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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화
PAYLUA ORIGINAL · 제4화

4화. 이름을 갈아 넣는 제분소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6,506자

오프라인 책장
밀헤이븐은 밀가루 냄새가 도시 전체에 내려앉은 곳이었다. 강을 따라 세워진 풍차와 물레방아가 쉬지 않고 돌았고, 넓은 창고 문마다 하얀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제분소의 굴뚝에서는 회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상인들은 수확한 밀을 팔러 왔다가 도리어 값이 오른 빵을 사 들고 떠났다. 서쪽의 가뭄 때문에 창고에 곡식이 쌓여 있어도 시장에서는 식량이 부족했다. 피엘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공동 제분소를 바라봤다. 벽 위에는 사람 키만 한 모래시계가 붙어 있었다. 안의 모래는 위로 흐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천계의 신탁을 중계한다고요?” 토비의 물음에 벤이 대답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 인간들은 밀가루가 하늘에서 내리는 거나 신탁이 땅으로 떨어지는 거나 비슷하게 받아들이더라고.” “저는 구별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네가 사는 마을이 평화로운 거겠지.” 제분소 정문에는 하얀 장갑을 낀 경비들이 서 있었다. 실수로 지나가는 사람도 없도록 바퀴 넷 달린 철문을 세워 놓았다. 피엘의 수첩에는 소각 시작까지 남은 시간이 붉게 표시됐다. [제3중계소 자료 폐기까지 01:37.] “정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군.” 오스벨이 말했다. “지붕으로는요?” 토비가 높은 풍차를 가리켰다. 금방이라도 구름에 닿을 듯한 날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난 인간을 날리는 마법에 능숙하지만, 내려놓는 마법은 자신이 없네.” 피엘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다른 길로 갑시다.” 그때 골목에서 작은 아이가 튀어나왔다. 등에 쌀자루보다 큰 곡식 포대를 메고 있었다. 아이는 토비를 보자 멈칫했다. “성검이다.” 그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피엘은 망토를 급히 토비의 등 뒤로 덮었다. “쉿, 조용히.” “진짜 용사면 제분소를 좀 열어 줘요.” 아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도 여기서 일했는데 사흘 전에 들어갔다가 안 나왔어요.” 아이의 이름은 린이었다. 열두 살이라고 했지만 너무 말라 여덟 살쯤 되어 보였다. 손바닥에는 곡식을 나르다 생긴 굳은살이 있었다. 린은 제분소 사람들이 밤마다 커다란 봉투를 지하로 옮겼으며, 얼마 전부터 일하러 들어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경비한테 물어봤니?” 토비가 물었다. “엄마가 특별 업무를 맡았대요. 특별한 건 돈을 더 준다더니 집엔 아무것도 안 왔어요.” 피엘은 린의 말 가운데 ‘봉투’라는 단어에 멈췄다. 천계 신탁은 인간 눈에 편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계소에서 효력이 고정되기 전에는 종이 봉투 형태를 가진다. “지하로 들어가는 길을 아니?” 린은 말없이 도시 뒤쪽 운하를 가리켰다. 밀가루가 섞여 우윳빛이 된 물이 제분소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물이 빠지는 문이 있어요. 엄마가 거길 청소했어요.” 그들이 운하로 내려가자 오스벨이 코를 찡그렸다. 물가에는 곰팡이 냄새가 짙었다. 토비는 막대기로 물속 깊이를 재고, 벤은 그림자 속으로 잠입해 문 너머를 살폈다. 그는 잠시 뒤 어깨만 내밀며 말했다. “문 하나, 경비 둘. 가장 아래층은 결계가 막고 있어.” “경비를 공격하면 소동이 커집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러면 적당히 조용하게 지나가면 되지.” 벤이 손을 들자 어둠이 길게 뻗었다. 토비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잠깐요. 저기 물레방아에 걸린 그물이 보이세요?” 경비는 바퀴에서 떠밀려 온 폐기물을 걷어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물길의 철문을 잠깐 열었다. 토비는 운하 옆에 쌓인 밀짚 다발을 들어 보였다. “이걸 막아 두면 정기적으로 문을 열 텐데요. 그때 같이 들어가죠.” “농부는 잠입도 농사처럼 하는군.” 벤이 말했다. “대단한 방법은 아니에요. 마을 수로가 막히면 늘 저렇게 치우거든요.” 작전은 예상보다 쉽게 성공했다. 바퀴가 덜컥거리자 경비 두 명이 투덜거리며 쇠문을 열었다. 밀짚 다발이 물길을 타고 떠밀려 갔고, 그 아래 숨어 있던 네 사람도 몸을 낮춰 들어갔다. 오스벨은 젖는 게 싫다며 자기 주변에 비누 거품 같은 투명한 막을 쳤다. 지하 첫층에는 곡식 창고가 있었다. 그러나 밀자루들 사이로 커다란 검은 서랍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서랍마다 인장이 붙어 있었다. [배송 완료.] [수신자 변경 승인.] [원본 파기 예정.] 피엘은 서랍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금빛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구원받을 사람에게 내려갈 기도 응답 신탁이었다. 