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까지 세 시간이 남았다.
천계의 밤은 지상의 밤처럼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다. 수정극장 밖으로는 은빛 길들이 복잡하게 뻗어 있었고, 길을 따라 늘어선 나팔마다 작은 별이 걸려 있었다. 평소에는 음악과 공지사항을 전하던 별들이 오늘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전송 대기 신호였다.
극장 내부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하린은 법정에 외부 발송의 임시 중단을 요청했고, 멜로스는 제3문 미확인 응답 기록이 타 문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보전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제4문에서는 이미 이전에 복제해 둔 음색과 문장들이 독립적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제3문의 정지가 제4문의 발송 예약까지 자동으로 취소하지는 않았다.
“멈추라고 해도 멈추지 않네요.” 세아가 말했다.
“누구에게 멈추라고 하는지도 문제야.” 오스벨이 답했다. “하나의 기계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문들이 각각 자기 규칙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로엔은 극장의 오래된 도면을 테이블에 펼쳤다. 전체 음성 송출을 막는 주 차단 장치는 무대 위 높은 곳에 있었고, 화재와 홍수 같은 긴급 경고를 전달하는 별도 관은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문제는 두 관이 중간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었다. 긴급 경고라는 표지를 얻으면 어떤 음성이든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럼 가짜 사과를 긴급이라고 분류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군요.” 피엘이 말했다.
로엔이 머리를 긁었다. “분류표를 수정하려면 상부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상부 권한은 백색 합창단 운영 계정과 통합 발송 계정이 공유하고 있어요.”
“두 계정을 분리할 방법은 없습니까?”
“가능은 해요. 다만 작업하는 동안 일부 실시간 안내에 지연이 생깁니다.”
피엘은 하린과 멜로스에게 실제 위험 경고의 수동 예비망을 확인했다. 그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모든 관을 끊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편지를 막는 일이 다른 사람의 경고를 빼앗게 해서는 안 됐다.
토비는 도면을 뒤집어 뒷면을 살폈다. 거기에 연필로 그린 계단 하나가 있었다.
“이건 뭐죠? 도면엔 없는데.”
미르다가 고개를 돌렸다. “오래된 음향 기사들이 쓰던 수동 통로예요. 정전이 났을 때 마이크 없이 객석에 직접 소식을 전달하던 길이죠.”
“그럼 그 길로 올라가면 되지 않아요?”
“무대 천장에 걸려 있어요. 올라가는 도중 발판이 끊긴 구역도 있고요.”
오스벨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발판 문제라면 마법사가 할 일이 있겠군.”
벤은 고개를 저었다. “무대 시설에 무턱대고 주문을 걸면 노래방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어. 일단 실제 구조부터 확인하자.”
“노래방이라니.” 오스벨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이 극장에 모욕이야.”
“당신 마법이 늘 박자에 맞는 건 아니잖아.”
한편 아린은 무대 뒤 오래된 소리 없는 방에서 작은 북을 꺼냈다. 목이 상한 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이었다. 북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동으로 연습 시간을 맞추기 위한 도구였다. 그녀는 글씨로 설명했다.
'사람들이 말을 듣지 못할 때도 눈과 몸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든 신호예요. 극장의 모든 출구엔 이 북의 진동을 전하는 나무 선이 있어요.'
“그건 제4문 나팔망과 독립적인가요?” 피엘이 물었다.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동선은 직원들이 대피할 때 쓰는 비상 설비였고, 자동 발송 기록과 연결되지 않았다. 하린은 극장 운영부에 임시 사용 승인을 요청했다. 대규모 송출 사고가 발생하면 관객과 직원에게 직접 대피 및 상황 안내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아린은 북을 양손으로 잡았다. 목이 아파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 방식의 신호를 보내는 날이었다.
“그런데 북을 치면 뭘 알려 주는 겁니까?” 토비가 물었다.
아린은 크게 세 글자를 썼다.
'확인 중.'
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네요. 당장 답이 없다는 것도 소식이니까.”
일행이 수동 통로로 들어가자 극장 내부의 온도가 달라졌다. 공연장의 금빛 장식 뒤에는 거친 나무와 녹슨 사다리가 숨어 있었다. 과거 음향 기사들의 작업복과 오래된 장화가 걸려 있었고, 먼지를 뒤집어쓴 비상등이 간신히 빛났다. 화려한 극장이 그동안 무엇에 기대 서 있었는지 보여 주는 공간이었다.
토비는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올랐다. 성검은 등에서 흔들려 자꾸 발판에 걸렸다. 그는 결국 검을 풀어 오스벨에게 건넸다.
