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나루 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백종 마법학원이라는 이름이었다.
아침이 되자 역 주변의 몇몇 주민은 그런 학교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날 학생들에게 따뜻한 물을 나눠 준 직원도 처음에는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그의 손글씨 장부에는 실제로 구조된 사람 수와 인계한 담요 수가 남아 있었다. 정민규는 기억이 흐려지는 사람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 다른 기록을 함께 보도록 했다. 어제의 일은 사진만으로 보존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말만으로 확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케스는 구조된 학생들의 임시 신원증을 만들었다. 원본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과거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사자 진술에 따른 현재 사용 이름’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었다. 온유는 그 칸에 직접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다른 아이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아무도 그 빈칸에 수배 번호를 쓰지 않았다. 셀레나는 학생들이 안전한 장소에서 서로 얼굴을 구분하고 자신이 보고 들은 일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면 전엔 어떻게 학생들을 집에 보냈죠?” 역장이 물었다.
“예전엔 빨리 끝냈던 것 같습니다.” 민규가 답했다. “그게 안전하게 끝났다는 뜻은 아니었겠죠.”
벨라는 역무실 구석에서 자신이 교감으로 일한 십 년의 일과를 적어 보았다. 기억은 곳곳이 비었지만 학생들의 좋아하는 음식, 신발 크기, 겨울철 통학열차가 늦는 시간 같은 생활은 분명했다. 기록망은 사람을 역할로 바꾸려 했지만 사람들이 주고받은 작은 관심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그중 한 장에는 ‘다음 기수의 다섯 번째 학생이 누구인지 확인할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벨라는 그것을 보며 울음을 삼켰다. 오래전에 자신이 그런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그 문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민규는 전날의 사건 보고서를 역장과 공유했다. 폐쇄된 창고의 실존 여부, 학생의 실제 인원, 객차 내 반복되는 통로, 임시 보호소로 나온 사람의 확인 상태. 각 항목 옆에는 ‘확인’, ‘미확인’, ‘후속 조사 필요’라는 표시가 달려 있었다. 그는 원인을 한 문장으로 적으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기록망의 자동 인원 계수, 사람의 책임을 대신하는 교장 확인 회로, 오래된 시설의 방치가 서로 얽혀 있었다.
민규는 제7시설의 경비실로 정기 보고를 보냈다. 루카는 첫 보고서가 도착하자마자 학교 게시판에 붙이고 싶어 했지만 미라가 말렸다. 학생들의 상세한 사정은 공개하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대신 루카는 ‘구조된 학생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곳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짧은 문구와 문의할 기관의 연락처만 적었다. 이전 같았으면 사건의 수수께끼를 먼저 말했겠지만 이번에는 실제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오르반은 여전히 사고 당시 자신의 책임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제0설계국의 지시서와 제7시설의 폐쇄 기록을 비교해 보았다. 같은 어휘가 반복됐다. ‘정원 안정’, ‘확인자 지정’, ‘미등록 인원 보정’. 오르반은 그 표현들을 보며 오래전 자신도 그런 말이 편하다고 느꼈다는 걸 털어놓았다.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절차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다른 현장에 나서도 되겠습니까?” 오르반이 물었다.
민규는 그가 무조건 현장을 지휘하게 하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현장 사람들과 상의해야죠. 책임을 인정한 건 중요한데, 그걸로 바로 신뢰가 돌아오진 않으니까요.” 오르반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 역시 한 사람의 결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서령은 보존된 계근기 도면에서 하셀의 수정 사항을 찾아냈다. 최초 설계에서 장치는 화물의 무게만 재도록 만들어졌으며, 후속 수정판에서 인원 판정 회로가 추가됐다. 그녀는 제작 책임자의 서명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 칸이 비어 있었다. 제0설계국은 중요한 일을 승인하면서도 누가 실제로 했는지 남기지 않는 방식을 반복했다. 민규는 그 빈 서명란을 다시 조사 목록에 올렸다.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책임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정오에 낯선 손님이 역에 도착했다. 회색 외투를 입은 중년 남자로, 제0설계국의 현장 확인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티에른. 그는 총국의 문장을 가진 신분증을 보여 주었지만 케스는 그것이 정식 발령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티에른은 차분했다. “원하신다면 상부에 문의하십시오. 하지만 제가 온 이유는 안전 점검이 아니라 재산권 확인입니다.”
