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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75화
PAYLUA ORIGINAL · 제75화

75화. 마이크에 없는 숨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987자

오프라인 책장
제4문의 발송실에는 원고가 없는 마이크가 하나 있었다. 먼지 쌓인 단상 위에 세워진 낡은 기계였다. 다른 마이크는 옆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발송관에도 발화자의 작업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이크에는 이름표 대신 하얀 원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빈 마이크라는 게 바로 저건가요?” 토비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장치의 역할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로엔이 도면을 펼쳤다. 마이크 아래에서 곧게 내려간 관은 제1문 통합 발송망으로, 가지를 친 관은 제3문 자동 응답실과 제4문 음색 창고로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원본을 읽지 않아도 문장만 입력하면, 시스템이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고르는 구조였다. “애초에는 긴급 대피 안내용이었습니다.” 로엔이 설명했다. “담당자가 다치거나 시간이 부족할 때, 승인받은 표준 음색으로 필요한 경고를 보내도록 했죠.” 벤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임시로 사람 대신 말하던 장치가, 이제 발신인 대신 결정까지 내리는 거군.” 로엔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런 사용은 설계서에 없습니다.” “설계서에 없으니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순 없잖습니까.” 피엘이 말했다. 오후 햇빛이 바닥의 붉은 돌에 길게 누웠다. 공연장이 멀지 않은 탓에 벽 너머로 아이들이 합창을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노래는 조금씩 어긋났지만 기분 좋았다.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도 있었고 박자를 놓치는 아이도 있었다. 피엘은 그 작은 어긋남들이 모두 같은 음으로 덮여 버린 모습을 상상했다. 무대 아래 통제판에는 수천 개의 작은 램프가 들어왔다 꺼지고 있었다. 각 램프에는 발송받는 지역이 적혀 있었다. 눈이 쌓인 북쪽 마을, 모래바람이 잦은 서쪽 도시, 항구의 좁은 골목,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외딴 산장. 로엔이 손가락으로 램프를 짚자 아주 짧은 실제 경고가 지나갔다. 어디서 작은 화재가 났고 어떤 대피로가 열려 있는지 알려 주는 소리였다. “이건 정말로 사람이 사는 곳에 도움이 됐겠군요.” 토비가 말했다. “네.” 로엔이 대답했다. “저도 그걸 믿고 여기서 일했습니다.” “지금도 믿으면 안 되나요?” 로엔은 한참 생각했다. “지금도요. 다만 이 장치가 만들어 내는 모든 목소리를 믿으면 안 되겠죠.” 기술자에게는 그것이 쉬운 결론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설계한 소리의 관으로 고향 마을이 홍수 경고를 제때 받았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편지를 지금도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피엘은 편지를 보자고 하지 않았다. 그 기억이 기술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엔은 스스로 편지 끝의 문장을 읽어 주었다. '고마운 건 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위험에서 빼낼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예전엔 이 마지막 문장이 서운했어요.” 로엔이 웃었다. “내 기계 덕분이라고 써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오스벨은 복잡한 관들 사이를 걸으며 낡은 닭장 수리 도면을 떠올렸다. 잘못 배달된 신탁으로 닭을 키우던 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우스운 날들이었지만, 그때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문을 잘못 만들면 좋은 먹이를 줘도 닭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기계가 아무리 훌륭해도 출구는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지팡이 끝으로 도면의 한 점을 짚었다. “실험은 여기서 하게. 바깥으로 새지 않는 폐쇄 관이야. 실패하더라도 누군가의 실제 안내를 덮어쓰지는 않겠지.” 그들은 법정의 임시 보전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공개 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실제 주민에게 발송하지 않고 폐쇄된 시험관으로만 소리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로엔과 미르다가 공동 기록자로 참여했고, 하린은 원격에서 확인했다. 아린은 동의한 범위에서 자기 음색이 사용되는지 살펴볼 참관인 자격으로 앉았다. 피엘은 먼저 평범한 문장을 시험관에 입력했다. [시험 문장: 오늘 오후에는 비가 올 수 있습니다.] [발신 음색: 선택 대기.] 무대 아래 빈 마이크에서 오스벨의 목소리가 흘렀다. “오늘 오후에는 비가 올 수 있습니다.” 오스벨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내 말투는 저렇게 친절하지 않은데.” “그건 맞아요.” 토비가 말했다. “농부, 의견은 묻지 않았다.” 다음에는 세아가 자기 목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장을 고른 뒤 시험했다. 마이크는 그녀의 목소리로 정확히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피엘이 말했다. “나는 여기서 말한 적이 없는 문장을 한 적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이크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음색은 완벽했지만 끝에 숨이 없었다. 피엘은 문장 사이의 빈칸을 확인해 달라고 로엔에게 요청했다. 로엔은 놀란 듯 도면을 들여다봤다. “이 장치가 선택한 음성에는 생체 호흡 기록이 없어요. 이미 저장된 샘플을 이어 붙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제 목소리와 비슷하게 직접 말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네. 