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8화
PAYLUA ORIGINAL · 제8화

8화. 여신의 정정 공문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6,173자

오프라인 책장
이시아 여신에게 연락하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보통 인간이 여신의 신전에서 기도하면 사제가 기도를 취합했고, 사제의 보고는 지방 교단을 거쳐 천계 접수 창구로 올라갔다. 최종 전달까지 최소 열흘. 하급 천사가 직접 여신을 찾아가려면 상급자의 허가가 필요했다. 피엘은 상급자로부터 소멸 명령을 받은 처지였다. “정식 절차라면 열흘입니다.” 그가 말하자 토비는 밀가루가 묻은 빵 조각을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바로 찾아가요.” “여신을 만나고 싶다고 신전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시아 여신은 사람을 돕는 분이라면서요.” “그렇지만 규정이….” “천사님은 규정을 참 많이 믿으시네요. 규정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도요.” 피엘은 대꾸하지 못했다. 토비는 일부러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당연히 궁금한 걸 물었을 뿐이다. 피엘은 그날 아침 자신이 자꾸 도장을 움켜쥐는 손을 내려다봤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도 규정 문구를 찾는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브린 마을 사람들은 하룻밤을 묵을 집과 음식을 내주었다. 어제까지 서로 다른 명령 때문에 등을 돌리던 사람들은 오래된 여관을 개방하고 부엌에서 큰 솥을 걸었다. 맑은 국물에 감자와 채소가 들어갔다. 토비는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들판의 물길을 보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오스벨은 인근 닭장에서 달걀을 구해 자기 은빛 알과 비교하고 있었다. 그는 연구 수첩에 ‘신성 계약에 의한 닭 사육의 성과’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피엘이 물었다. “중요하네. 세상을 구하는 동안에도 닭은 알을 낳아야 하니까.” 벤은 웃었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창밖 멀리서 흰 옷을 입은 순례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검은 코트 깃을 세웠다. “이시아의 순례단이다. 어째서 이 작은 마을에 벌써 왔지?” 마라는 여관 주인에게 순례단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시아 신전의 순례는 보통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다. 그런데 행렬이 도착한 건 브린에서 오배송된 신탁을 바로잡은 다음 날이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온 거군요.” 피엘이 말했다. 순례단은 마을 광장에 멈춰 섰다. 낡은 목제 수레 위에 흰 천으로 덮인 작은 신상이 세워져 있었고, 사제는 손에 긴 종을 들었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자비의 여신 이시아의 정정 공문을 선포한다.” 피엘은 순간 안도했다. 정정 공문이라니.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사제가 읽기 시작한 다음 문장에서 그 생각이 무너졌다. “브린 마을에 발생한 신탁 혼선은 인간 수신자들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천계의 전달 과정에는 오류가 없었으며, 모든 주민은 이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스스로 정화하라.” 마을 광장이 웅성거렸다. 하몬이 앞줄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가 본 홍수 위험도 오해입니까?” 사제는 대답 대신 종을 한 번 쳤다. “문서 내용을 의심하는 자에게는 신앙 재교육이 부과된다.” 피엘의 수첩에 낯선 공문 번호가 떠올랐다. 정정 내용의 출처가 이시아 여신의 인장으로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승인 일자는 오늘이었다. 그리고 구원 신탁의 주소를 바꾼 공문의 승인 일자는 어제보다 훨씬 오래전이었다. “잠깐만요.” 피엘이 앞으로 나섰다. “본 공문에는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 기록이 없습니다. 소멸 집행 중인 제가 업무상 이해당사자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정정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멸 대상자가 어찌 여신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는가?” “의문이 있으면 물어야죠.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이 받은 신탁은 실제로 서로 뒤바뀌었습니다.” 피엘이 한 장씩 복원한 기록을 펼쳤다. 마라가 구조된 사람들의 증언을 낭독했고, 하몬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경위를 설명했다. 토비는 물길이 터졌던 산 위를 가리켰다. “신탁을 믿고 아무것도 안 했으면 마을이 물에 잠겼을 겁니다.” 사제는 얼굴을 붉혔다. “이것은 여신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가 종을 세 번 치자 신상에 걸린 흰 천이 스스로 풀렸다. 신상의 표면에서 환한 빛이 피어올랐다. 순례자들은 즉시 무릎을 꿇었고, 공기에는 꽃향기가 가득 찼다. 빛 가운데 한 여인이 나타났다. 