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문에는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이번 아침에는 종탑이 이름을 대신 불러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직접 불렀다. 길에서 만난 이웃에게 평소의 별명을 쓸지 정식 이름을 쓸지 물어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소리가 모두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이름을 쓰고 싶은지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믿어 온 시간에 상처받은 사람도 있었다.
피엘은 정정과의 작업대 앞에 앉아 밤새 적은 보고서를 검토했다. 서류 위에는 불편한 문장이 여럿 남았다. ‘일괄 재명명 중지.’ ‘이름 소급 말소 처분의 적법성 조사 필요.’ ‘기존의 잘못된 의료·가족·노동 기록 개별 재검증.’ 그는 어느 문장에도 ‘완전 해결’이라는 표지를 붙이지 않았다.
이다는 안경을 벗어 닦았다. “이제 정정과가 해야 할 일이 엄청 많겠군.”
“혼자 모두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 말이 제일 듣고 싶었네.”
하린의 독립 조치서가 도착했다. 신원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긴급 의료와 구조 요청, 임시 거주 보호, 일상적인 노동 기록 보전이 이름 소실만을 이유로 중단되지 않도록 잠정 기준을 마련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모든 법적 문제를 즉시 해결하는 만능 문서가 아니었다. 또한 임시 보호를 거절하거나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안내도 함께 들어 있었다.
빵집 주인은 그 문서를 읽고 안도했다. 그는 계좌 정산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다시 오븐을 켤 수 있었다. 라온은 의사의 안내에 따라 집에서 쉬면서 이름 복원 신청을 준비했다. 도림은 빨랫줄에 남긴 종이들을 정정과 기록원들과 함께 하나씩 대조하기로 했다. 누구도 확인되지 않은 이름을 임의로 붙이지 않기로 했다.
연재와 하나는 작은 꽃집의 뒷마당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법적으로 부부라는 기록을 되찾는 일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그날 둘이 서로에게 했던 약속이 이 과정에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재는 빵 한 조각을 하나에게 건네며 웃었다.
“이름을 찾으면 신고하러 가자.”
“찾지 못하면?”
“그땐 다시 방법을 알아보자.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서.”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불확실성을 감추지 않는 대답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가르덴은 청사로 돌아왔다. 그의 이름은 임시 보전망에는 남아 있었지만 공식 장부에서 복원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일단 중앙호명관 업무에서 물러나 조사에 협조하기로 했다. 하린은 그가 업무 중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경고를 무시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잘한 일도 기록해 주시오.” 가르덴이 피엘에게 말했다.
“그렇겠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일도.”
“당연하지.”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외투가 낡아 보였다. 직함이 없으니 사람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선택의 무게를 이제서야 온전히 느끼는 듯했다.
칼레오는 일치성 계산관의 독립 조사를 요청했다. 그가 알고 있던 설계의 범위와 외부에서 덧붙인 규칙을 각각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다와 다른 기록원들은 그가 제공한 자료를 무조건 진실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료를 통째로 없애지도 않았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모르는 것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서온은 제8문에서 답장 한 통을 보내 왔다.
[네가 제출한 피엘의 직무 취소 처분 이의는 정식 접수되지 않았어. 대신 현장 증언과 지금의 행동 기록은 독립 보전됐어. 제7문으로 갈 때도 그 구분을 잊지 마.]
피엘은 답장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당신 이름으로 기록하겠습니다.]
토비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그런데 피엘 씨는 여전히 피엘 씨인 거죠?”
“제 직무명을 누가 언제 붙였는지는 더 조사해야 합니다.”
“제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라.”
토비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가 그렇게 부르면 괜찮냐고요.”
피엘은 잠시 웃었다. “네. 지금은 그렇게 불러 주십시오.”
벤은 팔짱을 꼈다. “이제 신탁 배달 사고가 아니라 이름 짓기 여행이 된 것 같은데?”
“악마 계약서에선 이름보다 서명이 더 중요하잖아요.” 세아가 말했다.
“틀렸어. 진짜 중요한 건 작은 글씨지.”
토비는 웃었다. 오스벨은 그 웃음이 새 이름을 승인한 것으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청사의 장부를 쳐다보았다. 아무 글자도 자동 생성되지 않았다.
피엘은 제6문 처리 상태를 수첩에 적었다.
[제0경로 미해결 오배송: 1,006건.]
[복원 완료: 6건.]
[제6문 일괄 재명명: 잠정 중지.]
