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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101화
PAYLUA ORIGINAL · 제101화

101화. 열한 개의 주소

마법학교 야간 경비원의 정체 · 6,580자

오프라인 책장
주소가 열한 개였다. 정민규는 식탁 위에 봉투를 펼쳐 놓고 어머니가 끓여 둔 차부터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늘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늦잠이었다. 그런데 오래된 수리 영수증을 들먹이는 우편물이 그 계획을 무너뜨렸다. 봉투에는 제0설계국의 문장이 없었다. 대신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비 관리 조합의 명칭과 그럴듯한 직인이 찍혀 있었다. 민규는 직인이 마르지 않은 종이라는 사실에 먼저 주목했다. 삼십 년 전 서류를 흉내 낸 종이치고는 잉크가 너무 새것이었다. 바르트는 전화기 너머에서 주소를 하나씩 불러 달라고 했다. 민규가 첫 번째 지명을 읽자 노인은 즉시 대답했다. “거긴 학교가 아니라 폐쇄된 목욕탕이야.” 두 번째는 바다 건너의 음악학원, 세 번째는 지도에서 아예 지워진 탄광촌이었다. 열한 번째에 이르자 바르트가 말을 멈췄다. 이름은 ‘백종 마법학원’. 마법학교라는 표기가 붙어 있었지만 마법 교육청의 학교 목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관이었다. “없는 학교면 안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민규가 물었다. “누가 없다고 적었는지를 먼저 봐야지. 건물이 없어졌다는 말과 명부에서 지웠다는 말은 다르거든.” 민규는 급히 신발을 신지 않았다. 대신 흰 종이에 세 칸을 그렸다. 실제 주소 확인, 해당 시설에 있는 사람 확인, 점검 권한 확인. 주소가 일치한다고 사람의 안전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있다고 자신에게 들어갈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제7시설의 경비원’이라는 호칭은 그 셋을 한꺼번에 뛰어넘으려는 미끼처럼 보였다. 정은희가 그 종이를 보더니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넌 뭘 하러 가도 먼저 출입증부터 보겠구나.” “엄마 찾으러 갈 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요.” “그때 넌 어린애였어.” 은희는 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가 아니잖니.” 학교 경비실에는 사람들이 제각각 일을 하고 있었다. 루카는 구조된 소율에게 학교 운동장을 안내하기로 했고, 미라는 의료실에 필요한 담요를 셌다. 셀레나는 영 번째 피난동의 분리 스위치에 봉인 표식을 붙이고 있었으며, 에일라는 정정된 구조 기록을 원본과 함께 보존할 방법을 정리 중이었다. 누구도 첫 번째 사건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 봉투를 보자 모두가 한 번씩 일을 멈췄다. 케스는 종이를 받자마자 총국의 정식 점검명령서인지 물었다. 직인을 확대해 본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건 상급 기관 결재가 아니군요. ‘제0설계국’이라고 쓰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자리의 선이 반대로 감겼습니다. 도장을 찍었다기보다 인쇄한 모양입니다.” “그럼 사기입니까?” 루카가 물었다. “출처를 확인하지 않은 요청입니다.” 민규가 답했다. “사기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지. 결론보다 조사가 먼저야.” 그날 오후, 셀레나는 학교의 통신석으로 지도 관리소와 연결했다. 마법 지도는 등록된 건물을 파란 점으로 표시했지만 이상하게도 백종 마법학원의 좌표에만 점이 없었다. 대신 가장 오래된 종이 지도에는 작은 정사각형이 있었다. 사각형 안에는 ‘서리나루 역 창고’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역은 지금도 운영 중이었다. 창고가 철거됐다는 공식 기록은 없었지만, 그 부지를 학교가 쓴 적도 없다는 답변이 왔다. 바르트는 길을 아는 사람을 찾아냈다. 은퇴한 기관사 도만은 경비실에 오자마자 창고 이야기를 듣고 주머니에서 오래된 차표를 꺼냈다. 차표 뒷면에는 학생처럼 보이는 아이 셋의 얼굴이 연필로 그려져 있었다. 도만은 서른여섯 해 전 늦은 밤, 서리나루의 마지막 열차가 정차한 뒤에도 아이들이 플랫폼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린 선생이 데리러 올 줄 알았죠. 그런데 새벽에 다시 보니 애들이 없더라고. 기차표만 세 장 더 생겼어. 오늘 날짜로.” “그날 신고하셨습니까?” 민규가 물었다. “했어요. 역무실 대장에도 쓰고 군청에도 알렸지. 그런데 다음 주에 보니 신고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대장에는 빈칸만 있고.” 도만이 내민 차표의 날짜는 놀랍게도 오늘이었다. 하지만 민규가 종이를 뒤집자 얇은 긁힘 자국이 보였다. 그 자국은 마법으로 바뀐 숫자보다 오래돼 보였다. 그는 차표를 무작정 만지지 않고 보호 주머니에 넣었다. 같은 차표를 두고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날짜를 읽었다는 사실부터 기록했다. 케스가 말했다. “열한 곳을 모두 조사하려 들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 현장부터 정해야죠.” “그럼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민규는 종이 지도의 정사각형을 가리켰다. “운영 중인 역이 있습니다. 역무원이 있고 역장도 있겠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현장부터 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러나 목록의 주소들을 대조할수록 이상한 부분이 더 나왔다. 