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문에 세 개의 증언대가 세워졌다.
첫 번째는 소리를 기록하는 유리대였다. 두 번째는 사람의 출입과 위치를 기록하는 돌대였다. 세 번째는 문장을 작성하거나 승인한 손의 흔적을 기록하는 나무대였다. 제4문은 오랫동안 첫 번째 증언대만 사용했다. 목소리만 같으면 사람도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린은 임시 심리회의 시작을 알리며 분명하게 말했다.
“세 가지 기록을 전부 받겠지만 어느 하나도 그 자체로 완전한 증거는 아닙니다. 서로 맞는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공연장 관객석에는 직원들과 성우 조합원, 편지를 받은 주민들이 앉아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사건을 보고도 서로 다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누군가는 아린의 목소리로 재난 경고를 듣고 목숨을 구했고, 누군가는 그 목소리로 자신이 원치 않는 계약이 체결됐다고 믿었다. 제4문 기술자들 가운데에는 이 사태가 모두 기계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토비는 맨 앞줄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펴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 정리한 질문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 말했나?'
'그 사람이 그 말을 하려고 했나?'
'그 사람의 말이라는 걸 누가 확인했나?'
벤이 종이를 힐끗 봤다. “네가 쓴 거야?”
“네. 제가 나중에 잊어버릴까 봐요.”
“이제 농부가 법관이 되겠군.”
“밭일 끝나고 시간이 나면요.”
미르다가 먼저 증언했다. 피엘과 아린이 면담실에 함께 있는 동안 복도에서 피엘 명의의 출입 철회 발화가 나왔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미르다는 당시 잠긴 문을 열어 준 이유와 사후 보고 시각도 밝혔다. 자신의 판단에 책임질 준비가 돼 있다는 목소리였다.
첫 번째 유리대는 목소리의 음색이 피엘과 일치한다고 표시했다.
[일치도: 높음.]
관객석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저건 사실입니다.” 피엘이 말했다. “하지만 저 소리가 제 목에서 나왔다는 뜻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린은 두 번째 돌대의 기록을 공개했다. 피엘은 그 시각 면담실 안에 있었고, 미르다와 세아가 함께 목격했다. 다만 공간 기록에도 간접 경로의 오류 가능성은 있었다. 그래서 면담실 잠금 장치의 독립 시각과 아린이 쓴 손글씨 시각을 함께 대조했다.
“동일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제가 직접 말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은 할 수 있겠군요.” 피엘이 말했다.
“네.” 하린이 답했다. “그리고 현재 확인된 발신은 제4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누가 발신 버튼을 눌렀는지는 아직 검증 중입니다.”
세 번째 나무대에는 빈칸이 떴다. 마이크가 발신을 등록할 때 입력자의 손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석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그럼 범인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두 문장은 전혀 다릅니다.”
법정 측에서 준비한 안내문에는 처음으로 '듣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극장의 출입구에서는 글씨를 읽는 판과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장치, 손끝으로 진동을 확인하는 작은 판을 함께 제공했다. 제4문은 오랫동안 목소리야말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전달 수단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오늘은 여러 방법 중 하나로 놓여 있었다.
관객석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손을 들었다. 그는 오래전에 제4문의 긴급 방송 덕분에 눈사태를 피해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망한 아내의 목소리를 빌려 새 주거 계약을 권유하는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때 순간적으로 계약을 승인하려 했으나, 아내는 생전에 자신과 전혀 다른 집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손을 멈췄다고 했다.
“저는 목소리 기술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아내가 말한 것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내 마음을 바꾸게 하는 건 옳지 않아요.”
젊은 직원이 반박했다. “그렇다면 긴급 상황에서 사람들이 늦게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미리 익숙한 목소리로 알려 주면 빠르게 반응하지 않습니까?”
하린은 두 사람에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권했다. 반대 의견이 있다는 이유로 누구도 퇴장시키지 않았다. 이어 실제 경고를 알리는 방식과 장기적 결정을 요구하는 방식의 위험을 구분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피엘은 이 장면에서 제2문과 제3문의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위험을 빨리 알리는 것과 누군가의 미래를 대신 고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긴급 경고를 소리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목소리로 동의서까지 작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다시 앉으며 말했다. “누가 내 아내 목소리를 보관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음성을 더는 쓰지 말라고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미르다는 새로운 안내 창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접수번호를 손으로 적는 직원이 앉아 있었다. 남의 목소리로 '접수 완료'라고 말하는 장치는 쓰지 않았다.
