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64화
PAYLUA ORIGINAL · 제64화

64화. 동의는 인쇄되는가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5,142자

오프라인 책장
멜로스의 관제탑에는 창문이 없었다. 대신 탑의 벽 전체가 시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시계, 달을 따라 움직이는 시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첫 울음을 세는 시계. 서로 다른 시간이 한꺼번에 흐르자 탑 바깥에서도 바늘 소리가 비처럼 들렸다. “이런 건 어떻게 청소하죠?” 토비가 물었다. “모른 척하면 저절로 깨끗해지는 모양이야.” 벤이 대답했다. “여기 직원들의 실적표도 아마 그런 식으로 관리할걸.” 오스벨은 시계 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네. 이 바늘들은 시간을 재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을 세고 있어.” 시계마다 아주 작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어떤 것은 주인이 오래전 사망한 이름이었다. 어떤 것은 이름 없이 '아직 미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느 순간 '동의 완료'라는 말로 바뀌었다. 도린이 말했다. “제3문에서는 대답을 기다리는 편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끝나면 정산합니다. 정산하지 않으면 장부가 끝없이 늘어나고, 보호 신탁이 어디까지 전달됐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대기 건수를 정리하는 것과 동의를 만드는 건 다른 일입니다.” 피엘이 말했다. 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명찰에는 여전히 직무 정지 대기라는 작은 붉은 글씨가 떴다. 피엘은 도린이 독립된 증언자로 동행한다는 사실을 기록했지만, 그에게 공식 권한이 있다고 적지는 않았다. 그런 작은 구별들이 나중에 누군가의 결정을 바꿀 수 있었다. 관제탑의 출입구 앞에는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낡은 외투를 입은 그는 손톱으로 오래된 동전을 굴리고 있었다. 토비가 다가가자 노인은 통행료라고 말했다. “얼마인데요?” “한 번 대답하면 한 닢.” “네?” 노인은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방금도 대답했지. 한 닢.” 토비는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싱긋 웃었다. “이번엔 대답 안 했으니 두 닢이다.” 벤이 손바닥을 쳤다. “이 사람 제자 삼고 싶은데.” 세아가 앞으로 나섰다. “아저씨, 장난하시는 거죠?”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쯤 당해 봐야 이 탑의 규칙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지. 난 이 앞에서 한평생 매표를 했어. 처음엔 사람들이 웃었지. 나중엔 울더군.” 그의 이름은 바스였다. 젊은 시절 탑의 경비원이었지만 관제관에게 '정산 규정을 알리는 농담'을 했다는 이유로 전보된 사람이었다. 지금은 손님들에게 통행료를 받는 척하면서 답할 자유를 빼앗기는 기분을 알려 주고 있었다. 피엘은 그에게 길을 물었다. 바스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다만 제3문의 이의 출구는 창고로 폐쇄됐고, 출입 기록에는 언제나 '방문객 없음'이라고 남는다고 했다. “본 적이 있습니까?” “봤지. 내가 문지기였으니까. 그러나 봤다는 내 말도 공식 답장에는 없었다더군.” 그는 작은 철 열쇠를 꺼냈다. 열쇠는 이미 반쯤 부러져 있었다. “전 이걸 가지고 있지만 쓸 생각은 없네. 열쇠가 문을 열면 내 이름으로 열었다고 기록되거든. 그러면 내가 지하에 모아 둔 사람들의 반대까지 내 답장에 종속될 거야.” “그럼 다른 길은 없습니까?” “있지. 직접 문을 열 권리를 되찾으면 돼. 손잡이를 가진 사람이 허락을 요구하지 않고도 열 수 있던 시절처럼.” 그는 하루가 만든 도면을 보자 손가락을 떨었다. “이게 아직 있단 말인가?” “남은 도면입니다.” 피엘이 말했다. “아니, 손잡이는 생겼군. 그럼 길도 살아 있을지 몰라.” 바스는 길을 알려 주면서 작은 장부를 하나 더 내밀었다. 그가 노년에 직접 적은 배달 경로 기록이었다. 그 장부에는 제3문의 공식 도장 대신 흙과 빗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건 사람들이 실제로 어디로 갔는지를 적은 거네. 시스템이 어디로 갔다고 믿는지가 아니야.” 세아는 장부를 펼쳤다. 어린아이처럼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주소 하나하나 옆에 작은 그림이 있었다. 우물을 새로 판 집에는 두레박, 달아난 개를 찾은 집에는 강아지 얼굴, 창문을 깨뜨린 집에는 빗금. “이렇게까지 적으셨어요?” “길만 외우면 누가 거기 살았는지 잊거든. 난 그게 싫었네.” 노인은 장부를 내밀며 조건을 붙였다. 피해 주민의 집과 이름이 밖으로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피엘은 마을 출입 가능 경로만 사용하고, 개인 기록은 원주인의 허락 없이 복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바스는 피엘을 노려봤다. “말은 다들 그렇게 하지.” “맞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어떤 정보를 썼는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도록 사용 기록도 남기겠습니다.” 노인은 그제야 장부를 넘겨주었다. 도린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수로로 들어가는 일은 제3문의 공식 조사 절차가 아닙니다.” “그 사실도 기록하겠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정식 출입 협조를 먼저 요청했으나 보존고 접근이 거절된 이유도 함께 남겨야 합니다.” “관제관 허가를 받지 못하면 위험한 접근은 피해야 해요.” “맞습니다. 그러니 인쇄실 바깥에서 현장 확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구역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바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은 내가 알려 주지만, 어디까지 갈지는 현장에서 정해야겠지. 장부에 있는 길이 지금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순 없네.” 