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식의 소리는 도시를 삼킬 만큼 컸다.
황동 입이 한 글자를 부를 때마다 광장의 돌바닥에 흰 원이 생겼다. 원 안에 선 사람은 자기가 불리던 이름 대신 기계가 정한 숫자를 받았다. 숫자는 범죄자가 달고 다니는 표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깨끗하고 보기 좋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저는 저 번호를 원하지 않아요.” 꽃집 주인 연재가 말했다.
그녀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름을 바꿀 뜻이 없고, 만약 기록이 잘못되었다면 검증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빵집 주인은 등록을 다시 원했다. 다만 중간 글자가 지워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없는 이름이라고 처리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도림은 스무 해 전 자신이 구조한 사람들의 현재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광장 서쪽에서는 다른 논쟁이 벌어졌다. 어떤 주민은 공식 이름이 여러 번 잘못 기록되어 새 이름을 받고 싶어 했다. 다른 주민들은 그가 호명식에 찬성하니 배신자라고 말했다. 피엘은 통신으로 그 소식을 듣고 서온에게 전했다.
“호명식을 멈추는 것과 이름을 바꾸고 싶은 사람까지 막는 것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공개 안내에 넣을게.] 서온이 답했다.
이름을 바꾸고 싶어 했던 주민은 작은 나무집에서 태어나 이름을 여러 번 바꾸며 자란 청년이었다. 그는 본인이 선택한 새 이름으로 등록하고 싶은데 공적 장부에선 처음 받은 이름을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이름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반겼다. 하지만 청년은 막상 호명식이 자신이 고르는 이름이 아니라 기계가 정한 번호를 주는 것임을 알고 혼란스러워했다.
“저는 진짜로 바꾸고 싶은데요.” 청년이 말했다.
연재는 그에게 현재의 자발적인 개명 절차를 별도로 보전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다만 지금은 정정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니 완료됐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럼 기다릴게요. 하지만 기다린다고 제 이름이 옛날 걸로 돌아가는 건 아니에요.”
“그것도 남겨 놓겠습니다.”
청년의 말이 기록되자 주변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같은 이름을 계속 쓰고 싶은 사람과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낯설었던 것이다.
가르덴은 청사 아래쪽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그는 한때 모든 장부에 하나의 깔끔한 정답을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광장에는 확인해야 할 수백 개의 대답이 있었다. 어느 것도 한 사람이 대신 확정할 수 없었다.
“이러다 끝없이 문제가 남을 텐데.” 가르덴이 중얼거렸다.
이다가 대답했다. “문제가 남는다고 사람이 사라져야 하는 건 아니지.”
가르덴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는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시민의 현재 의사를 다시 지울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신 그날의 물높이 기록과 배 수리 영수증을 들고 나왔다.
“나는 그날 빈 배로 돌아오지 않았어.” 그가 말했다.
라온도 손녀와 함께 왔다. 몸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었고, 의사는 사람이 많은 광장에 오래 서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짧게 말한 뒤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금 나를 라온이라고 불러 줘요. 전 그 이름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재는 그들을 대신해 동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침묵을 다룬 제3문에서 배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저었고, 누군가는 오늘은 정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모두 다른 답이었다.
서온의 독립망은 발언 내용을 한꺼번에 취합하지 않았다.
피엘은 시민들의 발언이 들어오는 통신을 들으며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수백 명의 목소리가 얽힌 통신이었지만 그중에는 작은 속삭임도 있었다.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이들을 따라 하기도 했다. 따라서 외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같은 뜻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었다.
피엘은 서온에게 세 가지를 따로 적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이름 변경을 거절한 사람, 이름 변경을 원하되 방법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 현재 의사를 밝히지 않은 사람. 서온은 네 번째 항목을 덧붙였다. 의사 표현을 돕기 위한 통역이나 수어, 글쓰기 지원을 요청한 사람이었다.
[제3문에서 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배운 거야.]
피엘은 기억했다. 손으로 분명히 거절한 목수 하루의 말이 ‘무응답’으로 처리됐었다. 같은 실수를 제6문에서 되풀이할 수 없었다. 토비는 수어를 아는 자원봉사자가 광장에 올 수 있도록 길을 정리했고, 세아는 글씨가 읽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자신의 말이 어떻게 적혔는지 직접 확인할 시간을 마련했다.
모든 확인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의 기록은 ‘현재 확인 중’으로 남았다. 피엘은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확인하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고 적는 것이 더 큰 실패였다.
