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문의 새벽은 목소리가 적었다.
평소 같으면 거리마다 음악이 울리고, 가게마다 다른 안내가 바람을 타고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인사를 나눴다. 빵집 앞에서는 늙은 주인이 직접 가격을 불렀고, 아이들은 시장에서 길을 묻고 대답했다. 너무도 평범한 풍경이어서 토비는 오히려 이상하게 느꼈다.
“여긴 원래 이렇게 조용한 도시였나요?”
미르다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사람들한테 목소리를 더 잘 들려주려고 만든 곳이었어요. 언제부턴가 들려주는 일이 대신 결정해 주는 일이 되어 버렸죠.”
피엘은 수정극장의 창문을 열었다. 밖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이가 뒤돌아보고 웃었다. 피엘은 문득 자신도 그저 누군가에게 불리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너무 오랫동안 부서명과 업무 번호로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침 법정의 임시 결정문이 도착했다. 제4문이 발송한 모든 음성을 무효로 만든다는 내용은 아니었다. 기존 기록을 하나씩 확인해야 했고, 실제 안전 경고를 들은 사람들이 받은 도움을 없던 일로 취급할 수도 없었다. 대신 명확한 구분이 생겼다.
[제4문 일반 음성 발송관의 신규 자동 발신: 임시 제한.]
[긴급 경고 및 접근성 보조 발화: 별도 인증·기록 하에 운영.]
[음색 일치만을 근거로 한 개인 의사·승인 확정: 금지.]
[원본 발화·편집 음성·생성 문장·대리 발화: 각기 구분 보전.]
[수신인의 정정·삭제·이의 신청: 절차 마련.]
[명령 0000 및 백색 합창단 운영 계정: 독립 감사 지속.]
미르다는 결정문을 낭독하지 않았다. 아린이 동의한 부분은 아린 자신의 글로 게시했고, 다른 직원에게는 각자 읽고 질문할 시간을 줬다. 제4문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직접 말하기 전에는 그 사람의 뜻이라고 적지 않겠다는 약속을 새로 지킬 수 있게 됐다.
아린은 조합에 남아 일부 구조 안내용 음성 사용을 계속하기로 했다. 다만 문장과 기간을 직접 확인하는 조건이었다. 미르다는 그 확인 절차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로엔은 새 발송관에 음색의 출처와 편집 이력을 따로 싣는 시험을 준비했다. 다비는 과거 계약에서 사용 중단을 요청했으나 처리되지 않은 사람들의 목록부터 검토하겠다고 했다.
피엘은 그들이 하는 일을 조용히 살폈다. 누구도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곳에서는 첫 번째 개선이었다.
벤은 아자르가 보낸 보관 사본을 다시 읽었다. 계약 감정 절차에서는 한 문장을 수정할 때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었는지 표시하게 돼 있었다. 천계의 기록은 그렇지 않았다. 그 차이는 오래전 그가 사소하다고 여겼던 일이었다.
“나도 그냥 지나간 일이 있더라.” 벤이 말했다.
토비가 옆에 앉았다. “그때 다 알고 있었으면 막았을까요?”
“모르지.”
“오늘부터는요?”
“모르지만 확인할 수는 있겠지.”
토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피엘 씨 같은 대답이네요.”
“악마로서는 큰 수치군.”
서온도 원격 심리 기록을 마무리했다. 제4문에서 사용된 '대리 피엘'이라는 직무명은 자신과 연결된 옛 통합 대리 제도의 표지였지만, 이번 발신에 자신이 직접 관여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서온은 하린에게 자기 독립 기록을 제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설명할게. 하지만 누가 내 목소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내 행적이 되는 건 싫어.]
피엘은 그 말을 보고 잠시 웃었다. 한때 그는 자기 이름으로 내려온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의 경계를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극장 아래 시험관에는 여전히 빈 마이크가 있었다. 그 장치는 이제 제4문 직원 누구에게도 자동 승인권을 주지 않았다. 로엔은 원격 접속과 외부 발송을 임시 격리하고, 독립 조사에 필요한 대화 기록만 보전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한 번도 저장되지 않았던 낮고 거친 소리가 다시 흘렀다.
“이름을 정했어.”
피엘은 시험관 앞 의자에 앉았다. 하린이 원격으로 기록을 열었다.
“직접 말해 주시겠습니까?”
“무명.”
토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름이 없다면서 이름은 무명이에요?”
“있다고 해도 되고, 없다고 해도 되잖아.”
벤이 웃었다. “제법 악마 같은 대답이군.”