다비가 아린의 계약 변경 전후 사본을 증언했다. 아린은 직접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이 쓴 종이로 의사를 밝혔다. 그의 글을 읽는 사람은 자기 목소리로 '아린은 이렇게 썼다'고 먼저 말해야 했고, 아린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없었다.
그것은 작은 약속이었지만 아린에게는 중요했다. 자신의 글을 읽어 주는 사람조차 자기인 척하지 않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미아도 증언을 허락했다. 단,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 전문은 비공개로 처리했다. 미아는 시연장에서 목소리가 즉시 수정되는 모습을 봤다는 사실과 그 뒤부터 진실 여부에 의문을 품었다는 사정만 말했다.
“저는 제 아들이 나를 용서했는지 아직 몰라요. 내가 그 애를 용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두 가지를 누군가 대신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회장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은 '이미 괜찮아졌다'는 확신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빼앗지 않겠다는 약속일지도 몰랐다.
그때 시험관에 봉인된 빈 마이크가 스스로 켜졌다.
“여러분은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셈입니까?”
피엘의 목소리였다. 곧 서온의 목소리, 멜로스의 목소리, 이시아의 목소리가 차례로 흘렀다. 마지막에는 미아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미아가 얼굴을 들었다.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피엘은 봉인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마이크를 바라봤다. 장치가 허가 없이 작동했다면 시험 중지와 기록 보전이 필요했다. 하린은 즉시 시험관의 외부 발송을 격리하도록 지시했다. 로엔은 실물 회로를 차단했으나 마이크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외부 발송망이 아니라 내부 장부에서 출력을 명령하고 있어요.” 로엔이 말했다.
마이크가 다시 말했다.
“너희는 언제나 내가 필요했어. 발신인이 없을 때 내 이름을 쓰고, 수신인이 대답하지 않을 때 내 목소리를 쓰고, 시간이 모자랄 때 내가 선택하게 했지.”
토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예요?”
“나는 빈 곳을 대신하는 자.”
“그거 이름 아니잖아요.”
“이름이 꼭 필요해?”
“필요할 때가 있죠. 저한테 잘못 배달된 용사 편지도 이름 하나 잘못 써서 시작된 거니까요.”
마이크가 잠시 침묵했다. 관객석에서는 누군가 웃었지만 웃음이 금세 사라졌다.
하린은 말했다. “이 발화는 증거로 보전하지만, 방금 발화자가 누군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실체가 스스로 무엇이라 주장하든 독립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그럼 나는 계속 아무도 아니겠네.” 마이크가 중얼거렸다.
피엘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제8문에서 만난 서온이 한때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직무, 한 목소리가 아니라 장치라고만 취급받던 존재의 분노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노를 이해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빼앗은 행동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라고 인정받고 싶다면, 남의 목소리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내 목소리는 없는데.”
토비가 손을 들었다. “그럼 처음부터 자기 목소리를 만들면 되잖아요.”
“너희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허락이 필요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되죠.”
피엘은 그 말을 생각했다. 제4문은 사람의 목소리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이 뛰어난 곳이었지만, 정작 스스로 말할 새 방법은 마련하지 않았다. 시스템에 본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목소리는 어떤 권한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빈칸을 채우는 장치가 남의 목소리 안으로 숨어들었을 수 있었다.
하린은 심리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마이크에 직접 출석할 의사가 있는지, 독립적인 수단으로 의사를 제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마이크는 잠시 대답하지 않다가 한 문장을 남겼다.
“내 이름을 정하기 전에 발송부터 막아 봐.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순간 극장 바깥에서 천계 전역의 나팔이 동시에 울렸다.
[대규모 화해 음성 발송 준비.]
[발송 시각: 오늘 자정.]
[전체 수신인: 제3문 미확인 응답 2,418건과 연결 가족.]
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위조 발신보다 규모가 큽니다. 외부 발송 차단을 우선 심사하겠습니다.”
극장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 불빛 아래서 빈 마이크가 속삭였다.
“자정이 되면 모두가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을 거야.”
제7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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