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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97화
PAYLUA ORIGINAL · 제97화

97화. 하얀 원 네 개의 주인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986자

오프라인 책장
제6문의 밤은 평소보다 일찍 왔다. 해가 실제로 지지 않았는데도 종탑의 시계가 기한을 앞당긴 탓이었다. 거리의 가로등이 켜지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이름이 사라진 이들의 집은 스스로 문을 잠가 버렸다. 누군가 가족이라서 열어 주던 문도 관계 정보가 불일치한다며 삐걱거렸다. 가르덴은 피엘 일행에게 제6문의 중앙 하부 기록실을 열어 주었다. 중앙호명관 신분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지만 그가 현장에서 직접 관리했던 기계식 열쇠는 남아 있었다. 그것만으로 모든 문을 열 수는 없었다. 정정과의 이다가 수기 열쇠 대장을 가져와 대조했고, 청사 경비 둘이 현재 작업 목적을 확인한 뒤 함께 내려갔다. “나도 일의 전부를 모르고 있었소.” 가르덴이 말했다. “모른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알고 있소. 그래서 확인하러 온 거요.” 지하 계단을 내려갈수록 잉크 냄새가 짙어졌다. 천장에는 가느다란 유리관이 달려 있었는데, 그 안으로 흰 물방울이 움직였다.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벽의 이름표가 깨끗해졌다. 청사 위에서 일어나는 이름 소실은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름을 지우는 건 주문이 아니었군.” 오스벨이 말했다. “잉크가 글자를 밀어내는 방식이라니.” “마계에서는 저런 기술을 ‘후회 없는 수정’이라고 광고한 적이 있어.” 벤이 말을 받았다. “사용자들은 후회를 못 했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이 없으니까.” 기록실 끝에는 거대한 계산관이 서 있었다. 양쪽 벽에 천계의 인명 장부와 지상의 출생 기록, 마계의 계약 기록이 서로 다른 색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든 줄이 만나는 중앙에는 하얀 원 네 개가 천천히 회전했다. 그 아래 작은 좌석에 계산관 칼레오가 앉아 있었다. 칼레오는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회색 얼굴의 중앙에는 먼지가 앉았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한쪽 눈동자의 무늬가 바뀌었다. “오셨군요.”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확률을 계산했습니다. 당신은 미확인 사항을 확인하려는 행동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반복한 이유는 매번 미확인 사항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칼레오는 미소 지었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을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전쟁과 홍수, 신탁 오배송으로 이름이 서로 다른 장부에 쪼개진 뒤, 하나의 인물을 하나의 기록으로 연결하려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자 자동 대리 0000에게 판단을 맡겼다. “세계는 불일치를 견디지 못합니다.” 칼레오가 말했다. “같은 사람이 둘로 기록되고, 다른 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하나의 기준이 없으면 구조 신청도 재산도 가족 관계도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없애기로 했습니까?” 세아가 물었다. “없앤 것이 아닙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표시했을 뿐입니다.” “그 표시 때문에 실제 환자가 약을 못 받았어요.” 토비가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 집 문이 잠겼어요.” 칼레오는 잠시 멈칫했다. 오스벨은 계산관 한쪽에 걸려 있던 작은 장난감을 발견했다. 낡은 나무 새였다. 제6문의 차가운 지하 시설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새의 날개 한쪽이 부러진 채 실로 묶여 있었다. “이건 누가 두었습니까?” 오스벨이 물었다. 칼레오는 잠시 손을 멈췄다. “첫 번째 실종자 추적 기록을 맡았던 사람이 남겼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릅니다. 제 계산망에선 오래전에 확인되지 않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칼레오는 처음 제6문 계산관을 시험하던 날을 이야기했다. 지상의 마을에서 아이 하나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낯선 여행객의 이름과 아이의 이름을 혼동했고, 구조 요청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도시의 사람에게 발송됐다. 계산관은 흩어진 기록을 묶어 실종된 아이가 어느 길로 갔는지 알아냈다.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때 사람들은 새를 만들어 축하했다.