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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94화
PAYLUA ORIGINAL · 제94화

94화. 호명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823자

오프라인 책장
제6문의 중앙 청사는 백색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궁전 같았지만 가까이 가면 이름을 새긴 판이 한 장씩 덧대어진 건물이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붙고, 개명한 사람의 옛 이름은 정정과로 내려가고, 사망자의 이름은 보관실에 옮겨졌다. 사람의 생을 종이보다 오래 간직하려던 시절의 건축법이었다. 지금은 판들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는 매끈한 돌로 바뀌었다. “원래는 멋진 곳이었겠죠.” 토비가 말했다. “지금도 예쁘네.” 벤은 덧붙였다.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다는 것만 빼면.” 피엘 일행 앞에 제6문 중앙호명관 가르덴이 나타났다. 길고 흰 외투를 입은 그는 말할 때마다 목깃의 은방울이 아주 약하게 울렸다. 곁에는 무거운 장부를 든 두 명의 서기가 있었다. “외부인이 주민 등록을 방해한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주민 등록을 막으려는 게 아닙니다.” 피엘이 답했다. “본인이 신청하지 않은 이름 삭제와 대리 서명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가르덴은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신탁 오류 이후 이름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한 사람이 서류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요. 그래서 호명식은 필요합니다.” 그 말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가르덴은 실제 사례를 펼쳤다. 전쟁 중 두 곳에서 등록되어 친척이 사망 신고를 취소하지 못했던 사람, 이름이 잘못 번역되어 출산 기록과 양육 기록이 끊긴 아이. 제6문의 통합 장부가 없었다면 그들은 더 오래 고통을 겪었을 수 있었다. 그때 가르덴은 청사 안쪽에서 대기하던 젊은 여성 하나를 불렀다. 여성은 이곳 장부 덕분에 오래전에 헤어진 형제를 찾았다고 했다. 가르덴은 그녀에게 자신이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 직접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제 이름이 세 장부에 다르게 적혀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일곱 살 때 피난을 가면서 등록이 바뀌었고, 성인이 된 뒤 한 번 더 바뀌었죠. 통합 조회가 없었으면 형이 절 못 찾았을 겁니다.” 피엘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르덴이 자신에게 유리한 사례를 제시했다고 해서 실제 도움받은 사람의 경험을 부정할 이유는 없었다. “찾으신 뒤 이름은 어떻게 정했습니까?” “제가 고른 이름으로요. 옛 이름은 기록에 남겨 두고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나요?” 여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최근 발급받은 통합 증명서를 꺼냈다. 옛 이름의 이력은 사라져 있었고, 자신이 처음에 쓰던 이름도 몇 글자 달라져 있었다. “지난달까진 제가 선택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주에는 이제 정리가 끝났으니 새 이름을 쓰라고 하더군요.” 가르덴은 곤혹스러워했다. 그가 만든 체계의 성공 사례가 이제는 같은 체계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토비는 청사 뒤편에 놓인 긴 의자들을 바라봤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이 두 개라 곤란한 사람도 있었고, 이름이 하나도 남지 않아 곤란한 사람도 있었다. “왜 다 똑같이 정리하려고 하나요?” “같은 규칙이 공평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가르덴이 답했다. “모두에게 같은 크기 신발을 나눠 주면 공평할까요?” 토비가 물었다. “비유가 정확한 것 같진 않군.” “저는 농부라 신발이 불편하면 바로 물집이 생겨요. 그래서 묻는 거예요.” 가르덴은 더 반박하지 못했다. 여성이 자기 증명서를 접으며 말했다. “저를 찾게 해 준 장치는 필요해요. 하지만 제가 누구인지 마지막 결정을 장치가 내리는 건 싫어요.” 피엘은 그녀의 요청에 따라 증명서의 공개 가능한 부분만 적었다. 형의 현재 주소 같은 사적인 내용은 조사 기록에서 제외했다. 가르덴은 그 과정을 눈여겨보았다. 장부를 신뢰한다는 것과 장부에 모든 것을 넣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었다. “정리하려는 목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피엘은 말했다. “그런데 이름을 다시 부르려면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합니까?” “관계 기관의 기록을 대조해야죠.” “당사자의 현재 의사는요?” 