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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2화
PAYLUA ORIGINAL · 제32화

32화. 웃지 않으면 장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4,998자

오프라인 책장
피엘은 제 이름으로 작성된 봉투를 곧장 뜯지 않았다. 소멸 명령이 내려왔을 때도 이토록 신중하지는 못했다. 그때는 한 장의 서류가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지금 눈앞의 봉투는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사람의 말을 대신 써 놓은 물건이었다. “제가 보낸 편지일 수도 있습니다.” 레아가 물었다. “그럼 왜 보내기 전에 내게 묻지 않았어?” “그 이유를 알아내겠습니다.” 벤이 봉투 가장자리를 훑었다. 마계에서 계약서의 위조 흔적을 찾을 때 쓰는 손짓이었다. 종이의 가장자리가 검게 변했다가 다시 희어졌다. “봉인에 쓰인 인장은 진짜야. 다만 인장이 진짜라는 것과 내용이 맞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지.” 오스벨이 봉투를 빛에 비추었다. 서명 밑에 문구가 떠올랐다. [대상자 감정 보호용 사전 배송 신청.] [신청 사유: 외상 예방.] [수신자 최종 의사 확인: 생략.] 토비가 입술을 삐죽였다. “아프지 않으라고 약을 주는 건 알겠는데, 아픈지 묻지도 않고 입을 막는 건 다르잖아요.” 그때 검은 우편함에서 마른 웃음소리가 났다. “보호와 통제의 차이를 정의하려면 일단 통계가 있어야지. 이 마을의 행복 유지율은 완벽했다.” 피엘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십니까?” “발신인.” “성명을 대십시오.” “성명이 없어서 빈 발신인이지. 알아듣기 어렵나?” 목소리는 한순간 토비의 목소였다가, 다음 순간 이시아의 목소가 되었다. 들을 때마다 가장 믿기 쉬운 사람의 어투로 바뀌었다. 피엘은 수첩에 그 현상을 적었다. '본인 확인 불가. 목소리만 일치.' “남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건 그만하십시오.” “그럼 네 목소리로 말하면 되겠군.” 우편함 안에서 피엘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업무 효율을 위해 원본 확인을 생략하겠습니다.’ 피엘은 찬바람을 들이켰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업무용 표현이 정확하게 재현돼 있었다. 레아는 우편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오래된 번호판을 문질렀다. 종이가 아니라 쇠로 만들어진 번호판에는 누군가 못을 박았다 뺀 흔적이 있었다. “원래 이건 사람 이름을 쓰는 곳이었어.” “그런데 왜 숫자로 바뀌었습니까?” “여긴 한 사람의 마음으로는 부족하다더라.” 레아가 우편함에서 떨어진 작은 구리못을 주웠다. 피엘은 손을 내밀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을 살폈다. 못끝에는 표준화된 신성 인장이 찍혀 있었다. [개인 수신인 통합. 개별 반송 기능 종료.] “처음부터 수신인이 모두였던 게 아닙니다.” 피엘이 말했다. 오스벨이 턱수염을 쓸었다. “어떤 특정한 사람 앞으로 온 축복을, 누군가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적용한 거겠지.” “할인을 해 줬나요?” 토비가 물었다. 벤이 답했다. “대량 발송 할인. 마계에서도 그런 사고는 한 번쯤 내.” 그들은 검은 우편함에서 조금 떨어졌다. 목공소로 가는 도중 그들은 축제의 중앙 공연장을 지나야 했다. 가장 높은 무대에는 ‘오늘 가장 행복한 시민’을 뽑는 투표함이 놓여 있었다. 투표함에 붙은 설명은 단순했다. ‘올해 가장 많이 웃은 사람에게 무료 장작을 드립니다.’ 눈이 많은 마을에서 장작은 귀한 물건이었다. 한 노인이 투표함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집에 난방을 할 땔감이 부족하지만 최근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로 웃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직원은 그에게 웃는 가면을 건넸다. “가면을 쓰시면 웃음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면 제가 실제로 웃은 게 아니잖소.” “결과는 같지요.” 노인은 가면을 받았다. 그러나 손에 쥐고 있을 뿐 쓰지 않았다. 오스벨이 눈 위에 작은 불꽃을 피워 노인의 손을 녹였다. “지금 장작이 필요하다면, 웃음 대회가 아니라 지원 창구가 있어야겠군.” 그가 말하자 직원은 웃는 얼굴로 벌점표를 꺼냈다. [축제 정신을 훼손하는 발언.] 오스벨은 지팡이를 들고 벌점표를 다시 보았다. “늙은이에게 장작을 주는 방법을 묻는 게 어째서 위험하나?” “불행에 주목하면 다른 참가자도 슬퍼집니다.” “그렇다면 참가자들은 지금 모두 기쁜 척만 하고 있나?” 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같은 미소를 세 번 반복했다. 마치 한 문장밖에 외우지 못하는 인형 같았다. 벤이 직원의 그림자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그림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어깨가 축 처진 채 거듭 한숨을 쉬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은 속일 수 있어도 그림자까지 교육시키진 못했군.” 벤은 그림자를 노인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림자는 무대 밑에 감춰진 나무상자를 가리켰다. 상자 안에는 원래 장작 지원 신청서가 쌓여 있었다. 누군가 장작을 나누는 절차를 웃음 점수에 연결해 버린 것이었다. 피엘은 그 상자의 위치를 적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신청서를 즉시 처리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어떤 권한으로 누구에게 장작을 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대신 오스벨이 가져온 여분의 마법 장작을 노인에게 직접 선물했다. 노인은 웃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숙였다. “고맙소.” “그 말이면 충분하네.” 오스벨이 대답했다. 무대의 행복 점수판에는 처음으로 숫자 대신 물음표가 나타났다. 기록 장치는 누군가 웃지 않으면서도 도움을 받는 일을 계산하지 못했다. 토비는 물음표가 오히려 정상처럼 보여서 한참 바라봤다. 거리에 다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종이 울릴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은 밝게 펴졌다가 바로 아래로 처졌다.