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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67화
PAYLUA ORIGINAL · 제67화

67화. 파란 불꽃이 삼킨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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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불꽃은 종이를 태우지 않았다. 그보다 끔찍한 일을 했다. 불꽃이 닿은 거울에서 말과 손짓이 사라졌다. 사람의 모습은 남아 있었지만, 입을 열거나 손을 움직이던 순간만 텅 빈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라진 동작은 보존고 바닥의 거대한 도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리 대상: 미승인 원본 응답.] [정리 후 분류: 무응답.] 세아가 손을 뻗었다. 피엘은 그녀를 막았다. “직접 만지지 마세요. 몸에 닿으면 어떤 영향이 생길지 모릅니다.” “저 안에 어머니의 대답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안전하게 멈추는 방법을 찾겠습니다.” 오스벨은 지팡이를 돌려 보존고 전체에 방호막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거울이 너무 많았다. 한곳을 감싸면 다른 곳이 빠르게 지워졌다. 그는 곧 방향을 바꿨다. “불꽃의 공급로가 있을 거야. 저 도장이 불꽃을 받아들이고 있네.” 토비가 도장 옆에 깔린 유리 홈을 발견했다. 홈에는 맑은 물 대신 잉크가 흐르고 있었다. 바깥 인쇄실에서 내려오는 물길이었다. 토비는 홈을 막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그러나 급히 찢어 넣은 천 조각은 순식간에 파랗게 물들어 버렸다. “삽이 작아요!” 벤이 외쳤다. “저런, 오늘만큼은 용사의 무기가 도움이 안 되겠군!” “도와줄 거면 저쪽 수문을 잡아요!” 벤은 군말 없이 수문에 매달렸다. 차가운 금속이 손을 타고 검은 잉크를 묻혔다. 잠깐 사이 그의 손가락에서 오래전 자신의 계약 문구가 떠올랐다. '미답장자는 대리인의 판단을 인정한다.' “이 망할 문장!” 벤은 손을 털었다. 그 대신 손등의 마계 인장을 꺼내 잠깐 수문에 붙였다. 사악한 계약을 뜻하던 낙인이 역으로 잉크의 흐름을 붙잡았다. 그가 허락하지 않은 계약을 자기 이름으로 만들 수 없듯, 자신의 인장이 붙은 통로에서는 무단 전송이 잠시 멈췄다. “오래는 못 버텨!” 멜로스가 관제용 열쇠를 들어 올렸다. “보존고 내부의 정지 손잡이를 작동시키겠습니다. 그동안 제3문 응답 처리 전체가 잠깐 지연됩니다.” 피엘은 한 번 더 확인했다. “긴급 구호 통신은요?” “마리안 씨가 검증한 독립 경고망은 그대로입니다. 제3문에 남은 중계망은 수동 담당자에게 넘기겠습니다. 제가 서명하겠습니다.” 그는 도린에게 명령하지 않고 물었다. “직무 정지 대기 상태인데도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도린은 자신의 명찰을 꺼냈다. 붉은 글씨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공식 승인 권한은 없어요. 하지만 중계망에 있는 직원들에게 현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순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뒤 도린의 통신으로 세 명의 직원이 응답했다. 모두 자기 업무의 범위를 확인하고 중계 감시를 맡았다. 멜로스가 수동 전환 레버를 당기자 인쇄실의 도장이 흔들렸다. [자동 기록 정리 중단.] [중단 책임자: 멜로스.] “그래.” 멜로스가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내 이름으로 남겨라.” 파란 불꽃이 꺼지는 순간, 보존고에 남아 있던 거울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오스벨의 방호막이 거울을 받아 냈다. 그러나 이미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 몇몇 거울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토비는 젖은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다 구한 건 아니네요.”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존 상태와 손실 범위를 따로 기록해야 합니다.” 그는 사라진 기록을 멋대로 복원하지 않기로 했다. 지워진 목소리를 되살린다며 새로운 문장을 써 넣는다면, 그 역시 다른 사람의 말을 대신 만드는 일이었다. 대신 독립 사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네라에게 연락했다. 네라는 화면에서 불에 그을린 거울을 보고 기겁했다. [내 병들 중 몇 개가 같은 번호예요. 다는 아니겠지만 비교할 수 있어요. 그리고 허락을 받은 사람들의 기록만 보내 드릴게요.] 세아는 거울 한 장을 조심스럽게 집었다. 잿빛 유리 안쪽에는 어린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젓는 장면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동의라고 해석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소녀는 아마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피엘은 그 거울의 번호만 적어 두었다. 바닥에 떨어진 거울 하나에서 여자의 그림자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피엘은 그림자의 동작을 해석하려다가 멈췄다. 제3문은 오랫동안 바로 그 방식으로 남의 대답을 서둘러 해석했다. 그림자만 보고 허락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저 거울은 누구의 것입니까?” 세아가 물었다. 멜로스가 번호를 확인했다. “오래전 기도문을 받았던 한 여인의 응답 기록입니다. 수신인의 이름은 보호 처리돼 있습니다.” 거울 속 여인은 빗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쥔 종이를 폈다가 접었지만 마지막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자동 기록에는 '도움 거부'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도움 거부가 아닐 수도 있어요.” 세아가 말했다. “어떤 도움을 주겠다는 건지 모르니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고요.” 오스벨은 거울의 마지막 장면을 천천히 돌려 보았다. 여인은 종이를 접은 뒤 다친 사람을 등에 업고 길을 나섰다. 