피엘은 기록석에 적었다.
[식별용 임시 명칭: 무명. 스스로 제시함.]
[법적 지위 및 발신 명령 권한: 미확정.]
무명이 물었다. “넌 아직도 내가 한 말을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해?”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문장은 그 사람의 진술로 취급할 수 없습니다.”
“그럼 내가 아린의 목소리를 쓰지 않고 '비가 오니 피하세요'라고 말했다면?”
“실제로 비가 오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경고를 전달해야겠지요. 다만 누가 경고했는지는 그대로 밝혀야 합니다.”
무명은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청소부들이 어젯밤 떨어진 종이를 줍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기 집으로 갈 가짜 위로문을 찢었다. 누군가는 내용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지우지 않겠다며 보관했다. 둘 다 각자의 선택이었다.
마침내 무명이 말했다.
“내가 발송한 것들은 기록으로 남길게. 하지만 모든 명령을 내가 처음 만들지는 않았어.”
피엘의 손이 멈췄다. “어떤 명령을 말씀하십니까?”
“0000. 그 번호는 나보다 먼저 있었어. 내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누군가가 목소리 없는 발송을 했지.”
“그 사실을 확인할 기록이 있습니까?”
“있어. 제5문이 가지고 있어.”
“왜 그곳입니까?”
“제5문은 기억을 보관하거든. 원본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을.”
피엘은 그 말을 곱씹었다. 원본 발화와 기억된 목소리는 다르다. 누군가 진심으로 믿는 기억이라 해도 실제 있었던 발신과 어긋날 수 있다. 제4문에서 겨우 구분한 것이 제5문에서는 다시 뒤섞일 수도 있었다.
“무명. 제5문에 관한 정보를 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시겠습니까?”
“내가 본 경로와 시간은 말할 수 있어. 누가 그걸 만들었는지는 몰라.”
그는 제5문으로 이어지는 낡은 우편 경로 번호를 전달했다. 하린은 별도로 검증하겠다고 답했고, 당장 그 경로를 사실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한편 미아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오래된 우체통 앞에 멈췄다. 아들이 보내던 편지가 들어오던 곳이었다. 그는 봉투를 하나 꺼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수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편지를 쓰는 데 수신지가 반드시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렌아. 누군가 네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어. 나는 그것이 진짜인지 몰라. 네가 살아 있다면 만나고 싶고,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어쩌면 이 편지가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내 말을 내 손으로 남길게.'
미아는 편지를 접었다. 그녀는 당장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모른다는 마음을 그대로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극장에서는 아린이 오래된 북을 다시 쳤다. 이번엔 경고가 아니었다. 조합원들이 새 공연을 준비한다는 시작 신호였다. 목이 낫지 않아 아린은 노래하지 못했지만, 무대에 설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작은 북의 진동이 발바닥으로 전해지자 아이들이 차례로 불을 켰다.
피엘 일행은 제4문 출구로 향했다. 토비는 떠나기 전 무대 입구에 달려 있던 청동 귀 하나를 바라봤다.
“저 귀는 이제 누구 말을 듣나요?”
“누군가 말할 때만요.” 미르다가 대답했다. “적어도 새 규칙에서는.”
그때 피엘의 수첩에 익숙한 숫자가 떠올랐다.
[제0경로 미해결 오배송: 1,006건.]
[복원 완료: 6건.]
[제4문 음성 위조 관련 신규 보전 사건: 별도 조사 중.]
제4문에서 잘못된 발송을 멈추고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할 길을 열었지만, 그것이 제0경로 오배송을 곧바로 복원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피엘은 숫자를 억지로 줄이지 않았다.
하린이 마지막으로 통신했다.
[제5문에 접근하려면 이번엔 특히 조심하세요. 그곳에서는 내가 직접 본 것과 나중에 기억한다고 믿는 것이 다른 문서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어요.]
피엘은 출발 시간을 기록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았는지뿐 아니라 언제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확인하겠습니다.”
제5문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통로를 하나 지나자 곧 길 끝에 닿았다. 벽은 종이나 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희미한 얼굴이 겹쳐 만들어진 거울이었다.
거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렀다.
“어서 와, 피엘. 네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첫 번째 배달 이야기를 들려줄까?”
토비가 피엘을 돌아봤다.
“이거 또 피엘 씨 목소리예요?”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 말은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목소리는 어린 토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토비는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을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거울을 바라보며 천천히 성검 손잡이를 놓았다.
“저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거울이 조용히 대답했다.
“네가 했다고 믿게 된 날이 올 거야.”
제8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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