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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11화
PAYLUA ORIGINAL · 제11화

11화. 은시계 속 소녀의 경고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052자

오프라인 책장
은시계 속의 소녀는 입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경비실 한가운데에서 들렸다. “다시 왔구나, 문을 연 아이.” 정민규는 시계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당황했을 때 손에 든 물건부터 놓는 사람이 많았지만, 고장 난 설비 앞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물건이 떨어지는 순간 사고의 원인까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시계를 책상 위에 올리고 손전등을 비스듬히 비췄다. 은색 테두리 안에는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열 살쯤의 소녀가 있었다. 창백한 뺨과 짙은 눈썹, 오른쪽 볼의 조그만 점까지 보였다. 소녀의 뒤에는 낯익은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제 말이 들립니까?”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반 교장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 아이와 말을 섞지 마라.” “이유부터 말씀하시죠.” “이름을 들으면 기록망이 그 아이를 찾는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게 기적이야.” 민규는 시계 뒷면의 국화 무늬를 다시 보았다. 꽃잎 여덟 장 중 하나의 끝이 부러져 있었다. 어머니가 수놓던 국화는 꽃잎이 아홉 장이었다. 아주 사소한 차이인데도 그의 기억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위험한 곳에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 지금 혼자 있습니까?” 소녀의 그림자 뒤로 무언가 천천히 지나갔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도 짐승의 모습도 아니었다. 마치 종이에 적힌 글씨들을 한 덩어리로 뭉쳐 놓은 것처럼 검은 획들이 겹쳐 움직였다. 소녀는 급히 몸을 숙였다. 유리 표면이 서리 낀 창문처럼 흐려졌다. “저 아이가 있는 곳은 0층이 아니야.” 오르반이 말했다. “어디입니까?” “0층 아래의 통로. 사고가 일어난 곳이지.” “그러면 아까 말씀하신 게 반대라는 거군요. 0층에서 나오는 문이라고 생각한 문은 그 통로에서 올라오는 입구였고요.”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는 수첩을 펼쳐 도면을 그렸다. 지상 건물, 숨겨진 0층, 그 아래 미확인 공간. 알고 있는 것과 추측하는 것을 서로 다른 색으로 적었다. 그리고 시계의 바늘을 살폈다. 초침이 두 시 십칠 분을 가리킬 때만 소녀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잠시 뒤 바늘이 움직이자 얼굴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통화 시간이 정해져 있네요.” “그 아이에게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을 거다.” “거의 흐르지 않는 것과 아예 흐르지 않는 건 다릅니다.” 오르반이 고개를 들었다. 민규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적었다. 오전 여덟 시 사십이 분. 은시계가 가리킨 시간은 새벽 두 시 십칠 분. 둘의 차이는 단순한 시차가 아니었다. “교장 선생님. 저 시계는 원래 누구 물건입니까?” “너와 함께 0층에 들어온 아이가 쥐고 있었다.” “그 아이의 겁니까?” “그 아이는 네가 가져왔다고 말했어.” “어디서 가져왔다고는요?” 오르반은 답하지 못했다. 경비실 문이 열리고 셀레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밤새 실종자 명부를 복구하느라 얼굴이 피곤했지만 손에는 필름 봉투를 들고 있었다. “삼십 년 전 명부의 첫 장을 현상했어요. 교장 선생님이 공개하겠다고 한 원본과 대조했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맞지 않아요.” “어떻게요?” “당시 대피실에 의자가 서른한 개 있었죠? 학교 기록은 실종 학생 스물아홉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첫 장에는 이름이 서른 개예요. 한 칸이 잘려 나갔고, 마지막 칸에는 학년 대신 ‘동행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녀는 현상된 필름을 책상에 펼쳤다. 이름 몇 개가 희미했지만 뚜렷이 읽히는 문구가 있었다. [구조 대상 29명 / 현장 관리자 1명 / 신원 미확인 동행자 1명] 루카가 뒤따라 들어와 종이를 기웃거렸다. 그는 손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작은 종이표를 쥐고 있었다. 이름을 복구한 뒤에도 잠들 때마다 베개 아래에 넣어 두는 물건이었다. “이거면 서른한 명 맞잖아요. 왜 지금까지 학생 서른한 명이 실종됐다고 했어요?” “처음에 혼란이 있었거나, 일부러 구분을 지웠겠지.” 민규가 말했다. 셀레나는 의자에 앉아 잉크 얼룩의 위치를 가리켰다. “현장 관리자는 어린아이였어요. 