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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42화. 이름 없는 허가증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704자

오프라인 책장
“문보다 오래된 허가증이라고요?” 토비는 빛으로 만든 손바닥을 보더니 자기 손등을 들여다봤다. 농기구를 오래 쥔 탓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하늘의 손은 반투명했고, 손가락 끝마다 도장 잉크가 얇게 묻어 있었다. “저런 도장은 우리 마을에선 밀가루 포대에 찍어요.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야 상한 가루를 돌려줄 수 있거든요.” 세아가 안색을 굳혔다. “허가번호 0000은 도장 시험용 번호예요. 실제 발송에는 쓸 수 없어요.” “그런데 발급 날짜가 왜 건립 이전으로 되어 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그걸 알았다면 제가 임시 문지기로 남아 있겠어요?” 벤은 감탄한 듯 입술을 휘파람 모양으로 만들었다. “좋은 답이군. 천계에서도 승진에 필요한 건 모르는 척하는 능력인가 봐.” 세아가 그를 노려봤다. “전 모르는 척 안 했어요. 매달 보고서를 냈어요. 그래서 아직 임시예요.” 피엘은 이름과 직책을 수첩에 적었다. 그녀는 글씨를 보면서도 따지지 않았다. 반대편 창구 직원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앞선 천사는 황금 열쇠 묶음을 찬 장신의 남자였다. 긴 머리카락은 금속 실처럼 매끄러웠고, 옷자락에는 작은 발송 일련번호들이 별처럼 박혀 있었다. “제1문 수석 등록관, 마르켈입니다.” 그는 인사보다 먼저 손바닥 위의 도장을 보았다. “시험용 폐기 자재가 왜 민원인에게 노출되었죠?” “내부 문에서 나타났습니다.” 피엘이 답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습니다.” 마르켈은 피엘의 수첩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업무 정지된 제7물류국 천사군요. 신원 복권도 완료되지 않았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개인 발송 권한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법정의 긴급 감사 의뢰서를 제출했습니다.” “긴급이라는 말이 절차를 생략해 주진 않습니다.” “동의합니다. 절차를 시작해 주십시오.” 마르켈은 대답 대신 열쇠를 들어 문 위의 빛을 잠갔다. 문틈에 있던 아이의 손이 툭 끊어졌다. 손이 사라지자 대합실의 소음이 돌아왔다. 창구마다 떠 있던 직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름표를 고쳐 달았다. 토비가 소리쳤다. “사람 손을 닫아 버렸잖아요!” “사람이 아닙니다. 보관된 기록의 외부 투영이에요.” “그럼 왜 울어요?” “기록은 기억된 감정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아픈 기록을 왜 계속 안에 넣어 놔요?” 마르켈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토비의 흙 묻은 장화를 내려다봤다. “농부가 묻는 질문에 본청의 수석 등록관이 모두 대답할 의무는 없어요.” “그럼 농부가 알아들을 말로만 물을게요. 문 안에 있는 분이 나오고 싶어 하느냐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스벨이 토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자신의 화를 대신 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마르켈은 안내 천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민원인 일행을 제3대기실로 안내하세요. 문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피엘은 가만히 움직였다. 마르켈의 손목에 채워진 얇은 쇠고리 때문이다. 그 고리는 루셀이 심리회에서 사용한 보전 명령과 비슷했지만 가운데 도장이 달랐다. 제1문의 가장 오래된 문양,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한 장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등록관님, 그 고리는 무엇을 뜻합니까?” “발신 원본 보전 권한이죠.” “그러면 저희의 의뢰서를 검토하실 권한도 있으시겠군요.” “……검토는 합니다. 수용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충분합니다. 지금까지는 검토 단계에도 못 들어갔으니까요.” 복도를 지나는 동안 토비는 세아에게 작게 말했다. “저 수석 등록관님, 엄청 무서운데요.” “무서운 분은 아니에요.” “그럼 친절해요?” “친절하지도 않고요. 제때 퇴근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남기고 간 서류를 집으로 들고 가지 않아서요.” “그게 자랑인가요?” “여기서는요.” 복도에는 수백 개의 문이 붙어 있었다. 어떤 문에는 ‘심사 중’이라고 적혀 있었고, 어떤 문에는 ‘보완 요청’이라는 글씨가 수십 겹 덧붙어 있었다. 가장 낡은 문은 ‘처리 완료’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아래에서 누군가 계속 문을 두드렸다. 토비가 소리를 들으려 다가가자 세아가 가볍게 잡아당겼다. “열어도 아무도 안 나올 거예요. 안에 있는 건 사람 대신 접수된 질문들이에요.” “그럼 답변한 뒤 닫으면 되잖아요.” “답변할 권한이 있는 직원이 다른 부서로 옮겨 갔대요. 권한은 퇴직한 사람이 가져갈 수 없는데, 여기선 누가 대신할지도 못 정했죠.” 피엘은 그 문을 오래 보았다. 그는 천계 일을 시작할 때 일을 잘하는 천사란 정해진 절차를 빠짐없이 밟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임의 길이 닫힌 절차는 아무리 성실히 따라가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방금 지나온 계단과 같았다. “서류를 처리하지 못한 사유는 기록되어 있습니까?” “네. 세 줄이요. 담당 부재, 대리자 미지정, 보완 필요.” “민원인이 무엇을 원했는지는요?” “그건 오래전에 보존 기간이 끝났어요.” 