“어떤 재산을 말하는 겁니까?” 민규가 물었다.
“실험에 사용된 기록 장비와 소속 학생들의 원본 이력입니다. 허가 없이 반출하셨더군요.”
민규는 대답을 고르지 않았다. “학생들이 살아 있습니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지 장비가 아닙니다.”
티에른은 약간 웃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실 줄 알았습니다. 제7시설에서부터 같은 태도를 보이셨으니까요.” 그 말은 오히려 그가 학교의 사건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가 어느 쪽에서 그 사건을 봤는지 알 수 없었다. 민규는 직원 출입기록에 티에른의 방문 시각을 적고 설명을 요구했다.
티에른의 가방 안에는 다른 현장에서도 쓰였던 듯한 양식이 여러 장 들어 있었다. ‘시설별 지정 책임자’, ‘차기 확인자’, ‘인원 보정 동의’라는 제목은 서로 달랐지만 아래쪽 서명란은 똑같았다. 서명을 받아 가면 누가 어느 역할을 맡았는지 따로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형식이었다. 케스는 각 문서의 발행자를 물었다. 티에른은 담당 부서라고만 대답했다. 실제 발행자의 이름과 연락처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럼 저 서류를 누가 책임집니까?” 케스가 물었다.
“상급 기관에서 책임집니다.”
“그 상급 기관의 담당자는요?”
티에른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고 문서만 주고받으며 일했다. 필요할 때 서명한 사람을 찾아갔지만 서명을 요구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민규는 그 장면이 익숙했다. 학교의 종과 벨라의 은패처럼, 실제 책임자는 보이지 않고 역할을 맡은 사람만 남는 구조였다.
“이건 곧바로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민규는 서류를 밀어냈다. “공문번호와 발행부서, 법적 근거를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걸 설명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티에른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절차를 다 거치면 조정은 늦어집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그동안은 빨리 끝냈나 보군요.” 민규가 답했다. “하지만 사람은 빨리 지워져선 안 됩니다.”
티에른은 서류 한 장을 펼쳤다. [제2실험 개시: 현장 보호자 지정.] 문서에는 민규가 백종 학원의 임시 교장 선임을 거절한 사실까지 적혀 있었다. “자발적으로 오셨고 자발적으로 구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 사람들의 보호 책임을 당신이 져야 합니다.”
“구조한 사람이 모든 평생을 대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까?” 민규가 물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단지 열한 시설의 조정 책임자로 임명하겠습니다. 당신이 책임자가 되면 다음 시설도 열 수 있습니다.”
케스가 화를 내며 말을 막으려 했지만 민규는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켰다. “정식 권한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가 그 업무를 맡습니까? 그리고 학생들 보호는 지역 기관과 의료진, 가족이 함께 해야죠. 한 사람에게 몰아두면 다시 같은 사고가 납니다.”
티에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랫동안 준비한 제안이 예상보다 빨리 거절된 것이었다. 그는 다른 조건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구조한 사람들의 명단만 제게 주십시오. 책임은 국가가 집니다.” 민규는 이미 보호소에서 아이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권리를 설명한 상태였다. 공식적인 보호 기관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명단을 넘길 수는 없었다.
“보호 기관이라면 정식 절차로 요청하세요. 필요한 사람과 범위를 확인한 다음 논의하겠습니다.”
티에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역무실 창문에 정체 모를 서리가 끼었다. 바깥은 따뜻한 가을날이었다. 창문에는 손가락으로 쓴 듯한 문장이 나타났다.
