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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8화
PAYLUA ORIGINAL · 제48화

48화. 서온의 이름으로 온 편지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839자

오프라인 책장
서온이 제1문에 도착한 방식은 천계의 규정을 세 개나 어겼다. 첫째, 초대받지 않은 방문객은 본청 물류용 통로를 사용할 수 없다. 둘째, 임시 이름으로는 발신 창구에 접근할 수 없다. 셋째, 본인의 신체를 종이 조각 수백 개로 나누어 동시에 여러 문틈으로 배달하는 것은 ‘방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온은 그 셋을 순서대로 인정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접수하러 왔어.” 제1문 대합실의 종이 바닥에서 잉크가 흘러나오더니 사람의 윤곽을 이루었다. 피엘과 비슷한 얼굴, 왼손에 깃펜을 쥔 천사였다. 그러나 자세는 달랐다. 피엘은 서류를 읽을 때 목을 숙였고, 서온은 상대 얼굴을 먼저 바라봤다. “규정 위반한 사실을 알려 주러 왔어요?” 토비가 물었다. “응. 그럼 적어도 남이 내 잘못을 전부 정하지는 못하잖아.” 벤이 박수를 쳤다. “저런 고객이 계약하러 오면 무섭겠어.” 세아는 급히 방문증을 꺼냈다. 이름 칸에서 펜이 멈췄다. “정식 신원 등록번호가 없어요.” “서온이라고 불리길 원해요.” “그건 표시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식 신원은……” “미확정이라고 적으면 돼.” 세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대로 적었다. [신원 번호: 미확정. 호칭: 서온. 방문 목적: 본인 명의 기록 확인.] 서온은 이름표를 받아 가슴에 달았다. 작은 종이 하나가 이상하게도 그가 지나온 수십 년의 기록보다 무거워 보였다. 서온은 제1문의 넓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과거 그곳을 오갈 때 그의 기억은 대부분 회색이었다. 해야 할 일을 먼저 계산하고, 누군가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절차를 정했다. 그러다 누가 울면서 자신의 편지를 돌려달라고 말하면 그 목소리를 기록하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때 피엘과 업무를 나눈 일이 구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기 올 때 겁이 나지 않았어?” 피엘이 물었다. “났어. 내게 남은 장부에 틀린 게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네가 나를 다시 네 이름으로 부르면 어떡하지 싶었지.” 피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알아. 지금은 알겠어. 그래도 옛날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건 마음대로 안 되더라.” “그러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냥 내가 말할 때 조금 기다려 줘. 업무상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바로 고치려 하지 말고.” 피엘은 그 대답을 수첩에 쓰려다가 멈췄다. 상대의 부탁을 지키는 일이 꼭 기록으로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깃펜을 접고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서온이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풀었다. 두 천사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이전처럼 누군가 대신 결론을 내려 주기를 기다리는 침묵이 아니었다. 마르켈은 안내 창구 앞으로 나왔다. “독립 이름 등록은 원칙적으로 담당자의 후견 서명이 필요합니다.” “후견인은 원하지 않아요.” 서온이 말했다. “그럼 심사를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나를 누군가 만든 업무 장치로 판단하는 규정이 남아 있어서겠죠. 그런데 규정 자체를 검토할 방법은 없나요?” “이의 신청을 하면 됩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이의를 신청할 수는 있나요?” “본인이 권리의 영향을 받았다면 가능합니다.” “그럼 시작할 수 있겠네요. 내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 규정 때문에 내 이름을 등록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 규정의 적용을 재검토해 달라고 신청할게요.” 마르켈은 잠시 그를 보았다. 그 얼굴은 더는 상대를 시험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 사용한 자물쇠가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열리지 않는 것을 처음 본 사람처럼 놀라 있었다. “규정상 가능한 요청입니다.” “좋아요. 그리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과거 기록을 내 이름으로 소지해도 되는지 보전 신청을 할게요.” 피엘은 서온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대리 피엘이라고 불릴 때는 둘의 존재가 하나의 업무표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서온은 피엘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있었다. 서온은 피엘 쪽으로 돌아섰다. “네가 나 때문에 죄책감 느끼는 거 알아. 하지만 오늘의 나는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증거가 아니야. 그냥 내 일을 하러 온 나야.” “알겠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 말투가 너무 업무적이야.” “그렇습니까?” “조금.” 토비가 끼어들었다. “그럴 땐 그냥 오랜만이에요, 하면 돼요.” 피엘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서온.” 서온이 활짝 웃었다. “응, 오랜만이야.” 두 번째 종이 울린 뒤 닫히기 시작했던 외벽의 서류함들이 다시 작은 빛을 냈다. 루셀의 보전 명령이 도착한 것이다. 