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문의 빵집에서는 아침마다 같은 순서로 이름을 불렀다.
주인은 둥근 식빵을 굽고, 계산대에 대기 번호를 적고, 마지막으로 손님 이름을 소리 내어 확인했다. 이름이 다른 사람의 주문과 바뀌는 일을 막기 위한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오븐에서 빵을 꺼내던 주인의 손이 중간에 멈췄다.
“열두 번째 손님이 분명 있었는데.”
진열대에는 갓 구운 밤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깥 벤치엔 그 빵을 기다리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주인은 노인을 알아보면서도 계산대 기록에서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 주문을 찾지 못한 계산대가 빵을 팔 수 없다고 경고하자 그는 진열대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돈은 이미 냈는데 말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피엘은 노인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 주인의 기억도 따로 적었다. 서로 맞는 말이라도 하나를 다른 하나의 증거인 양 취급하지 않으려 했다. 벤은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밤빵 하나 먹는 데 감찰관이 셋 필요한 도시라니.”
“전 감찰관이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래. 지금 네 직함도 없지.”
서온에게서 짧은 연락이 왔다. 제6문 중앙 장부가 피엘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였으므로 천계 공문을 통한 지원을 요청하면 모든 기록에 자동 반려가 붙는다는 내용이었다. 하린은 사라진 신분을 임시로 되살리는 서류를 만들기보다, 실제로 아직 유효한 제5문의 독립 증거 보전 권한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공식 복원은 원본 확인 뒤에. 현재 현장 증거는 별도 경로로 보전해.]
“알겠습니다.” 피엘은 답했다.
주인은 아직 빵을 들고 있었다. 토비가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제가 새로 살게요. 그다음에 할아버지께 선물하면 되잖아요.”
“괜찮은 생각이군.” 벤이 말했다. “다만 아까 계산한 돈은 어떻게 되지?”
“그것도 돌려받아야죠.”
가게 주인은 빵을 종이봉투에 넣어 노인에게 건넸다. 빵을 선물한 것은 주인의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이전 결제 내역은 환불 절차를 밟되 원본을 보존하기로 했다. 노인은 뜨거운 밤빵을 두 손으로 쥐고 조용히 웃었다.
“내 이름이 없어도 배는 고프더군.”
그가 떠나자 계산대 화면에 새 문구가 나타났다.
[무명 고객 거래 포착.]
[비승인 접촉 행위.]
[영업 정지 예고.]
빵집 주인은 어깨를 굳혔다. 그가 조금 전 베푼 호의가 모든 직원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었다. 피엘은 신고 접수 시각과 정확한 처분 내용을 보전하고, 사업자가 다툴 수 있는 절차부터 물었다. 답변은 기계적이었다.
[처분 불복에는 사업자의 성명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름이 있습니다!” 주인이 말했다.
기계는 한동안 응답하지 않더니 그의 이름 석 자 가운데 가운데 글자만 지웠다. 종탑 방향에서 얇은 흰 연기가 흘러왔다.
“번지는군.” 오스벨이 처음으로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들은 장부를 관리하는 제6문 청사를 찾았다. 청사 입구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무료로 조회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검은 돌기둥에 손을 대면 도시의 모든 등록 기록이 한꺼번에 보여야 했다. 토비가 먼저 손을 댔다.
[토비.]
[직업: 농부. 임시 신탁 수신인.]
[가족 관계: 일부 비공개.]
토비는 동생의 정보가 비공개인 것을 보고 안도했다. 다만 자기 직업에 ‘임시’라는 말을 굳이 붙인 데에는 불만이 있었다.
“농사 짓는 건 임시가 아니거든요.”
벤이 손을 대자 기둥이 잠시 검게 변했다.
[벤.]
[마계 계약 기록과 천계 인명 장부의 권한 충돌.]
“악마도 이런 데선 차별받는구나.” 토비가 말했다.
“차별보다 낫지. 서로 못 믿으니까 쉽게 합치질 못하거든.”
피엘이 손을 뻗자 돌기둥 전체가 어두워졌다.
[피엘: 이름 조회 불가.]
[해당 이름으로 제출된 이의 신청은 무효.]
[해당 이름으로 확인한 모든 증인의 진술은 재평가 대상.]
토비가 분노해 기둥을 내려치려는 순간 돌기둥 아래에 숨어 있던 작은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연필을 쥔 노파가 나왔다. 옷깃에는 ‘정정과’라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돌은 때리지 마시게. 고장 나면 사람들을 더 못 찾으니까.”