[보호자 지정 거부. 제2실험 대체 경로 작동.]
역무실의 창문이 서리로 덮이기 시작하자 도만은 반사적으로 문틈에 손을 댔다. 창문은 실제로 차가웠다. 기록망이 문자만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부 기온이 떨어지면 대기실의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민규는 역장에게 난방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셀레나는 마력으로 서리를 녹이려 했지만 민규가 잠깐 멈춰 달라고 했다. 서리가 어떤 회로와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녹이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역장은 승강장 쪽 창문 하나를 열어 바깥 공기를 들였다. 그러자 서리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방송은 계속됐다. 기계실의 오래된 송출 장비에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음성이 실제 확성기를 통과하는지 확인한 끝에 셀레나는 역 곳곳에 붙어 있는 낡은 안내판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 글자로 안내하던 장치를 목소리로 바꾸었다. 마법을 쓰는 사람은 목소리를 바꾸었지만, 안내판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숨기지 못했다.
민규는 안내판 위에 검은 천을 씌우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 지시를 실제라고 믿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으므로, 역장은 모든 대기실에 직접 사람을 보내 설명했다. 한 직원이 한 방씩 돌아다니며 현재 안전을 확인 중이고 이전 학교로 이동하라는 방송은 공식 지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은 느리지만 믿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방송을 따라 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티에른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중앙 시스템의 명령이 현장에서 무시되는 장면을 처음 봤다. 보고서에선 그런 일을 ‘절차 위반’이라고만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선 위반이 아니라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민규는 그가 무엇을 느꼈는지 캐묻지 않았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온 지시의 출처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스스로 그 지시가 잘못됐다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기차역 방송망에서 안내가 흘러나왔다. “모든 보호 대상 학생은 즉시 백종 마법학원으로 복귀하십시오. 임시 대피는 종료되었습니다.” 역장은 즉시 방송실로 달려갔다. 마이크를 끈 뒤에도 안내는 계속됐다. 기계의 소리만 흉내 내는 독립된 마법이었다. 민규는 먼저 대피소에 연락했다. 학생들이 방송을 믿고 움직이지 않도록, 실제 보호 담당자의 설명을 들은 뒤 이동하도록 안내했다.
벨라와 도만은 학생들에게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기실에서 울던 아이 한 명은 “선생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사라질까요?” 하고 물었다. 벨라는 그 아이 옆에 앉았다. “그전엔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의무가 없어. 우리는 그곳을 안전하게 고칠 때까지 다른 곳에서 지낼 수 있어.”
티에른은 역무실 책상 앞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예정보다 늦게 자신을 소개한 이유를 밝혔다. “저도 제0설계국에 소속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에 적힌 ‘실험’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현장에서 처음 보았어요.” 케스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민규는 누군가 놀랐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하다고 판단할 수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럼 보고서를 같이 보시죠.” 민규가 말했다. “여기에 돌아간다고 적히면 실제로 누가 사라지는지. 그걸 확인하시고도 같은 일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티에른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말했다. “이 보고서를 수정하면 저는 돌아갈 자리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여러 번 일자리를 잃을 뻔했습니다.” 민규가 말했다. “그래도 확인한 걸 지울 수는 없죠.”
바깥 플랫폼의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백종 학원의 수업 종이 아니었다. 먼 곳에서 같은 시간에 울린 열 개의 종소리가 통신관을 타고 들어왔다. 셀레나는 측정석에 표시된 좌표를 보고 안색이 바뀌었다. 열한 시설 가운데 하나만 아직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열 곳의 연결이 차례로 열리고 있었다.
티에른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두 번째 현장을 고르게 할 생각이 없군요. 첫 번째 현장에서 당신을 데려갈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역무실 출입문 위의 기관 명칭이 바뀌었다. [서리나루역]이라고 쓰였던 글자가 지워지고 낯선 문구가 나타났다.
[제0설계국 임시 조정실. 현장 관리자 정민규 입실 대기.]
제10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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