한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규는 그림들을 따로 보관하고 누구의 것인지 구분했다. 둘이 닮았다는 이유로 그림을 섞지 않았다.
“기차역은 무서웠어요.” 온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섯 번째 사람이 되는 게 무서운 건 아니었어요. 다섯 번째가 되면 어느 순간 나 아닌 사람이 내 자리에 서 있었거든요.”
민규는 그 문장을 수첩에 옮겨도 되는지 물었다. 온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은 적지 말아 주세요. 다른 아이가 나중에 그림을 보고 오해하면 싫어요.”
“알겠어. 누군가 자리를 빼앗긴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만 적을게.”
다른 아이는 한참 침묵하다 작은 계단을 그려 주었다. 네 단의 계단 끝에 노란 선이 있었고 그 옆에는 불이 꺼진 손전등이 그려져 있었다. “그 선 밖으로 발을 내디디면 선생님이 숫자를 부르라고 했어요. 그런데 숫자를 부르면 친구들 얼굴이 하나씩 안 보였어요.” 아이가 말했다. 민규는 그림을 더 그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위험한 기억을 되풀이하는 건 조사보다 보호에 가까운 문제였다.
미라는 보호소 직원에게 학생들이 앞으로 어디서 생활할지 들었다. 아이들은 가족을 찾아야 했지만 잃어버린 세월을 아무 설명 없이 집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먼저 의료적 확인과 안정이 필요했다. 민규는 자신의 조사가 그 과정을 앞당기거나 방해하지 않도록 자료 요청을 최소화했다. 서리나루에 오는 목적은 학생들을 다시 조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가뒀던 설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보호소를 나서자 바닷바람에 종이꽃 하나가 흔들렸다. 민규는 잠깐 뒤돌아보았다. 온유와 다른 아이는 나란히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온유는 푸른색 연필을 골랐고, 다른 아이는 회색 연필을 골랐다. 서로 다른 색으로 그리는 사람이 두 명이라는 사실이 바깥 세계에서는 당연했다. 기록망은 그 당연한 사실을 수십 년이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무실에서는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직원이 어제 있었던 구조를 기억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밤새 창고에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장은 직접 적은 장부를 보여 주었고, 직원은 자기가 쓴 글씨를 알아봤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도 기억 못 한다면 나중에 무슨 말을 믿어야 하죠?”
민규는 기억이 바뀐 사람에게 모든 것을 떠올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기록을 같이 확인하시면 됩니다. 기록도 틀릴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의 확인과 맞춰 보시고요.” 그는 직원이 자신의 불안을 기록할 수 있게 빈 종이를 내밀었다. 그 종이는 공식 보고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의 말로 상황을 적을 수 있는 작은 자리가 필요했다.
도만은 옛 철도 노동자 두 명을 데리고 왔다. 한 사람은 급수탑의 구조를 기억했고 다른 사람은 철도 사고가 났을 때 수리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고 있었다. 둘은 같은 장소를 두고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민규는 그들이 다툴 때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입구가 옮겨졌을 수도 있었고, 한 사람이 위쪽 통로를, 다른 사람이 아래쪽 배수로를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현장 사진과 장부를 대조하자 두 기억은 동시에 맞았다. 급수탑에는 위쪽 철도 통로와 아래쪽 배수 관리 통로가 따로 있었다. 제0설계국의 감독 지도는 둘을 하나로 그려 놓았다. 그 때문에 구조팀이 지도를 믿으면 막힌 위쪽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도만은 그 사실을 알고 오래도록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그날 아래쪽 길을 알았다면…”
“그날의 지도가 왜 그렇게 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민규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지금은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 이 기억이 도움이 됩니다.”
두 노동자는 민규와 구조팀이 안전을 확인하기 전에는 터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오래된 기억이 사람을 위험한 곳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그 대신 급수탑의 지지대와 배수 방향을 그림으로 남겨 주었다. 민규는 그 그림이 감독 지도보다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실제로 일했던 사람들이 몸으로 익힌 구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 답사는 큰 탐험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허가받은 구간까지만 들어가기로 했고, 지반 안전을 보는 지역 기술자를 동행시켰다. 입구에는 녹슨 철제 울타리가 있었다. 울타리 아래 흙에서는 최근 누군가 삽으로 건드린 자국이 발견됐다. 민규는 손으로 흙을 파헤치지 않았다. 사진과 위치를 남긴 뒤 지역 기술자가 표면을 검사했다. 낡은 벽돌 밑은 예상보다 단단했지만 배수로는 낙엽과 토사로 막혀 있었다.