노파는 스스로를 정정과 기록원 이다라고 소개했다. 등록 장부가 바뀌기 전 이름을 종이로 베껴 두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정정과의 방은 비좁았지만 천장까지 쌓인 수기 대장에서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다.
“여긴 왜 남겨 뒀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이름을 잘못 적으면 고쳐야 하잖아. 고치려면 이전에 뭐라고 적었는지 남아 있어야지.”
이다는 라온의 이름을 검색했다.
이다는 기록원들이 쓰던 오래된 의자를 하나 내주었다. 의자는 앉을 때마다 짧게 삐걱거렸고, 책상 한쪽에는 잉크 묻은 헝겊들이 놓여 있었다. 창문 너머로 제6문의 깔끔한 청사가 보였다. 하지만 정정과 내부는 오히려 작은 동네 공부방에 가까웠다.
벽에는 ‘오기를 발견하면 먼저 원본을 확인한다’는 표어가 매달렸다. 아래에는 훨씬 작은 글씨로 누군가 낙서를 해 두었다. ‘그리고 사람을 혼내지 않는다.’
“그 표어는 누가 적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전임 기록원이네. 남의 이름에 오타를 내 놓고, 그 사람이 왜 틀리게 태어났냐고 화를 내던 시절이 있었지. 얼마나 우스운가.”
이다는 한때 자신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고 고백했다. 외지에서 온 상인의 이름을 들리는 대로 적었는데, 몇 년 뒤 상인이 제대로 고쳐 달라고 찾아왔다. 이다는 자신의 필기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등록한 대로 쓰라’고 했었다.
“그 양반이 ‘제 어머니가 지어 준 이름은 서류보다 오래됐습니다’라고 하더군. 그 말이 십 년을 따라다녔어.”
그때부터 이다는 잘못된 이름을 고친 사유도 함께 남겼다. 한 번 고쳐진 기록은 깨끗한 새 서류로 대체되지만, 왜 고쳤는지는 빠뜨리지 않았다.
벤은 의자에 앉았다가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놓인 잉크병을 밟은 탓이었다. 그가 발을 들자 구두 밑창에 커다란 파란 발자국이 찍혔다.
“악마의 발자국이라니, 정정과는 기념품도 주는군.”
“발자국까지 사본 신청하겠나?” 이다가 태연하게 물었다.
토비는 웃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방 구석에는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이 서류를 부탁하며 남겨 둔 손편지가 쌓여 있었다. 서류가 완성되었다는 회신을 받을 주소도, 받는 사람의 이름도 없어 돌아가지 못한 편지였다.
“저 편지들은 다 어떻게 보내죠?”
“아직 모른다네.” 이다는 대답했다. “그래서 못 보냈다고 적고 보관하고 있지. 보냈다고 도장을 찍는 것보다 그게 낫잖아.”
피엘은 정정과의 기록이 제6문 전체에서 가장 확실한 것처럼 느껴졌다. 확실하다고 해서 내용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숨기지 않았다. 낡은 종이 세 장이 나왔다. 진료 기록, 세금 납부 내역, 이십 년 전 딸의 학교 입학 서류였다. 이다의 손가락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최근 정정: 본인 신청에 따른 말소.]
[신청서 원본: 없음.]
[대리 승인 표지: 0000.]
“본인이 신청했다는 서류도 없고, 서명도 없군요.” 피엘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고치려 했지.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정정 버튼이 막혔다네.”
이다는 문서 아래쪽의 작은 각주를 읽어 주었다.
[제6문 중앙 호명식 종료 전까지 정정 접수 금지.]
“호명식?” 세아가 물었다.
노파는 창밖 종탑을 가리켰다. 그 꼭대기에는 세상의 이름을 읽는 거대한 황동 입이 매달려 있었다.
“오늘 해 질 때 한 번에 새 이름을 불러 준대. 그때 부른 이름이 앞으로 진짜 이름이 된다더구나.”
“원하지 않는 사람도요?”
“그걸 물어볼 수 있는 사람부터 이름이 사라지고 있지.”
피엘은 종이 대장을 봉인하지 않았다. 아직 이다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필요한 항목을 설명하고 독립 보전용 사본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이다는 라온의 개인정보를 가린 신청 이력 부분만 떼어 주었다.
밖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여러 번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광장의 확성기는 그 소리를 다른 이름으로 받아 적었다.
그날 처음으로 피엘은 제6문에서 무엇이 가장 두려운 일인지 알았다. 이름을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지운 뒤에 전혀 다른 이름을 ‘당신이 고른 이름’이라고 읽어 주는 일이었다.
제9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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