말 대신 행동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추측이었다. 피엘은 추측이란 표시와 함께 관찰 사실만 적었다. 그때 보존고의 불꽃이 조금씩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기록 원본을 보관하는 장치가 사람들의 행위를 깔끔한 한 문장으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토비가 말했다. “저 거울들을 옮기면 안 되나요? 일단 도장이 안 닿는 쪽으로요.” “어디로 옮기면 안전한지 알아야 합니다.” 피엘이 말했다. “저기 선반은요?” 멜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선반은 이미 이전 발송 통로와 연결돼 있습니다. 옮기는 순간 제4문으로 갈 수도 있죠.” 세아는 보존고 지도를 펼쳤다. 옛 도면에는 사용하지 않는 냉각실이 있었다. 잉크가 굳어 안정화될 때까지 놓아두는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자동 발송 장치가 붙어 있지 않았다. “일시 보관은 저기서 가능할 것 같아요.” 세아가 제안했다. 멜로스는 냉각실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수동 보관 권한을 내주었다. 그들은 보존 번호를 붙인 거울부터 하나씩 옮겼다. 토비는 무거운 상자를 맡았고, 세아는 깨지기 쉬운 거울을 천으로 감쌌다. 벤은 검은 실을 써서 보관 상자의 봉인이 누군가의 개인 서명으로 오인되지 않게 만들었다. “마법이 이렇게 쓸모없고 번거로운 일에 쓰이는 게 신기하지?” 벤이 물었다. “그러게요.” 세아가 대답했다. “그런데 오늘 제일 도움이 되네요.” 벤은 오랜만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남의 영혼을 묶는 일을 위해 만들어진 힘을, 남의 목소리를 지키는 데 쓰는 날이 낯설었다. 정지된 불꽃은 여전히 바닥에서 작은 파동을 만들고 있었다. 멜로스는 보존고에 남은 미처리 문서 수를 세었다. 네라는 일부 사본을 갖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 사라진 모든 음성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손실 확인이 끝나기 전엔 누구에게도 전부 지켰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멜로스가 말했다. “그 말이 제일 어려울 겁니다.” 도린이 답했다. “누가 물어보면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피엘은 보존된 상자마다 확인된 내용과 아직 알 수 없는 내용을 따로 적었다. 상자 하나에서 아무 말도 없었다는 이유로 기록을 비우지는 않았다. 다른 상자와 혼합되지 않도록 봉인 번호를 기록했다. 토비는 상자 옆에 앉아 끊어진 손잡이를 고쳤다. 리아가 만들던 초록색 문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문을 여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굳이 모든 문에 똑같은 열쇠를 만들어 꽂을 필요는 없었다. “왜 웃어요?” 벤이 물었다. “오늘은 제가 잘라 내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요. 성검을 쓴 건 한 번도 없는데 일이 끝나 가네요.” 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 내 멋진 희생 장면이 안 나왔거든.” “굳이 희생하실 필요 없어요. 수문을 지켜 주신 걸로 충분합니다.” 벤은 고개를 돌렸지만, 까맣던 귀 끝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보존고의 가장 안쪽에는 낡은 나무문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거울들과 달리 불꽃이 닿지 않았다. 문 위에는 세 종류의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첫째는 입으로 하는 말, 둘째는 글로 적은 문장, 셋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의 빈칸이었다. 멜로스는 문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이 문은 내가 잠근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말하든, 말하지 않든, 모두 하나의 정답으로 바꾸지 말라는 뜻이었겠죠.” “열 수 있습니까?” 세아가 물었다. “세 자물쇠를 동시에 열어야 합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다시 잠깁니다.” 토비가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말하고, 세아 씨가 적고, 벤 씨는 입을 다물면 되겠네요.” 벤이 코웃음을 쳤다. “가장 어려운 일을 내게 맡겼어.” 오스벨이 웃었다. “정말 어려울지도 모르겠군.” 피엘은 잠시 생각했다. 마지막 빈칸을 동의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는 장치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 대신 누군가가 정답을 외쳐서 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문을 시험하려는 동안 누구의 선택을 강제하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 문은 비상 탈출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먼저 설명서를 찾겠습니다.” 그때 문 뒤쪽에서 작은 두드림 소리가 들렸다. 셋, 둘, 한 번. 불규칙하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리아의 손짓을 기억하던 세아가 눈을 크게 떴다. “하루 씨가 하던 방식과 비슷해요. 저건 누군가 문 너머에서 답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도린이 고개를 저었다. “문 뒤에는 누구도 없도록 봉인된 곳입니다.” 두드림이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벽 너머로 종이가 미끄러졌다. [살아 있는 사람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대리 답장은 접수하지 않습니다.] 피엘은 오래된 문 앞에서 자신의 손을 내렸다. “제가 대신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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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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