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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화
PAYLUA ORIGINAL · 제3화

3화. 악마가 본 왼손잡이 천사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6,269자

오프라인 책장
새벽의 마법탑은 비가 오기 직전처럼 축축했다. 풀잎에는 이슬이 맺혔지만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 시간 전까지 알을 낳지 않는 수탉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오스벨은 이제 책상을 벽난로 앞으로 옮겨 놓고 천계 법령집을 뒤적이고 있었다. 도깨비불처럼 떠 있는 램프 열두 개가 방 안에 조그만 그림자를 만들었다. 피엘의 업무 수첩 한쪽에는 붉은 시간이 떠 있었다. [집행 재개 예정: 71시간 12분.] [회수된 이력: 최초 근무 배치 기록 1건.] 종이에 남은 기록이 사라졌다면 새로 적으면 된다. 하지만 머릿속의 기억까지 없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피엘은 천계로 처음 출근하던 날을 떠올리려 애썼다. 낡은 구두를 신고 커다란 구름문 앞에 섰던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근무 첫날 누군가 자신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는 느낌뿐이었다. 그 누군가의 얼굴이 없었다. “계속 그렇게 얼굴 찌푸리고 있으면 더 빨리 사라지나?” 벤이 창틀에 걸터앉아 말했다. 그는 악마답게 창문을 열지 않고 그림자 틈으로 들어왔다. 피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들은 누구 집에 방문할 때 노크를 안 합니까?” “노크를 하면 대개 문이 닫히거든.” 토비가 식탁에 빵을 놓았다. “일단 드세요. 힘이 없으면 증거도 못 찾잖아요.” 피엘은 빵을 집어 들다 말고 벤을 바라봤다. “당신이 목격한 거래를 처음부터 설명해 주세요.” 벤은 의외로 군말 없이 말을 시작했다. 악마들이 운영하는 지하 거래소 ‘밤의 저울’은 화폐보다 약속을 중시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수십 년 뒤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누군가는 이루지 못한 꿈을 팔았다. 그곳에는 천계의 물건도 흘러들어 왔다. 폐기된 성수병, 망가진 후광, 사용 기한이 지난 축복 서류. “그날 아침, 피엘 얼굴을 한 녀석이 ‘영혼 서명 한 조각’을 들고 왔어. 그림자 거래로 그 서명에 일시적인 몸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 “이미 제 서명이 있는데 또 몸을 만든다고요?” “인장만 있으면 문서는 열 수 있지만 서명자의 동선을 흉내 낼 수는 없어. 천계의 배송 관문은 몸의 그림자까지 확인하거든.” “그럼 그자는 천계 안으로 들어갔겠군.” 오스벨이 중얼거렸다. 벤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공중에 거래소의 영상이 떠올랐다. 검은 커튼과 열쇠 모양의 저울, 그 가운데 서 있는 피엘의 뒷모습. 영상 속 인물은 피엘처럼 어깨를 조금 웅크렸고, 신발 뒤축도 닳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랐다. “저 사람은 왼손잡이입니다.” 토비가 먼저 짚었다. 모두 영상에 눈을 모았다. 가짜 피엘은 계약서에 왼손으로 서명하고 있었다. 실제 피엘은 오른손으로 깃털 펜을 잡았다. “좋아. 구별할 방법 하나.” 벤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영혼의 결이 일치한다는 걸 깨려면 서명이 처음 만들어진 순간을 찾아야 하거든.” 오스벨이 서가에서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산맥과 왕국의 경계가 그려진 보통의 지도 위에 마력을 흘려보내자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은빛 도로들이 드러났다. “천계에서 신탁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지나가는 통로일세. 우리가 사는 곳에는 일곱 개의 공인 중계소가 있지.” 피엘이 손을 뻗어 세 번째 중계소를 가리켰다. “제가 사용하는 경로는 제7물류국에서 이곳까지 직행입니다. 제3중계소는 폐쇄된 지 수십 년 됐어요.” “바로 그게 문제지.” 벤이 대꾸했다. “거래 후에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조사했는데, 폐쇄된 제3중계소의 통행료가 결제됐더라고.” “폐쇄된 곳에서 왜 통행료를 받아요?” 토비가 물었다. “세상에는 문을 닫았다고 하면서도 돈은 꼬박꼬박 받는 곳이 있거든.” 마법탑에서 북쪽으로 반나절 거리. 지도의 낡은 잉크에 ‘밀가루 강’이라 적힌 곳이었다. 큰 강을 끼고 제분소들이 모여 있는 도시, 밀헤이븐. 벤은 그 근처에 남겨진 통행료 영수증을 보여 주었다. [제3중계소 — 임시 화물 인도.] [소유자: 피엘.] [화물 수량: 1,024.] 피엘의 손이 굳었다. “천 건이 넘는다고 했죠.” “정확히는 천스물네 건이야. 네 이름으로 묶어 버린 거지.” 토비가 숫자를 세어 보려다 포기했다. “그렇게 많은 편지를 왜 바꿔요?” 벤은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모르지. 