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한가운데 나타난 제8문의 나무문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피엘은 처음 그 문을 열었을 때를 기억했다. 아주 오래전, 신탁을 거절한 사람의 편지가 발신인에게 돌아가는 장치였다고 들었다. 그때는 편지를 반송시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말을 읽고, 누구에게 돌려주며, 돌려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했다.
“레아.”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도 보내고 싶습니까?”
“응.”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날 나한테 행복하라고 말한 사람.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피엘이 빈 종이를 건넸다. 레아는 잠깐 생각하더니 로안에게도 물었다.
“아빠, 내 편지 읽어도 괜찮아요? 이미 말했지만, 글로 보면 마음이 다를 수도 있잖아요.”
로안은 한참 그 종이를 바라봤다.
“읽어도 괜찮다. 그리고 아빠한테는 네가 직접 준 그 편지로 충분해. 이건 네가 보낼 편지야.”
레아는 책상에서 깃펜을 들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신과 천사, 악마, 인간이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손을 잡고 글씨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래서 슬퍼요.
엄마를 잊으라는 말도, 꼭 행복해야 한다는 말도 받지 않겠어요.
내가 나중에 웃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웃고 싶어서 웃는 거예요.
지금은 울어도 괜찮아요.
내 답장을 읽어 주세요.’
레아는 마지막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오른손도 왼손도 아닌,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천천히 썼다. 글씨는 삐뚤었고 잉크는 군데군데 번졌다.
[원 수신인 확인: 레아.]
[원 발신인: 미확인.]
[반송 내용: 수신자의 직접 작성.]
피엘은 그 아래에 적힌 문장을 보고 조금 웃었다.
[문장 아름다움 점수: 산정하지 않음.]
“좋은 편지입니다.” 피엘이 말했다.
“예뻐서요?”
“당신이 쓰고 싶었던 말이라서요.”
레아가 편지를 접었다. 피엘은 그것을 대신 넣어 주지 않았다. 아이가 나무문 앞으로 가자 쇠사슬이 갑자기 조여 왔다. 거대한 봉투가 법정 천장에서 내려와 문을 가로막았다.
“그 말을 보내면 모든 사람의 행복이 흔들릴 거야.”
레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다른 사람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죠.”
“그들이 잘못 선택하면 어떡하지?”
토비가 말했다.
“그럼 저희가 도울 수는 있겠죠. 다시 물어볼 수도 있고요. 그 사람이 아직 고르지 않은 걸 대신 고르면 안 되는 거고.”
거대한 봉투는 이제 토비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못했다. 목소리는 종이를 세게 문지르는 소리처럼 변했다.
“너희는 미래에 얼마나 큰 불행이 있을지 몰라!”
오스벨이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몰라. 그래서 연구하는 거지. 모른다고 말할 자유가 없는 학문은 주문이 아니라 겁박이야.”
벤은 마계의 검은 동전을 손끝에서 굴렸다.
“계약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안다는 것과 위험을 핑계로 남의 인생을 통째로 사들이는 건 달라.”
거대한 봉투가 펼쳐지며 세상의 모든 이름을 한꺼번에 보여 주었다. 마라, 루나, 이시아, 니메르, 로안, 그리고 아직 이름이 없는 수많은 사람의 기록이었다. 그 아래에는 이미 서명한 것으로 처리된 동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하나의 미래를 선택합니다.]
피엘은 자신의 수첩을 펼쳤다. 개별 동의가 확인되지 않은 항목에는 다른 표시를 할 수 있었다.
“원본 서명 없는 동의서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는 각 문서에 '확인되지 않음'이라고 찍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혼자 검토하려 하지 않았다. 루셀은 법정에서 확인 가능한 부분을 담당했고, 이시아는 자기 권한으로 작성된 문서의 진위를 구별했다. 오스벨은 자동 작성기에서 발생한 기계 서명의 흔적을 추적했다. 벤은 계약 대리인이 사용한 우회 조항을 찾아냈다.
우편마차 종점에서는 서온이 기록을 대조했다.
[복사본 8,214건 중 자동 서명 8,214건.]
[개별 당사자 동의로 확인된 건수: 0.]
[검토 범위: 본 일괄 승인 제출물에 한함.]
그 수치는 제0경로의 오배송 1,006건과 다른 장부에 속했다. 피엘은 숫자를 섞어 더 큰 성과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았다.
“이 문서 묶음은 어느 누구의 동의서도 아닙니다.”
루셀이 판정봉을 들었다.
[일괄 동의 추정 근거 부족.]
[집합 수신자 00000000의 대표권 불인정.]
[제9명령의 자동 일괄 집행 정지 유지.]
쇠사슬 하나가 끊어졌다. 거대한 봉투는 비틀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내가 없어지면 누가 사람들을 위로하지? 누가 어려운 편지를 대신 써 주지? 사람들이 더 슬퍼질 수도 있는데!”
피엘은 잠깐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처음 이 기계를 운용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눈사태로 사람들이 울부짖던 날, 편지를 한 장이라도 빨리 보내고 싶어서 초안 작성기를 켰다. 그 선택 자체가 누군가를 위하려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의도가 결과를 검증할 의무를 없애지는 않았다.
“도움말을 쓸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직접 쓴 답장을 지우거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습니다.”
“그럼 난 무엇이 되지?”
“그것도 지금 당장 제가 대신 정하지 않겠습니다.”
거대한 봉투가 처음으로 말문을 잃었다. 누구나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존재가 자기의 다음 순간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 앞에서 레아가 손을 들었다.
“저 보내도 돼요?”
