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안 한 번도 날개를 퍼덕이지 않았다.
깃털 대신 금속판을 붙인 거대한 날개가 바람을 갈랐다. 얼굴은 하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고, 가슴에는 천계 감찰국의 눈동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천사들이 구원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행자들의 첫 행동은 마을 광장을 둘러싼 출구에 검은 창을 세우는 일이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조사 종료 전까지 출입을 금지합니다.”
하몬이 소리쳤다.
“우린 방금 홍수에서 살아났어요! 다시 무슨 조사를 한다는 겁니까?”
집행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떠올랐다. 신탁을 복원한 열두 명에게는 붉은 원이, 나머지 주민에게는 회색 원이 생겼다. 피엘은 그 표시를 보자 숨이 턱 막혔다.
“저건 신원 검증 마법이 아닙니다. 기록 삭제 대상으로 분류하는 표시예요!”
오스벨이 곧바로 지팡이를 들었다.
“숫자를 지울 수 있나?”
“원본 문서가 남아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표시를 만든 감찰관의 권한이 훨씬 높아요.”
토비가 성검을 빼 들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단호했다.
“그럼 이 사람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죠.”
그는 마을 어귀의 낡은 돌다리로 뛰어갔다. 다리 아래로는 어제 돌려 보낸 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다리 주변의 흙은 축축했고, 새로 자란 풀들이 연초록빛을 띠었다. 토비는 성검을 다리 끝의 흙 속에 꽂았다.
검이 낮게 울렸다.
[경고. 신성 계약의 비승인 사용.]
“오늘은 그런 거 안 들을 겁니다.”
토비가 말했다. 검에서 뿌리처럼 번지는 빛이 흙 속으로 스며들었다. 풀들이 발목 높이까지 자라났고, 곧 사람 하나가 몸을 숙이고 지날 수 있는 녹색 통로가 생겼다.
마라가 주민들을 그 통로로 이끌었다. 하몬은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벤은 제분소에서 구해 낸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림자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집행자 한 명이 토비에게 곧장 다가왔다.
“성검 사용자 확인. 해당 신탁은 마왕 토벌 임무에만 사용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저도 알아요.”
“즉시 검을 거두고 투항하라.”
“싫습니다.”
집행자의 창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토비는 성검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검은 농기구처럼 휘두를 때보다 훨씬 무거웠다. 창끝이 어깨를 스치자 토비가 뒤로 밀려났다. 땅에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피엘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원래 농부에게 가야 했던 건 씨앗 관리법이었다. 토비가 창에 찔린다면 오배송을 처리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었다.
“토비 씨!”
“괜찮아요!” 토비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밭에서 낫에 베인 것보다 조금 아파요!”
벤이 성검을 바라봤다.
“그걸 왜 상대 칼처럼 쓰려 해? 너는 농부잖아.”
“그럼 뭘 어떻게….”
“네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해!”
토비는 숨을 고르며 땅을 내려다봤다. 성검은 무거웠지만 손에 익은 삽처럼 세울 수 있었다. 그는 검끝을 땅속 깊이 눌렀다. 뿌리들이 순식간에 집행자의 발목을 감았다. 금속 다리 관절 사이로 줄기들이 들어가 자라나자 거대한 몸이 기울었다.
쿵!
집행자가 무릎을 꿇었다. 토비는 재빨리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을 넓혔다. 뒤따르던 집행자들이 창을 던지려는 순간 오스벨이 지팡이로 손을 뻗었다.
“땅이 척박하면 밀을 심고, 미련한 무기가 날아오면 거두어야겠지.”
창끝에 밀싹이 돋았다. 금속 창들이 공중에서 길고 부드러운 줄기로 바뀌어 마을 지붕 위에 흩어졌다. 벤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마법사를 돌아봤다.
“늙은이, 전투 마법 이름을 좀 멋지게 지을 생각은 없어?”
“‘제3농업형 식물전환술’일세.”
“차라리 말하지 말지.”
그 사이 피엘은 수첩을 열고 집행자의 권한을 조회했다. 기록에는 라베른의 이름이 있었다. 명령을 실행하는 수단은 달라도 발신자는 동일했다. 라베른은 제분소와 다리, 브린 마을에서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피엘은 이시아의 작은 종을 꺼냈다. 첫 번째 사용이었다. 그는 종을 흔들며 크게 말했다.
“감찰 권한에 대한 원본 승인 검증을 요청합니다!”
