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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81화
PAYLUA ORIGINAL · 제81화

81화. 거울 속 일곱 살의 약속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683자

오프라인 책장
거울이 어린 토비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했다고 믿게 된 날이 올 거야.” 토비는 걸음을 멈췄다. 그가 아는 자기 목소리는 좀 더 낮고, 말을 끝낼 때 약간씩 올라갔다. 거울 속 아이는 보리골에서 장난을 치다 들키기 직전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의 숨 가쁜 억양이었다. “제가 저렇게 말할 땐 보통 달아날 준비를 했어요.” 벤이 반사적으로 웃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토비의 얼굴이 생각보다 창백했기 때문이다. 제5문의 회랑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닥 아래에서 오래된 계절들이 천천히 흐르고, 벽마다 누군가의 방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손바닥만 한 창 안에서는 아기가 첫걸음을 떼었고, 그 옆에서는 백발의 노인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사람의 추억이 아니라, 사람의 추억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풍경도 섞여 있었다.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피엘은 문지기를 부르지 않았다. 먼저 수첩을 꺼내 현실의 시간을 적었다. 제4문을 출발한 시각, 거울 앞에 도착한 시각, 거울이 실제로 발화한 문장. 그리고 토비에게 물었다. “저 목소리에 관해 확실히 말씀할 수 있는 것만 알려 주시겠습니까?” “어릴 적 저랑 닮았어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어요.”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았다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거울의 주장만으로 당신이 말했다고 적지도 않겠습니다.” “그거 참 까다롭네요.” “이번에는 까다로운 편이 안전합니다.” 거울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벽에 떠 있던 행복한 생일 잔치가 순식간에 화재 현장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잔치가 되었다. 세아가 흠칫하자 오스벨이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모두의 발밑에 희미한 파란 원이 만들어졌다. “자기 이름을 세 번 말하게 하는 주술은 쓰지 않겠네. 여기선 그 이름조차 빌려 쓸 수 있으니까. 대신 발밑의 돌이 차갑다는 건 확인할 수 있겠지. 오늘 눈으로 본 것과 방금 떠오른 장면을 구분하는 표식이야.” 토비는 돌을 밟았다. 실제로 차가웠다. 복도 끝에서 두꺼운 모포를 두른 여인이 나타났다. 가슴에는 ‘기억 정리사 에른’이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명찰 옆 작은 바늘이 그녀가 말할 때마다 떨렸다. “제5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방문객의 불안이 높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불편한 기억을 잠시 줄여 드릴까요?” “우선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에른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지친 기색으로 명찰을 바로잡았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요즘은 첫 방문객 대부분이 그렇게 말해요.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잊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지 못한 날, 마지막 편지를 찢어 버린 밤, 잘못된 경보를 믿고 집을 떠난 오후 같은 일요.” “기억 정리가 언제나 나쁜 일이라고 말하러 온 건 아닙니다.” 세아가 말했다. 에른이 처음으로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그 말은 정말 오랜만이군요.” 그녀는 복도 가운데의 작은 방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방에는 의자 두 개와 물병, 흰 종이만 있었다. 창문은 복도로 열려 있었고, 안쪽에는 거울이 없었다. “기억을 돌보는 일을 시작하기 전의 상담실입니다. 여기에서는 기억을 읽지도, 편집하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만 묻지요. 원치 않으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요.” 토비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그럼 아까 거울은 왜 저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그건 상담실의 장치가 아닙니다.” 에른의 목소리가 굳었다. “입구 거울은 방문자를 식별할 목적으로 과거 감각을 비춰야 합니다. 미래에 믿게 될 일을 예고하는 기능은 없어요.” 에른은 자물쇠가 달린 장부를 펼쳤다. 장부 표지에는 세 가지 분류가 적혀 있었다. 목격 기록, 회상 진술, 편집 이력. 맨 아래에는 가느다란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어느 한 항목도 다른 항목을 대신하지 않는다.’ 피엘이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좋은 원칙입니다. 실제로 지켜지고 있습니까?” 에른은 대답하기 전에 망설였다. “처음에는요. 어느 날부터 조회 화면에서 셋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건을 기억한다고 말하면 그것이 곧 사건의 원본처럼 표시됩니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하면 원인이 해결됐다고 적히죠.” “누가 합쳤습니까?” “승인 기록에는 제0경로의 번호만 남았습니다.” 0000. 침묵이 흘렀다. 피엘은 네 번째 문에서 그 번호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백색 합창단의 발송을 우회하려 한 계정이었다. 자신을 무명이라 부르기 시작한 장치는 그 계정과 분리하여 보전된 상태였다. 