정식 심리회에서 루셀은 자동 일괄 회수를 정지시켰지만, 제1문의 내부 감사까지 명령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사안을 검토한 뒤 세아와 카르덴의 자료를 보전하는 임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건립일 정정 관련 독립자료 보전.] [현재 자료 폐기는 조사 완료 전 금지.] [피엘의 업무 정지 상태 유지. 개인 감사 협조는 허용.] [서온의 신분 심사와 독립 자료 소유권 심사 분리.] “사람 한 명의 신분을 두고 여기까지 해야 해요?” 토비가 고개를 저었다. 벤이 답했다. “사람 하나가 자기 이름을 얻는 일은 자주 돈이 안 되거든. 그러니 제도가 느리지.” 마르켈이 녹슨 열쇠를 꺼냈다. “아직 발송 담당자 자격 문제는 남아 있어요. 서온의 이름이 인정되는 것과 과거 업무 권한이 자동으로 돌아오는 건 별개의 일이죠.” 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나도 권한을 자동으로 되돌려 달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장부는 제출할 수 있죠.” 피엘은 서온의 손을 잠시 바라봤다. 같은 일을 하던 시절에는 서로의 움직임을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피엘이 문서를 작성하면 서온이 처리했고, 서온이 발견한 오류를 피엘이 장부에 옮겼다. 둘의 업무가 나뉜 뒤 그 과정에서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묻는 일은 없었다. “서온.” 피엘이 조용히 불렀다. “응?” “저는 아직도 당신이 제 일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그 말이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서온은 손가락을 조금 폈다가 접었다. “나도 네 기억을 내 기억처럼 느낄 때가 있어. 같은 종이에서 나온 존재니까. 하지만 기억이 닮았다고 결론도 같을 필요는 없지.” 그는 세아가 준 방문증을 손에 쥐었다. 종이 모서리가 따뜻했다. 방금 온실에서 미나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피엘에게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귀했다. 누군가 자기를 대신하도록 태어난 존재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들고 서 있었다. 오스벨이 말했다. “옛날에 제자 하나가 내 연구 노트를 베껴 쓴 적이 있네. 처음엔 이름을 쓰지 않았지. 내가 혼낼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 노트를 읽으니 내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이 들어 있었어. 그때 그걸 돌려주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괜찮은 말은 이것이었지. ‘좋아, 그렇다면 네 이름을 써라.’” “그 제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토비가 물었다. “나보다 유명한 마법사가 되었네.” 벤이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그래서 닭을 키우는 거였군.” “닭을 키우는 일에도 마법은 필요하네.” 오스벨이 근엄하게 말했다. “어제는 새벽 네 시에 닭이 마법진 안에서 알을 낳는 바람에 탑의 시계가 세 시간 빨라졌거든.” 서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피엘도 웃었다. 웃음 뒤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피엘에게만 허락된 것도, 서온에게 빌린 것도 아니었다. 둘은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웃었다. “그 장부를 제출하더라도 누가 어떤 책임을 갖는지 나중에 따로 판단받겠습니다.” 서온이 덧붙였다. “내 이름을 지키는 건 잘못을 피하려는 이유가 아니에요.”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록하겠습니다.” 그가 왼손을 폈다. 낡은 장부 하나가 나타났다. 표지에는 ‘제1문 미발급 소인 관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책등은 여러 번 수선한 흔적이 있었고, 낙장 일부는 서온의 오른손 글씨가 아니라 왼손 글씨로 보완돼 있었다. “이 장부는 최초 발송일을 직접 적은 사람이 갖고 있어야 했어.” 서온이 말했다. “난 오래전 그 일을 하려고 만들어졌지. 그런데 나를 만든 피엘과 기록을 나눠 가지고 서로 기억을 지워 버렸어. 이렇게 하면 누구도 전부 알지 못하니까 마음이 덜 아플 거라 생각했을지도 몰라.” “기억이 없는 이유를 추측한 것이군요.” 피엘이 말했다. “응. 여기서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이것뿐이야. 그때 우리 둘 다 잘못을 기록하려고 했어. 그리고 장부가 남았어.” 서온은 책을 펴 마지막 장을 보여 주었다. [시험 소인 0000 사용 이력.] [최초 사용자: 확인되지 않은 등록 위원회.] [발송 대상: 집합 수신자 ‘모든 미래’.] [발송 형태: 사후 책임자 지정 조건부.] “사후 책임자요?” 마르켈이 중얼거렸다. “편지를 먼저 보내고 누가 책임질지는 나중에 정하겠다는 뜻이지.” 벤이 말했다. “우리 마계라면 빚을 남에게 떠넘기는 가장 나쁜 계약이야.” 서온이 다음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열두 개의 서명란이 있었다. 아무 이름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서명란 옆에는 각기 다른 손가락 자국이 눌려 있었다. “위원회가 실체 없는 단일 존재는 아니었어요.” 서온이 말했다. “열두 명이 같은 결과를 내기로 결정했지. 다만 각자 자기가 발신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해 놨어.” 마르켈이 눈을 감았다. “이름 없는 사람이 온 세상에 신탁을 보낸 게 아니었어.” “열두 사람이 이름을 감췄던 거지.” 피엘이 말했다. 그 순간 봉인된 원본 관리실의 바닥이 울렸다. 닫힌 문 너머에서 오래된 금속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립 장부 인식.] [사후 책임자 지정 절차 재개.] [지정 후보: 장부를 마지막으로 열람한 자.] 서온의 발밑에 검은 원이 생겼다. 조금 전까지 발신인이 없었던 신탁이, 이제 그의 이름을 빌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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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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