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아이가 창고에서 나왔을 때 박수 소리는 나지 않았다. 모두가 그 아이가 출구 밖으로 완전히 나왔는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한쪽 신발이 문턱에 닿았을 때 시계가 두 분쯤 뒤로 움직였다. 정민규는 손목시계와 역장실의 태엽시계를 함께 확인했다. 화면으로 표시되는 시간은 바뀌었지만 물이 바깥으로 흐르는 방향과 학생의 발걸음은 그대로였다. 그는 ‘시간 역행’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기록장에 ‘시각 표시 차이 발생, 실제 이동은 지속됨’이라고 적었다. 이번에는 시계가 사람을 이기도록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젖은 교복의 아이가 먼저 나왔고 마른 교복의 아이가 그 뒤를 따랐다. 둘은 서로를 보자 깜짝 놀랐다. 한 사람처럼 생겼지만 표정이 달랐다. 젖은 아이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참는 듯했고 마른 아이는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둘 중 하나를 가짜라고 말하는 일은 쉬웠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서리나루 의원에서 나온 간호사가 두 아이를 각각 진찰했다. 둘 다 체온이 있었고 스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름을 말할 수 있니?” 그녀가 물었다.
젖은 아이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마른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름은 늘 반에서 누군가가 대신 불러 줬어요.”
로제와 친구들이 다가왔다. 로제는 두 아이를 보자 멈칫했다. 자신이 기억하던 다섯 번째 친구는 한 명이었다. 그러나 두 아이가 모두 물통을 떨어뜨렸던 장면을 기억했다. 하비는 그날 자신이 부딪친 것이 한 아이의 오른쪽 어깨였다는 걸 떠올렸다. 젖은 아이는 오른쪽 어깨에 멍이 있었고, 마른 아이는 그 이야기를 듣자 같은 자리를 손으로 감쌌다. 기억과 몸의 흔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
민규는 누구에게도 당장 결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 네가 본 것을 네 말로 기록할 시간은 나중에 충분히 줄게.” 아이들은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나란히 걸었다. 대기실로 가는 동안 두 아이 중 한 명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법 기록석은 계속 오류를 냈지만 역무원의 손글씨 장부에는 두 명이라고 쓸 수 있었다.
지역 의원의 간호사는 두 아이를 같은 침대에 앉히지 않았다. 닮은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로 하나의 치료 기록을 만들 수도 없었다. 젖은 아이는 체온이 조금 낮았고 마른 아이는 손끝에 반복된 마력 흔적이 있었다. 둘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했으며 서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었다. 바깥 사람들은 누가 원본이냐고 속삭였지만 나디아는 그들에게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 질문이 의료적으로도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민규는 객차에서 보았던 종이학과 납작한 돌을 떠올렸다. 두 아이에게 물건을 보여 주면 기억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걸 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의 정확성을 시험하는 일이 자칫 어느 한 아이의 존재를 가짜라고 판정하는 절차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 ‘비교 검증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보호 우선’이라고 적었다.
로제는 두 아이에게 다가가자마자 평소 친구를 안던 것처럼 팔을 벌렸다가 멈췄다. “안아도 돼?” 두 아이는 서로 눈을 마주보고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로제는 둘을 번갈아 껴안았다. “누가 누군지 아직 모르겠어. 그래도 찾고 있었어.” 그 말에 젖은 아이가 먼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기억되길 바랐지만, 누구와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한 적은 없었다. 그 차이를 로제도 조금씩 이해해 갔다.
도만은 둘을 바라보더니 오래전 역에서 보았던 학생 사진을 꺼냈다. 그는 젖은 아이의 표정이 그때 자신에게 길을 물었던 아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진만으로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무려 수십 년이 지났고 사진도 흐렸기 때문이다. 민규는 그 조심스러움을 고맙게 생각했다. 오래된 증언을 새로운 사람에게 무리하게 덧씌우지 않는 것이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후에도 구조는 끝나지 않았다. 창고의 뒤편 교실들에서 적어도 일곱 명의 아이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입학했고 어떤 아이는 부모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한 교실에서는 교사로 보이는 여자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학생들을 먼저 내보내 달라고 했지만, 민규는 그녀도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자기 신발을 확인했다. 오래된 교복과 달리 평범한 가죽구두였다. 스스로 학생이 아니라 교사라는 사실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바르트는 멀리서 연결망을 점검했다. “숫자가 서로 움직여. 백종에서 네 명을 해제하자 다른 시설의 정원 숫자가 커졌어.” 민규는 통신관을 통해 케스에게 기록을 남겨 달라고 했다. 다른 학교에서 새로운 실종이 발생한 것인지, 단지 표시만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7시설의 경보를 끊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멀리서 일어난 결과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
“여기 있는 사람부터 구해야 합니다.” 민규가 말했다. “그리고 다른 시설엔 지금 상황을 알려야겠죠. 거기 사람을 마음대로 세지 말라고.”
