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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3화
PAYLUA ORIGINAL · 제43화

43화. 세 번째 종이 울리기 전에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5,053자

오프라인 책장
피엘의 첫 기억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기억을 떠올려 보려다 멈췄다. 어린 자신의 목소리가 대기실 벽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는 기억까지 남의 서류에서 빌려 오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제가 가진 것을 정확히 모릅니다.” 마르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금빛 열쇠들이 서로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무슨 의미죠?” “첫 번째 기억이라는 요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기억한 장면입니까, 제가 가장 먼저 되찾은 기억입니까, 아니면 기록상 첫 번째로 등록된 기억입니까?” “문서를 읽으면 알게 됩니다.” “읽기 위해 지불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르는 물건을 담보로 맡겨야 내용물을 알려 준다는 거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르켈은 입술을 다물었다. 토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씨감자 살 때 속에 썩은 게 있는지 살펴보잖아요.” “우리 마을 씨감자 거래와 천계 감사 업무는 다르죠.” “그렇죠. 우리 마을은 상인이 감자를 보여 줘요.” 오스벨이 조용히 웃었다. 벤은 토비에게 엄지를 들었다. 놀랍게도 마르켈은 다시 웃지 않았다. 그 대신 손목 고리를 돌려 허공에 고운 실선을 그렸다. [기억 선납 절차 거절 확인.] [해당 경로: 유료 열람 보류.] [기본 감사 경로: 제한적 허용.] 피엘은 수첩을 들었다. “기본 감사 경로가 따로 있었습니까?” “있었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얻을 수 있는 자료도 적어요. 그래서 늘 유료 경로를 안내해 왔습니다.” “늘 그랬다는 이유로 권리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말 한마디도 참 무겁게 하시는군요.” “옛날에는 가볍게 말했다가 일이 커졌습니다.” 마르켈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피엘은 그가 방어적인 이유가 단순히 규정을 좋아해서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누군가 규정을 벗어난 순간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온다고 믿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기본 감사 창구에는 투명한 유리 두 장이 있었다. 왼쪽 유리 뒤에는 건립일 정정 기록이, 오른쪽에는 그 기록을 참조한 다른 기관의 목록이 보였다. 본문은 가려져 있었지만 기록이 수정된 날짜와 담당 부서의 명칭은 드러났다. [제1문 최초 건립일: 기록 보존 불가.] [건립일 조정: 세 차례.] [최초 조정 발신: 원본 관리실.] [최종 승인: 등록 위원회 공석으로 자동 승인.] “위원회가 없는데 승인했다고요?” 토비가 물었다. “위원회가 일정 기간 답하지 않으면 승인으로 간주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마르켈이 말했다. 벤이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악마들은 보통 반대로 하지. 답이 없으면 계약이 성립하지 않거든. 고객이 그 편이 더 안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거래를 다시 제안할 수 있으니까.” 오스벨은 손끝으로 유리의 날짜들을 따라갔다. “세 차례 중 두 번째 조정 시점이 이상하군. 그해엔 북부에서 별비가 내렸어. 이 날짜가 맞다면 내가 별비를 관측하기도 전에 천문대 보고서를 제출한 셈이지.” “천문대 보고서를 갖고 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집 서재에 있네. 불타지 않았다면.” “마법탑이 불탔어요?” 토비가 놀랐다. “그런 뜻은 아니네. 지난달 닭들이 따뜻한 곳에 둥지를 튼답시고 화로 속으로 들어가서.” 벤은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 “대마법사가 기른 닭들이 마법탑 기록을 태워 버릴 뻔한 거야?” “아직 태우진 않았어.” 오스벨이 근엄하게 말했다. “그것이 중요한 차이지.” 피엘은 웃음을 참았다. 자칫하면 이곳의 문서가 원본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별비의 날짜는 천계 밖에서도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원본 관리실에 연락할 수 있습니까?” 마르켈이 잠시 고민했다. “제1문 안에서도 그곳은 특별 구역입니다. 직원 명부에는 이름 대신 직책만 있어요.” “연락이 어렵다는 것이군요.” “연락은 됩니다. 회신이 안 올 뿐이죠.” 세아가 두 손을 들었다. “전 한 번 회신을 받았어요.” 마르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임시 문지기가 무슨 경위로?” “어머니의 접수번호를 찾다가 제1문 건립일 목록을 잘못 눌렀어요. 그랬더니 누가 답장을 보냈어요. ‘건립 전 기록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먼저 아무 기록도 없는 날을 찾아라.’” “보관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으로 접힌 낡은 메모를 꺼냈다. 메모에는 글씨보다 물자국이 많았다. 잉크는 다 번졌지만 종이 한쪽에 새겨진 발송 시간은 선명했다. 오스벨이 메모를 자세히 보았다. “날짜가 아니라 날씨가 적혀 있군. ‘푸른 번개가 처음 하늘을 두 조각으로 가른 저녁.’ 이건 별비와 같은 시대의 현상이야. 그런데 무슨 이유로 날짜 대신 날씨를 남겼을까?” “날짜를 바꾸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토비가 대답했다. 오스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럴듯하군.” 마르켈은 메모를 가리켰다. “누가 발송했는지 확인할 수 없어요. 정식 도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증거가 없다는 뜻은 아니죠.” 피엘이 말했다. “정식 도장이 없다는 사실도 하나의 정보입니다.” 