수신자가 잘못 바뀌었다는 표식이 찍혀 있었다. “이건 단순한 주소 오류가 아닙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글자를 훑었다. “원래 수신자에게는 ‘병든 딸의 열병이 가라앉는다’는 신탁이 내려가야 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대회에서 승리한다’는 식으로 내용까지 바뀌었습니다.” “원래 받을 사람은요?” 토비가 물었다. “이름이 지워졌어요.” 그 순간 맞은편 서랍이 크게 흔들렸다. 낡은 봉투 하나가 스스로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토비가 집으려 하자 피엘이 손목을 잡았다.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수신자가 아닌 사람이 봉인을 뜯으면 계약이 뒤틀릴 수 있어요.” 벤이 슬쩍 옆으로 비켰다. “그 경고는 내 귀에도 담아 두지.” 오스벨이 호주머니에서 은빛 달걀을 꺼냈다. “봉인을 뜯지 않고 내부를 보는 법은 있네.” 달걀을 종이 위에 비추자 껍질의 작은 금빛 무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아닌 토비조차 봉투의 안쪽에 흐릿한 문장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오스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천계에서 받은 닭 사육 신탁에 따라 키운 암탉이 낳은 알일세. 신성한 명령의 정당한 부산물이지. 같은 계통의 봉인을 거울처럼 비추는 성질이 있군.” “닭을 키우라는 신탁이 이런 데 쓰이다니.” 피엘이 중얼거렸다. “닭도 쓸모가 있는 법이지. 수탉의 쓸모는 아직 연구 중이네.” 달걀에 글자가 떠올랐다. [발신 기록 없음.] [경유지: 제0경로.] [수신자 지정 이전.] 피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0경로라는 건 없습니다. 신탁은 제1경로부터 제7경로까지 이용하는데요.” “없는데 있다고 적혀 있으니 재미있잖아.” 벤이 말했다. 그들은 원본이 쌓인 뒤쪽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수백 개의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마다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인간들이 앉아 봉투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도 들어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모두 손가락 끝에서 피를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린의 어머니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여인은 깡마른 손으로 글자를 쓰다가, 옆에서 이름을 부르는 토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이름을… 쓰면… 집에… 가게 해 준다고 했어요.” 그녀의 앞에는 이름이 지워진 봉투 수십 장이 쌓여 있었다. 피엘은 즉시 구조 방법을 찾았다. 책상 아래에 고정된 마법진은 사람들의 기억을 조금씩 빨아들여 지워진 수신자 이름을 메우고 있었다. “이 사람들을 대체 봉투의 잉크로 쓰고 있군요.” 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군가 원본 기록을 없애려고 인간의 기억을 갈아 넣는 거야. 그 이름이 실제로 누구였는지 아무도 떠올리지 못하게.” 오스벨은 책상을 둘러싼 마법진을 살폈다. 강제로 부수면 기억이 모두 소멸할 구조였다. “밖에서 회로를 끊으면 이 사람들의 기억까지 날아가네.” “그럼 안에서 차단하면요?” 토비가 물었다. “중심 장치에 손을 대야지. 지금 회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누구든 자기 이름을 잃을 걸세.” 토비는 잠시 자기 손등을 내려다봤다. 흙이 손톱 사이에 남아 있었다. 피엘이 말릴 틈도 없이 그가 성검을 들었다. “전 농부라서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씨앗 이름 몰라도 심어 보면 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제 이름 까먹어도 저한테 다시 알려 주시면 되잖아요.” 피엘의 목이 메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울 수 있는 게 이름만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했는지도 잊을 수 있어요.”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요.” 토비가 의자 아래 흙 묻은 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마법진도 땅에 그려 놓은 거죠? 땅이 원래 이렇게 생기진 않았잖아요.” 그는 성검의 끝을 마법진 바깥쪽에 눌렀다. 1화에서 밭에 생명력을 일깨웠던 바로 그 방식이었다. 빛은 회로를 부수지 않았다. 바닥의 오래된 씨앗들을 깨웠다. 풀싹들이 자라나 회로의 가느다란 선을 하나씩 들어 올렸다. 마법진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오스벨이 달걀에 반사된 신성력을 이용해 회로의 형태를 붙잡았다. 사람들의 기억은 튀어나가지 않고 작은 빛방울로 모였다. 벤이 그림자로 그 방울을 가려 회수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움직인 끝에, 가장 마지막에 책상 앞의 여인이 펜을 내려놓았다. “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린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더듬더듬 말했다. 도렌. 한때 우체국에서 봉투를 분류했고, 딸이 태어난 뒤에는 밀가루를 나르며 생계를 이어 왔다고 했다. 처음 제분소 지하로 내려올 때는 하루 품삯이 평소의 세 배라고 했다. 도렌은 딸의 겨울 외투를 사 주고 싶었다. “일당을 받으면 바로 나올 생각이었어요.” 여인은 자기 손가락 끝을 내려다봤다. 손톱 옆에 작고 검은 상처들이 빼곡했다.