셀레나는 다른 학교들로 경고 통신을 보내려 했지만 번호 열한 개 가운데 셋은 응답하지 않았다. 둘은 ‘해당 주소 없음’이라는 자동 응답만 보내 왔다. 나머지 학교들은 업무 시간이라며 대답을 미뤘다. 그중 한 곳에서는 학생이 아닌 광산 노동자의 소음이 들렸고, 다른 곳에서는 병원 응급실의 호출 종이 울렸다. 열한 시설 모두가 마법학교인 것은 아니라는 추정이 강해졌다.
벨라는 구조된 아이들에게 차를 나눠 주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교감 대행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여기 남아야 다른 학생이 졸업한다는 말은 이제 믿지 않아요.” 그녀는 자기 목소리가 낯설게 들리는 듯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밖에서 할 일이 있을까요?”
“그건 벨라 씨가 정할 일이에요.” 민규는 대답했다. “급한 건 쉬는 거죠. 열 해 동안 한 번도 방학을 못 썼을 테니까요.” 벨라는 울다가 웃었다. 로제는 교감에게 이번에야말로 졸업식이 끝난 거냐고 물었고, 벨라는 “끝난 건 잘 모르겠지만, 너희가 집으로 갈 길은 열렸어”라고 대답했다.
구조가 진행되는 동안 역무원들은 대피실 입구에 작은 번호표를 두었다. 아이들에게 숫자를 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식수와 담요를 중복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민규는 번호표에 이름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안내를 덧붙였다. 교실의 정원 표시가 사람을 삼킨 뒤라 숫자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학생도 있었다. 그는 그 학생에게 번호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물건은 직접 요청하면 됐다.
어느 아이는 구석에 앉아 서류에 적힌 생년월일을 보며 울고 있었다. 바깥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성인이었지만 자신의 몸과 기억은 여전히 어린 나이에 머물러 있었다. 그에게 오늘 당장 가족을 찾으러 떠나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보호기관 담당자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준비부터 돕겠다고 약속했다. 민규는 그 약속을 기록하면서 구체적인 담당자와 연락 시점을 확인했다. 따뜻한 말만 남기고 사라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셀레나는 창고 안의 마지막 통신 기록을 비교했다. 수업 종이 멈춘 뒤에도 작은 잡음이 남아 있었다. 그 소리는 바다 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벗어난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는 장비가 잡음을 신호로 오인하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번 측정했다. 마지막 측정에서만 낯선 좌표가 잠깐 나타났다. 좌표는 제7시설의 원본실과 백종 학원 사이의 어느 지점도 아니었다. 지도 바깥, 열한 시설을 잇는 도형의 중심이었다.
“원점이란 말이 있네요.” 셀레나가 작게 말했다. 장비의 화면 아래에 아주 희미한 글씨가 있었다. 민규는 기록을 따로 보존하자고 했다. 아직 실제 장소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시설의 장치가 같은 중심을 향하고 있다는 가능성은 중요했다.
오후 늦게 마지막 교실을 확인할 때 예상 밖의 문제가 생겼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책상 위에 출석부 한 권이 남아 있었다. 표지에는 ‘백종 마법학원, 첫 기수’라고 적혀 있었다. 안에는 학생 다섯 명의 이름 대신 빈칸만 있었고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으로 눌러 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민규는 출석부를 함부로 넘기지 않았다. 셀레나가 종이의 마력 반응을 측정하고 케스가 내용을 사진으로 남겼다. 첫 장 뒷면에 작은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기록망의 실험은 여기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첫 학생이 아니다. 첫 번째 학생은 열한 곳을 묶는 이름이었다.’