긴 은빛 머리칼과 잔잔한 눈동자를 지녔고, 어깨를 덮은 옷자락에는 수많은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다. 종마다 아직 전해지지 않은 기도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그만하십시오.” 여인의 목소리는 아주 조용했지만 광장 끝에서도 분명하게 들렸다. 피엘은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으려다가 멈췄다. “이시아 여신님.” 빛의 여인은 천천히 내려왔다. 사제는 온몸을 떨며 엎드렸다. “여신님! 저희는 분부하신 대로….” “제가 내린 정정 공문에는 기억을 지우라는 문장이 없었습니다.” 사제의 말이 끊겼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루마리로 향했다. 사제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더니 문서의 뒷면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지워져 있던 문장이 드러난 것이다. [첨부 조항: 사건 관련 기억의 소거를 승인함.] [추가 결재: 감찰국 특별 감사관 라베른.] “이시아 님, 이건….” 피엘이 고개를 들었다. 여신은 그를 잠시 바라봤다. 눈빛은 상냥했지만 얼굴에 지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오래전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피엘. 그 봉투를 결국 찾았군요.” 피엘의 등에 오싹한 감각이 흘렀다. 여신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제0경로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저는 지금 사라질 처지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여신은 사람들이 듣고 있다는 듯 광장을 훑었다. 마을 주민들의 두려운 눈빛과 천사에게 기대를 거는 표정이 차례로 비쳤다. 그녀는 손을 들어 종이 달린 옷자락을 펼쳤다. 순간 광장은 움직임을 멈췄다. 종소리와 발소리만 멀어졌다. 토비와 오스벨, 벤, 마라만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이시아의 작은 대화 영역이었다. “열여덟 해 전, 세상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신탁이 만들어졌습니다. 신들은 구원을 위해 영웅들을 골랐죠.” “그게 잘못입니까?” 오스벨이 물었다. “선택된 사람들의 명단이 곧 위험에 처할 사람들의 명단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운명을 미리 읽고, 한 명씩 지워 나갔습니다.” 벤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이름을 바꿨다?” “일부는 제가 승인했습니다. 원래 선택된 사람들이 살아남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스벨이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영웅의 이름을 숨기기 위해 농부에게 성검을 보냈다는 말씀인가?” “제가 직접 그 두 사람의 배송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런 방식의 보호 조치가 시작된 건 사실입니다.” 이시아는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봤다. 대화 영역 밖에서 주민들의 모습이 유리 너머 사람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 보호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왕을 물리칠 자, 봉인을 유지할 자, 죽어 가는 땅을 되살릴 자. 그들을 미리 알아낸 적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 적이 누구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한 일은 이름이 기록된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명단에 올랐던 이들은 큰 부상을 입거나 세상에서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가 영웅들의 사명을 미리 훔쳐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벤이 이시아를 차갑게 바라봤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밀어 넣었나?”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됐잖아.” 여신은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자비를 관장하는 존재에게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조치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저는 바뀐 수신자들에게 위험이 가지 않도록 사명을 가볍게 조정할 생각이었습니다. 일시적인 주소 변경 뒤 원래 수신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어 두었죠.” 피엘은 제분소에서 발견한 서랍들을 떠올렸다. 실제로 일부 신탁은 내용만 달라졌을 뿐 수신자의 삶을 위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편지에는 무고한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명령까지 붙어 있었다. 피엘은 여신의 말을 듣는 동안 제분소에서 발견한 서랍들을 떠올렸다. 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엉뚱한 사명을 맡기는 일. 그 선택이 과연 안전할 수 있었을까. 여신이 애초에 지키려 한 것이 누구였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마라가 물었다. “왜 그냥 모든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았나요? 