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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4화
PAYLUA ORIGINAL · 제44화

44화. 별비를 기억하는 정원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5,12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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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바꾸지 못하는 증인이라면 토비는 자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농부는 계절을 속일 수 없거든요. 가을을 봄이라고 적어도 밭에서 벼가 자라진 않잖아요.” 오스벨은 그 말에 반쯤 동의했다. “그래서 하늘과 땅에 남은 자국을 찾으려는 거네. 하지만 사람의 기억도 가끔 계절을 바꿔 놓지.” “제 기억은 확실해요. 보리골의 마지막 큰눈이 왔을 때 아버지가 손수레를 수리하셨죠.” “몇 해 전인가?” “열두 해…… 아니 열세 해. 잠깐, 그해에는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셨는데.” “봤지?” 벤이 씨익 웃었다. 토비는 볼을 부풀렸다. “그래도 눈이 온 건 확실해요.” “그 정도면 단서지. 아직 증거는 아니고.” 마르켈의 허가로 일행은 제1문 외벽에 붙은 ‘독립증언 보관정원’에 들어갔다. 그곳은 천계의 다른 화원과 달랐다. 꽃은 없고, 화분마다 작은 돌과 흙, 낡은 유리병이 담겨 있었다. 어떤 병 안에는 파도가 갇혀 있었고, 다른 화분에는 타다 만 번개가 검은 가루처럼 놓여 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정원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세아가 앞장서며 말했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아닌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에요. 신탁 문서와 관계없이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보관하죠. 기후, 별의 위치,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 같은 것들요. 등록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여기 기록은 수정하기 어렵거든요.” “기록을 수정 못하는 건 좋은 거잖아요.” “틀린 기록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뜻도 돼요.”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곳에 기록된 것을 다른 자료와 대조해야 합니다.” 정원 한가운데에 눈먼 늙은 천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하얀 손수건으로 렌즈를 닦고 있었는데, 렌즈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듯했다. 이름표에는 ‘카르덴, 하늘의 관측자’라고 적혀 있었다. “뭘 찾으러 왔나.” 오스벨이 한발 앞에 섰다. “푸른 번개와 별비가 내렸던 날이오.” 카르덴의 손이 멎었다. “그걸 왜 묻지?” “제1문 건립일이 바뀌었는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허락은 받았나?” 피엘이 마르켈의 인장을 내밀었다. 카르덴은 종이를 눈앞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손끝으로 표면을 쓸고는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정식 허가군. 정식 허가를 들고 여기까지 오는 천사는 처음 보는군. 대개 몰래 들어와서 자기 보고서에 맞게 별을 옮겨 달라 하지.” “별을 옮길 수 있습니까?” 토비가 물었다. “별은 못 옮겨. 보고서에는 그렇게 쓸 수 있지.” 카르덴이 길쭉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푸른 선 하나가 얼어붙어 있었다. 뚜껑을 열자 타는 냄새와 축축한 흙냄새가 동시에 났다. 피엘이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짧은 환영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하늘이 푸른 빛으로 갈라지던 저녁. 어린 천사 하나가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환영은 그의 기억인지 병이 보여 준 기록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피엘은 수첩에 ‘외부 기록 관찰 중 발생한 이미지’라고 적었다. 카르덴이 말했다. “푸른 번개는 제1문이 생긴 날 내렸어. 적어도 내 관측으로는 그래. 그런데 지금 공식 건립일은 그보다 마흔세 해 뒤야.” “마흔세 해.” 피엘이 되뇌었다. “그리고 그 차이 때문에 이상한 일이 생겼지. 처음 마흔세 해 동안 발송된 편지는 모두 ‘발신인 등록 전 시험 발송’으로 분류돼. 사람들은 신탁으로 받았는데, 기록에서는 시험이었다는 거야.” 토비는 표정을 찡그렸다. “우리 마을 누군가에게 ‘내일 홍수가 난다’고 전해 놓고 나중에 시험이었다고 하면 누가 믿어요?”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카르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기간에 신탁을 받았다가 잘못된 일을 겪은 사람은 보상을 청구할 창구가 없어. 정식 발신인이 없었으니까.” 벤이 허공에 붉은 원을 그렸다. 마계 계약 탐지술이 정원 곳곳을 스쳤다. 붉은 빛은 잠시 흔들리더니 유리병 아래의 흙 한 줌에 달라붙었다. “여기에 발신인 없는 계약의 흔적이 있어.” “마계 계약이?” 피엘이 물었다. “계약 자체는 아니야. 계약을 맺기 전,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정하는 약속의 냄새가 나. 내 고향에서도 오래전에 금지된 방식이지. 책임자를 비워 놓고 이익만 함께 받는 거래.” 카르덴은 그 흙을 손바닥에 올렸다. “지상에서 올라온 첫 번째 기도문이 묻힌 흙이야. 잘못된 신탁을 조사하러 온 천사들이 모두 이걸 찾았지.” “찾은 뒤엔 어떻게 됐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자기 이름을 기록에서 지워 달라고 했어. 이 흙을 들여다보면 자기 책임이 보인다고 생각했거든.” 카르덴은 지팡이로 땅을 가볍게 쳤다. 화분의 흙이 작은 산처럼 솟았다. 그 속에서 말라붙은 종이 조각 하나가 드러났다. 종이는 오래된 언어로 적혀 있었지만, 토비는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흙을 만질 때마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자기 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겪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네요.” 토비가 말했다. “맞아. 저걸 쓴 사람은 자기 아이가 아픈 일을 다시 겪지 않기를 바랐지.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적지 않았어.” “부모가 아이 걱정하는 게 잘못이에요?” 토비가 물었다. 카르덴은 고개를 저었다. “바라는 건 잘못이 아니야. 그 바람을 모든 사람의 명령으로 바꾼 사람이 있었다는 게 문제지.” 피엘은 종이의 결을 확인했다. 