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몸에 남은 힘이 너무 적기 때문인 듯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제가 쓰는 글자를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제가 누구 편지를 쓰는지도 몰랐어요. 딸을 떠올리려고 하면 다른 사람 이름이 떠올랐고요.” “기억을 빼앗으면서 이름을 다시 채운 겁니다.” 피엘은 그녀의 책상 아래에서 가느다란 실을 끊어 냈다. 실 끝에는 진짜 수신자의 이름을 가리는 검은 얼룩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서명이 아니라 사람의 소중한 기억으로 만든 잉크였다. 도렌은 갑자기 피엘의 제복을 붙잡았다. “천사님, 제가 쓴 편지가 밖으로 나간 건 아니겠죠?”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제 손으로 누군가를 잘못된 곳으로 보냈다면….” “당신이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 손이었잖아요.” 피엘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도 자신의 이름으로 승인된 문서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하지 않았어도 책임감을 느꼈다. 비슷한 무게가 도렌의 마른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우선 이 방에서 나가야 합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무엇을 썼는지 함께 확인합시다. 기억을 돌려드리고, 잘못된 편지를 하나씩 바로잡는 것이 먼저입니다.” 도렌은 눈물 고인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토비는 여인의 앞에 물병을 놓았다. 여인이 떨리는 손으로 병을 들자 손이 너무 흔들려 물이 흘렀다. 토비가 병을 받쳐 주었다. “지금은 힘드시면 쉬세요. 우리 마을에도 수확철에 몸이 아프면 쉬어야 하는 분이 계세요. 일은 다른 사람이 하면 돼요.” “고맙습니다.” 토비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잘하는 건 그 정도라서요.” 잠시 뒤 다른 의자에서 늙은 남자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제분소에 들어오기 전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작은 아이가 부르던 노래가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옆자리 여인이 그 노래의 마지막 절을 따라 불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여인은 마을에서 헤어진 그의 딸이었다. 피엘은 그 광경을 보며 수첩에 기록했다. 단순히 기억을 추출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잘라 냈다. 누군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까지 끊어 놓으려 했다는 뜻이었다. “이 장치를 설계한 사람은 수신자의 이름이 왜 중요한지 압니다.” 벤이 낮게 말했다. “이름이 없으면 찾을 사람도 없고, 기다릴 사람도 없어져. 그 뒤에는 어떤 약속이 사라져도 항의할 사람이 없지.” 오스벨이 달걀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렇다면 우선 사람들에게 서로를 돌려줘야겠군.” 그는 마법으로 작은 종을 만들어 방 위쪽에 띄웠다. 이름이 떠오르는 사람은 그 종을 치라고 했다. 도렌이 딸의 이름을 또박또박 외치자 종이 맑게 울렸다. 이어 한 사람씩 이름이 돌아올 때마다 종소리가 지하 공간에 퍼졌다. 사라진 연결을 다시 맺는 작은 신호였다. 피엘은 눈을 감았다. 잠깐뿐이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자신의 사라진 과거를 조금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고요는 길지 않았다. 제분소 천장에 굵은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금빛 봉투들이 동시에 불붙기 시작했다. 자료 소각 시각이 온 것이다. “원본부터!” 피엘이 외쳤다. 토비가 물을 길어 오려 하자 오스벨이 지팡이를 땅에 쳤다. 천장 틈으로 운하의 물이 흘러들었다. 벤은 그림자 커튼을 펼쳐 불꽃이 번지는 속도를 늦췄다. 피엘은 타들어 가는 기록 가운데 인장 하나가 찍힌 가장 오래된 봉투를 발견했다. 피엘의 첫 근무 날짜보다 앞선 날짜였다. 그리고 봉투의 수신자 칸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발신자: 미기재.] [수신자: 아직 태어나지 않음.] [배송 경로: 0.] 그가 봉투를 집는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박수를 쳤다. “제법이군요.” 문 앞에 검은 장갑을 낀 장신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경비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감찰국 특별 감사관 라베른입니다. 불법 보관 자료를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피엘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 봉투를 내놓으시죠. 그 종이 한 장 때문에 당신의 남은 시간이 아주 짧아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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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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