그 사이 종탑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맨 앞에 선 사람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자 그 옆 사람이 잠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군가는 손길을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혼자 있고 싶어 했다. 그렇게 다른 선택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광장에 기계의 목소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대상자 의견을 수집합니다.”
“수집이 아니라 들어야 해.” 연재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은 황동 입까지 닿지 않았을지 몰랐다. 그러나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분명히 들었다. 공개 범위를 스스로 고르게 하고, 연락이 필요한 경우에만 별도의 동의를 받았다.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적인 과거를 드러내지 않았다. 반대자가 많다는 사실을 숫자로 제시하되, 누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주지 않는 방식이었다.
토비는 성검 위에 작은 종이판을 얹었다.
[현행 의사 확인. 이름 변경을 원하지 않는 사람의 말을 먼저 들으십시오.]
그가 종이판을 들어 올리자 황동 입이 잠시 말을 멈췄다. 모두가 용사가 거대한 주문을 쓴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칼날의 반사가 글자를 커다란 탑 화면에 비추었을 뿐이었다. 오스벨이 옆에서 반사 각도를 맞춰 주었다.
“큰 목소리는 큰 목소리로 이기는 게 아니군.” 토비가 말했다.
“늘 그렇지는 않지.” 벤이 대답했다. “상대가 듣지 않는다면 그다음은 다른 수단을 써야 해.”
지하의 피엘은 공개 증언을 하나의 승인 도장으로 바꾸지 않았다. 대신 집행 중지 요청 조건을 충족하는 현재의 수신자 진술이 실제로 들어왔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가르덴과 이다는 장부가 이를 삭제하지 못하게 외부 원본 대조 시각을 남겼다. 칼레오는 자신이 제시한 분리 도면을 다시 점검했다.
“시험에서는 검은 선이 살아 있었지만, 오늘의 장치는 지난밤보다 더 많이 개조됐습니다.” 칼레오가 말했다.
“그래서 실물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있지요.” 피엘이 답했다.
추가 연결 한 개가 발견됐다. 흰 선의 집행 결과가 실패하면 구조망까지 비정상으로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칼레오는 그 선을 본 적 없다고 했다. 피엘은 그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이다와 가르덴의 수기 설계본에는 선이 없었고, 최근 수리 기록에는 익명의 접근이 남아 있었다. 증거가 모인 뒤에야 누군가 나중에 연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피엘은 하린의 외부 보전 명령과 현장 관리인들의 동의 아래 분리 작업을 요청했다. 먼저 구조망의 현재 유효성을 시험했고, 진료소와 청사의 담당자에게 각각 확인을 받았다. 그다음 이름 조회망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호명식 명령만 임시 중단했다.
기계가 경고했다.
[호명식 정지 시 이름 충돌 사건이 증가할 수 있음.]
“충돌은 조사하면 됩니다.” 가르덴이 말했다. “사람을 지우지는 말고.”
그는 자기 이름으로 그 결정을 기록하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등록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 이 자리에 있는 호명관 직무 수행자라는 사실을 다른 담당자들이 확인하고, 그 책임을 자기 이름이 복원된 다음에도 지겠다는 뜻을 따로 남겼다.
흰 선이 흔들렸다. 황동 입이 마지막으로 수십 개 이름을 뒤섞어 발음했다. 광장 사람들이 귀를 막았다. 이어서 갑자기 조용해졌다.
종탑의 눈이 꺼지고, 맑은 물소리만 남았다.
[제6문 일괄 재명명: 잠정 중지.]
[긴급 구조망: 정상.]
[신원 조회망: 제한 운용.]
[말소된 이름의 과거 법적 효력: 개별 재검증 필요.]
토비가 먼지투성이 얼굴로 웃었다. “이번엔 정말 끝났어요?”
“일괄 집행은 멈췄습니다.” 피엘의 목소리가 지하에서 들렸다. “하지만 이름을 잃은 분들의 일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꽃집으로 돌아가던 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제도상 혼인 절차를 완료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재가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돌아왔네.”
하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숫자도 종소리도 아닌 연재 자신의 말로 남았다.
지하에서는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호명식이 중지되자 외부 일치성 센터가 제6문 운영 실패를 선언하고 모든 사건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기 시작했다.
[제6문 원본 보전 요청 반려.]
[차기 기관으로 일괄 이관 예정.]
[목적지: 제7문.]
피엘은 그 문장을 읽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괄 이름 말소를 멈춘 것은 분명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 싸움의 다음 무대는 이미 결정되고 있었다.
제9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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