“용사가 검을 내려놓는 날도 있어야죠.”
“드디어 현명해졌군.”
“저 대신 떨어뜨리지는 마세요.”
“그건 약속하지 못하겠는데.”
수동 통로는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왼쪽은 조명실로 이어졌고, 오른쪽은 나팔을 고정하는 쇠걸이의 꼭대기로 향했다. 조명실에서 근무하던 늙은 기사가 출입 표지를 보고 그들을 막아 섰다. 그는 지금의 극장을 반평생 지켜 왔고, 마법의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자막이 비치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장 났다는 이유로 무대를 부수면 안 됩니다.” 그가 말했다. “여기 있는 것 중에는 사람들이 겨우 얻어 낸 것도 많아요.”
아린은 칠판에 적었다. '부수러 온 게 아닙니다. 무대 밖으로 나간 말을 잠시 멈추려는 겁니다.'
기사는 아린을 알아봤다. 오래전 목소리를 잃은 뒤 그녀가 무대에 설 수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 손으로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기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오래된 승강대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승강대가 움직이자 아래 무대가 천천히 멀어졌다. 피엘은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천사는 날개가 있으면 높은 곳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피엘의 날개는 좁은 시설 내부에서 함부로 펼칠 수 없었다. 날개 하나를 잘못 움직이면 수십 개의 관이 흔들릴 것이다.
토비가 그를 힐끗 봤다. “천사도 높은 데가 무섭습니까?”
“추락하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전 아픈 게 싫어서 무서워요.”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때 바깥에서 진짜 화재 경고가 도착했다. 조명실 직원이 붉은 전화를 받고 항구 창고에서 연기가 피어난다는 사실을 전했다. 피엘은 긴급망 상태를 먼저 물었다. 예비 중계는 정상적이었고, 현장 구조대도 출동했다는 확인이 뒤따랐다. 조명실 기사는 그 보고를 듣고 나서야 승강대를 끝까지 올려 주었다.
높은 통로 중간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처럼 걷지 않았다. 은관을 따라 흘러나온 음성이 덩어리가 되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림자는 토비의 목소리로 말했다.
“농부야, 돌아가. 네 마을에 홍수가 났어.”
토비의 발이 순간 멈췄다. 고향의 강과 낮은 밭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정말 위험하다면 그는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의 발신인도 시각도 장소도 없었다.
“어느 강이요? 지금 언제고, 누구에게서 들었죠?”
그림자는 답하지 못하고 오스벨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냥 믿어. 대마법사가 하는 말이야.”
오스벨이 기가 막혀 웃었다. “내 목소리는 그런 데 쓰기 너무 아깝군.”
그림자가 이번에는 세아의 어머니 리네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세아야. 돌아오렴.”
세아는 양손으로 난간을 쥐었다. 눈앞에 어머니가 서 있는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세아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라면 왜 돌아오라는지 말해 줄 거예요. 그리고 내가 거절해도 내 얘기를 들을 거예요.”
그림자가 일그러졌다. 모든 말을 미리 채워 넣는 장치에게 질문을 돌려주는 사람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상대였다.
마지막 사다리에 이르자 관제부 직원 둘이 길을 막았다. 그들 역시 제4문의 자동 음성으로 '접근 금지'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피엘은 하린의 임시 보전 명령 사본과 담당 직원의 실제 연결 확인을 제시했다. 동시에 그들이 현장을 떠나기 전에 독립 중계에 따라 누구를 통과시켰는지 남길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도착한 무대 위 통제석에는 낡은 수동 레버가 있었다. 레버를 내리면 백색 합창단의 일반 송출관이 분리될 수 있었다. 실제 경고망은 다른 관으로 유지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관이 아직 완전히 분리됐는지는 로엔의 시험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자정까지: 20분.]
로엔의 통신이 닿았다.
[예비망 시험 완료. 실제 위험 경고 중계 유지 확인. 일반 음성 발송관 임시 분리 가능.]
토비가 기뻐하며 레버로 달려가려 하자 피엘이 손짓으로 멈췄다. “잠깐. 마지막으로 통제 권한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때 레버 위에서 피엘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허가 따위 묻지 마. 네가 직접 내리면 영웅이 될 수 있어.”
피엘은 그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에게서 도착한 독립 공동 서명을 확인하고, 미르다와 로엔에게 현장 작동 준비를 물었다. 두 사람이 각각 준비됐다고 응답했다.
그 순간 나팔이 한 번 크게 울렸다.
[대규모 발송 시각 재설정.]
[자정에서 지금으로 변경.]
별들이 일제히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제7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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