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105화
PAYLUA ORIGINAL · 제105화

105화. 졸업장은 네 장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126자

오프라인 책장
정민규는 칠판에 적힌 교장 후보라는 글씨를 읽고도 펜을 들지 않았다. 문을 열어 주겠다는 조건으로 관리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은 영 번째 피난동에서 이미 보았다. 누군가를 구하려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계약에 써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임시 교장 선임 통지서를 촬영하고 벨라에게 물었다. “이 학교에 실제 교장이 계십니까?” 벨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오므리고 나서야 “선생님들은 모두 계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교장이 있다는 말과 교장이 여기 있다는 말은 달랐다. 민규는 졸업식과 관련된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평범한 학교의 마무리 행사부터 떠올렸다.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고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 그러나 서리나루의 기록은 달랐다. 행사 시작 시각은 있었지만 종료 시각이 없었다. 사진에는 매번 네 명만 찍혔고, 졸업한 학생들이 다음 어디로 갔는지를 적은 장부는 한 권도 없었다. 케스는 졸업장 형식을 살펴보다 날짜란의 이상을 발견했다. 마법학원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교육 이수 확인’이 아니라 ‘잔여 인원 보정 완료’라는 작은 문구가 있었다. 이는 교육 과정의 끝이 아니라 장치의 계산 결과를 적은 서류였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용한 명칭과 실제 시스템의 목적이 달랐다는 사실을 보고서에 적었다. 벨라는 수십 장의 졸업장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자기가 처음 아이들을 배웅한 날을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은 언제나 플랫폼 끝에서 끊겼다. 대신 손에 남은 감각이 있었다. 졸업장을 나눠 줄 때마다 한 장은 너무 차가워서 오래 잡고 있으면 손이 아팠다. 그걸 생각하자 그녀는 손등을 문질렀다. “저는 선생으로서 뭘 했던 걸까요?” 벨라가 물었다. 민규는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현장에서 본 벨라는 학생을 걱정했고, 조명이 꺼졌을 때 위험한 쪽을 살폈다. 불완전한 기록 속에서도 자신이 할 일을 하려던 사람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찾아보죠.” 민규가 말했다. “누가 어떤 결정을 대신했는지도요.” 역장도 자신의 역할을 생각했다. 오랫동안 그는 빈 창고라고 배워 온 장소를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그 일을 후회한다고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다. 대신 지역 학교와 보호기관에 연락하고, 사람이 드나든 흔적을 제대로 기록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대피소 문에 ‘임시 쉼터’라는 종이를 붙였다. 백종 학원의 인계 대기실이 아니라 누구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로 쓰기 위해서였다. 역장은 역사 뒤의 임시 대피소를 열었다. 빈 객실에 담요와 식수를 옮기고, 학생에게 익숙한 사람이 동행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만들었다. 나디아는 학교의 의료실에서 원격 상담을 시작했다. 로제와 친구들은 다시 객차로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민규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갇힌 친구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아직 확인하지 못한 통로에 더 많은 학생을 들여보내지 않으려는 결정이었다. 하비가 물었다. “그럼 우리 친구를 누가 데리고 나와요?” “안에 누가 있는지 세는 것부터 우리가 하려고 해.” “그런데 이름도 모르잖아요.” “이름을 모르니까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면 안 되지.” 민규는 서리나루 창고의 각 교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내려 했다. 칠판의 ‘정원 4’는 문 네 개와 연결돼 있었지만, 매 교실 바깥에는 다섯 번째 창문이 있었다. 창문은 교실에 바람을 들이기 위한 설비 같았다. 그러나 겉에서 보면 창문이 없었다. 역 설계도에는 한때 쓰던 환기통이 표시돼 있었다. 해당 통로는 폐쇄 기록이 없으면서도 유지보수 대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바르트는 귀가 먹먹하다는 듯 통신관을 두드렸다. “나는 저런 통로를 본 적이 있어. 환기구를 따로 두는 게 아니라 다음 방의 문으로 쓰는 건축술이야. 한 사람이 지나가면 앞방 인원이 줄고 뒷방 인원이 늘지. 정상적이라면 탈출할 때 쓰는 방식인데, 숫자를 고정하면 영영 마지막 방에 도착 못 하는 사람이 생겨.” 셀레나는 이 말을 듣고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다. 학생이 아닌 빈 책 한 권을 첫 번째 교실의 창틀에 놓아 보자는 것이었다. 