다만 모든 수신자가 공통으로 뭘 잃었는지는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마법탑을 나섰다. 오스벨은 닭장에 사료를 채워 넣고 가계부처럼 꼼꼼한 사육 일지를 벽에 붙였다. 암탉 중 한 마리는 커다란 은빛 알을 낳기 시작했다. 오스벨은 그 알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신탁을 이행하러 가는 걸세. 연구가 아니라.” “도시에 닭을 데리고 가지는 않으시는군요.” “수탉은 동행하네.” 토비가 어이없다는 듯 돌아보자 오스벨은 품 안의 붉은 볏을 가리켰다. “이 녀석에게 ‘수컷도 알을 낳을 수 있나’ 질문을 받았던 날 이후로, 생물학을 모르는 사람이 중요한 일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네.” 토비는 감자를 담은 자루를 어깨에 멨다. 성검은 허리춤에 차려다 무거워서 결국 등 뒤의 농기구 끈에 묶었다. 피엘은 걸을 때마다 오른쪽 날개 끝에 스치는 허전한 바람을 느꼈다. 숲길을 지난 뒤 그들은 남쪽 상업도로와 만났다. 마차가 줄지어 오가는 넓은 흙길이었다. 가을 수확을 앞둔 들판은 옅은 황금빛이었지만 군데군데 메마른 땅이 갈라져 있었다. 길가의 여관에서는 굶주린 가족들이 밀가루 한 자루를 놓고 값을 흥정했다. 풍년을 기원하는 신탁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토비는 금세 알아챘다. “다음 마을에서는 씨앗을 좀 나눠 줘야겠어요.” “우리는 시간이 없어요.” 피엘이 말했다. “그럼 걸으면서 나누면 되죠.” 토비는 길가를 걷는 아이에게 마른 콩을 한 줌 쥐여 주고 심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피엘은 그럴 때마다 시계를 보았다. 분 단위로 삶이 줄고 있었지만, 토비가 씨앗을 건네는 몇 초가 이상하게 아깝지만은 않았다. 길가에는 버려진 석상이 하나 서 있었다. 손을 높이 든 용사의 형상인데, 얼굴 부분이 닳아 누구를 기린 것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토비가 잠시 멈춰 서자 피엘은 석상 아래 글자를 읽어 주었다. ‘제24대 구원자. 대륙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스물네 번째면 앞에 스물세 명이 있었다는 얘기네요?” 토비가 물었다. “그렇겠죠.” “뒤에도 또 있겠고요.” 피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천계는 어느 시대든 새로운 구원자를 선택했다. 굉장히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그러나 토비에게는 구원자의 숫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숫자로 보이는 듯했다. 오스벨은 석상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나도 어렸을 때 이 사람을 존경했네. 지도를 따라 전장을 찾아다니며 남긴 마법을 연구했지. 그런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 “나이가 드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벤이 말했다. “이 사람의 이름만 기억나지 않아.” 오스벨은 눈썹을 모았다. 석상 옆에는 다른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돌들이 있었다. 그중 절반 가까이 글자가 지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비바람 때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피엘에게는 문서에서 이름이 삭제될 때 남는 모양과 똑같이 보였다. “오스벨 님, 이 영웅들의 기록을 다른 데서 보신 적 있습니까?” “왕립 도서관에서 본 듯하네. 다만 영웅전 첫 장마다 이름이 비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벤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쫓는 거야.” 피엘은 처음으로 악마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 왜요?” “악마라고 해서 아무 기억이나 지워도 되는 건 아니거든. 내 지하 거래소에는 계약서를 남겨. 당사자가 죽어도 누가 뭘 약속했는지는 보존하지. 신들이 계약자의 이름을 지워 버리면, 우리 쪽 기록도 구멍이 나. 거래가 성립한 적 없었다는 모순이 생기거든.” “상인으로서 화가 났다는 겁니까?” “처음에는 그랬지.” 벤은 석상 아래에 놓인 시든 꽃을 바라봤다. “그런데 수신자가 사라진 편지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어. 죽은 동생과 마지막으로 나눈 약속을 돌려 달라고 하더군.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이 자기를 포함해 아무도 남지 않았대. 그때부터 좀 더 신경 쓰이더라고.”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토비는 시든 꽃을 걷어내고 새로 꺾은 들꽃을 석상 앞에 놓았다. “이름을 모르면 찾아보면 되죠. 나중에요.” 피엘은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이미 죽은 구원자의 이름 하나가 현재 천스물네 건의 오배송과 이어져 있을지도 몰랐다. 이 사건은 오늘 새벽 두 봉투를 바꿔치기한 사고보다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행이 다시 걸음을 옮길 때, 동쪽 하늘에는 흰 새 떼가 날았다. 