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문으로 가는 길은 천계의 어느 지도에도 직선으로 그려져 있지 않았다.
피엘은 제8문을 등지고 세 번째 계단을 내려오다가, 자신이 방금 올라왔던 계단과 마주쳤다. 하얀 돌벽에는 ‘발신 업무는 언제나 가장 위에 있다’는 금박 글귀가 붙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누군가 연필로 ‘그러니까 계단부터 고쳐 달라고’라고 써 놓았다.
“천계에선 길 찾는 것도 승진 시험인가요?” 토비가 물었다.
“원래는 아닙니다.”
“방금 ‘원래는’이라고 했죠?”
벤이 웃으며 난간에 기대었다. “여긴 목적지를 찾는 게 아니라 목적지에 갈 자격을 증명하는 곳이야. 천사들은 길을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 놓으면 무척 중요한 장소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거든.”
“마계는 안 그래요?”
“우린 계단 대신 수수료를 받지.”
오스벨이 지팡이 끝으로 벽을 두드렸다. 금박 글귀가 떨어져 나가고 그 뒤에 작고 낡은 화살표가 나타났다. ‘제1문, 아래층.’
“화려한 안내보다 평범한 안내가 정확할 때도 있지.”
그들은 화살표를 따라 내려갔다. 계단 끝의 대합실은 숲보다 넓었다. 천장에는 태어나기도 전인 별자리들이 떠 있었고, 벽에는 기도, 경고, 축복, 예언이라는 글자가 작은 창구 위에 매달려 있었다. 수백 명의 천사가 서류를 들고 오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바빴지만 종이 한 장이 창구를 통과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대합실의 중앙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여덟 개의 문 중 첫째라고 불리는 문이었으나, 사람 키 두 배 정도의 평범한 나무문이었다. 이상한 점은 문 앞에 발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으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바닥이 접혀 발길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대합실 양옆에는 대기 줄이 둘이었다. 한쪽 사람들은 모두 얌전히 줄을 서 있었다. 다른 줄에서는 사람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토비는 그 차이가 궁금해 가장 앞에 있던 천사에게 물었다.
“저쪽은 왜 그렇게 시끄러워요?”
“발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거나, 떠난 사람에게 사과를 전하고 싶다거나.”
“그럼 이쪽은요?”
“발신 허가를 가진 사람들이죠. 아무래도 처리하기 쉽습니다.”
토비는 조용한 줄 맨 앞에 있는 천사를 지켜봤다. 그는 두께가 손바닥만 한 문서 뭉치를 내밀고 있었다. 창구의 직원이 인장을 확인하자, 서류 한쪽에서 수백 개의 작은 봉투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반대쪽 줄의 노인은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자신의 이름을 말할 차례를 얻었지만, 담당자는 듣지도 않은 채 서류가 없으면 발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피엘은 그 모습을 보고 곧장 개입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했다. 다만 수첩에 줄의 길이와 직원의 안내 문구를 적었다. 제8문에서 반송을 연구할 때는 신탁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만 봤다. 제1문에서는 무엇이 애초에 편지로 인정되는지부터 달랐다.
노인이 토비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여기 왔나?”
“잘못 간 편지의 발신인을 찾으러요.”
“발신인 찾으러 온 사람이 또 있군. 나는 내 이름으로 쓰인 편지가 내가 안 쓴 말인지 확인하러 왔네.”
그는 접힌 종이를 보여 줬다. ‘이웃을 반드시 용서하라.’ 노인은 그 이웃이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갔다고 덧붙였다. 피엘은 용서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가 그런 말을 노인의 이름으로 발송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선한 말을 전하면 다 좋은 줄 알았어요.” 피엘이 말했다.
“그 말이 내 이름으로 배달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거든.” 노인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가 피엘에게 오래 남았다. 신탁은 종종 수신자의 삶을 바꾸었다. 그러나 거짓 발신인은 누군가의 양심까지 대신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앞에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검은 봉투가 있었다.
[수신인: 피엘.]
[발신인: 제1문에서 아직 접수되지 않은 자.]
[우편 요금: 당신의 첫 번째 기억.]
“저걸 왜 아직 들고 있어요?” 토비가 물었다.
“제가 들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쪽이 계속 따라오는 겁니다.”
피엘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자 봉투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그 앞에 멈췄다. 벤이 손가락으로 봉투 모서리를 튕겼다. 작은 불꽃이 일더니 벤의 손등에 영수증이 붙었다.
[대리 열람 시 타인의 기억도 징수 가능.]
벤은 손등을 털었다. “고맙지만 기억을 팔아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런 거래는 반드시 손해를 봐.”
“악마가 거래를 말리다니.” 오스벨이 감탄했다.
“악마니까 알지.”
피엘은 봉투를 열지 않은 채 창구로 향했다. 구겨진 옷깃, 금이 간 날개, 지상에서 묻은 진흙이 천계의 반듯한 직원들 사이에서 유난히 두드러졌다. 심지어 토비의 신발에는 보리골 밭의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안내 천사는 네 사람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작은 종을 울렸다.
“방문 목적은요?”
“제8문 최초 반송 편지의 원 발신인 확인에 관한 긴급 감사 의뢰입니다.”
“감사 접수는 7번 창구입니다.”