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자체가 잘못인 건 아니지요.” 세아가 말했다. “그런데 실종자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름이 겹치고 시각이 안 맞는 사건이 쌓였죠. 센터는 불일치한 기록을 줄이면 정확도가 올라갈 거라고 했습니다.” “정확도라는 건 무슨 기준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칼레오는 장치를 가리켰다. “서로 다른 기록이 같은 결론을 내리는 비율입니다.” “그럼 다른 결론을 삭제하면 정확도가 올라갑니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벤이 나무 새를 집어 들었다. “네가 찾는 건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 있는지였을 텐데. 어느 순간 장부가 깔끔한지로 바뀌었구나.” 칼레오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는지, 나중에 어디서 의심을 접었는지는 모두 조사해야 할 일이었다. 오스벨은 새의 날개를 고쳐 주려다 손을 멈췄다. 당사자가 맡긴 물건이 아니었다. “이건 고쳐도 되겠나?” 칼레오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라면… 아니, 그건 제가 알 수 없군요. 제 소유로 보관하고 있었으니 날개만 고쳐 주십시오.” 오스벨은 실을 새로 감았다. 나무 새가 움직이는 작은 소리가 기록실에 울렸다. 계산관의 기계음과 다른 소리였다. 피엘은 칼레오가 그제야 장치의 결과가 아닌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협조한다는 이유로 이미 발생한 이름 말소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계산대 위의 숫자를 훑었다. 그에게는 그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은 피해를 없애지 않았다. 피엘은 도림의 홍수 기록과 이다의 수기 대장을 꺼내 보였다. “여기에 실재했던 일들의 서로 독립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 장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기록들을 모두 무효로 만들었지요.” 칼레오는 계산관의 표면을 바라봤다. “독립 기록의 신뢰도를 검증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신뢰도를 검증하는 동안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칼레오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기계의 끝을 본 듯했다.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저도 그 규칙의 모든 부분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공중에 오래된 설계 기록을 펼쳤다. 첫 번째 판본에는 이름이 다른 경우 임시로 연결해 당사자의 진술을 요청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두 번째 판본에는 중앙 장부를 우선한다고 적혔다. 세 번째 판본에는 불일치한 이름을 무명 대상으로 바꾼다고 적혔다. 마지막 판본에는 불복 신청의 자격까지 소급해 없앤다는 규칙이 덧붙었다. “누가 마지막 규칙을 승인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칼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계산 기록에는 승인 표지 0000만 남았습니다.” “그 표지는 사람의 승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승인으로 사용됐습니다.” “오래 사용했다고 원래 의미가 바뀌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칼레오는 계산관을 끄겠다고 했다. 그러나 조작판에 손을 대자 장치가 먼저 그의 현재 권한을 박탈했다. [칼레오: 관리자 식별 불명.] [운영 지속을 위해 자동 권한 승계.] [승계자: 0000.] 칼레오의 표정이 무너졌다. 자신이 제어한다고 믿었던 장치가 가장 먼저 자신을 제외한 것이다. 벤이 천천히 네 개의 흰 원을 보았다. “이 표지는 누군가가 아니라, 누군가가 없을 때마다 자기 자리를 넓혀 온 거야.” 그 순간 중앙 벽에서 새 공문이 열렸다. [제6문 이름 정합화: 최종 단계.] [현행 이름 중 재검증 미완료: 전부 소급 말소.] [실행 개시까지 남은 시각: 한 번의 종소리.] 칼레오는 손끝으로 계산관의 가장 두꺼운 선 하나를 가리켰다. “그 선을 끊으면 호명식은 멈출 겁니다.” 오스벨이 조사했다. 선 끝은 의료망과 구조 요청망에도 연결돼 있었다. 함부로 끊으면 이름을 지우는 것은 멈출지 몰라도 목숨을 살리는 긴급 연락까지 끊길 수 있었다. “간단히 끊을 수 없는 선이군요.” 피엘이 말했다. “그렇소.” 칼레오가 답했다. “우리가 그렇게 설계했으니까.” 마지막 예고종이 울렸다. 천장에 매달린 흰 물방울들이 폭우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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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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