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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LUA ORIGINAL · 제31화

31화. 눈 내리는 마을의 마지막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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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책장
제8문 안쪽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구름에서 내려오는 눈이 아니었다. 낡은 책상 서랍과 바닥 틈, 허공에 멈춘 편지의 접힌 부분에서 흰 가루가 흘러나왔다. 토비가 손바닥을 내밀자 눈송이 하나가 녹지 않고 작은 글자가 되었다. ‘괜찮아.’ 다른 눈송이는 ‘울지 마’였다. 세 번째는 ‘더 좋은 내일이 올 거야’였다. 글자들이 서로 엉키자 뜻밖에도 모두 같은 문장으로 변했다.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눈도 잔소리를 하네요.” 토비가 중얼거렸다. 오스벨이 지팡이를 들어 글자 하나를 붙잡았다. 흰 가루 안에는 일곱 겹의 마법진이 박혀 있었다. 천계의 축복 인장, 인간의 소원 기록, 반송 금지 표식, 그리고 발신인이 비어 있는 봉인의 흔적이었다. “이건 날씨가 아니야. 한 번 발송된 문장이 자기 사본을 만든 거지.” “눈사람도 만드나요?”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만들지 말게. 행복한 눈사람을 세상에서 누가 감당하겠나.” 평소라면 웃었을 벤도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벽 너머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어린아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갈색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두꺼운 회색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었을까. 맨발로 서 있는데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답장을 정말 읽어 줄 거야?” 피엘의 손이 떨렸다. 잃어버린 첫 근무 기억의 자리에서 둔한 통증이 올라왔다. “읽겠습니다.” “전에도 그랬잖아.” 아이는 빈 봉투를 들어 보였다. 봉투에는 발신인도 수신인도 없었다. 우편물 분류 규정대로라면 접수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피엘은 무심코 수첩을 꺼냈다가 손을 멈췄다. 이곳의 규정은 누군가가 답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규정과 같은 것일지 몰랐다. “접수 번호가 없어도 듣겠습니다.” 그가 말하자 아이 뒤의 마을이 가까워졌다. 책상과 벽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네 사람은 얼어붙은 돌길 위에 서 있었다. 목재 지붕마다 눈이 수북했고 광장에는 과일을 쌓은 노점과 색색의 깃발이 있었다. 그런데 거리에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었다. 빵이 바닥에 떨어져도, 바퀴가 부러진 수레가 고개를 들이받아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토비는 손에 쥔 보리주머니를 조용히 여몄다. “저건 웃긴 일이 아닌데요.” 수레 밑에 발이 끼인 소년이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정말 기쁜 날이야.” 소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입술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토비가 달려가 수레를 들어 올렸다. 성검으로 쇠바퀴의 축을 받치고 소년의 발을 꺼냈다. 소년은 감사하다고 말하려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입가의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 광장 가운데 매달린 은색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표정 불일치 감지. 기쁨 유지 권고.]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벤이 피엘의 어깨를 잡았다. “여기선 아픈 사람을 보고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신고 대상인가 봐.” 오스벨이 주변의 마력을 살폈다. “실제 마을이라고 단정하지 말게. 오래된 배달 기록이 재생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래도 소년이 다친 건 사실 같아요.” 토비는 붕대를 꺼내 소년의 발을 감았다. 소년은 잠시 웃음을 멈추고 진짜로 숨을 내쉬었다. 그 짧은 순간 광장 끝에 있던 여관의 간판이 깜박였다. ‘겨울 축제. 행복 유지율 100%.’ 피엘은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 문구를 보며 말했다. “이 장소는 누군가가 기록한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남겨진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아직 분리되지 않았어요.” 광장 북쪽에는 축제 참가자들에게 무언가를 나눠 주는 작은 창구가 있었다. 창구 앞에는 가족 단위로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가슴에 같은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리본에는 ‘오늘 행복하기로 서약했습니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 여인이 리본을 받으며 물었다. “우리 아들이 밤새 열이 났어요. 약방은 어디 있나요?” 창구 직원은 밝게 웃었다. “병을 걱정하면 회복이 늦어집니다. 먼저 서약부터 하세요.” “그래도 의사를—”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대기 번호가 뒤로 밀립니다.” 여인은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축제 음악이 커지자 아이는 잠결에도 웃는 얼굴이 되었다. 피엘은 그 광경을 보며 전술적으로 끼어들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을이 실제 과거인지 재생된 기록인지 아직 구별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개입하면 기록 자체가 덮어씌워질지도 몰랐다. 오스벨이 여인의 손에 든 번호표를 잠시 살폈다. “서약하지 않고도 치료할 방법이 있네. 저 건너편 약방 문에는 출입 제한이 없어.” “그럼 왜 다들 여기 줄을 서 있죠?” 토비가 물었다. “약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안내문이 전부 축제 창구로 바뀌었거든.” 토비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억지로 설득하지 않고 약방의 실제 위치를 알려 주었다. 여인은 한참 망설이다 줄을 벗어났다. 그 순간 가슴의 노란 리본이 재처럼 흩어졌다. 아이 얼굴에 붙어 있던 어색한 미소도 조금 사라졌다. “열이 있으면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군요.” 