열한 개 이름 옆에는 각기 다른 수리 항목이 적혀 있었다. 화재 감지기, 폐수관, 기숙사 환기구, 수동 승강기, 복도 조명, 병원 야간 출입문. 겉보기에는 모두 일상적인 유지보수 항목이었다. 민규는 공통점을 찾으려다가 제7시설의 영 번째 피난동에서 떼어 낸 오래된 장부를 떠올렸다. 사고의 시작은 복잡한 주문이 아니라 고장 난 출입문과 ‘확인 완료’ 도장이었다. 에일라는 열한 개 항목을 표로 옮기면서 날짜를 비교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시설인데 마지막 점검일이 모두 같은 날로 표시돼 있었다. 그 날짜는 삼십 년 전 사고 사흘 전이었다. “이건 실제 점검일이라기보다 어떤 기준일 같아요. 다른 학교까지 같은 날짜에 수리가 끝났다고 적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케스는 기관 간 공동 점검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검 항목의 담당자란이 전부 비어 있다는 사실이 걸렸다. 루카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 “학교마다 건물 수리하다가 동시에 고장 났다는 뜻일까요?” “아니. 실제로 모두 고장 났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어.” 민규가 말했다. “누군가 예전 날짜를 기준으로 계속 점검을 끝냈다고 적었을 가능성이 있지.” “그럼 그 날짜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은요?” “왜?” “학생들은 결석하면 담임이 확인하잖아요. 시설도 검사 안 했는데 검사했다고 쓰면 결석한 거랑 비슷한 것 아닌가 해서요.” 바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배워 둬라, 민규. 학생이 핵심을 짚을 때도 있다.” 민규는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장부에 모두 같은 날짜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 점점 불길해졌다. 누가 부재를 확인했는지가 빠진 장부였기 때문이다. 서리나루는 바닷가의 작은 역이었다. 마을은 한때 소금과 광물을 실어 나르는 열차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여객열차가 하루 몇 차례만 섰다. 도만은 역의 오래된 시간표를 보내 주면서 특정 시간에만 창고 쪽 신호기가 흔들린다고 덧붙였다. 바다에 안개가 낀 날에는 창고에서 종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학교의 방과 후 종이라고 했지만, 정작 학교가 어느 길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미라는 연락망을 작성하다 말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쪽 지역에서 다친 사람이 나오면 누가 치료하죠? 우리 학교 의료실까지 데리고 오면 너무 멀어요.” 나디아는 서리나루의 지역 의원과 응급 이송 체계를 확인했다. 마법 통신이 끊겨도 종이 명단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번호를 나눠 적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지역 담당자를 먼저 찾는 과정은 사건이 시작되기도 전에 현장을 조금 안전하게 만들었다. 출발은 그 다음 날로 미뤘다. 바르트는 민규가 혼자 가겠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표정이었다. 셀레나는 예비 통신관과 마력 측정기를 챙겼고, 케스는 공식 조사 허가를 요청했다. 미라는 현장에 학생이 있을 가능성을 이유로 의료 지원 연락망을 만들었다. 루카는 같이 가겠다고 우겼지만 민규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기차가 타 보고 싶으면 안전한 시간에 가자. 점검 현장은 견학이 아니야.” 루카는 씩씩거리다가도 소율이 아직 학교 지리를 외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운동장 안내를 맡기로 했다. 밤에는 정은희가 아들을 불렀다. 어머니는 새 구두를 사 주지 않았다. 대신 경비복 안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수첩을 건넸다. 예전 보건실에서 쓰던 기록지였다. 첫 페이지에는 ‘당사자가 말한 사실’과 ‘남이 대신 적은 사실’을 따로 구분하라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민규는 손가락으로 두 칸을 짚었다. “엄마가 저보다 현장을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삼십 년을 안에 있었잖니. 누군가 내 말을 대신 적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민규는 밤사이 주소의 우편번호를 확인하다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열한 시설 가운데 세 곳의 우편번호는 현재 존재하는 지역에 속하지 않았다. 오래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번호가 바뀌었는데, 발신인은 삼십 년 전의 번호를 그대로 썼다. 그런데 백종 학원 주소만은 최신 우편번호로 적혀 있었다. 누군가 그곳의 행정 정보를 지금도 갱신하고 있었다. 케스는 그것이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 최신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 다른 시설에는 오래된 주소를 남겨 두었다면, 실제 방문을 유도하는 곳은 한 장소뿐이었을 것이다. 민규는 종이에 ‘발신인의 의도: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그가 가는 장소를 누군가 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곳 사람들에게 위험이 있다면 직접 확인할 이유는 있었다. 