벤이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질문은 지우고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이유만 남기는 거군.” “저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세아가 답했다. “그런데 매일 너무 많은 문을 지나니까, 어느 날부터는 문 안에서 소리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듣지 않게 됐어요.” 토비는 손가락에 보리씨앗 하나를 올려 주었다. “이거라도 갖고 있어요. 질문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게.” 세아는 웃었다. “씨앗이 왜 도움이 되는데요?” “안 심으면 계속 씨앗인 채잖아요. 질문도 답하려고 들여다봐야 바뀌겠죠.” 세아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씨앗을 주머니에 넣었다. 훗날 그 씨앗은 그녀가 어머니의 오래된 접수번호를 다시 찾으러 가는 계기가 되었다. 제3대기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의자 열두 개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고, 벽에는 ‘고객 만족을 위한 예상 대기 시간: 잠시’라고 적혀 있었다. 시계는 없었다. 대신 천장에서 낡은 접수번호들이 먼지처럼 쏟아졌다. 벤은 번호 하나를 잡았다. “팔백 년 전 민원이다. 아직 대기 중이래.” “사백 년 전 것도 있어요.” 토비가 다른 쪽을 보여 줬다. “이건 접수번호가 아니라 질문이네요. ‘우리 딸의 신탁은 왜 바뀌었습니까?’” 피엘은 벽에 손을 얹었다. 벽 안쪽에서 아주 약한 진동이 들렸다. 그곳은 대기실이 아니라, 확인받지 못한 문의를 보관하는 거대한 서랍이었다. 질문들은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접수번호가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번호만 남았다. 오스벨이 말했다. “이 방 전체가 증거겠군. 접수된 질문을 처리하지 않아도 시스템상으로는 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벤은 손가락을 튕겼다. 마계 계약서에 쓰는 붉은 잉크가 공중에 나타났다. “나한테 방법이 있지. 답변 기한을 놓친 질문은 마계로 넘겨서 일괄 배상 청구할 수 있어.” “누구에게 배상받나요?” 토비가 물었다. “책임진다고 서명한 놈에게.”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벤은 금세 잉크를 지웠다. “그래. 그러니 여기가 이렇게 큰 거겠지.” 대기실 안쪽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벽의 접수번호 하나가 피엘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 번호에는 숫자 대신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접수인: 피엘.] [요청: 최초 발신인 확인.] [접수일: 기억 분할 이전.] [처리상태: 접수인 본인의 철회로 종료.] 피엘은 멈춰 섰다. 자신이 이전에도 같은 질문을 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수첩 속 과거 기록 어디에도 그 사실이 없었다. “제가 철회했습니까?” 세아의 목소리가 문틈에서 들렸다. “그 기록만은 열지 마세요.” “왜죠?” “모든 철회 신청서에 본인 서명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세아는 대기실 문 바깥에 서 있었다. 양손에는 우유를 담은 작은 컵 다섯 개가 있었다.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는 물을 주지 말라는 규정이 있어요. 오래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만들었다더군요. 그런데 다들 어차피 오래 머물잖아요.” 토비가 컵을 받았다. “그래서 우유예요?” “차는 끓이는 데 걸려서요. 들킬 때까지 남는 시간이 짧거든요.” 피엘은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그는 곧장 묻지 않았다. 세아가 왜 돕기로 했는지, 대답을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세아는 자기가 먼저 말했다. “제 어머니가 여기에 편지를 보냈어요. 제 이름으로 축복이 발송됐다는 통지는 받았는데 정작 무슨 내용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요. 어머니는 전부 좋은 일일 거라 생각했고, 전 그 말이 부담스러웠어요.” “어머님의 문의도 여기에 있습니까?” “있을 거예요. 번호를 잃어버렸어요. 몇 년을 찾다가 여기 취직했죠.” 토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임시 문지기인 거군요.” “정규직이 되면 가족 관련 기록을 볼 권한을 잃는대요. 이해충돌 때문이래요. 임시직은 열람 권한 자체가 없고요.” 벤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악마도 저런 계약서를 쓰면 사기를 의심받아.” 세아가 피엘에게 접수번호를 내밀었다. “지금이라면 하나 확인할 수 있어요. 최초 발신 허가번호 0000은 도장을 잘못 찍은 게 아니에요. 문이 세워지기 전에 만든 번호도 아니고요.” “그럼 무엇입니까?” “날짜가 뒤로 밀린 거예요. 그 도장이 찍힌 순간보다 건립 날짜가 나중으로 수정됐어요.” 벽 전체가 떨렸다. 사방의 접수번호가 동시에 같은 질문을 띄웠다. [건립일 정정 이력 열람하시겠습니까?] [열람 시: 첫 번째 기억을 대가로 징수.] 문 밖에서 마르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택하시죠, 피엘. 증거를 원한다면 당신이 지불할 차례입니다.” 이번에는 검은 봉투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피엘의 어린 시절 목소리가 대기실 어딘가에서 새어 나왔다. ‘처음 기억한 것은 종소리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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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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