[신원 소실 피해자의 보호 및 개별 기록 복원: 진행 중.]
[제6문 규칙 개조와 승인 출처: 조사 중.]
숫자는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다. 제6문에서 긴급한 피해를 막은 것이 곧 제0경로의 오배송 전체를 바로잡은 일은 아니었다. 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다른 문제가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를 이 길로 이끈 실수와 닮아 있었다.
그들은 아침을 먹고 제7문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 피엘은 도림을 다시 찾아갔다. 강물 위에는 어제 건져 올린 젖은 종이들이 다 마른 채 매달려 있었다. 도림은 종이들을 수기 장부에 옮겨 적고, 누구의 정보가 섞여 있는지 확인할 때까지 개별 이름이 드러난 부분을 천으로 가려 두었다.
“자네는 또 다른 문으로 가는가?”
“예. 아직 확인하지 못한 발송 경로가 있습니다.”
“끝까지 다 찾아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다만 이미 발견한 잘못을 덮어 두고 떠나지는 않겠습니다.”
도림은 웃었다. “옛날 같았으면 자네가 다 해 준다고 할 줄 알았을 거야. 그런 대답이 더 든든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제 난 내가 할 일을 남겨 두겠네.”
그는 낡은 배에 기름칠을 했다. 사람들이 서류를 찾아다니느라 강을 건너야 할 때 배가 필요할 수 있었다. 피엘은 그 일도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도림은 손사래를 쳤다.
“필요하면 적게. 다만 사람들이 나를 영웅이라 불러야만 배를 탈 수 있게 하진 말고.”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토비에게 잘못 배달된 신탁이 가르쳐 준 일과 닮아 있었다. 구원받아야 할 세상은 한 영웅의 신탁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강을 건너는 배 한 척, 잉크를 고쳐 쓰는 손 하나, 누군가를 다시 부르겠다고 선택한 목소리 하나가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도림은 길에 필요한 작은 물통을 선물했고, 이다는 이름이 지워져도 형태가 남는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모두가 만능 도구는 아니었다. 다만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선택했다.
라온의 손녀 모아가 피엘의 소매를 잡았다.
“아저씨는 이름 없는 사람이 무서웠어요?”
피엘은 솔직히 답했다.
“제 이름이 사라졌을 때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없는 사람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어요.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먼저 물어봐야지요.”
모아는 조금 고민하다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이제 숨을 잘 쉬어요. 고마워요.'
피엘은 그것을 접어 수첩 안에 넣었다. 그는 누군가의 신탁을 대신 써 준 적이 있었고, 누군가 대신 허락했다고 잘못 기록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가 지금 전하고 싶어서 적은 말만 받았다.
제7문 입구는 다른 문들과 달랐다. 현관도 계단도 없었다. 노을빛 하늘 아래에 커다란 저울이 떠 있을 뿐이었다. 저울의 한쪽에는 금빛 봉투가 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작은 신발과 장난감들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저울이 천천히 흔들렸다.
[제7문: 미래 채무 정산국.]
[신탁 이행 대가 및 미수 채권 관리.]
토비가 눈을 찌푸렸다. “미래에 받을 돈을 계산하는 곳인가요?”
“받을 돈이 있다는 건 누군가가 갚아야 한다는 뜻이지.” 벤이 말했다.
그가 한쪽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출생 예정일은 삼십 년 뒤였다. 대가는 ‘현재 제6문 이름 복원 비용’으로 기록돼 있었다.
[채무자: 미래의 수신인.]
[동의 상태: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이의 없음.]
[정산 예정일: 출생 즉시.]
세아가 숨을 삼켰다. “이름을 되찾게 해 주고 그 빚을 아이에게 넘기려는 거예요?”
피엘은 봉투를 다시 보았다. 네 개의 흰 원 아래 작은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미확인 발신인은 0000이 대신 승인함.]
토비는 성검을 바로 뽑지 않았다. 대신 봉투의 발신인란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엔 누가 돈을 받는지도 먼저 확인해야겠네요.”
피엘은 수첩의 새 장을 폈다. 천계가 사람을 구한다는 명분 아래 이름을 지우고, 이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그 값을 청구하려 했다. 누군가 첫 번째 빈칸을 채우려고 만든 임시 표지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는 아직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확인해야 할 질문 하나는 분명했다.
“누가 허락하지 않은 미래에 빚을 붙였습니까?”
저울의 반대편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제10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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