세아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물었다. “제가 이 메모를 보인 것 때문에 해고되나요?” 마르켈은 금빛 열쇠를 바라봤다. 오래 생각한 뒤 답했다. “기록 열람 규정 위반 여부는 조사해야 해요. 하지만 메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닙니다.” “그 약속도 적어 주세요.” 토비가 말했다. 그의 말투가 너무 당당해 마르켈은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작은 표준 양식 하나를 꺼내 서명했다. 세아는 그 양식을 받아들고 주머니에 넣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데 종이 한 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우스우면서도 씁쓸했다. 독립 자료를 제출하기 전, 피엘은 창구에 해당 자료를 보관할 위치부터 확인했다. 마르켈은 평소라면 불필요하다고 여겼을 절차를 길게 설명했다. 제출자가 원본을 지키고 싶다면 복제본만 보관할 수 있다. 복제본에는 생성 시간이 찍히고, 다른 기관의 자료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했다는 확인은 따로 한다. “그럼 자료가 바뀌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증명합니까?” 오스벨이 물었다. “서로 다른 곳에 같은 내용을 남기면 됩니다. 물론 그곳들이 처음부터 서로 협의해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필요하죠.” “완벽한 방법은 없군요.” “그런 건 없어요.” 마르켈이 답했다. “그래서 기록을 사람보다 신뢰해야 한다는 말을 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의 대답에 피엘은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기록을 신봉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수석 등록관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럼 왜 기록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마르켈은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기억만으로 책임을 따지기 시작하면, 힘없는 사람이 늘 불리해지니까요. 말이 느린 사람이 먼저 잊히고, 이름이 없는 사람이 먼저 무시당하죠. 기록이 있다고 그 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중에 다시 물을 기회는 생겨요.” 세아가 입을 열려다가 멈췄다. 마르켈이 바로 그 기록을 숨겨 왔다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가 완전히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엘은 물었다. “그러면 그 기회를 없애는 기록 정정은 어떤 경우에 허용됩니까?” 토비는 잠시 모두의 눈치를 보았다가 유리창 앞에 놓인 접수표 한 장을 들었다. 종이에는 가로줄이 너무 많았다. 누가 보냈는지, 누구에게 보내는지, 발송 목적은 무엇인지, 전송 위험은 얼마인지. 맨 아래에는 ‘발신인이 분명히 존재함을 확인합니까?’라는 칸도 있었다. “제가 아는 사람 이름을 적어도 돼요?” 토비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피엘이 되물었다. “우리 마을에서 편지를 보낼 때는 이렇게 안 써요. 누구한테 보내는지 적고, 보내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쓰죠. 그런데 여기선 이름이 없다는 문제를 확인하기 전에 이름이 있다고 확인하라고 해요. 이상하잖아요.” 피엘은 접수표를 받아 들었다. 그는 제7물류국에서 이 양식을 수없이 봤다. 이름이 없으면 접수할 수 없다는 의미로만 읽었다. 이제는 그 빈칸이 어떤 목소리를 밀어냈는지 볼 수 있었다. “빈칸을 없애는 방법과, 빈칸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방법은 다릅니다.” 토비가 씩 웃었다. “그럼 이번엔 칸부터 바꿔요.” 마르켈이 거기까지 듣고 서류를 손에서 빼앗았다. 잠시 뒤 원본 양식을 그대로 둔 채 옆에 보완 양식을 붙였다. ‘현재 발신인이 확인되지 않는 사유.’ “이건 공식 변경은 아닙니다. 심사에 올릴 보완안이에요.” “그것도 기록해 주세요.” 세아가 얼른 말했다. 마르켈은 그녀를 쳐다보다가 짧게 웃었다. “자네, 전에는 내게 그렇게 많이 말하지 않았지.” “전에는 대답해 주실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 말에 마르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그녀를 꾸짖지 않았다. 마르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은 소멸 명령보다 약했다. 그럼에도 제1문의 정교한 질서에 생긴 작은 균열처럼 보였다. 피엘은 당장 자백을 요구하지 않았다. 누군가 옳은 원칙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원칙대로 살았다는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 지금 필요했다. 허공의 유리에 새로운 줄이 나타났다. [기본 감사: 독립 자료 대조 신청 접수.] [제출 가능 증거: 지상 천문 관측, 소인 누락 우편, 주민 기억.] [마감: 제1문 발신 종이 세 번 울리기 전.] “세 번이라니?” 벤이 물었다. 그 순간 첫 번째 종이 울렸다. 대합실 천장에서 별자리 하나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창구를 오갔지만, 세아는 입술을 하얗게 깨물었다. “종은 오래전에 멈췄는데.” 마르켈의 얼굴도 굳었다. “한 번 울릴 때마다 발신 원본 관리실이 자료 한 층을 폐쇄합니다.” “그럼 누가 울리고 있는 거죠?” 대답은 두 번째 종과 함께 왔다. 유리 표면에 금빛이 아닌 검은 글자가 새겨졌다. [감사 대상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처리 권한자: 등록번호 0000.] [세 번째 종 이후 모든 이전 발송 기록은 새로운 건립일 기준으로 재정렬됩니다.] 토비는 보리주머니를 들었다. “그럼 우리도 시간표를 바꿔야겠네요.” 오스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는 서류를 읽는 것만으론 부족하겠어. 날짜를 바꾸지 못하는 증인을 만나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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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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