원래 선택된 사람에게도, 대신 신탁을 받은 사람에게도요.” 이시아는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선택된 영웅이 자기 이름을 알면 적도 알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신탁을 받은 순간 세상이 그 이름을 기억하니까요. 인간들이 불안해할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혼란이 생기면 더 많은 생명이 위험해질 거라고 판단했죠.”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불안해하고 있어요.” 마라가 말했다. “우체국에서 사람들이 보낸 편지를 봤습니다. 누구는 엄마가 살아 있는지 몰라 울고, 누구는 자신이 왜 이런 명령을 받았는지 몰라 두려워해요. 그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게 하면 그건 보호라고만 부를 수 없어요.” 이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대답하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피엘은 여신이 처음으로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천계의 높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판단에 질문을 허락하는 광경은 낯설었다. 그는 여신을 다시 믿고 싶은 마음과,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 사이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그 사람들을 찾아가겠습니다. 어떤 신탁이 왜 바뀌었는지, 원래 누구에게 가야 했는지 확인해서 알려 주겠습니다.” 이시아는 피엘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 일을 시작하면 천계는 당신을 반역자로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건 배송입니다.” 피엘은 몸을 똑바로 세웠다. “받는 사람이 잘못됐다면 다시 찾아가야죠. 이번에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피엘의 머릿속에 오스벨에게 가야 했던 용사 신탁이 떠올랐다. 만약 누군가 영웅을 미리 죽이고 있다면, 농부에게 잘못 간 성검도 보호 조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짜리 설명이었다. “천스물네 건이 모두 보호 조치였습니까?” 여신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가 승인한 건 열두 건뿐입니다. 나머지에는 제 서명이 복제되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0경로의 봉인이 다시 열렸다는 것.” 여신은 피엘의 수첩을 바라봤다. “그 안의 편지를 아무에게나 보이지 마세요. 어떤 문서는 읽는 순간 수신자가 되거든요.” 피엘은 봉투의 ‘아직 태어나지 않음’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 편지를 읽는 자신이 수신자로 확정될 수도 있었다. “저를 소멸시키라는 신탁은 누가 보낸 겁니까?” 여신은 답을 주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옷자락에 달린 작은 종 하나를 떼어 피엘에게 건넸다. 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제 승인 기록을 검증할 수 있는 표식입니다. 라베른의 집행 권한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 세 번만 사용하세요. 세 번째 사용 뒤에는 제가 당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왜 직접 명령을 취소하지 않으십니까?” “신탁의 원본 권한이 제 손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피엘은 여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는 여신을 존경하면서도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천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들조차 할 수 없다는 말부터 한다면,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기대야 할까. “그럼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원본 권한을 가진 사람을요.” 이시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저도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겠군요.” 대화 영역이 풀렸다.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제는 당황해서 땅에 떨어진 공문을 주웠지만 글자들은 이미 검게 타고 있었다. 광장 끝에서 벤이 하늘을 바라봤다. “손님이 하나 더 오는군.” 하늘에는 흰 구름 사이로 얇은 검은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그 선이 열리자 오래된 제분소에서 보았던 금속 눈동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찰국의 날개 달린 집행자들이었다. [불법 신탁 복원 및 신성 권위 훼손 확인.] [현장 폐쇄. 관계자 전원 구금.] 이시아의 빛이 사라진 자리에 작은 종 하나만 남았다. 피엘은 그 종을 꽉 쥐었다. 여신과 만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답을 얻은 만큼 그들을 쫓는 이들도 더 가까워졌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8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