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시작되자 역의 풍경이 두 겹으로 갈라졌다.
한쪽에는 아침에 본 대기실과 여행객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낡은 교실과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섰다. 플랫폼의 기둥은 교실의 기둥이 되었고, 시계의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출입문 번호가 바뀌었다. 정민규는 자신의 발밑이 실제 플랫폼인지 확인하기 위해 금속 손잡이에 분필 자국을 남겼다. 자국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셀레나의 기록석에만 남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는 힘이 정점에 이르고 있었다.
민규는 역장에게 계근기의 사용 중지 기록을 직접 쓰게 했다. “저는 이 역 직원이 아닙니다. 이 설비를 정지시킬 권한은 역장님께 있습니다.” 역장은 잠깐 당황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문장을 쓰는 동안 그의 손도 조금 흔들렸다. 비상 정지의 이유는 ‘실제 인원과 계측 표시 불일치, 안전상 확인 필요’. 기록망은 이를 승인하지 않으려 했지만 역장의 실제 서명과 기계 측면의 수동 손잡이는 여전히 작동했다.
손잡이를 내리자 커다란 종이 한 번 울렸다. 졸업장 네 장 중 두 장이 빛을 잃었고 창고와 객차 사이의 연결이 잠시 느슨해졌다. 그러나 마지막 학생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기록망 안에서 ‘인원이 맞지 않으면 졸업을 계속하라’는 보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민규는 계근기 옆의 두 번째 연결판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교장 확인 회로’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교장실이 기계에 붙어 있었군요.” 케스가 중얼거렸다.
“교장이 이 기계라는 뜻은 아닙니다.” 민규가 말했다. “누군가 교장 이름으로 기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죠.”
교실 속에는 학생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객차에서 보았던 이름 없는 아이뿐 아니라, 낡은 교복을 입은 또 다른 학생들이 창문에 모였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몇 살인지 말하지 못했고 어떤 아이는 여전히 어제 입학했다고 믿었다. 루카 또래로 보이는 학생이 종을 쥐고 있었다. 아이가 종을 흔들 때마다 다른 교실의 문이 닫혔다. 울리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줘도 종은 혼자 움직였다.
셀레나가 마력을 집중해 종을 붙잡았다. 손목에 보라색 빛줄기가 감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끊지 않았다. 종이 고정돼 있는 기둥 아래에 학교 문양이 보였다. 사각형 안에 네 명의 사람 그림자, 그 바깥에 아주 작은 다섯 번째 점. 셀레나는 바르트에게 그 사진을 보냈다. 바르트는 낡은 설계도에서 같은 기호를 찾아냈다. “저건 인원 계수기가 아니라 순환 계수기야. 네 사람이 나가면 남은 하나가 다음 네 사람의 출석을 맡는 구조로 만든 거지.”
종을 붙잡고 있는 동안 셀레나는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첫 학교 시절을 이야기했다. 입학 첫날 그녀는 주문을 잘못 외워 교실의 창문을 깨뜨렸다. 선생은 잘못을 지적했지만 그날의 실수 때문에 그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학생 한 명이 규칙에 맞지 않으면 그 학생을 다른 역할로 밀어 넣었다. “교육을 위한 규칙이라면 잘못을 고칠 기회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여긴 고칠 기회가 없었던 거죠.” 민규가 답했다.
관측구에 앉아 있던 낯선 교사는 아이들이 수업 시간마다 똑같은 문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네 명이 탈출하려면 다섯 번째 사람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정답은 매번 ‘다음 학기의 확인자’였다. 틀린 답을 쓰면 선생님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선생도 오래전 같은 문제를 풀었던 학생이었다. 학교는 사람이 다른 대답을 배울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민규는 그 문제를 보고 문항 옆에 새로운 답을 적었다. ‘출구를 넓히거나 대피 시각을 나눠서 모두 나간다.’ 그는 이 답이 실제로 가능한지 모르면서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다섯 번째를 남겨야 한다는 조건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바르트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 배수관의 수동 개폐 구조를 다시 살폈다.