그들은 토비에게 먼저 출입 가능한 배수 시설을 확인하게 하고, 관제탑 유지보수 담당자에게 위험 구역 지도를 요청했다. 무모하게 뛰어들기보다 속도가 늦어졌지만, 덕분에 물레방아의 비상 우회 수문을 미리 알 수 있었다. 바스는 다 낡은 열쇠 대신 지하 배수로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제3문의 인쇄 장치는 날마다 잉크와 종이 찌꺼기를 씻어 내야 했다. 배수로를 통해 창고 아래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험한 길이었다. 마법 잉크는 피부에 닿으면 타인의 문장을 자기 목소리로 읽게 만드는 성질이 있었다. 벤이 말했다. “그러면 내가 앞장서지. 마계 잉크의 기본 성질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위험합니다.” 피엘이 말렸다. “나도 알아. 그래서 물어보잖아. 나 혼자 판단해서 가도 되는지.” 피엘은 잠시 생각했다. 네라에게 보호용 장갑과 잉크 중화제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벤은 한숨을 쉬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뒤 그들은 배수로 입구에 섰다. 네라가 가져온 장갑은 코끝까지 올리면 잉크 냄새를 덜 맡을 수 있는 방수천과 함께였다. 오스벨은 물길을 잠시 늦추는 마법을 준비했고, 토비는 빗물받이에 막힌 나뭇가지를 치울 작은 삽을 챙겼다. “왜 성검을 안 쓰죠?” 벤이 물었다. “하수관은 베면 안 되잖아요. 물이 어디로 샐지 모르니까.” 제3문의 대답을 훔쳐 가는 기술보다 농부의 상식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지하에는 서늘한 물소리가 퍼져 있었다. 바닥은 반투명한 잉크로 끈적거렸고, 벽에는 누군가가 적었다 지운 문장들이 남아 있었다. '싫어요', '잘 모르겠어요', '기다려 주세요'. 잉크가 아래로 흘러내릴 때마다 글자들이 합쳐져 하나의 말이 되었다. '예.'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피엘은 수첩 대신 독립 기록석을 켰다. 벽에서 흘러내리는 문장의 변환 과정을 그대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배수로 끝에서 오스벨이 손을 들었다. 앞에 사람 키보다 높은 커다란 바퀴가 나타났다. 바퀴 사이를 지나가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고, 움직이는 날개에 닿으면 그대로 인쇄실로 끌려갈 위험이 있었다. “멈춰야겠군.” 오스벨이 말했다. “마법으로요?” “아니. 물레방아라면 물부터 살피는 게 낫지.” 토비가 삽으로 옆 수문에 낀 진흙을 파냈다. 물줄기가 작은 우회로로 흐르자 바퀴의 속도가 천천히 줄었다. 그들은 안전하게 통과했다. 하지만 물레방아가 정지하자 탑 전체에 경보가 울렸다. [자동 동의 생산량 저하.] [비인가 유지보수 감지.] 오스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인쇄가 아니라 생산이라고 부르는군.” 우회 수문 옆에는 낡은 출입표가 붙어 있었다. '시설 관리 통로 끝. 이곳부터는 기록 처리 구역.' 도린이 표식을 읽고 황급히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제 권한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피엘은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유지보수 구역과 기록 처리 구역의 경계에 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위의 작업장에서 이미 위험한 인쇄가 진행되고 있었다. 피엘은 관제실로 연락해 현재 위치와 시설 결함을 보고했다. 자동 안내에서는 '유지보수 종료 후 퇴실'이라는 응답만 반복됐다. 그 순간 벽 너머에서 롤러가 크게 삐걱이며 멈췄다. 좁은 틈으로 검은 종이가 밀려 나오고 있었다. 오스벨이 틈 밖으로 손을 대지 않은 채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저 종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네.” “기다리십시오.” 피엘이 답했다. “보고를 남겨야 합니다.” 일행이 경계선을 넘지 않고 기다리자, 현장에 설치된 허가 확인기가 작동했다. 피엘은 유지보수 수문의 오류와 잉크 누출 상황을 관제실에 통지했고, 관제실은 시설 조사 범위에 한정해 기록 처리실 입구의 임시 출입을 허용했다. 대신 설비를 건드릴 수 없으며 관제관이 도착하면 즉시 현장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피엘은 임시 접근 허가의 시각과 범위를 적었다. 그때 비로소 그들은 인쇄실의 문턱을 넘었다. 그들이 허가받아 들어간 곳은 창고가 아니었다. 수천 개의 편지를 돌리는 거대한 인쇄실이었다. 움직이는 롤러 위로 종이들이 지나갔고, 위쪽에서 내려온 검은 잉크가 모든 문장의 마지막을 같은 단어로 덮었다. [동의합니다.] 롤러 끝에는 두 개의 통로가 있었다. 하나는 빛나는 수신 확인 창구로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벽돌로 봉쇄돼 있었다. 벽돌 사이로 작은 나무 손잡이의 형태가 보였다. 세아가 속삭였다. “이게 하루 씨가 말한 문인가 봐요.” 그때 천장에 달린 확성기에서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침묵을 동의로 처리하는 것은 편의를 위한 조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때 기다리다가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뒤이어 인쇄실 위의 유리 다리로 회색 망토를 걸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한쪽 팔에는 수십 개의 시계가 매달려 있었고, 손에는 낡은 구급 편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제3문 관제관 멜로스입니다. 여기까지 오신 손님이라면 저에게 질문할 자격은 있겠군요.” 피엘은 벽을 타고 내려가는 검은 잉크를 보았다.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왜 사람들의 말을 바꿔 인쇄합니까?” 멜로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확성기에서 자동으로 목소리가 흘렀다. [관제관 멜로스: 이의 없음.] 그 순간 멜로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6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6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