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의 충돌 경보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수천 장의 종이가 동시에 찢어지는 소리였다. 시계탑 벽에서 얇은 균열이 퍼져 나갔고, 그 사이로 하얀 봉투들이 쏟아졌다. 봉투마다 이미 찍힌 '동의 완료' 도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봉투들이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공중에 멈춰 있었다.
멜로스는 관제석을 붙잡았다. “제3문 독립 보전권을 발동했습니다. 원본 이전은 멈췄지만, 오래 버티진 못합니다. 최종 판단을 받을 때까지는 대체 운영이 필요해요.”
피엘은 하린에게 통신했다. 사건의 경위와 현장 긴급 경고망 운용 상황, 보존고 손실 가능성, 기록 조작 의혹을 설명했다. 하린은 듣는 동안 몇 번이나 질문을 끊어 확인했다. 실제로 입증된 것과 아직 의심 단계인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정리하겠습니다. 제3문에서 자동 동의 변환이 있었고, 확인 가능한 원본들과 불일치했습니다. 긴급 경고는 별도 중계로 실제 전달됐으며, 자동 정산 장치와 원본 이전 절차에는 임시 정지가 걸려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제3문 전체의 신탁 효력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의 서류가 한꺼번에 취소됐다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필요한 범위의 임시 보전을 신청하겠습니다.]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히 바꾸는 판단을 당장 내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은 누군가의 말을 멋대로 바꾸는 자동 장치를 잠시 멈추고, 그 사이 수신인들이 실제로 답할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하린은 관제관 멜로스와 현장 직원들의 이름, 독립 확인 기록, 시각별 발송 현황을 받아 갔다. 멜로스가 직접 서명하자 관제탑의 벽에 붙어 있던 시계 하나가 멈췄다. 그러나 모든 시계가 사라지진 않았다. 현재도 진행 중인 구호 통신과 수신 확인 업무는 별도 경로로 유지되고 있었다.
토비는 바닥에 흩어진 봉투를 쓸어 담으려다가 멈췄다. “이것들도 주인이 있겠죠?”
“그렇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먼저 번호를 확인하고 봉투가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젠 저도 압니다. 아무 편지나 주워서 갖다 주면 또 오배송이 되니까요.”
그는 바닥에 구역을 나누고 직원들이 봉투를 원래 번호대로 모을 수 있도록 도왔다. 벤은 종이상자마다 잘못 찍힌 도장과 원문을 구별할 표시를 붙였다. 오스벨은 젖은 봉투를 말리는 마법을 썼지만 안쪽 글씨는 건드리지 않았다. 세아는 네라에게서 받아 둔 독립 사본 번호들을 대조했다.
그들은 누가 영웅인지 따질 틈이 없었다. 무너질 뻔한 장부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나눴다.
한 시간 뒤 법정의 긴급 심리 통신이 열렸다. 화면에는 루셀이 앉아 있었다. 그는 제1문 사건과 제8문 반송 심리를 맡았던 때보다 훨씬 지친 얼굴이었다.
“피엘. 이번에는 무슨 문을 열었나?”
“제3문의 답장 출구입니다.”
루셀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를 보면 문에 경첩을 달지 말아야 하나 싶군.”
“그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못 나옵니다.” 토비가 옆에서 말했다.
벤이 웃었다. “훌륭한 법률 의견이군.”
루셀은 피곤한 얼굴로 웃다가 다시 엄숙해졌다. “농담은 기록에서 빼게. 사건을 듣겠다.”
도린이 먼저 나왔다. 그는 검증관으로서 현장에서 직접 본 동의 변환 사실을 증언했다. 다만 자신이 직무 정지 대기 상태였으므로 이후의 검증은 독립 참관으로 이루어졌다고 구분했다. 멜로스는 자동 정산 체계를 유지했던 이유와 자신이 잘못 판단한 부분을 설명했다. 긴급 구호망을 막을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무응답을 일괄 동의로 처리한 관행을 오랫동안 방치했다고 인정했다.
그다음 네라가 원격으로 출석했다. 네라는 자신이 보관한 모든 병을 증거로 내놓지 않았다. 공개에 동의한 하루의 사본과 몇 명의 주민이 별도로 허락한 기록만 제출했다. 거절이나 망설임을 멋대로 공개하는 것도 원문을 빼앗는 일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직접 수어로 증언했다. 화면의 통역 자막이 그 뜻을 옮기는 동안, 법정에서는 누구도 그의 말을 대신 끝맺지 않았다.
[나는 대장장이 일이 싫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내 삶을 대신 정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손으로 일하는 목수이고, 제 딸에게도 선택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리아는 아버지의 곁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길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앞으로 어떤 일을 배우고 싶은지 물어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루셀은 피엘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지금 법정에 무엇을 청구하나? 제3문의 지난 모든 결정을 무효로 하라는 것인가?”
“아닙니다. 개별 수신자의 실제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일괄 무효를 선언하면, 필요한 보호나 구호까지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원본과 변환본의 별도 보전, 신규 자동 동의 처리의 임시 중단, 적법한 반대와 무응답의 재분류 절차를 청구합니다.”
“지속 중인 구호는?”
“실제 위험에 대한 통신과 지원은 독립 유지해야 합니다. 그 조치가 장기 신탁에 대한 동의를 만든다고 보지 않아야 합니다.”
루셀은 멜로스를 바라봤다. “관제관, 실무적으로 가능한가?”