작은 종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대신 세상 전체가 아주 잠깐 고요해졌다. 집행자들의 가슴에 있는 문양이 금빛과 검은빛으로 갈라졌다. 그중 가장 앞에 선 집행자의 흉갑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상위 승인 확인 실패.]
[신탁 집행권 일부 위조 의심.]
“위조.”
피엘은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렸다. 여신은 라베른에게 기억 소거를 허가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 감찰관이 행사하는 소멸 권한도 실제 원본과 다를 수 있었다.
집행자들이 움직임을 멈춘 틈에 마지막 주민까지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집행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명령이 동시에 내려와 있었다. 사람들을 구금하라는 명령과 위조된 권한을 사용하지 말라는 기본 규정. 기계처럼 일하는 존재에게 명령 충돌은 치명적이었다.
“지금이야!” 벤이 소리쳤다.
네 사람과 마라는 남쪽 숲길로 달렸다. 토비는 어깨의 상처를 움켜쥐고도 마지막까지 뒤를 지켰다. 수탉이 오스벨의 가방에서 크게 울었다. 느닷없는 울음소리 때문에 사람들은 한 번 웃었다. 곧 숨이 차 다시 웃을 힘조차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언덕 너머로 이동했다. 브린의 주민들은 피엘 일행이 다시 쫓아올 집행자들을 유인해야 하므로 서로 다른 길로 빠졌다. 하몬은 빵집에서 쓰던 커다란 밀가루 포대를 세 개나 들고 나왔다. 토비에게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멀리 가야 한다면 먹을 것을 챙기셔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빵이 아니네요.”
“밀가루밖에 없어서요. 물과 불만 있으면 뭐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오스벨이 눈을 빛냈다.
“그거면 충분하네. 수분을 조절하는 마법도 있고 발효도 좀 할 줄 아니까.”
벤이 얼른 끼어들었다.
“지난번 다리에서 본 발효는 음식이 아니었잖아.”
“그건 실험이었지.”
토비는 어깨의 상처를 누르며 힘없이 웃었다. 피가 오래 흐르지는 않았지만 짐을 멜 때마다 통증이 있었다. 마라는 우체국에서 가져온 천 조각으로 상처를 감싸 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서툴렀지만 정성스러웠다.
“성검이 몸을 보호해 줄 줄 알았어요.”
“그러게요. 설명서에는 그런 말이 없긴 했어요.”
토비가 대꾸했다. 피엘은 이 말을 듣고 성검의 계약서를 다시 살폈다. ‘강대한 어둠을 베는 무기’, ‘대륙 구원의 증표’라는 수식어는 가득했지만, 사용자가 다쳤을 때 어떻게 치료할지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그는 수첩 귀퉁이에 다시 메모를 남겼다.
[성검 사용자 지원 규정 부재. 치료 및 안전 교육 필요.]
벤이 피엘의 수첩을 흘깃 보았다.
“진짜로 보고서를 쓸 생각이야?”
“언젠가는요.”
“네가 천계로 돌아가면 그 보고서를 읽어 줄 상관이 없을 텐데.”
“그렇더라도 남겨야죠. 다음에 누군가 같은 일을 겪으면 이 기록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그 대답에 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거래소에서 만난 피엘은 규정을 벗어나는 걸 죽을 만큼 두려워했다.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없애는 대신 그 안에서 작은 다른 선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숲에서는 밤이 빨리 왔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로막고 있었고, 잎사귀 아래에는 축축한 흙 냄새가 가득했다. 오스벨은 한밤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나뭇가지마다 작은 반딧불 같은 빛을 남겼다. 토비는 땅에 난 발자국을 살피며 걸었다.
“우리 뒤에 누가 따라와요.”
“집행자인가?” 피엘이 물었다.
“아니요. 발자국이 작아요.”
그들이 몸을 숨기자 숲 뒤쪽에서 어린 소년 하나가 나타났다. 브린에서 겨울의 불을 피우라는 신탁을 받았던 아이였다. 아이는 품에 낡은 공책을 안고 있었다.
“천사님!”
피엘이 깜짝 놀라 달려갔다.
“왜 여기까지 왔니? 위험해!”
“할머니가 전해 주라고 하셨어요.”