생명이 없는 물건으로 경로를 시험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그녀가 허공에 마법의 작은 손을 만들어 책을 들어 올리자 책은 창틀 너머로 사라졌다. 동시에 두 번째 교실 창문에서 책 표지의 한 귀퉁이가 나타났다. 방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시 가져오려 할 때 책이 네 권으로 늘었다. 겉모습은 같았지만 한 권마다 서로 다른 페이지가 비어 있었다. 민규는 그것을 재밌는 마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본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느 한 권을 골라 원래 책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네 권을 각각 표기하고 변화를 기록했다. 종이가 복제됐다면 사람도 복제될 수 있다는 위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벨라는 책들을 오래 보다가 하나를 골랐다. “이건 수학 교과서예요. 그런데 페이지가 비어 있는 부분에는 원래 사람 이름을 배우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름을 배우는 수학이요?” “네. 넷을 만들려면 하나를 빼야 하고, 다섯을 만들려면 하나를 불러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학생들이 정원을 맞추지 못하면 시험을 다시 봤고요.” “그 수업을 누가 맡았습니까?” 벨라는 머뭇거렸다. “교장 선생님이요. 얼굴은… 생각나지 않아요.” 민규는 교실을 연결하는 창문이 사람의 기억까지 바꾼다는 가설을 검토했다. 셀레나는 마법진의 일부를 작은 투명판에 옮겨 그려 보았다. 창문의 안쪽에는 출구를 뜻하는 부호가 있었고 바깥쪽에는 입구를 뜻하는 부호가 겹쳐 있었다. 방향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사람을 내보내기 위한 설비로 만들었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사람을 안에 계속 되돌려 보내는 장치로 바꿨을 수 있었다. 그들이 실험에 사용한 책 네 권은 모두 다른 문장을 담고 있었다. 첫째에는 수업 시작 시간, 둘째에는 식사 시간, 셋째에는 학생을 인계받은 사람의 이름, 넷째에는 출석을 확인한 선생의 이름이 있었다. 마치 원래 하나였던 정보가 네 방향으로 찢어진 것 같았다. 민규는 네 권 가운데 어느 한 권이 원본이라고 지정하지 않았다. 네 권을 같이 읽어야 비로소 문장의 의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도 이런 식으로 나뉘었을까요?” 케스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대체인지 섣불리 결정하면 위험하겠죠.” 셀레나는 창문의 마력 흐름을 장갑에 적어 보였다. 정상적인 대피 통로는 한 사람이 지나갈 때 연결이 잠깐 열렸다 닫혔다. 하지만 이곳은 한쪽 창문이 열리면 나머지 세 곳이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빛났다.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려는 장치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 이름만 넣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법했지만, 그 이름이 실제 사람과 연결되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민규는 창고 문에서 대기실까지의 실제 거리를 다시 걸어 봤다. 아이를 구조할 때 필요한 것은 복잡한 마법의 이름이 아니라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정확한 길이었다. 그는 출입구 주변의 장애물을 치우고 위험한 바닥에 천 조각을 묶었다. 그 일을 끝내고 나니 적어도 아이가 나온 다음 어디로 갈지에 대한 불안은 조금 줄었다. 점심 무렵 구조팀이 창고 옆의 폐수로를 찾아냈다. 오래전에 급수관을 관리하던 작업자가 사용한 통로였다. 입구가 작은 탓에 성인이 지나가기 어려웠지만 내부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유리 관측구가 남아 있었다. 민규는 관측구 앞을 깨끗이 닦고 손전등을 비췄다. 세 번째 교실 바닥에 학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대화하는 듯했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민규가 관측구를 두드리자 한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밖에 있는 경비원입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고 있습니다. 안에서 출구를 알 수 있습니까?” 아이는 분필을 들어 책상 위에 숫자를 적었다. 4. 그리고 아래에 5를 적었다. 다시 4. 그다음에는 한참 망설이다 6을 적었다. 숫자를 마칠 때마다 옆 아이의 그림자가 흐려졌다. 셀레나는 즉시 소리를 줄이고 더 쓰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아이가 숫자를 늘릴수록 기록망이 그 값을 정원으로 바꾸는 듯했다. “숫자를 묻지 맙시다.” 민규가 말했다. “차라리 학생들이 각자 자기를 기억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하죠.” 로제는 바깥에서 친구들의 별명을 말해 주었다. 카란은 채소를 싫어하고 메이든은 왼쪽 신발 끈을 두 번 묶고 하비는 아침에 머리를 빗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런데 다섯 번째 아이에 이르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기억을 말하려고 하면 앞에 있던 문장이 자꾸 지워졌다. 