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98화
PAYLUA ORIGINAL · 제98화

98화. 이름 대신 손을 잡아 주세요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157자

오프라인 책장
종탑의 황동 입이 벌어졌다. 첫 번째로 불린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검증되지 않은 자’라는 문장이었다. 그것은 제6문의 모든 거리로 퍼졌다. 문패에서 글자가 지워지고, 병동 침대의 환자 이름표가 하얗게 변하고, 집배원의 가방에서 수신인이 사라졌다. 피엘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기록실에서 세아의 팔을 붙잡았다. 세아의 이름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녀가 휴대하던 리네의 질문 사본을 담은 봉투 표지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중앙 장부를 따라가면 저 종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겁니다.” 세아가 말했다. “원본을 보전할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서온의 제8문 독립망은 이름표를 대신해 모든 사람에게 번호를 붙이자는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번호를 평생 이름처럼 강제하면 제6문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대신 그날 실제로 발생한 일과 연락받을 방법을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임시로 묶었다. [기록이 연결되면 그 사람이 자기 정보를 열람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해. 지금 상황에선 특히.] “동의합니다.” 피엘이 답했다. 지상에서는 꽃집 주인 연재가 가게 문을 열어 두었다. 이름이 사라져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 그곳으로 모였다. 그녀는 이름을 먼저 묻지 않았다. 가게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몇몇은 자신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찾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같은 이름을 쓰던 이가 자기 집에 들어오는 일이 무서웠다. 모두가 불안했다. 하나는 작은 칠판을 밖에 놓았다. ‘이곳에서 사용할 임시 호칭을 원하시면 적어 주세요. 원하지 않으시면 적지 않아도 됩니다.’ 칠판에는 꽃 이름이나 숫자를 적는 사람이 있었고, 그냥 비워 두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 하나가 ‘노랑’이라고 적었다. 옆에 선 어른이 이상한 이름이라며 웃자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연재는 그 어른을 나무라기보다 아이에게 물었다. “노랑이라고 부르면 괜찮을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노란색 좋아하는 꽃이 있기 때문에 그 호칭을 골랐다고 했다. “그럼 오늘은 그렇게 부를게. 내일 다른 걸 고르고 싶으면 이야기해 줘.” 구석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가 호흡을 가쁘게 했다. 동행자는 중앙 병원의 환자 기록을 열 수 없어 어떤 약을 먹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세아는 즉시 진료소 의료진에게 연락했다. 임시 이름을 붙여 처방을 지어 주는 대신 현재 환자 상태를 진찰하고, 안전한 대체 확인 수단으로 치료를 이어 가도록 요청했다. 의사가 도착하기 전까지 토비는 남자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도림은 깨끗한 물을 가져왔다. 그것만으로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요한 도움을 받을 때까지 혼자 방치하지 않도록 곁에 있을 수는 있었다. 그날 꽃집 창고 한편에는 작고 안전한 휴식 공간이 만들어졌다. 오스벨이 남긴 마법의 온도계는 누가 이름을 댔는지와 무관하게 방의 온도를 알려 주었다. 빵집 주인은 손님 수를 대강 세어 식빵이 모자라지 않는지 확인했다. 숫자를 세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 숫자 안에 있는 사람을 지우는 게 문제였다. 하나는 난생처음 꽃집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앞에 섰다. 늘 연재가 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 자신은 뒤에서만 돕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 물을 가져올 사람도, 문 앞에서 길을 알려 줄 사람도 필요했다. “제가 이름표가 없다고 해서 손까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연재는 그 말을 듣고 작은 바구니를 건넸다. 그는 첫 번째 도움을 요청한 아이에게 빵을 건넸다. 아이는 노랑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하나는 그 말대로 불렀다. 몸이 아픈지, 물이 필요한지, 가족과 연락할 방법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억지로 들이지 않았다. 하나는 빵집에서 나눠 준 식빵을 바구니에 담아 왔다. 오전에 빵을 팔지 못하던 주인이 이제는 직접 만든 빵을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있었다. 그는 판매 내역이 아니라 지금 빵을 건넸다는 사실만 자신의 공책에 적었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아이를 찾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청사 앞에서 어머니와 분리되었던 아이였다. 