둘을 같은 존재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변경 이력을 보전할 수 있습니까?” “일부는 가능합니다. 다만 보관소에 접근할 때 한 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기억하는 장면 하나를 스스로 말해야 합니다. 그 장면과 다른 기록을 구분하는 시험이지요.” 토비가 손을 들었다. “저는 아침에 빵을 두 개 먹었습니다.” 벤이 말했다. “그건 나도 봤다.” “그럼 확실하잖아요.” “두 개를 먹었다는 것과 두 개를 먹었다고 기억하는 건 다른 질문이야.” 토비는 생각하다가 수정했다. “제가 하나를 먼저 먹고, 두 번째는 벤이 몰래 집으려는 걸 보고 뺏어 먹었어요.” 벤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농부야. 나는 네 빵을 탐내지 않았거든.” “그럼 왜 제 접시를 들여다봤어요?” “버터가 얼마나 남았나 봤지.” 방 밖에서 또 다른 방문객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푸른 모자를 쓴 노인이었다. 그는 수십 년 전에 죽은 아내의 기억을 찾아왔지만, 오늘은 부인과 함께 산 적이 없다는 새로운 장면이 입구 거울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 장면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자신조차 잠깐 믿을 뻔했다고 했다. 에른은 노인의 이름을 묻고, 거울에서 본 장면과 집에 가져온 오래된 실물 편지의 날짜를 따로 적었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빛이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에는 둘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으나 인화 시기는 사진만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이걸 보니 적어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건 알겠지요?” “사진에 두 분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됩니다.” 에른이 말했다. “그 밖의 일은 원하실 때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에른은 장치에 기억을 다시 입력하는 대신, 노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편지와 사진을 안전하게 보관할 상자를 건넸다. 그 상자에는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 열고 닫을 수 있는 평범한 쇠상자였다. 토비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천계의 놀라운 마법보다 마법이 없는 상자가 더 든든해 보이는 날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저런 상자를 더 많이 만들면 안 돼요?” 에른이 어색하게 웃었다. “만들 수 있어요. 다만 다들 더 근사한 걸 원할 줄 알았죠.” “저희 동네엔 튼튼한 상자가 최고예요. 비가 오면 마법보다 뚜껑이 중요하거든요.” 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농부를 믿겠다. 마계에도 계약서 담는 방수 상자는 있거든.” 피엘은 그 대화를 수첩에 적었다. 제5문에 필요한 대안은 반드시 새로운 기억 마법일 필요가 없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고른 물건을 자신이 여는 일이 먼저일 수 있었다. 에른은 그 다툼을 흰 종이에 적었다. 목격자가 다른 두 가지 진술. 하나의 확정된 결론은 없었다. “바로 이겁니다.” 그녀가 말했다. “서로 다른 기억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최근 제5문에서는 충돌하는 기억 중 하나를 고르게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지워 버립니다.” 오스벨이 장부를 살폈다. “마법적 확신이라는 것을 넣으면 사람은 반박할 의욕부터 잃겠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에른이 말했다. “지금 도시에서는 ‘기억 조화의 밤’이라는 행사를 준비 중이에요. 주민들의 서로 다른 기억을 하나로 맞춰서 다툼을 끝내겠다는 취지죠.” 피엘은 행사 허가서의 원본을 요청했다. 에른은 도장이 찍힌 사본을 내놓았다. 예정된 시간은 사흘 뒤였고, 신청자란에는 제5문 원장이 있었다. 그러나 시행 범위에 이상한 문구가 붙어 있었다. [현재 동의하지 않은 수신인도 과거 동의 경험이 확인되면 자동 적용.] “동의 경험이란 무엇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언젠가 동의했다고 기억하는 상태입니다.” 세아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제3문에서 듣던 논리가 다시 나타났다. 침묵이 동의가 되더니 이제는 동의했다고 느끼는 감각이 동의의 증거가 되고 있었다. 토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거울이 저한테 이상한 기억을 주려는 이유도…” 복도에서 가느다란 종소리가 났다. 문틈으로 작은 종이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표면에는 토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억 조화 사전 확인서.] [신청자: 토비.] [신청 당시 나이: 일곱 살.] [신청 내용: 루나가 사라진 날의 기억을 정확한 형태로 교정해 주세요.] 토비는 종이를 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동생 루나가 사라진 날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다. 장난으로 얼버무릴 수 없는 날짜였다. “일곱 살의 제가 열여덟 해 뒤의 일을 어떻게 알죠?” 에른도 답하지 못했다. 복도의 거울이 다시 어린 토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날 네가 동생을 보냈잖아.” 토비는 종이를 접지 않았다. 그대로 탁자 위에 놓고, 거울을 향해 말했다. “누가 이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기억하라고 한다고 제 기억이 되는 건 아니에요.” 거울 속 아이가 웃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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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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