다만 자신이 초대된 손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됐다. 미라는 점검팀이 떠나기 전 작은 보온통을 나눠 주었다. 바닷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하루가 걸릴지도 모른다며 따뜻한 죽을 담았다. 민규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가방의 무게를 확인했다. 비상 장비보다 식량이 더 무거워진 것을 보고 바르트가 농담했다. “출장이 아니라 소풍이군.” 그 농담 덕분에 사람들의 표정이 잠깐 부드러워졌다. 위험에 대비하는 일과 두려움에 모든 시간을 빼앗기는 일은 같지 않았다. 서리나루로 가는 새벽 열차는 정시에 들어왔다. 민규는 개찰구를 통과하며 자신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지 확인하는 짓부터 하지 않았다. 대신 표를 실제로 검사하는 역무원에게 운행 안내와 비상구 위치를 물었다. 개찰구 옆에는 세 가지 색의 종이 표지가 있었는데 가장 오래된 녹색 표지는 닳은 채 거꾸로 걸려 있었다. 역무원은 최근 벽보를 갈던 직원이 실수했을 거라고 했다. 작은 표지 하나가 문제일 수도,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다. 차창 밖으로 바닷가가 나타났을 때 셀레나가 지도석을 켰다. 화려한 빛의 선은 서리나루 역을 향해 뻗어 있었지만 마지막 수십 미터에서 갑자기 갈라졌다. 한 선은 역사로, 한 선은 닫힌 창고로, 나머지 한 선은 바다 위 허공으로 이어졌다. 케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잘못 표시한 겁니까?” 민규는 지도 대신 창밖을 보았다. 서리나루 플랫폼 끝에 네 명의 아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쓴 아이들이었고 발밑에는 검정 가방 네 개가 있었다. 그런데 플랫폼 시계가 열차 도착을 알리는 순간, 아이들 사이에 다섯 번째 그림자가 생겼다. 그림자만 있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창고를 먼저 보지 맙시다.” 민규가 말했다. “저 아이들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실제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겠어요.” 차 안에서는 승객들이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부는 오후 파도가 거셀 거라고 말했고, 가게 주인은 배달 물건이 또 늦었다며 투덜거렸다. 민규는 그 평범함이 좋았다. 제7시설을 조사할 때는 온 세상이 기록망의 비밀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그와 무관하게 식사를 하고 일터로 가고 있었다. 그 일상이야말로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케스는 좌석 옆에서 학생 통학 규정을 읽어 내려갔다. “마법학교는 학생을 인계받을 때 성명과 보호자 연락처를 확인하게 돼 있습니다. 다만 이 역의 오래된 규정에는 대리 교사가 학생 수만 확인하도록 되어 있군요.” 셀레나는 마지막 문장의 인쇄체가 다른 부분보다 조금 짙다고 지적했다. 누군가 제도를 바꿔 끼운 흔적이었다. 민규는 새 규정과 오래된 규정이 충돌하는 곳이 실제 점검의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차가 역에 가까워질 때 갑자기 도만에게서 통신이 왔다. “오늘 플랫폼에 기차가 한 편 더 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있어. 그런데 시간표에는 하나밖에 없소.” 민규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을 들었다. 분명 열차는 한 편이었다. 그러나 반대편 선로의 신호등은 차량이 오지 않았는데도 녹색으로 바뀌었다.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 실제 열차와 기록 속 열차를 다르게 취급하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그는 출구가 막히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역무원에게 아이들에 대해 물었다. 역무원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오늘 입학생들이죠. 백종 마법학원에 가는 애들. 매주 이 시간에 와요.” “학교가 목록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목록에요?” 역무원은 이상하다는 듯 웃었다. “그 학교, 어제도 있었는데요.” 민규가 플랫폼으로 돌아봤을 때 네 아이는 그대로 서 있었다. 다만 그들 뒤의 벽에 걸린 시간표 맨 아래에 새 문장이 나타나 있었다. [미등록 학생 인계 예정. 인계 확인자는 제7시설 경비원 정민규.] 민규는 시간표에 서명하지 않았다. 안내문을 사진으로 남기고 출입대장에 적었다. 백종 마법학원으로 가는 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역무원이 방금 다섯 명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민규가 본 아이는 네 명이었다. 그는 셀레나에게 손가락을 펴서 숫자를 보였다. 넷. 셀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스도 넷이라고 했다. 민규는 가방을 하나씩 세었다. 다섯 개였다. 그리고 아무도 들지 않은 다섯 번째 가방의 손잡이가, 누군가 집어 든 것처럼 천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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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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