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할 때마다 표정이 먼저 교정되는 듯했다. 시장 앞에서는 빵집 주인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장부를 붙잡고 있었다. 장부의 매출 칸에는 모두 '좋음'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저장고에는 상한 밀가루가 가득했다. 주인은 냄새를 맡을 때마다 웃으며 말했다. “행복하군요. 이번 주에는 벌레도 많이 태어났으니 풍년입니다.” 토비는 상자에서 곰팡이가 핀 빵을 꺼냈다. “이걸 팔면 사람들이 아파요.” “그건 부정적인 평가입니다. 우리 마을에선 사용하지 않아요.” “그럼 아픈 사람은 뭐라고 말해요?” “행복해지기 직전이라고 하지요.” 토비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부서진 수레를 고친 일과 달리 이건 성검으로 자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스벨이 빵 한 조각에 진단 마법을 펼치자 붉은 독성 문양이 떠올랐다. 그런데 마법진의 판정 문구가 강제로 바뀌었다. [안전. 만족. 행복.] “마법 검사 결과까지 바꾸고 있어.” 오스벨이 혀를 찼다. “기분을 관리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위험을 알아챌 기회부터 없애 버린 셈이지.” 벤은 장부 뒷면을 살폈다. 거기엔 매일 같은 도장으로 찍힌 서명이 있었다. [마을 행복 감독관. 실재 인물 없음.] “서류가 서류를 감독하고 있었군.” 피엘은 마을 입구에서 본 '행복 유지율 100%'라는 간판을 떠올렸다. 천계 마지막 창고의 성공률 100%와 같았다. 반송을 막고 성공률을 올렸던 것처럼, 이곳은 슬픈 표정을 없애 행복을 증명하고 있었다. “실제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닙니다.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사라진 겁니다.” 레아가 그 말을 들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우리 아빠는 매일 엄마가 돌아올 수 있다고 했어. 사람들이 엄마가 어디 갔는지 물으면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했거든.”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여기 있어.” 아이가 멀리 있는 목공소를 가리켰다. 벽마다 작은 나무새를 매달아 놓은 가게였다. 창 안쪽에서 키 큰 남자가 새 한 마리를 깎고 있었다. 그는 나무를 깎다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흐르는데도 계속 웃었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구나!” 레아가 숨을 삼켰다. “그 웃음이 제일 싫었어.” 토비는 그녀 옆에 주저앉았다. “아빠가 웃는 게 싫었어요?” “나한테 울면 안 된다고 해서.” 토비는 보리골에서 루나를 잊고 살던 날들을 떠올렸다. 잊고 있을 때는 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억지로 잊게 만든 건 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조심해서 골랐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도 되는데.” “그러면 종이 울려.” 정말로 종이 울렸다. 레아의 눈가에 물기가 맺힌 순간이었다. [슬픔 감지. 고위험 반송 신호 수집 개시.] 길모퉁이에 있던 웃는 얼굴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피엘은 수첩을 펼치고 주위에 방어용 선을 그었다. “레아,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아이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한 단어를 꺼냈다. “싫어.” 은색 종이 미친 듯이 울었다. 마을 상점의 간판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길바닥에서 수백 장의 편지가 솟구쳤다. 편지에는 똑같은 짧은 말이 적혀 있었다. ‘싫어.’ 벤이 손가락을 튕겨 그림자 울타리를 만들었다. 오스벨은 밀가루 자루를 허공에 띄워 날아오는 종이를 막았고, 토비는 레아 앞을 가로막았다. 피엘은 그 무엇보다 아이의 앞에서 펜을 내려놓았다. “그 말을 기록하되, 당신 대신 다른 말을 쓰지 않겠습니다.” 편지 한 장이 레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는 그것을 펼치지 않은 채 안았다. 목공소에서 남자가 뛰쳐나왔다. 그는 레아를 보자 달려오려다가 발을 멈췄다. 웃는 얼굴에는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도자기 가면처럼 얇은 미소가 그의 실제 입술 위를 덮고 있었다. “레아, 그 말을 하면 안 돼.” “왜요, 아빠?” “우리가 슬퍼지면 엄마가 다시 못 온대.” 피엘이 물었다. “그 말을 누가 했습니까?” 남자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목공소 안에서 나무새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온 친절한 편지가 그랬습니다.” 그는 가슴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슬픔 표현 시 구조 자격 박탈]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그 아래에는 그가 결코 직접 보지 못했을 서명이 있었다. [발신인: 피엘.] 피엘은 자기 이름을 보았다. 레아의 답장이 사라진 이유가 한 장의 빈 봉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보낸 것으로 처리된 편지들이 마을 전체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 순간 레아가 가면을 쓴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빠,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도 나 울어도 돼요?” 남자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보다 먼저, 마을 위의 커다란 종이 대답했다. [승인 거부.] 그리고 광장 한복판에서 행복 축제의 진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세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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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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