신원 미확인 동행자도 같은 나이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둘 다 보호 대상이었지만 정식 학생 명부에는 없었던 거죠.” 루카의 시선이 은시계로 옮겨 갔다. “저기 있는 여자애가 동행자일까요?”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하지 않았어.” “그럼 제가 아는 애는 아니겠네요. 누나는 지금 스무 살이에요. 실종된 건 두 해 전이고요.” “맞아. 미라와 이 소녀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민규는 선을 그었다. 가짜 미라가 사람의 기억을 흔들어 놓았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오르반은 필름의 마지막 줄을 오래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불편할 만큼 길어지자 셀레나가 물었다. “교장 선생님,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당시 명부는 내가 직접 작성했어. 하지만 저 문구는 처음 보는군.” 민규가 말을 받았다. “원본 명부의 문구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까?” “마법 장부라면 가능하지.” 셀레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필름은 어제 현상했잖아요. 오늘 수정된 기록이 어제 필름에 나타났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 그 줄이 있었는데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쳤다는 편이 자연스러워요.” 민규는 확대경을 꺼냈다. 두 줄 사이의 간격이 이상했다. 분류 표제가 다른 글보다 살짝 기울어 있었다. 그는 필름을 창가에 가져가 다른 각도에서 빛을 비췄다. 희미한 선이 드러났다. 누군가 원본 명부 위에 투명한 덮개를 얹어 글씨를 가린 흔적이었다. “원본을 보고도 다른 걸 본 거군요.” “눈속임 마법이에요?” 루카가 물었다. “마법일 수도 있고, 가리개일 수도 있어. 중요한 건 어제 현상한 사진에 남았다는 거지.” 셀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0층 원본의 유리판부터 확인할게요.” 경비실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밤사이 이름을 되찾은 학생들이 하나씩 찾아와 복구 확인서를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학교의 출석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기숙사 문과 식당 접시에는 아직 오래된 오류가 남아 있었다. 민규는 학생들의 이름을 다시 묻는 대신 직접 찍어 둔 필름과 학생회가 남긴 진술을 대조했다. “선생님, 제 이름은 다시 돌아왔는데 기숙사 방이 사라졌어요.” 한 여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셀레나는 복구된 명부를 확인했다. 학생은 분명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기숙사 관리 장부에는 그 자리가 빈방으로 표시돼 있었다. 민규는 보안 장치를 비활성화해 학생을 안으로 데려간 뒤 그녀의 물건부터 확인하게 했다. 책상에는 세 번 닳아 없어진 필기구 자국이 있었고, 창가에는 꽃을 키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오래 살았구나.” “두 해요. 그런데 방에서 저한테 나가라고 했어요.” “문이 너를 모른다고 너까지 낯선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민규는 임시 출입증을 만들어 줬다. 학생회장이 옆에서 하나씩 증인 서명을 받았다. 그 작은 일에 한 시간이 걸렸다. 영웅이 거대한 주문을 외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의 학교는 그 정반대였다. 학생 한 명이 자기 침대로 돌아가기까지 확인할 일이 너무 많았다. 루카는 민규가 임시 출입증을 적는 동안 은시계를 여러 각도에서 관찰했다. 때때로 국화 무늬의 부러진 꽃잎 부분만 다른 색으로 빛났다. 그는 시계가 말을 걸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때의 시간을 표시했다. 얼마 뒤 같은 현상이 두 번째로 나타났을 때, 두 시각의 간격은 정확히 열일곱 분이었다. “아저씨, 이거 이상한데요. 시계 속 시간은 멈췄는데 바깥에서 열일곱 분이 지날 때마다 꽃잎 색이 달라져요.” “통신 주기일 수도 있겠군.” 셀레나는 꽃잎을 손대지 않고 마나 탐지판을 가져왔다. 꽃잎 주위에 일정한 파동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파동이 지나갈 때마다 시계 표면에 작은 글씨들이 겹쳐졌다. 민규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자 글씨는 남지 않았지만, 오래된 필름을 이용한 촬영에는 미세한 음영이 찍혔다. “빛만 남기는 방법이 여기서도 통하네요.” 셀레나가 말했다. “완벽하진 않죠. 그래도 뒤에 비교할 자료가 생겼습니다.” 민규는 사진을 세 장 더 찍었다. 그는 소녀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는 시간을 서두르는 대신 이런 사소한 변화를 모았다. 그 사이 은시계에서는 여러 번 종소리가 났지만 소녀는 한 번도 온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사진에는 꽃잎 끝의 음영이 숫자처럼 보이는 자국을 남겼다. [3 / 1] 루카는 그것을 보고 통로 세 개와 아래로 뻗은 관 하나를 떠올렸다. 민규는 가능성 중 하나로 수첩에 적었다. 