공책에는 마을 사람 열두 명의 이름이 한 줄씩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는 각자가 지금 어디로 피했는지, 누구를 만날 수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문장이 적혔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토비는 공책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피엘은 그 말을 여러 번 읽었다. 천계의 문서가 사람들을 지우려 한다면, 인간들은 서로를 기록하여 잃어버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고맙다. 하지만 이제 어서 돌아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숲길을 되돌아갔다. 벤이 어둠으로 길을 잠시 가려 아이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자기 목숨을 내놓고 인간을 지킨다는 게 귀찮다던 악마가 당연한 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조금 뒤, 숲 깊은 곳에서 길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의 울음 같았지만 소리 끝에는 작은 종소리가 섞여 있었다. 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릴 찾는 추적견이군. 아니, 신탁의 향을 맡는 사냥개야.”
오스벨이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나 토비가 먼저 흙바닥을 가리켰다.
“비가 왔던 자국이 있어요. 물길을 따라가면 냄새가 씻기지 않을까요?”
“신탁의 향은 물로 씻기지 않지.” 피엘이 말했다.
“그럼 다른 신탁이 있는 데로 가면 되죠.”
토비는 앞쪽에 서 있는 작은 무명 신전을 가리켰다. 신전 주변에는 사람들의 기도가 오래도록 쌓인 흔적처럼 흰빛이 감돌고 있었다. 수많은 기도 향이 섞인 곳에서 그들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벤은 토비의 어깨를 툭 쳤다.
“이번엔 꽤 그럴듯한 발상이야.”
토비는 다친 어깨를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칭찬하실 땐 반대쪽 어깨를 두드려 주세요.”
숲 끝에서 폐허가 된 작은 신전을 발견했을 때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제단에는 오래된 둥근 돌이 놓여 있었다. 돌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오스벨이 손을 대자 잊힌 문자들이 떠올랐다.
“‘첫 기도를 보낸 자를 기억하라.’ 이런 뜻이군.”
마라는 우체국에서 가져온 편지를 꺼냈다. 피엘이 집었던 ‘아직 태어나지 않음’이라는 봉투와 같은 크기였다.
“밀헤이븐의 첫 우편물이 이곳으로 배달됐다고 했어요. 그런데 기록에는 이 신전이 백 년 전에 무너졌다고 적혀 있어요.”
“열여덟 해 전의 제0경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피엘이 중얼거렸다.
토비는 신전 벽에 붙은 작은 돌판을 가리켰다. 겉면에 파인 구멍 아홉 개가 있었다. 벤이 가지고 있던 흑요석 인장의 아홉 구멍과 똑같은 배열이었다.
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곳은 거래소가 아니라 주소였군.”
“무슨 말입니까?”
“제0경로로 보내는 모든 그림자 계약은 어딘가로 돌아와야 해. 이 돌판이 바로 그 수취함인 것 같아.”
피엘은 조심스럽게 이시아의 종을 돌판 가까이에 가져갔다. 금빛 문양이 잠깐 떠올랐지만 곧 사라졌다. 이어서 수첩이 저절로 펼쳐졌다.
[제0경로 접근 감지.]
[입장 조건: 원본 신탁 수신자 또는 그 대리인.]
토비가 가슴을 쓸었다.
“또 제가 해야 하는 건가요?”
“확인부터 해 보죠.”
피엘은 수첩을 대고 공인 배송 담당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벤이 그림자 계약의 증인 자격을 내세웠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오스벨이 신탁을 받은 당사자라고 선언했지만 돌판은 잠잠했다.
마라가 조용히 다가왔다.
“원본 수신자가 없으면 대리인이 필요하다고 했죠.”
“네. 하지만 대리 자격은 원본을 받은 사람이 직접 지정해야 합니다.”
“이 우체국에는 보내는 사람이 모르는 수신인에게 쓰는 편지도 있어요. 그런 편지는 누가 대신 받나요?”
피엘이 대답하려는 순간 토비가 말했다.
“받는 사람이 없으면 배달하는 사람이 보관하잖아요.”
마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래된 우편 열쇠를 돌판 구멍 가운데 하나에 끼웠다. 짤깍 소리가 났다. 돌판의 아홉 구멍이 차례로 빛났다.
[임시 보관인 확인: 마라.]
[원본 수신인 확인 절차로 전환.]
마라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여태껏 야간 배달실에서 누군가 도착하길 기다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편지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돌판이 천천히 열렸다. 뒤편에는 사람이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아래에서 종이 넘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랫동안 누군가 쉬지 않고 편지를 읽고 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피엘의 머릿속에 낯선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 오래전 작은 방, 텅 빈 의자, 자기보다 더 작은 천사의 손. 그 손이 봉투를 건네며 말하고 있었다.
‘네 이름으로 대신 보내 줘.’
피엘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그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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