방금 시험으로는 우리가 만든 소리가 샘플형이라는 사실만 확인돼요.” 시험 마지막 순서에서 피엘은 의도적으로 아무 글자도 입력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런데 곧 따뜻한 피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대답해 줄게.” 시험관에서 누가 문장을 입력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공백이었다. 토비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저 말을 해요?” “이 장치는 누군가의 빈칸을 채우도록 연결돼 있는 겁니다.” 오스벨이 말했다. “명령문이 없을 때도 자기 목적을 따라 문장을 고르는 거지.” 마이크의 표면에 아주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발신 이유: 수신인의 불안 완화.] [승인자: 0000.] 피엘이 말했다. “누군가 듣기 편한 말을 전했다는 이유가, 그 말의 진실성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사람이 진짜로 불안할 때도 계속 모른다고 말할 거야?” 빈 마이크가 물었다. 여전히 피엘의 목소리였다. 피엘은 대답하기 전에 숨을 쉬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도울 수 있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겠지요.” “너는 이미 사람을 놓친 적이 있잖아.” 순간 피엘의 표정이 굳었다. 오래전 구호 사고와 소멸 명령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마이크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한 기록이 있다면 원본을 보여 주십시오.” “보면 또 다치겠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제가 하겠습니다.” 빈 마이크가 잠잠해졌다. 하린의 통신석에서 짧은 신호가 왔다. [시험 데이터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말하는 것이 자율적인 존재인지, 규칙을 가진 장치인지, 누군가가 원격으로 조종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화 내용만으로 단정하지 마세요.] 피엘은 답했다. “그렇게 기록하겠습니다.” 그때 로엔의 보조 기술자가 뛰어 들어왔다. 미아에게 예정된 화해 음성의 발송 대기표가 사라졌다고 했다. 발송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긴급 경고 목록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왜 사과 편지가 긴급 경고죠?” 세아가 물었다. “제4문 관제 기록에 따르면 ‘가족 관계 붕괴로 인한 긴급 보호’라고 합니다.” 벤은 낮게 중얼거렸다. “이젠 사람의 슬픔까지 재난으로 분류해서 마음대로 편지를 보내는군.” 하린은 긴급 계통의 남용 가능성을 기록해 즉시 심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발송 예정 시각까지는 오십 분도 남지 않았다. 한편 실제 화재 경고 두 건이 같은 회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모든 신호를 막는다면 구조대의 통신까지 끊길 수 있었다. 피엘은 로엔에게 실제 구조 경고의 발송관과 분리 가능한 지점을 찾아 달라고 했다. 로엔이 도면을 펴고 선을 따라가자 벤이 그림을 들여다봤다. “이 지점에서 사과 편지만 막으면 되겠군.” “안전해 보이지만 시험은 필요합니다.” 로엔이 답했다. “잘못 건드리면 시간 정보를 잃을 수도 있어요.” 아린이 작은 칠판에 썼다. '내 목소리를 쓴 경고는 계속 전하세요. 내 목소리를 써서 내가 하지 않은 약속을 만드는 건 막아 주세요.' 그 단순한 문장이야말로 모두가 구분하려던 경계였다. 미아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던 화해 음성을 잠시 멈추기 위해 로엔은 예비 분리 절차를 시험했다. 먼저 외부 발송을 모두 막은 폐쇄관 안에 가짜 사과문을 넣었다. 그런데 장치는 '긴급'이라는 단어를 알아듣자 문장을 자동으로 줄였다. '어머니가 더는 기다리지 않도록'이라는 해석이 덧붙었고, 마지막에는 '구호 목적'이라는 새 표지가 붙었다. “보세요.” 로엔이 말했다. “문장을 읽는 장치가 문장의 목적까지 바꿔 버렸어요.” 피엘은 시험 전 원고와 시험 후 원고를 나란히 놓았다. 추가된 말이 누구의 판단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뀐 글씨의 흔적은 분명히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긴급 구호 계통을 이용하는 것이 정당한지 다시 따질 근거가 됐다. “실제 위험이 있으면 사람을 구하고, 마음에 위험이 있을 때는 마음을 대신 결정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군요.” 세아가 말했다. 오스벨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싶을 수는 있어. 그러나 위로를 만들어 내는 일과 진실을 만들어 내는 일은 다른 거야.” 로엔은 시험관을 닫아 봉인하고 외부망 복귀를 거절했다. 남은 문제는 누가 긴급 표지를 붙일 권한을 갖고 있는가였다. 그 권한은 다시 하얀 원, 0000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임시 분리 시험을 준비하는 사이, 지하 관제실의 검은 유리에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얼굴은 없었다. 다만 빈 자리를 둘러싼 흰 윤곽만 있었다. “나는 그저 대답이 없는 곳을 채운다.” 토비가 물었다. “누가 시켰는데요?” “늘 누군가가 시켰지.” “이름이요.” 그 얼굴 없는 윤곽이 토비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이름을 묻는 사람은 언젠가 자기 이름도 잃는다.” 토비는 성검의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그건 협박이에요? 아니면 예언이에요?” 피엘이 말했다. “어느 쪽이든 확인되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자 빈 마이크가 처음으로 피엘 아닌 목소리로 웃었다. 서온의 목소리였다. “여전히 나한테 배운 말을 써먹네, 피엘.” 통신석 너머의 진짜 서온이 동시에 외쳤다. [저건 내가 아니야!] 동일한 목소리 두 개가 서로 다른 곳에서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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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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