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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84화
PAYLUA ORIGINAL · 제84화

84화. 검은 사과나무의 과거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256자

오프라인 책장
제5문의 서쪽 정원에는 사과가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를 사과밭이라고 불렀다. 나무마다 검은 종이로 만든 열매가 달렸고, 열매의 표면에는 누군가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바람이 불면 종이가 뒤집히면서 오래된 장면이 하늘에 나타났다. 누구는 첫 사랑의 손을 잡았고, 누구는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맞았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실수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정원은 후회한 장면을 정리하는 곳입니다.” 에른이 설명했다. “자신의 기억을 안전한 거리에서 다시 보는 치료법이었어요. 원래는 사람이 직접 어떤 장면을 볼지 고릅니다.” 정원 관리자는 눈 아래에 검은 점이 있는 소년이었다. 이름은 유온. 나이는 열여섯이라고 했다. 그는 여덟 살부터 이곳에서 열매를 붙들어 매는 일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여덟 살이던 해의 기억은 맡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안 맡겼는데, 누군가 제 이름으로 열매를 달아 놨어요.” 유온이 가리킨 나무에는 검은 열매 세 개가 달려 있었다. 첫 번째는 ‘나는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았다.’ 두 번째는 ‘나는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세 번째는 ‘나는 그날 떠나기로 동의했다.’ 세 문장은 모두 같은 날짜의 기억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어느 게 진짜예요?” 토비가 물었다. “전부 저한테 물어본 적 없는 말입니다.” 유온은 대답했다. “어머니와 행복했던 날도 있었고 미웠던 날도 있었죠. 하지만 저 세 줄을 적은 적은 없어요.” 유온이 마지막 열매를 만지려 하자 에른이 손을 잡았다. “허가되지 않은 기억을 직접 열면 안 됩니다.” “그래도 제 이름인데요.”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지요.” 토비는 유온의 옆에 섰다. “제 이름으로도 이상한 신청서가 왔어요. 일곱 살 때 훗날 동생이 사라질 일을 고쳐 달라고 했다나 봐요.” 유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후회를 미리 심어 놓은 거네요.” 그 표현을 듣고 오스벨이 고개를 들었다. 미래를 예고하는 신탁과 과거를 조작하는 기억을 결합하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부터 사람에게 책임감을 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장부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열매들을 찾아보았다. ‘동생을 보내서 죄송합니다.’ ‘문을 잠그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결론이 먼저 정해진 문장들이었다. “이걸 보게 되면 사람이 정말 그런 일을 했다고 믿게 될까요?” 토비가 물었다. 에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느낄 거예요. 다만 자신이 모르는 과거를 누가 정확히 보여 준다고 하면 마음이 흔들리기 쉽겠죠.” 토비의 앞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다. 다른 나무들과 달리 진짜 보리 이삭이 매달려 있었다. 보리골의 여름 냄새가 풍겨 왔다. 토비는 그 냄새를 맡자 무심코 한 걸음 다가갔다. 나무 아래에는 낡은 마을 길이 펼쳐졌다. 일곱 살짜리 토비가 길에서 편지 한 장을 주웠다. 그날의 토비는 실제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먼지 낀 치마를 입은 어린 루나가 그에게 달려왔다. 루나가 태어나기도 전의 시간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토비가 중얼거렸다. 어린 토비는 편지를 펼쳐 읽었다. ‘앞으로 루나가 사라지더라도 놀라지 마라. 네가 보냈고, 네가 허락했다.’ 편지 뒤에는 커다란 도장이 있었다. 소멸 명령이나 발송 승인에서 보았던 원형 표식과 같았다. 어린 토비가 고개를 들어 현실의 토비를 바라봤다. “왜 약속을 잊었어?” 토비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의 눈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사라졌던 날, 토비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이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지 고민했다. 그 아픔을 누군가 알고 있었다. 알고서 정확히 그곳을 찌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으려 하자 벤이 앞에 섰다. 벤은 이번엔 농담을 하지 않았다. “이건 네 기억이 아니야. 적어도 지금 네 눈앞의 장면은 정원에서 만들어 낸 거지.” “그래도 제가 잊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있다고 확인하지 않은 죄를 먼저 인정할 이유는 없어.” 