보호자 관계가 다시 끊기면서 아이가 혼자 구역 안에 갇혔다. 토비는 달려가 장벽의 구조를 살폈다. 벽 안쪽에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온기를 유지하는 작은 회로가 있었고 바깥에는 ‘관계 정보 확인 전 접근 금지’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이 회로는 건드리면 안 되는 거죠?” 토비가 물었다. 오스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 기능을 멈추면 저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럼 사람 쪽으로 길을 내면 되겠네요.” 토비는 주머니에서 보리 한 줌을 꺼냈다. 빈틈없는 장벽에도 바닥의 배수 틈 하나는 남아 있었다. 그는 구멍에 씨앗을 넣고 세아에게 아주 작은 성장 주문을 부탁했다. 이 주문은 벽 전체를 깨뜨리는 대신 틈새의 금속 배수판을 살짝 들어 올릴 정도로만 작동했다. 세아가 눈을 크게 떴다. “보리로 문을 열겠다고요?” “평생 보리로 먹고살았는걸요.” 검을 뽑지 않은 용사가 좁은 구멍을 만들었다. 아이는 바로 달려 나오지 않았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토비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자신이 누구인지 말했고, 아이가 건너올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밖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계속 불렀다. 이름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아도 목소리는 아이에게 닿았다. 아이가 한 걸음을 떼었다. 토비가 손을 내밀자 아이는 조금씩 다가와 붙잡았다. 마지막 순간 성장한 보리 줄기가 장벽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다. 토비의 소매가 찢어졌지만 아이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엄마!”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오스벨은 구조 이후 회로가 정상 상태인지 확인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린에게 긴급 조치 기록을 보냈다. 이것으로 모든 친권 관계가 복원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지금 안전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지하에서는 피엘과 가르덴, 이다가 중앙 장부의 안전 구조를 살폈다. 칼레오는 계산관 내부에 세 개의 선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구조 연락용 검은 선, 기존 신원 조회용 파란 선, 재명명 호명식용 흰 선. 처음에는 분리되어 있었으나 오랫동안 개조되면서 한꺼번에 연결되었다. “제2문의 미래 신탁 회로와 닮았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때는 철사를 자르면 됐는데.” 오스벨이 중얼거렸다. “여긴 자르면 안 되는 정보가 더 많습니다.” 가르덴이 말했다. 그들은 무턱대고 선을 끊지 않고 실제 동작을 시험했다. 이다는 정정과의 외부 수기대장을 동기화하지 않고 비교만 할 수 있게 별도 기록대를 연결했다. 가르덴은 자신이 남긴 마지막 유효 권한과 현재의 이의 신청을 두 서기에게 직접 확인받았다. 칼레오는 자신이 과거에 만들었던 분리 도면을 제공했다. 그도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는 증인은 아니었지만 도면을 검증할 기술적 근거가 있었다. 첫 번째 시험은 실패했다. 흰 선을 분리하자 파란 선이 함께 꺼졌다. 지상의 약국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피엘은 즉시 복구를 요청했다. 아무도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검은 선만 유지되었다. 응급 구조 요청은 들어왔지만 일반적인 신원 조회는 불가능했다. 환자의 치료를 지연시키지 않기 위해 임시 의료 연락망을 먼저 열었다. 세 번째 시험에서 흰 선의 원인이 드러났다. 중앙 장부가 이름을 지운 사람을 ‘이미 보호가 종료된 사람’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긴급 구조의 종료와 신원 말소가 하나의 버튼으로 묶인 것이었다. “보호를 끝내는 기록과 사람을 없애는 기록을 분리해야 합니다.” 피엘이 말했다. 작업을 계속하려는 순간 지상에서 통신이 끊겼다. 서온의 연결망도 흔들렸다. 도시 전체에 첫 번째 실제 호명식이 시작되었다. [현재 확인되지 않는 이름 전부 말소.] 피엘은 계산관의 원본을 살폈다. 모든 이름을 단번에 되돌릴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잘못된 명령이 앞으로 계속 발송되는 것을 막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가 찾은 것은 영구 취소 단추가 아니라 ‘집행 중지 요청’ 칸이었다. 그 옆에 다른 글씨가 있었다. [중지 요청 유효 조건: 하나 이상의 현재 수신자 증언.] 피엘은 토비에게 통신했다. “이름을 잃은 주민들이 지금 원하지 않는 것을 직접 말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말하지 않을 권리도 같이 알려 주시고요.” 광장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어느 이름을 외칠지는 그들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98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9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