바르트가 고개를 숙여 배수구를 살폈다. “물이 빠져나갈 길이 막히면 안쪽 압력이 커지겠어. 이거 누군가 문을 열면 먼저 물부터 쏟아질 구조인데.”
민규는 장갑을 낀 채 배수로 막대의 부식을 확인했다. 안내서와 함께 온 흰 장갑은 여전히 잠금함에 있었다. 지금 낀 것은 평범한 작업용 장갑이었다. 그 구분을 모르는 사람은 똑같은 장갑이라 생각할지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의 장갑은 현장의 위험을 줄이려는 도구였지, 누군가의 역할에 동의한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터널 옆의 관리함에는 종이 대신 얇은 금속표가 남아 있었다. [급수탑 측면 대피통로. 수동 개방 시 내부 인원 확인 필수.] 그 아래에 있던 점검자 이름은 긁혀 있었지만 ‘하’라는 글자의 일부가 보였다. 셀레나는 누군가 덧칠한 마법 흔적이 있는지 살폈다. 놀랍게도 표면에는 마법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 아주 평범한 줄로 이름을 갈아낸 것이다.
“모든 걸 마법으로 지우지는 않았네요.” 케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죠. 마법이 아니라 사람 손으로 조작한 기록도 있다는 뜻입니다.”
오후 네 시가 넘자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 터널 안에서 바람이 밖으로 밀려 나왔다. 원래 막힌 통로라면 바람이 그렇게 일정하게 흘러나오기는 어려웠다. 바르트가 가벼운 종이 띠를 입구에 매달았다. 띠는 바깥쪽으로 한 번, 안쪽으로 두 번 흔들렸다. 깊은 곳에서 무언가 일정한 간격으로 압력을 조절하고 있었다.
“사람이 펌프를 돌릴 수도 있나요?” 루카가 통신으로 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자동 장치가 남아 있을 수도 있지.” 민규가 답했다. “아직 구조 대상이 보인 건 아니야.”
그는 종이 띠가 흔들리는 시각을 기록했다. 놀랍게도 간격은 경비실에 도착한 구조 신호와 같았다. 세 번 짧게, 두 번 길게. 신호는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도시의 오래된 배관을 따라 전달되고 있었다. 셀레나가 측정기를 가져오자 숫자는 여전히 어긋났지만 바람의 주기는 일정했다.
도만은 주변 돌무더기에서 작은 금속 휘장을 주웠다. 철도 직원이 쓰는 표지는 아니었다. 가운데에 작은 원 하나, 주변에 열한 개의 원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날짜가 있었다. 삼십 년 전 사고 이후의 날짜였다. “그때 이미 폐쇄됐던 통로에서 왜 이게 나왔을까요?” 도만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민규는 현장 수첩에 새로운 항목을 만들었다. [원점 출구 후보 1: 급수탑 측면 방풍 터널. 물리적 안전 미확인. 바람 신호 확인. 발신자 미확인.] ‘확실히 여기다’라는 문장은 쓰지 않았다. 동료들이 그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다음 날 전문 구조 장비를 갖추기 전까지 울타리 안쪽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바깥 해가 산등성이 아래로 내려가자 도만은 오래전 마지막 화물열차가 지나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안개가 짙었지만 철길 양쪽의 등불은 켜져 있었다. 그 뒤로 이곳을 지나간 열차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몇 번이나 같은 자리에 와 봤다고 했다. 실제로 없어진 것이 길인지, 길을 기억하는 사람의 확신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규는 도만이 서 있는 자리를 지도에 표시했다. 기억의 장소도 조사할 가치가 있었지만 그곳이 곧바로 안전한 통로라는 뜻은 아니었다.
돌아가려는데 터널 안에서 오래된 기적 소리가 울렸다.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도만이 들었다고 했던 바로 그 신호였다. 동시에 바닥이 가늘게 떨렸다. 셀레나의 측정기 화면에서 좌표 숫자가 모두 사라지고 한 문장이 나타났다.
[출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제 입구를 만들겠습니다.]
민규는 즉시 일행을 울타리 바깥 안전선으로 물렸다. 바닥을 살피자 터널 옆에 지금까지 없던 붉은 손잡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손잡이에는 새것 같은 흰 장갑 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군가 그곳을 먼저 다녀간 것이다.
“문을 열러 온 사람이 또 있군요.” 민규가 낮게 말했다.
그는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한 장 찍고, 그 위에 적힌 작은 글씨를 확대해 읽었다. [입실 기록 1: 정민규. 입실 시각: 내일 오전 0시 17분.] 아직 자정까지는 여덟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제11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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