증거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아이가 무언가 반복해서 알려 주려 한다면, 적어도 귀 기울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때 은시계가 딸깍 울렸다. 소녀의 얼굴 대신 글씨가 나타났다. [시계를 열지 마. 바깥까지 들린다.] 민규는 순간 책상 주위의 소리를 살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복도의 학생들은 멀리 있었다. 그러나 환기구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천장에 달린 마법 통신용 청동 종을 바라봤다. “교장 선생님, 이 경비실 통신장치도 학교 기록망에 연결돼 있죠?” “그렇다.” “그럼 저 아이는 우리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기록망을 통해 목소리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서기관이 알아차리겠지.” 민규는 즉시 청동 종에 달린 연결선을 잠갔다. 셀레나는 마나 흐름을 수동으로 분리하고, 루카에게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자, 지금부터 손짓으로만 해 봅시다.” 루카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종이에 썼다. [경비 아저씨, 여자애랑 수화라도 할 줄 아세요?] 민규는 아래쪽에 적었다. [몰라. 그래서 종이에 질문을 써서 비춰 볼 거야.] 소녀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큼직한 글씨로 쓴 종이를 은시계 유리 앞에 댔다. [지금 위험하면 손가락 하나. 안전하면 둘.]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당신 곁에 사람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두 개를 들었다. 민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 사람인지 둘 이상인지 알 수 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뒤를 돌아본 뒤 유리에 손가락으로 짧은 선 세 개를 그었다. 다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셋, 그리고 하나. 구조 신호인가, 경고인가. 루카가 팔꿈치로 민규를 찔렀다. “아저씨, 세 개는 사람이 아니라 문인 것 같은데요.” “왜?” “저희가 0층에서 봤잖아요. 관 세 개가 있고, 하나만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어요.” 셀레나가 급히 지도를 펼쳤다. 민규는 환기구의 낡은 배관 도면을 가져왔다. 0층에서 위로 연결되는 관 세 개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관 하나. 그중 아래쪽 관은 공식 설계도에서 ‘폐쇄’로 표시돼 있었다. “세 개는 위로 가고 하나는 아래로 간다.” 소녀가 유리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반의 얼굴이 굳었다. “그 아래로는 갈 수 없어. 봉인된 뒤 누구도 그쪽에 들어간 적이 없다.” 민규는 도면에서 그 구역의 이름을 발견했다. 오래된 글씨로 쓰인 ‘회수 승강로’. 승강로라면 아래로 움직이는 화물 장치였을 것이다. 구조 당시 사람을 운반할 수 있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들어가겠다는 말은 아직 안 했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안다.” “그럼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할 게 뭔지도 아시겠군요. 그쪽이 아직 실제로 연결돼 있는지, 누가 통제하고 있는지요.” 은시계 속 소녀가 갑자기 두 손을 모았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입술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민규는 그 말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의 등 뒤 벽면에 붙은 표지는 똑똑히 보였다. [회수 완료 전 승강로 가동 금지.] 그리고 그 아래에 붉은 글씨로 새로운 표지가 나타났다. [회수 대상: 정민규.] “저를 데리러 오라는 건가요?” 민규가 물었다. 소녀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은시계의 바늘이 멎고 유리가 검게 변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글씨는 한 줄이었다. [당신을 돌려보내려는 게 아니야. 당신을 회수하려는 거야.] 민규는 시계를 덮었다. ‘회수’라는 낱말은 이상하게도 시설 관리 문서에 자주 나오는 말이었다. 분실물을 회수하고, 불량 부품을 회수하고, 위험 물질을 회수한다. 사람에게 붙여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는 수첩의 첫 줄을 고쳤다. [구조 대상: 사람. 회수 대상: 미상. 둘을 혼동하지 말 것.] 그리고 오르반을 똑바로 보았다. “그날 열 살짜리 제가 문을 열려 했던 이유부터 끝까지 알려 주십시오. 이번에는 누락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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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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