토비는 숨을 고르고 발밑의 돌을 느꼈다. 제5문 입구에서 오스벨이 알려 준 차가운 감각이 여전히 있었다. 그는 정원의 아이에게 물었다. “누가 네게 그 편지를 줬어?” 어린 토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 말은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나무가 갑자기 떨리더니 편지 속 글자들이 뒤집어졌다. [회상 대상의 의심으로 치료 효과 저하.] [대상자 불안 증가. 확신 주입 권장.] “대상자라니.” 토비가 이를 악물었다. “저는 치료받으러 온 적이 없어요.” 피엘은 유온과 에른의 도움을 받아 정원의 발송 회로를 멈추지 않고 관람 회로만 격리했다. 정원 안쪽에서는 실제로 기억을 정리하겠다고 신청한 환자들도 쉬고 있었다. 전부 꺼 버리면 그 사람들이 예기치 않게 고통스러운 장면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었다. 격리막이 내려오자 보리밭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대신 나무뿌리 아래 작은 금속판이 드러났다. 회상 장면 제작 이력, 참고한 문서, 감정 유도 목표가 적힌 목록이었다. 참고 문서 중 하나가 뜻밖이었다. [보리골 실종자 루나: 귀환 후 작성한 현재 진술서.] “루나의 진술서가 여기에 왜 있죠?” 피엘이 물었다. 토비가 금속판을 살폈다. 동생은 제0경로에서 돌아온 뒤 제8문 인근에 남아 다른 이들의 귀환을 돕고 있었다. 진술서를 제출했더라도 그것을 오빠의 기억 교정에 쓰도록 허락했을 리 없었다. “우리가 먼저 루나한테 물어봐야겠어요.” 토비가 말했다. 하린에게 보낸 독립 연락은 한참 뒤에야 연결됐다. 서온이 중계한 짧은 메시지로 루나는 자신의 현재 진술이 누구에게도 자동 제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다. 특히 오빠를 설득하는 자료로 쓰는 일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토비는 그 답을 들으며 어깨를 펴려고 애썼다. 마을의 과거는 여전히 아팠지만, 동생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었다는 사실은 실제였다. 정원 길 아래에는 열매에 쓰이는 종이를 염색하는 작업장이 있었다. 작업대의 염료는 끈적한 검은색이었고, 사람들이 자기 기억을 들여다볼 때 손을 대지 않도록 보호막이 쳐져 있었다. 작업장 주인은 모든 종이가 같은 곳에서 나온다고 했다. 피엘은 종이의 일련번호를 확인했다. 유온의 기억 열매와 토비의 보리밭 영상은 다른 신청자에게서 만들어진 것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쇄 시각은 같았다. 더 이상한 것은 두 기록의 감정 유도 문구가 똑같다는 점이었다. '죄책감을 받아들인 뒤 책임을 인정하도록 한다.' 토비는 그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먼저 정해져 있네요.” 벤은 서류를 접으며 말했다. “내 세계에서는 그런 걸 자백 유도라고 부르지. 물론 우리도 그런 짓을 해서 자랑할 처지는 아니지만.” “당신이 하지 않은 걸 했다고 믿도록 유도하는 기능은 이 정원의 목적과 다릅니다.” 에른이 말했다. 작업장 주인이 변명하듯 손을 내저었다. 그는 잉크를 만들 뿐이고 어떤 장면이 인쇄되는지 모른다고 했다. 피엘은 그 말의 사실 여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작업 명세에 따르면 주인은 색과 종이 두께만 결정했고, 장면을 배정한 곳은 제5문 중앙 편집실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인을 벌하는 게 아니라 누가 그 문장을 넣었는지 확인하는 일이겠군요.” 오스벨이 말했다. 피엘은 작업장의 접근 기록을 확보했다. 그 안에는 원장의 승인 아래 자동 배정 기능이 켜진 날짜가 남아 있었다. 어린 토비를 닮은 회상 장면은 우연히 생긴 악몽이 아니라, 중앙에서 설정한 유도 목표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유온은 나무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열매들을 따지 않았다. 그는 정식 오류 신고가 접수된 뒤에 처리하겠다고 했다. 누군가 증거를 없앴다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한테 정말 필요했던 건 좋은 과거가 아니라, 제가 뭘 기억하는지 남들이 함부로 확정하지 않는 일이었어요.” 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에는 땀이 나 있었지만, 그는 보리밭 그림이 없는 쪽으로 걸었다. 정원 출구의 유리판에서 작고 붉은 글씨가 솟았다. [루나의 진술 사용 권한: 제5문 원장에 의해 승인.] [승인 근거: 실종자의 가족이 나중에 고마워할 것으로 예상.] 벤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제 남의 기억을 훔치는 이유가 ‘나중에 고마워할 것’이라니.” 피엘은 승인자의 이름을 적었다. 제5문의 원장, 아르델. 이번에는 번호만이 아니라 실명으로 남은 첫 상위 승인자였다. 그때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검은 열매 수백 개가 같은 문장을 속삭였다. “곧 고마워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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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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