역장과 도만은 대피실에서 나온 학생들이 플랫폼을 지나갈 동선을 확인했다. 가장 좁은 지점은 화물용 개찰구였는데 한 번에 네 명 이상 지나가지 못하도록 가드가 세워져 있었다. 도만은 오래된 볼트를 살펴보고 가드를 한쪽으로 접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안전한 출구를 넓힐 수 있는데도 누군가는 좁은 공간을 이유로 사람 하나를 남게 한 것이다.
그 발견은 작은 일이지만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줬다. 마법의 정원은 법칙처럼 보였지만, 실제 건물의 좁은 통로와 오래된 계근기를 이용해 사람에게 강요한 규칙이었다. 사람의 수를 고정하지 않고 통로의 구조를 바꾸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민규는 하비와 친구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들이 기차에서 했던 일을 각각 기억나는 대로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비는 친구가 넘어진 얘기를 했고, 카란은 빵 끝을 나눠 먹었다고 말했다. 메이든은 여행 전에 다섯 명이 같이 그림을 그린 사실을 기억했다. 로제는 가방 다섯 개를 세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누군가 이 진술을 대신 정리하지 않고 각자 자기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 만들어진 교실 문에 금이 갔다. 기록망은 사람을 숫자로만 처리해 왔지만, 숫자가 아닌 각자의 삶이 밖에서 확인되자 완벽하게 같은 네 명으로 분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민규는 이 변화를 기뻐하면서도 당장 안전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금이 간 문이 무너지면 안의 아이들이 다칠 수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문에서 떨어지라고 알리고 대기실 쪽 출입구를 열어 두었다.
벨라는 한참 동안 자기 졸업장을 바라보다 학생들 앞으로 나섰다. “내가 너희에게 네 명만 있다고 말했지.” 그녀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게 규칙인 줄 알았어. 누가 다섯 번째였는지 생각하지 못한 채 너희를 데려왔어.” 로제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기억하지 못한 거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요.” 벨라는 학생의 말을 듣고 울었다. 하지만 그녀는 ‘미안하니 내가 대신 남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또 다른 희생을 만드는 선택이었다.
창고의 수업 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셀레나의 손에 땀이 흘렀다. 그녀는 종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종이 매달린 기둥의 긴장을 줄이는 방법을 떠올렸다. 민규는 창고 안쪽의 낡은 완충재를 살폈다. 종이 움직일 때마다 완충재가 닳아 가고 있었다. 그는 새 밧줄을 걸고 바르트의 지시대로 하중을 분산했다. 힘으로 부수지 않아도 종을 울리게 하는 장치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 순간 교실의 맨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여기 물통 있어요.” 이름 없는 아이가 창고의 네 번째 창문 쪽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오래된 밸브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따라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출구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은 그 아이와 닮은 또 다른 아이였다. 한 아이는 젖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마른 교복을 입고 있었다. 기록망이 어떤 아이를 원본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둘 다 나가도 돼요?” 젖은 아이가 물었다.
민규는 질문을 되돌려 주지 않았다. “둘 다 여기 있고 둘 다 위험하면, 둘 다 나올 수 있는 길을 찾을 거야. 누가 진짜인지는 바깥에서 천천히 확인하면 돼.”
구조팀이 준비한 밧줄은 학생들의 허리에 묶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허리에 무언가 감기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감금 기억이 되살아났다. 대신 손잡이가 있는 짧은 유도선을 만들어 각자 원할 때 잡고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서리나루 의원에서 파견된 간호사가 놀라거나 넘어질 아이를 돌보기 위해 대피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첫 번째 아이가 나오면 다른 학생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도록 로제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로제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다섯이었다는 거, 내가 계속 말할게. 하지만 거기서 누가 나오든 먼저 이름을 물어보지 않을 거야.” 메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는 자기 가방의 마지막 과자 봉지를 꺼내 대기실 책상에 놓았다. “배고프면 먹으라고요.” 민규는 그 모습을 보며 잠깐 웃었다. 여전히 창고 안쪽은 위험했지만, 바깥에서는 사람이 나올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벨라는 교감용 은패를 손에서 떼어 놓았다. 은패를 내려놓자 종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신분을 보장한다고 믿어 왔지만, 실제로는 출입 기록을 고정하는 장치였다. 셀레나는 은패를 봉인된 함에 넣었다. 벨라를 교감에서 지우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벨라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통신을 잠시 끊는 조치였다.