새들이 한번에 방향을 꺾자 모든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북쪽을 가리켰다. 벤은 그 광경에 걸음을 멈췄다. “그림자가 일제히 뒤집히는 건 드문데.” “날씨가 바뀌려나 봐요.” 토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길 바라야지.” 벤은 코트 주머니 속 흑요석을 한번 더 쥐었다. 사람들의 운명뿐 아니라 이 세계의 작은 규칙까지 누군가 조정하고 있다면, 이번 사건의 범위는 그들의 생각보다 넓을 것이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넓은 돌다리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관리들이 통행을 막았다. 모자에는 깃털 세 개가 꽂혀 있고, 장갑에는 금속 눈동자가 그려져 있었다. “제3중계소 통행 기록 확인 중이다. 모든 여행객은 신성 계약 소지 여부를 신고하라.” 피엘은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제3중계소가 폐쇄됐다고 말했던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관리들의 배지는 현재 발급되는 천계 감찰국의 것이었다. 벤이 낮게 속삭였다. “저 자들은 내 거래소에서도 경계하는 놈들이야. 기록 감사관.” 토비가 묻기도 전에 관리 하나가 성검을 보았다. “구원 신탁 수신자다. 체포하라.” “왜요?” 토비가 되물었다. “저 아직 마왕한테 가는 길도 모르는데요.” “계약 이행을 방해하는 자와 동행한 혐의다.” 피엘은 수첩을 열었다. 관리에게 체포 사유를 밝히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문항을 찾았다. 하지만 문서를 읽기 시작한 순간, 감찰관의 장갑에 달린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문서 관리자 피엘. 소멸 보류 중인 대상 확인.” 그는 피엘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다. “감사관 라베른의 명에 따라 신분을 회수한다.” 금속 손바닥에서 가느다란 검은 실이 뻗었다. 피엘의 수첩 표지에 새겨진 이름이 한 획씩 벗겨졌다. 피엘은 즉시 수첩을 품에 감쌌다. 그러나 검은 실은 종이를 거쳐 그의 손목으로 기어올랐다. “서류를 읽는 것만으로도 잡히는 겁니까?” “도장부터 뺏길 거야!” 벤이 외쳤다. 토비는 마차에서 떨어진 낡은 멍에를 주워 들었다. 상대는 신성한 무장을 했고 자신은 농부에 불과했다. 그래도 밭에서 쓰던 도구를 다루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검은 실이 이어진 통행 검문대의 말뚝을 멍에로 후려쳤다. 쾅! 말뚝이 부러지자 실이 잠시 느슨해졌다. 오스벨이 그 틈에 바람을 일으켜 피엘을 뒤로 밀었다. 피엘은 다리 난간에 겨우 몸을 걸쳤다. “도망가라!” 오스벨이 외쳤다. 관리들은 순식간에 대열을 갖췄다. 금속 눈동자가 세 사람을 차례로 조준했다. 하지만 다리 아래의 강물이 갑자기 하얗게 부풀었다. 오스벨의 지팡이 끝에서 밀가루 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마법 이름은 ‘부풀어 오르는 반죽’일세.” “그런 마법도 있어요?” 토비가 외쳤다. “요리법을 잘못 따라 했다가 우연히 발견했지!” 다리 전체가 부드러운 흰 거품에 휩싸였다. 관리들의 장화가 달라붙는 사이, 네 사람은 시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 몸을 숨겼다. 벤은 기침을 하며 검은 코트의 밀가루를 털었다. “저 노인네 마법은 언제 봐도 이상해.” “실용적이라고 해 주게.” 피엘은 뒤를 살폈다. 다리 저편에서 관리들이 반죽을 헤치고 있었다. 벽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닳은 글자로 ‘밀헤이븐 공동 제분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위에 새로 붙인 금빛 통지문이 있었다. [오늘 밤 제3중계소 증빙 자료 일괄 소각.] [폐기 승인자: 신탁 배송 담당 피엘.] 피엘은 벽보를 떼어 들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첫 근무 기록, 도용된 영혼 서명, 천스물네 건의 화물. 모든 흔적이 저 도시에 모이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증거가 없어집니다.” “아직 해가 높으니 넉넉하네.” 오스벨이 말했다. “아뇨.” 벤이 골목 끝의 시계탑을 가리켰다. 시계는 정오를 가리켰지만 그 밑의 검은 바늘 하나가 거꾸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천계 화물의 밤은 인간보다 빨리 와. 중계소의 소각 시각까지 남은 건 두 시간.” 피엘은 벽보에 적힌 승인 서명을 들여다봤다. 서명 마지막의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평생 오른손으로 서명할 때 점을 오른쪽에 찍었다. 가짜는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피엘의 서명을 흉내 낸 것은 오늘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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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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