피엘이 미소 지었다.
“네. 당신이 원한다면요.”
레아는 종이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제8문의 안쪽과 밖에서 종이 함께 울렸다. 밖에서 니메르가 울린 종소리가 맞닿자 쇠사슬의 마지막 고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레아는 자기 편지를 투입구에 넣었다.
편지는 눈송이처럼 천천히 날아올라 거대한 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종이는 빛나지 않았고, 축복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한 줄의 글씨가 크게 나타났다.
[답장 접수: 아니요.]
한 장의 거절이 도착하자 거대한 봉투를 채우던 금빛이 흘러내렸다. 봉투 위에 쓰인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라는 문장은 자동 집행 권한을 잃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강제 미소 표식도 천천히 꺼졌다.
하늘 아래 마을에서는 가게 주인이 처음으로 상한 밀가루를 버렸고, 수레에 발이 끼었던 소년은 치료를 받으러 갔다. 로안은 레아 앞에서 울었다. 아이도 울다가, 아버지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우습다며 잠깐 웃었다. 울음과 웃음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제8문의 나무문 너머에서는 오래된 봉투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지 않았다. 누가 보낼지 아직 정하지 않은 편지는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수신자가 직접 다시 쓰기를 기다리는 편지도 있었다. 고장 난 기계가 멈춘 자리에는 조용한 우편함만 남았다.
반송 직후 피엘은 먼저 레아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아이는 울다가 웃었고, 이윽고 지친 얼굴로 로안의 옆에 앉았다. 오랫동안 억지로 씌워졌던 미소가 사라지자 눈가가 빨갛게 부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레아는 잠시 생각했다. “조금 피곤해. 그리고 배고파.”
“그런 건 기록하지 않아도 되겠지?” 벤이 말했다.
“배고픈 건 중요한데요.” 토비가 반박했다. 그는 여태 품고 있던 보리빵을 꺼냈다. 법정이 열린 동안 눌려 납작해진 빵이었다. 레아는 빵을 한 입 먹다가 웃었다.
“딱딱해.”
“죄송해요. 제가 검을 그 위에 올려놨어요.”
오스벨은 지팡이로 빵을 따뜻하게 데웠다. 그 정도 마법이라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었다. 벤도 한 조각을 받아 먹었다. 빵은 여전히 딱딱했지만 모두 별말 없이 씹었다. 억지로 기뻐해야 할 축제보다 훨씬 편안한 식사였다.
루셀은 정식 판정의 범위를 다시 설명했다. 제9명령의 자동 일괄 회수는 정지됐지만, 기존에 누군가에게 개별적으로 전달된 신탁의 효력을 모두 취소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받은 신탁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수정하고 싶고, 누구는 읽기조차 싫을 수도 있다. 각자의 사정은 나중에 확인해야 했다.
“지금부터 일은 더 많아지겠군요.” 피엘이 말했다.
“원래 이만큼 많았네. 다만 그동안은 일을 끝냈다고 기록했을 뿐이지.” 루셀이 대답했다.
피엘은 더 묻지 않았다. 바깥에서 반송 종이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은 남아 있었고 누군가는 그날 아무 편지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서류를 바꾸는 건 하루면 끝날지 몰라도, 오래 미뤄진 말을 다시 할 용기를 찾는 일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었다.
피엘은 한참 그 앞에 서 있었다. 수첩의 상태 창에는 오래된 숫자들이 남아 있었다.
[제0경로 미해결 오배송: 1,006건.]
[복원 완료: 6건.]
[최초 반송 시범 사건: 답장 접수, 후속 조사 중.]
“한 건을 해결했다고 바로 다 끝난 건 아니네요.” 토비가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편지가 제 주인의 목소리로 도착했습니다.”
서온에게서 통신이 왔다.
[피엘, 내 이름을 아직 정식으로 등록한 건 아니지만, 우편마차 종점에서 모두 서온이라고 불러 줘. 그리고 레아의 편지 도착 기록도 확인했어.]
[고맙습니다. 기록을 보전해 주세요.]
[그럴게. 다만 네 대신 결론을 정하지는 않을 거야.]
피엘은 마지막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루셀의 낡은 수첩에서 새로운 종소리가 들렸다. 그가 편지를 꺼내 살피자 희미한 글씨가 나타났다.
[긴급 감사 의뢰.]
[제8문에서 반송된 최초 편지에 대한 원 발신인 확인 필요.]
[확인 장소: 천계 제1문.]
피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제1문은 모든 신탁의 발신 자격이 등록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들여다본 것은 배송과 반송의 기록이었다. 처음 누구에게 발신 권한이 주어졌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루셀이 편지 뒷면을 뒤집었다. 그곳에는 아주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최초 신탁을 만든 존재는 아직 발신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벤이 입술을 깨물었다.
“잠깐. 신청서도 없는 놈이 온 세상에 편지를 보냈다는 거야?”
토비가 대답했다.
“그럼 이번에는 우체국 문 앞부터 가 봐야겠네요.”
피엘은 제8문의 나무문을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레아와 로안은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편지가 정말 도착했는지 세 번이나 확인하더니 처음으로 종이 없는 빈손으로 걸어 나갔다.
“가겠습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가 일행과 함께 제1문으로 향하려는 순간, 제8문 안쪽의 빈 서랍에서 또 다른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나왔다.
[수신인: 피엘.]
[발송인: 제1문에서 아직 접수되지 않은 자.]
[우편 요금: 당신의 첫 번째 기억.]
피엘은 봉투를 집지 않았다. 받기로 결정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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