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자 제5문의 하늘에는 평범한 구름이 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물마다 남의 기억이 걸려 있었다. 이제 시민들은 시장으로 나가 물건을 사고, 병동에서 진료를 받고, 찻집에서 날씨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젯밤의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했고, 다른 이들은 한참 뒤에야 자신이 누군가의 과거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수린은 거리 한가운데에 작은 임시 접수대를 설치했다. 표지에는 ‘기억 오류 신고’라는 글자 대신 ‘이상하게 느껴진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사람도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피엘 일행은 제5문 원본실에서 최종 임시 조치서를 확인했다. 공통 기억 발송은 중지됐고, 자발적 기억 보관과 긴급 상담은 계속 운영되었다. 원본과 회상 진술, 편집 이력은 다시 별도 장부로 표시됐다. 다만 이미 바뀐 외부 통계와 이를 인용한 법적 판정은 각각의 담당 기관이 다시 조사해야 했다.
“제5문에서 다 해결됐다고 쓰면 편하겠지만…” 에른이 종이를 접었다.
“그러면 다른 기관에 남은 일이 없어져 버리겠죠.” 피엘이 말했다.
“맞아요. 이번에는 할 일이 남았다고 쓰고 싶어요.”
보관소 앞에는 은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은빛 열쇠를 목에 걸고, 평소보다 밝은 색의 옷을 입었다. 그녀는 다리 붕괴 사건에 관한 외부 기록의 재검증 신청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러 왔다. 자기 봉인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기억을 꺼내지 않아도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좋았어요.” 은재가 말했다.
“모든 진실을 즉시 찾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엘이 답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억을 강제로 열게 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은재는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나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정원의 관리 소년 유온도 찾아왔다. 그는 자기 이름으로 매달렸던 열매의 관리 이력이 동결됐다고 했다. 누가 열매를 만들었는지 조사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삭제 여부를 자신이 결정할 기회도 마련되었다. 여전히 과거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유온은 불안해하기보다 나무를 가꿀 새 도구를 살피고 있었다.
토비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럼 사과 나무에 진짜 사과도 열릴까요?”
“아직까진 종이밖에 없어요.” 유온이 말했다.
“보리도 심어 봐요. 제가 씨앗 좀 드릴게요.”
벤이 말을 보탰다. “네가 천계 어디든 보리를 심는 바람에 나중에는 제9문에서도 농부를 찾겠다.”
“그럼 취업 걱정이 없겠네요.”
작은 웃음이 흘렀다. 이제는 그 웃음이 공식 동의나 행복 판정으로 자동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웃었다는 사실만 남았다.
세아는 공연관에서 받아 온 수정 전 노랫말과 리네가 남긴 질문 사본을 다시 확인했다. 리네의 현재 의사는 여전히 불명확했고, 어디에 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해진 길을 원했다’는 답변이 대리 생성되었다는 증거는 보전됐다. 하린은 새로 접수된 조사 번호를 알려 주었다.
“엄마가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어요.” 세아가 말했다.
오스벨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답을 기다려야지. 네가 기다리기로 했다면 말이야.”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것이 무조건 옳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편 아르델은 원장직에서 일시 배제되어 조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병동 직원들은 그가 처음 마련했던 안전한 기억 보관소가 없었다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동시에 일부 직원은 그가 회복률 통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동안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를 무시했다고 진술했다. 두 종류의 말은 서로 지울 수 없었다.
“좋은 일을 한 적이 있다고 잘못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잘못했다고 도움이 되었던 일까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군요.” 토비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피엘은 한동안 수첩을 내려다봤다. “오배송 기록을 볼 때도 똑같이 적용해야겠습니다.”
하린은 잠정 조치의 취지를 설명하는 공개 문서를 함께 보내 왔다. 그 문서에는 수치가 많지 않았다. 어떤 장치가 정지됐고, 어떤 상담은 여전히 가능하며, 피해자가 어디에 이의를 남길 수 있는지가 먼저 적혀 있었다.
수린은 그 문서를 읽고 감탄했다. “예전 같으면 회복률이 몇 퍼센트 상승했는지부터 적었을 겁니다.”
“그런 지표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다만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 측정한 건지가 먼저 있어야겠죠.”
그들은 새로운 통계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특히 강제 송출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안정되었다고 적을 근거는 아직 없었다. 의사를 묻고 기록을 보존하며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원장 조사가 끝났다는 소식도 없었다.