“전면 정상화는 아직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범 운영은 가능합니다. 지금도 일부 통신은 분리해 운영 중입니다. 검증과 정지 권한이 필요합니다.”
세아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요청했다. “답장을 쓸 때 꼭 누군가의 정답에 맞춰야 한다는 규정도 확인해 주세요. 아직 답을 모르겠다는 사람에겐 그렇게 적을 칸이 있어야 해요.”
루셀은 한동안 자료를 읽었다. 화면 너머로 법정의 시계가 세 번 움직였다. 아무도 그 침묵을 찬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 판사의 검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결정문이 도착했다.
[제3문 신규 무응답 자동 동의 변환: 임시 중단.]
[원본 응답 및 자동 변환 결과: 분리 보전.]
[긴급 구호·안전 경고: 독립 운용 유지.]
[기존 효력의 개별 검토: 수신자 통지 후 순차 진행.]
[판단 불가능한 응답: '확인되지 않음'으로 기록.]
[재검증 담당: 관제관 단독이 아닌 독립 공동 점검.]
결정문을 읽은 도린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평생 처음 보는 문장 때문이었다. '확인되지 않음.' 그것은 제3문에서 오랫동안 실패를 뜻하는 말이었다. 아무 결과도 없는 장부를 상사에게 내밀 수 없으므로 직원들은 늘 무언가를 완료로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모른다는 말이 정식 기록의 한 칸을 차지했다.
멜로스는 자신의 손목에서 마지막 시계를 풀었다. 새로 시작하는 분리 검증에 관제관의 이름도 넣겠다고 했다. 다만 독립 점검자가 그의 기록을 검토하고, 피해 당사자들이 이의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제3문을 완전히 고쳤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직도 제 서명이 따라붙은 기록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확인해야겠지요.” 피엘이 말했다.
리아의 작업장에선 다음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하루의 대패와 작업장은 최종 소유권 판단 전까지 임시 사용이 허용됐고, 리아의 견습 배정은 본인 의사 확인 전까지 보류됐다. 두 사람은 축하 파티 대신 오래 미뤘던 문 하나를 마무리했다. 그 문에는 누구나 당길 수 있는 평범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네라는 가게 앞 간판을 새로 썼다. ‘잉크 판매. 답장 보관.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글자를 다 적고 보니 마지막 문장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바스에게 간판을 보여 줬다. 바스는 웃으며 동전을 한 닢 올려놓았다.
“오늘부터는 대답 안 해도 돈 안 받겠네.”
“전 원래 돈 안 받았어요.”
“그러니 내가 여기서 제일 손해 본 장사꾼이지.”
제3문에서 떠날 시간이 됐다. 피엘은 하린에게 사건 기록을 인계하면서 삼백 년 전 자신의 동의서로 표시된 문서의 검증 결과를 확인했다. 개인 실서명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문서는 자동 표지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누가 그 표지를 무단으로 발신 효력에 사용했는지는 여전히 조사 중이었다.
서온은 통신으로 말했다.
[네 이름을 지우지 못한 건 다행이야. 하지만 내가 너였다고 기록된 날들도 아직 남아 있겠지.]
“함께 확인합시다. 다만 어떤 문서든 당사자의 말보다 앞서 결론 내리지 않도록요.”
[너 정말 변했구나, 피엘. 예전 같았으면 전부 내가 정리하겠다고 했을 거야.]
피엘은 잠시 생각하다 웃었다. “예전의 저였다면 그랬을 겁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러고 싶습니다.”
[그럼 다행이지. 아직 너라는 뜻이니까.]
일행이 제3문을 나서는 순간, 오래된 보존고에서 작은 봉투 하나가 다시 움직였다. 사라진 목소리의 흔적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독립 기록을 바탕으로 생성된 이전 요청서였다.
[제4문 이관 안내.]
[이관 대상: 제3문에서 동의했다고 처리된 모든 목소리의 원본 음성.]
[제4문 관리 항목: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했는가.]
토비가 한참 봉투를 바라보았다.
“이제 누가 대답했는지도 모자라, 누가 말한 것처럼 들렸는지를 조사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벤은 뒤늦게 어깨를 폈다. “드디어 내 전문 분야가 나왔군. 목소리 흉내는 마계에서도 오래된 기술이지.”
“그럼 믿으면 안 되겠네요.” 토비가 말했다.
“아니, 난 전문가라니까!”
“그래서 더 못 믿겠어요.”
일행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제3문의 출구는 그 소리를 더 이상 동의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누군가 웃은 건 웃은 것이고, 대답하지 않은 건 아직 대답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제4문으로 향하는 통로 끝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피엘 자신의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대답해 줄게.”
어디선가 검은 봉투가 접히는 소리가 났다.
피엘은 발걸음을 멈췄다. 목소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라고 믿어서는 안 됐다. 그렇다고 그것이 거짓이라고 미리 단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독립 기록석의 시간을 확인하고, 새로운 문 앞에서 말했다.
“제 목소리를 쓰시는 분. 당신이 누구인지 먼저 묻겠습니다.”
문 저편에서 웃음이 돌아왔다.
“네가 그 질문을 할 줄 알았지. 그래서 이번엔 네 입을 빌리지 않아도 돼.”
제4문의 표지가 붉게 빛났다.
[목소리 원본 대조 진행 중.]
[원본 소유자: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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