“내가 이걸 뗐는데도 아무도 사라지지 않네요.” 벨라가 말했다.
“아직 확인은 계속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민규가 대답했다. “저 물건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하진 않아요.”
그 순간 처음으로 젖은 교복의 아이가 문턱 가까이에 섰다. 마른 교복의 아이도 나란히 섰다. 둘은 누가 먼저 나가야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고, 창고의 외부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구조팀은 누구를 고를 것인지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모두 나올 수 있는 넓이와 시간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벽에 새로운 글씨가 떠올랐다. [원본 확인 실패. 출구 허용 불가.] 케스는 오래전에 보았던 문구를 떠올렸다. 제7시설의 기록망도 이런 조건을 걸었다. 한 사람을 지워야 한 사람을 구한다는 협박이었다. 그는 이를 뒤집을 근거를 찾았다. 백종 학원은 총국 정식 등록기관이 아니므로 정원 규정으로 생명 보호를 제한할 권한이 없었다. 그는 기록석에 그 사실을 증언하고 역장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역장은 서류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다섯 명이 온 걸 보았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었다. 도만은 서른여섯 해 전에도 아이들이 다섯이었다고 증언했다. 벨라는 교감이라는 직책을 얻기 전 자신이 다섯 번째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시기와 역할을 가진 세 사람이 같은 숫자를 말했다. 기록망의 계수 결과는 더 이상 유일한 증거가 아니었다.
민규는 경비용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미확인 인원 두 명, 둘 다 대피 대상’이라고 적었다. 그 문장이 완성되자 두 아이의 뒤에 있던 벽이 조금 물러났다. 길은 생겼지만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셀레나는 종을 멈추는 데 성공했고, 창고의 물길도 바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구조팀은 각자 출입문을 나눠 지켰다. 실제로 한 사람이 지나간 뒤 다시 문이 열리는지 검사하면서 아이들을 안내할 준비를 마쳤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교실 방송망에서 들렸다. “여러분은 원본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원본과 대체 학생을 모두 내보내면 기록의 안정성이 사라집니다.”
민규는 방송을 향해 물었다. “안정성이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목소리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침묵했다. 이윽고 말했다. “제0설계국의 열한 시설에 필요합니다. 한 시설의 숫자가 달라지면 다른 시설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 다른 학교에도 다섯 번째 학생이 있겠군요.”
짧은 잡음 뒤에 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학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을 통한 마지막 안전 점검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한 아이가 문턱을 지날 때 내리던 물이 다시 거슬러 올라갔고, 다른 아이가 접근하면 마력 측정값이 바뀌었다. 셀레나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보내는 대신 통로 안의 공기를 유지할 방법을 찾았다. 바르트가 알려 준 환기 팬의 날개를 이용해 바깥의 공기를 밀어 넣자 변화 폭이 조금 줄었다. 불안정한 장치 하나에 모든 구조를 맡길 수는 없었다.
민규는 역장의 손글씨 장부와 케스의 기록석을 한 장씩 대조했다. 같은 사람을 두 번 세지 않도록, 이미 나온 사람과 아직 문 안에 있는 사람을 서로 다른 칸에 기록했다. 온유라고 불릴 사람이 두 명일 가능성은 남았지만 숫자를 맞추기 위해 한 사람을 삭제하는 방식은 쓰지 않았다. 그는 ‘미확인’이라는 표기를 끝까지 남겼다. 출구가 열린다고 해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까지 끝나는 건 아니었다.
벨라는 허물어져 가는 교실을 바라보며 자신에게도 나올 권리가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문에서 물러나자 다른 학생이 그 자리에 섰다. 아무도 대신 남지 않아도 출구는 잠시 열린 상태를 유지했다. 작은 성공이었다. 그러나 성공했다고 서두르지는 않았다. 출구 반대편까지 모두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교실의 바닥이 작게 흔들렸다. 백종 학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가 열리는 대신, 멀리 떨어진 다른 시설의 정원 표시가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열한 학교가 서로 숫자를 나눠 쓰는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제10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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