에른은 손님들에게 자신이 매일 기록할 짧은 질문을 정했다. ‘오늘 어떤 것을 그대로 두고 싶습니까?’ 그 질문에 누구는 기억을 돌려받겠다고 답할 것이고, 누구는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정답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다.
토비는 자신의 답을 적었다. ‘오늘은 동생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벤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오늘 저녁을 그대로 두고 싶다. 아무도 내 접시에 손대지 못하게.”
“그건 제가 먹을 것도 없다는 뜻인가요?” 토비가 물었다.
“농부야. 너는 언제나 두 접시를 먹잖아.”
오스벨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오래된 마법사가 입구에서 유리 거울을 무서워하던 일행과 달리, 지금의 일행은 말없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재촉하지 않고 있었다. 그 작은 차이가 길고 복잡한 조사의 가장 큰 성과일지도 몰랐다.
피엘은 제5문 처리 현황을 입력했다.
[제0경로 미해결 오배송: 1,006건.]
[복원 완료: 6건.]
[제5문 기억 조화 강제 송출: 잠정 중지.]
[관련 외부 기록 및 피해 회복: 후속 조사 진행.]
숫자는 또 그대로였다. 제5문의 임시 조치는 과거의 오배송 1,006건이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었다. 피엘은 일부러 항목을 나누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처음 우편국에서 하던 잘못을 반복할 것이다.
오후가 되어 서온에게서 통신이 왔다. 그는 제8문으로 들어온 새 편지들 가운데 루나가 보내온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토비에게 전달해도 되는 내용인지 루나에게 먼저 물었고, 허락받은 짧은 문장만 전해 주었다.
[오빠, 나 지금 잘 있어. 내가 사라졌던 날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때 내가 먼저 말할게. 오빠가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렸다는 건 고마워. 하지만 내가 돌아온 건 누구의 죄를 인정하게 하려고가 아니야.]
토비는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그날의 모든 진실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동생이 오늘 자기 뜻으로 보낸 말은 분명했다.
“저도 답장 써도 되죠?”
“물론이지.” 벤이 말했다.
토비는 종이에 짧게 적었다. ‘잘 지내. 나도 잘 있어. 다음에 만나면 닭 이름 좀 같이 정하자.’
“동생이 싫어하겠는데?” 벤이 말했다.
“그러면 다른 이름 고르면 되잖아요.”
피엘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첩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오래된 직무 기록에서 보았던 문장을 다시 써 두었다.
‘임시란, 다시 물어보기 전까지만이라는 뜻이다.’
그때 서온이 다른 통신을 보냈다. 제6문에서 접수된 새로운 사건이었다. 기억 조화 행사 직후,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문서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의료 기록에는 존재하지만 주민 장부에는 없었고, 어떤 사람은 가족의 기억에는 남아 있지만 신탁 수신자로 등록되지 않았다.
[제6문 긴급 협조 요청.]
[사건명: 이름 없는 수신인.]
[특이 사항: 제5문에서 이의를 제출한 사람부터 목록에서 사라짐.]
“목소리 다음엔 기억, 그다음엔 이름이라.” 벤이 중얼거렸다. “이 일은 갈수록 악질이군.”
피엘은 새 사건을 검토했다. 이름이 지워졌다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으로 관리되는 제도의 바깥에 밀려난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먼저 실제로 연락할 수 있는 분들이 누구인지 확인합시다.”
토비가 성검을 멨다. 세아는 노래의 사본을 챙겼고, 오스벨은 지팡이 안에 세 종류 장부를 대조한 결과를 봉인했다. 벤은 계약서의 가장자리에서 낯선 붉은 글자가 번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동의할 수 없다.'
“그건 누가 정한 법칙이지?” 벤이 낮게 말했다.
제6문의 방향을 가리키는 계단 위로 빛이 켜졌다. 표지판에는 원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했지만 글씨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그 아래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이 날아왔다.
[수신인: 피엘.]
[귀하의 직무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귀하가 조사한 모든 사건의 접수 자격을 소급 취소합니다.]
토비가 종이를 읽자마자 발끈했다.
“아니, 피엘 씨가 여기 서 있잖아요!”
피엘은 종이보다 먼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은 여전히 떨렸고, 수첩에는 어제 적은 글씨가 있었다. 누군가가 직무명을 지우려 한다고 해서 그가 겪은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 뒷면에 첫 번째 답장을 적었다.
‘접수 자격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이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제9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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