여인이 중얼거렸다. “원래 되는 겁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그 일은 작은 변화였지만 마을의 풍경에는 크게 번졌다. 축제 창구의 수백 개 번호표 가운데 하나가 빈칸이 되었다. 번호표 뒤에는 또 다른 숫자가 숨어 있었다. 일곱 자리의 배송 접수 번호였다. 피엘은 그 번호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오늘은 이 마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결정하지 못해도, 누군가가 실제로 도움을 요청한 흔적은 남겨 둘 수 있었다. 아이는 우물가로 걸어갔다. 따라오라고 손짓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따라올지 기다렸다. 피엘은 서둘러 다가갔다가 두 걸음 앞에서 멈췄다.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넌 내 이름을 알았어. 명찰 뒤에 써 줬잖아.” 피엘은 주머니에서 제8문 방 안에서 주운 낡은 명찰을 꺼냈다. 앞면에는 [원본 수신자 00000000]이라는 숫자가 있고, 뒷면에는 연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눈을 털어 내자 아주 작은 글자 하나가 드러났다. ‘레아.’ “레아.” 이름을 부르자 아이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이름도 적어 놓고 잊어버렸네.” “기억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네가 선택한 거야?” 피엘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대리 피엘과 나눈 옛 편지에 자신이 기억을 내려놓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강요와 선택이 뒤섞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아이에게는 변명이 될 수 없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당신의 편지가 읽히지 않았다면 제가 책임을 확인하겠습니다.” 레아는 우물 뚜껑 위에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럼 읽어 봐.” 피엘이 봉투를 뒤집었다. 봉투 안은 비어 있었다. “내용이 없습니다.” “맞아. 쓰기 전에 빼앗겼으니까.” 아이가 우물을 가리켰다. 깊은 물속에 희미한 불빛이 흔들렸다. 편지들이 수면 위에 수백 장 떠 있었다. 전부 같은 모양이었다. 다만 글씨가 쓰이기 직전의 모습으로 멈춰 있었다. “무슨 말을 쓰려고 했습니까?” “그걸 네가 맞히면 안 돼.” 레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말해야 내 편지잖아.”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벤도 입을 다물었다. 피엘은 빈 종이를 다시 레아에게 내밀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레아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대신 저편의 낡은 집을 가리켰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오지 않았고 창문 안쪽에는 촛불 하나만 깜박였다. “내가 답장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봐.” “기억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오스벨이 물었다. “이 마을은 사람들이 기억한 만큼만 남았거든.” 레아는 발걸음을 옮겼다. 네 사람이 뒤따르자 광장에 있던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여관과 우물 사이의 좁은 길에는 닫힌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빵집 유리에는 ‘슬픔을 가져오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고 약방 문에는 ‘부정적인 증상을 말하지 마세요’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토비는 누군가 문밖에 버려 둔 장화를 보았다. 작은 장화 한 쌍과 큰 장화 한 짝. 큰 장화는 눈이 쌓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못 돌아왔나 봐요.” 레아가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장화야.” 집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냄새 대신 먼지 냄새가 났다. 식탁에는 나무그릇이 두 개 놓여 있었고 셋째 그릇이 있어야 할 자리가 동그랗게 깨끗했다. 토비는 보리골의 식탁을 떠올렸다. 에마가 루나의 그릇을 치우지 못하던 날이었다. “레아, 어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피엘이 물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집 안의 오래된 벽시계가 열두 시를 쳤다. 광장에서 들리던 종소리가 집 안까지 울려 퍼졌다. [행복 축제 참가를 축하합니다. 오늘의 기쁨을 기록해 주세요.] 식탁 위에 깃펜이 나타났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펜은 빈 종이에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는 행복합니다.’ 레아가 의자를 밀쳤다. “아니야.” 펜이 다시 움직였다. ‘엄마를 생각하면 더욱 행복합니다.’ “아니라고!” 레아가 종이를 찢자 새로운 종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열 장이었다. 피엘은 그것을 보고 숨을 삼켰다. 최초의 신탁이 사본을 만든 방식과 같았다. 아이는 울음을 참으면서 피엘을 바라봤다. “그날 네가 왔어. 내가 종이를 찢을 때마다 너는 접수 규정이 없다고 했어.” 피엘의 손끝에서 잊힌 기억 하나가 번쩍였다. 눈 덮인 복도. 고장 난 난로. 문틈에 끼인 어린 손. 그 손을 향해 자신이 하던 말. ‘원본을 제출하면 반송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응. 그래서 원본이 뭔지 찾으러 갔지.” 레아가 집 뒤편 창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어른 키보다 높은 검은 우편함이 서 있었다. 정면에 구리로 만든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원본 수신자: 00000000.] 그 밑에 작은 글자가 흔들렸다. [별칭: 세상의 모든 아이.] 우편함 입구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드디어 첫 수신자가 돌아왔군.” 피엘이 돌아보기도 전에 검은 투입구가 벌어졌다. 아이의 이름이 적힌 봉투들이 우수수 쏟아졌고, 그중 하나에 낯익은 오른손 서명이 찍혀 있었다. 서명자: 피엘. 작성 시각: 레아가 답장을 쓰기도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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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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