“그곳에서 제1문 본청으로 오라고 안내받았습니다.”
“본청 방문은 3번 창구입니다.”
“3번 창구에서는 발신인 증빙이 있어야 접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발신인 증빙은 7번 창구에서 발급합니다.”
토비가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7번 갔다 3번 가고 다시 7번 가라는 거죠?”
안내 천사는 밝게 웃었다. “맞습니다. 다음 분.”
피엘이 떠나지 않자 안내 천사의 미소가 조금씩 굳었다. 피엘은 루셀이 발급한 감사 의뢰서를 펼쳤다.
“발신인이 없는 게 바로 감사 대상입니다. 그 사유로 접수 불가라고 처리하면, 존재하지 않는 발신인을 확인하는 일은 영원히 시작되지 않습니다.”
“규정은 규정이에요.”
“그 규정에 대한 이의 신청은 어디에 제출합니까?”
천사는 서랍을 뒤지더니 마지못해 얇은 종이를 꺼냈다. ‘접수 불능 사유에 대한 이의 신청서.’ 피엘이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순간, 안내 천사가 종이 맨 아래를 가리켰다.
“발신인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벤이 폭소했다. 오스벨은 이마를 짚었고, 토비는 피엘의 팔을 붙잡았다.
“그냥 우리가 왜 왔는지 적어 주세요. 이름이 없어서 온 거잖아요.”
그때 대합실 끝에서 금속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문지기 복장을 한 작은 천사가 계단을 내려오다 서류 더미를 쏟은 것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서류를 밟지 않으려고 돌아갔지만, 한 장은 토비의 발밑까지 미끄러졌다.
토비가 몸을 숙였다. 종이에는 이름 대신 손바닥만 한 원 하나가 찍혀 있었다. 원 안에는 아주 오래된 문구가 있었다.
‘무명의 청원도 거절할 수 없다.’
“이건 뭐예요?”
문지기 천사가 달려와 종이를 낚아챘다. 얼굴이 창백했다.
“그건 폐기 예정 기록입니다. 보지 않으신 걸로 해 주세요.”
“폐기 예정이면 왜 들고 다니세요?”
“폐기할 곳을 찾고 있어서요.”
오스벨의 눈이 반짝였다. “그 기록은 어느 시기의 것인가?”
“제1문이 처음 세워질 때의 건립 규약입니다. 하지만 효력이 없어요. 지금 쓰는 행정 규정과 충돌하니까요.”
피엘이 손을 내밀었다. “효력이 없다고 판단한 문서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문지기는 주저했다. 이름표에는 ‘세아, 임시 문지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여러 창구의 눈치를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제가 보여 드렸다는 기록은 남기지 마세요.”
“그러면 나중에 이 문서가 어디서 나왔는지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열람 경위를 사실대로 남기고, 당신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보호를 요청하겠습니다.”
세아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피엘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서류 뒷면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그렇게 해 주세요. 다들 책임을 피하려고 이름을 지우는데, 저는 저 이름이 아직 좋아요.”
건립 규약은 고작 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모든 신탁은 명확한 발신인을 가져야 한다. 둘째, 수신인이 확인되지 않는 신탁은 발송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청원도 청원이라는 이유로 거절해서는 안 된다.
피엘이 세 번째 문장을 읽는 순간 대합실의 중앙문이 작게 떨렸다. 잠겨 있던 나무문에 세로로 한 줄 빛이 생겼다.
[건립 규약 원문 확인.]
[발신인 없는 사안의 이의 접수 허용.]
[대가 요구 조건 검증 대기.]
검은 봉투가 갑자기 커졌다. 우편 요금이라는 글씨가 타올랐다가 다른 문장으로 바뀌었다.
[기억 징수: 합법성 미확인.]
토비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봐요. 돈부터 달라는 가게는 영수증부터 확인해야 한다니까요.”
“영수증은 네가 농산물 시장에서 세 번 잃어버렸지.” 벤이 말했다.
“제가 안 잃어버렸으면 지금 그 상인한테 못 따졌을 거예요.”
그 말에 모두 웃으려던 순간 문 뒤에서 아주 작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피엘은 걸음을 멈췄다. 처음 들어본 소리인데 이상하게도 어떤 오래된 기억의 가장자리가 아렸다.
“저 목소리는…….”
세아가 급하게 손짓했다. “듣지 마세요. 저 문 안에는 아무도 없어요. 저희는 그렇게 교육받았어요.”
문 안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났다.
“발신인 이름을 모르겠어요. 그런데 내가 보냈다는 이유로 전부 내 책임이라고 해요.”
피엘은 검은 봉투를 보았다. 첫 번째 기억을 요금으로 요구하는 편지. 그가 기억을 내어 주기 전에 반드시 확인할 일이 하나 생겼다.
“요금을 낼지 결정하는 것과, 저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또렷이 말했다.
“저는 피엘입니다. 당신 이름을 묻기 전에, 무엇 때문에 거기 갇히셨는지 듣겠습니다.”
그 순간 문틈에서 작은 손이 튀어나왔다. 빛으로 만든 손이었다. 손바닥 위에는 지워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최초 발신 허가번호: 0000.]
[발급 날짜: 제1문 건립 이전.]
피엘은 숨을 삼켰다. 천계 최초의 허가가 천계 문보다 먼저 존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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