지상에서 만든 양피지, 천계의 인장 없음. 처음부터 신탁이 아닌 청원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청원에 다른 의미를 붙였던 것이다. 그 순간 세 번째 종을 예고하는 미세한 진동이 정원 전체를 훑었다. 마르켈에게서 긴급 통신이 왔다. [발신 기록 재정렬 임박. 독립증언 자료 이동 금지.] [관측자 카르덴의 자격 재심사 예정.] 세아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여기까지 닫으려는 거예요.” 피엘은 오스벨을 돌아봤다. “마법탑의 관측 기록을 지금 가져올 수 있습니까?” “가져오는 건 가능하네. 다만 여기로 원본을 옮기면 누가 바꿨다는 의심이 붙을 거야.” “그럼 가져오지 마십시오. 원본은 그 자리에 두고,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날짜를 관측했다는 사실만 증언해 주세요.” 오스벨은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예전의 자네라면 모든 서류를 한 창고에 모아 놓으려 했을 텐데.” “그러다 창고 하나가 닫히면 모두 잃습니다.” 정원 안에 머무는 사이, 카르덴은 별비가 갇힌 유리병을 다시 꺼냈다. 빛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복원되는 동안 병 표면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오스벨이 지팡이를 뻗자 카르덴이 손목을 잡았다. “고치지 말게.” “균열을 놔두면 기록이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균열도 오늘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기는 흔적이야. 다만 내용물이 새면 안 되니, 그 주변에 다른 유리를 덧대면 돼.” 오스벨은 잠시 머쓱해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습관처럼 손상된 물건을 원상복구하는 마법을 쓰려 했다. 하지만 원상복구가 언제나 더 나은 보존을 뜻하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흠집을 지우는 순간 증거까지 지워질 수 있었으니까. 토비가 병 속 번개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하늘이 갈라진 날이 정말 제1문이 생긴 날이라면, 누가 처음 날씨를 기록한 거죠?” “나야.” 카르덴이 답했다. “나는 그날 구름 사이에 있는 기도문들을 관측하러 왔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문이 솟았고, 사방에서 종이들이 날아들었어. 그건 축제처럼 보였네.”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하셨군요.” “처음엔. 너도 그런 날을 본 적 있을 거다.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거나, 마을에 처음 다리가 놓이는 날.” 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골에도 다리가 생기던 날이 있었다. 강 건너 마을에서 사람들이 건너왔고, 아이들은 한참 동안 다리를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는 홍수로 다리 아래 집 몇 채가 무너졌다. 다리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집을 너무 가까이 지은 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가지 사건을 좋거나 나쁘다는 말 하나로 가둘 수는 없었다. 카르덴은 그날의 풍경을 한 문장 더 들려주었다. “제1문의 첫 종이 울렸을 때, 누군가 바로 옆에서 물었어. '우리는 누가 보내라는 말도 없이 왜 벌써 보내고 있지?' 모두 웃어넘겼지. 덕분에 긴 질문을 놓쳤어.” “누가 물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어린 문지기였네. 이름은 기록에 없어. 그때 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했으니까.” 피엘은 수첩에 그 사실을 적었다. 증인의 이름을 모른다는 한계까지 함께 적었다. 잊혀진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제1문이 처음부터 아무 의심 없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였다. 카르덴이 천천히 일어섰다. “좋아. 이 화분의 기록은 내 이름으로 제출하지. 하지만 또 하나의 증인이 필요하네. 처음 기도문을 쓴 사람의 아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살아 있다면 벌써 노인이겠지. 하지만 어쩌면 자기 나이보다 젊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립니까?” 카르덴이 낮게 답했다. “첫 신탁이 발송되었을 때, 그 아이의 시간을 누군가 보관해 버렸거든.” 화분 바닥에서 작은 나무 인형 하나가 굴러 나왔다. 인형의 등에는 지상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미나. 여섯 살.’ 그리고 그 아래, 다른 필체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피엘은 인형을 곧장 집어 들지 않았다. 나무에 새겨진 미나라는 글씨가 그의 눈에 아프도록 들어왔다. ‘시간 보관’이라는 말만으로 어떤 생애를 상상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여섯 살 아이가 하루 종일 울 수 없는 방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든 장면을 사실인 것처럼 수첩에 옮기지 않았다. “이름 하나를 찾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직 그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릅니다.” 오스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연구실에서 새 마법을 발견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어. 이름을 붙이면 이해한 것 같거든. 하지만 이름은 연구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야.” 토비는 보리주머니를 열어 인형 옆에 씨앗 하나를 놓으려 했다. 피엘이 손을 뻗자 토비가 멈췄다. “아, 이 물건도 주인이 있겠죠.” “맞습니다. 가져가거나 무엇을 더해 놓기 전에 물어봐야 합니다.” “그럼 이 씨앗은 나중에 미나가 원하면 드릴래요.” “좋습니다.” 토비는 씨앗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때로는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을 잠시 미루는 일도 정중함이었다. 카르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다물었다. 오래전 첫 신탁을 보내던 날, 누구도 그런 식으로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나의 내일: 제1문에 영구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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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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