가르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모두에게 일일이 묻는 동안 실제 필요한 조치가 늦어집니다.” “그렇다면 긴급한 치료와 영구적인 이름 변경을 따로 처리해야겠지요.” 가르덴은 큰 장부를 열었다. 수백 개의 이름이 별무늬 아래 깜빡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라온과 도림이 구조한 아이들의 이름도 있었다. 가르덴은 삭제 예정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최근 5년 안에 공적 주소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기존 이름을 잠정 무효로 하고 식별 번호를 부여하려는 것입니다.” “잠정이라면 되돌릴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세아가 말했다.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신청하면 되죠.” “본인 이름이 없어 신청을 못 하잖아요.” 토비가 끼어들었다. 가르덴은 토비의 어깨에 걸린 성검을 보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기사나 위협 앞에서 물러서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류로 답했다. [무명 대상자의 직접 신청은 수리하지 않음.] [대리인의 신청은 대상자의 원래 이름에 따른 위임장이 필요.] 벤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마계에서 팔아도 사기 계약이라 환불해 줘야 하는 수준인데?” “악마가 법률을 논하지는 마시오.” 가르덴이 말했다. “그럼 누가 논하죠? 존재를 삭제당한 사람은 논할 자격도 없다면서.” 청사 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곧 광장에 모인 주민들의 목걸이가 빛났다. 제6문이 이름표를 발급할 때 함께 주던 금속 조각이었다. 이름표가 없어진 사람들은 손목 위에 하얀 사각형이 나타났다. 가르덴은 당황하지 않았다. “호명식 예행 검사입니다. 이름이 중복되는 경우 자동으로 분류합니다.” 피엘이 한 명을 가리켰다. “저분은 중복 이름이 아니라 현재 신분이 지워진 사람입니다. 복원 신청은 할 수 있습니까?” “분류가 끝나면.” 그때 창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광장 중앙에서 아이 하나가 갑자기 어머니의 손을 놓쳤다. 어머니는 아이를 안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내려온 얇은 벽이 두 사람을 갈랐다. [관계 정보 불일치.] [보호자 자격 없음.] 토비는 창문으로 뛰어갔다. “무슨 짓이에요!” 가르덴의 얼굴이 그제야 굳었다. 그는 즉시 현장 보호를 명령했지만 방어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호명관 명령 보류.] [이전 동의 기록과 충돌.] 피엘은 그 문구를 보고 제5문의 원장 아르델을 떠올렸다. 자기 명령이 자신의 과거 동의에 가로막혔던 순간이었다. 자동 대리 시스템이 또다시 현행 책임자의 판단을 지워 버리고 있었다. “가르덴 님, 지금 저 아이와 어머니를 분리해 두겠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아니오! 하지만 식별 충돌을 해결해야…” “그 두 문장은 같이 남겨야 합니다. 현재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과 식별 문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요.” 가르덴은 처음으로 손을 떨며 자신의 이름과 시각을 기록했다. 오스벨과 세아는 두 사람 사이에 선 부드러운 빛의 장벽을 안정시켰고, 하린에게 긴급 가족 보호 권한을 요청했다. 청사 밖의 현장 치료사들이 보호자 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아이의 안전을 확보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서류가 정리되는 동안 피엘은 가르덴에게 조용히 물었다. “호명식을 오늘 꼭 끝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앙에서 정해 준 기한이니까.” “누가 정했습니까?” 가르덴은 대답 대신 자신의 장부 맨 뒤를 펼쳤다. 백색 잉크로 새긴 회람장에는 발신인 네 글자만 있었다. [일치성 센터.] 같은 이름이 도림의 빨랫줄에서 건진 문서에도 적혀 있었다. 피엘은 봉투의 네 개 흰 원을 가르덴에게 보여 주었다. 호명관의 눈이 흔들렸다. “그 표지는… 제6문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때 종탑이 두 번째 예고종을 울렸다. 가르덴의 장부에서는 그의 이름마저 한 글자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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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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