민규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떠올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의 기차 여행에서 있었던 작은 일을 하나씩 적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로제가 적은 글에는 ‘다섯 번째 친구가 물통을 떨어뜨려 다 같이 웃었다’는 문장이 남았다. 메이든의 글에는 ‘친구가 넘어져 내 손을 잡았다’고 쓰였고, 카란은 ‘그 애는 빵의 끝부분을 좋아했다’고 적었다. 이름을 쓰려는 시도는 지워졌지만 함께한 행동은 지워지지 않았다. 기록망이 사람을 지우려 하면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모두 삭제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민규는 그 문장들을 사진으로 남겨 관측구에 보여 줬다. 안쪽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자기 교과서 모서리에 매우 작게 글자를 하나 썼다. ‘온’. 글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두 아이 모두 무언가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교실의 종이 다시 울렸다. 벽 위의 교장 후보 문구가 바뀌었다. [정민규 후보 응답 없음. 교장직 미수락 시 졸업식 자동 진행.] 민규는 달력을 살폈다. 졸업식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네 시간도 남지 않았다. 졸업식이 시작되면 다섯 번째 학생을 제외하고 네 명만 밖으로 내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무조건 멈출까요?” 셀레나가 물었다. “졸업식이 무엇을 하는지 먼저 확인해야겠어요. 안에 있는 아이에게 갑자기 문을 닫는 것도 위험해요.” 역장은 이전 졸업식 기록을 가져왔다. 행사 사진에는 모두 네 명의 학생이 서 있었다. 하지만 사진 아래 선생님 명단에는 늘 한 명이 빈칸이었다. 졸업 학생 네 명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다섯 번째 사람이 교직원 자리를 차지해 온 것일 수도 있었다. 학생을 내보냈다는 숫자만으로는 안전한 졸업을 증명하지 못했다. 창고 밖에는 저녁 무렵의 바람이 불었다. 로제는 친구들과 짐을 한쪽에 모아 두고 담요를 접었다. 학교에 가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아이들에게는 대기실에서의 기다림이 낯설었다. 하비는 문을 열어 보겠다고 일어났다가 스스로 멈췄다. “지금은 기다리는 게 돕는 거죠?”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일도 누가 무엇을 확인 중인지 알 때 견딜 수 있었다. 셀레나는 창고 안쪽에서 보낸 신호의 간격을 계산해 봤다. 신호는 매번 같은 사람에게서 온 듯했지만 세 번째 박자에서 작은 차이가 있었다. 한 사람의 장난인지 여러 사람의 합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민규에게 말하지 않은 채 확정짓지 않았고, 모든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다음 구조 단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만 믿고 문을 열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후 네 시, 벨라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발신자는 ‘교장실’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듣고만 있다가 수화기를 내밀었다. “교장 선생님이 경비원과 이야기하고 싶답니다.” 민규가 수화기를 받자 따뜻하고 단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일을 하고 계시군요.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안전합니다. 네 명은 졸업하고 한 명은 이곳에 남아 다음 학생을 맞을 겁니다.” “그 한 명이 남는 데 동의했습니까?” “학생에게는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교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학생이 아니라 설비로 취급한 거네요.”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목소리는 기분을 상한 듯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상냥하게 말했다. “정민규 경비원, 당신도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제7시설에서 이름을 쓰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했겠죠. 당신이 거절한 덕분에 첫 번째 시험은 끝났지만, 두 번째 시험에서는 반드시 한 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안전한 출구를 찾겠습니다.” “그러면 다섯 시에 봅시다. 당신이 학생 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찾을 수 있는지.” 통화가 끝나자 학교의 졸업장 다섯 장이 허공에 나타났다. 네 장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마지막 한 장은 백지였다. 그런데 백지 졸업장의 아래쪽에는 아주 희미한 글씨가 한 줄 적혀 있었다. [졸업 대기자: 벨라. 대체 학생 1명 배정 완료.]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0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0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