케스가 물었다. “사람 이름이라는 뜻입니까?”
민규는 단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0설계국의 기록이 하나의 사람을 기준으로 움직여 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만했다. 어린 민규의 구조 요청을 성인의 동의서로 둔갑시킨 제7시설의 방법과 닮아 있었다. 숫자를 맞추려는 중앙의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찾아야 했다.
역장은 학생들에게 임시 보호소 안내문을 보여 줬다. 대다수 아이가 당장 갈 집이 없었다. 가족들이 오래전에 이사했거나 아직 실종 신고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규는 그들에게 오늘 밤 어디서 지낼 수 있는지 설명하고, 원하면 가족 찾기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됐다는 사실이 곧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뜻은 아니었다.
역장실에는 옛 승차권을 찾으러 온 주민 한 사람이 있었다. 노년의 여자는 삼십 년 전 아들을 백종 학원에 보냈다고 했다. 그 뒤로 입학 허가서만 해마다 새로 도착했고 졸업 소식은 받지 못했다. 민규는 그 말을 듣고 곧장 아이들과 만나게 하지 않았다. 확인할 내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기록했다. 케스는 공식 보호 절차를 통해 연락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도만은 여자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그는 예전에 신고를 받았던 기관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자신의 사과만으로 사라진 세월이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대신 여자가 가져온 옛 편지를 지역 기록소 자료와 대조했다. 편지에 그려진 학교 문양은 창고의 칠판에 남은 문양과 같았다. 백종의 사건은 오늘의 학생만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진 일이었다.
젖은 아이가 대기실 구석에서 작은 소리로 민규를 불렀다. “아저씨, 저는 처음부터 둘이었을까요?”
민규는 옆자리에 앉았다. “모르겠어. 앞으로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여기 두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해.”
“저를 보고 친구들이 잘못 본 건 아닐까요?”
“사람들이 틀리게 볼 수도 있지. 그래서 여러 사람이 같이 확인하는 거야. 한 사람의 말이나 사진 하나로 너를 결정하지 않을 거야.”
아이는 한참 침묵하다 말했다. “그럼 저도 제 이름을 정해도 되나요?”
“물론이지.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되고.”
마른 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전 예전에 부르던 이름이 기억나요. 온유.” 젖은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누군가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면 다른 사람의 이름 같아.”
두 아이는 똑같은 얼굴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민규는 지금 당장 한 사람을 원본으로 확정하지 않기로 했다. 온유라고 말한 아이의 선택을 기록하고, 다른 아이의 선택은 빈칸으로 남겨 두었다. 빈칸은 삭제가 아니라 아직 묻고 있는 자리였다.
한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지켜본 민규는 마지막으로 창고의 문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상자와 칠판은 그대로 있었지만 교실로 이어지던 벽의 빛은 줄어들었다. 벽 너머에서 추가 반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드림 신호를 보냈다. 잠시 아무 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식 구조 완료라고 기록하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통로와 보이지 않는 통로가 이미 여러 번 달라졌기 때문이다.
역장은 마을에 내보낼 공지문을 직접 썼다. ‘백종 마법학원은 현재 학생 인계를 중지합니다. 이전에 실종 신고한 사람이 있다면 역무실이나 지역 보호기관에 연락해 주십시오.’ 공지에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함부로 싣지 않았다. 학생들을 찾아야 하지만 그들의 안전과 사생활도 지켜야 했다. 주민들은 공지문을 읽고 창고를 바라봤다. 몇 사람은 어릴 때 그곳에서 종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백종 마법학원의 수업 종은 처음으로 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백종이라는 이름이 적힌 간판 옆에 새로운 종이 하나 걸려 있었다. 종에는 학생 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라 작은 글씨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제1실험: 부분 종료. 제2실험: 대상 자발적 접근 확인.]
민규는 그 문구를 읽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누군가의 시험이었다. 하지만 그 시험을 끝낸 것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안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종 아래에 자신의 보고서를 붙였다.
[대상은 시험을 수락한 적 없음. 현장 구조 진행, 기록 검증 계속.]
제10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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