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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30화
PAYLUA ORIGINAL · 제30화

30화. 문을 여는 첫 번째 답장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5,803자

오프라인 책장
피엘은 자기 글씨가 적힌 봉투를 한참 바라봤다. 절벽의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서류를 품에 넣자 종이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그것은 잊어버린 기억이 현실의 무게를 되찾는 느낌과 닮아 있었다. “열어 보실 거예요?” 토비가 물었다. “아직은요. 수신인이 제가 아닙니다.” “대리 피엘이요?” “네. 그에게 전달하기 전에 작성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벤은 뜻밖이라는 얼굴로 피엘을 바라봤다. “네가 쓴 편지여도?” “보낸 사람이 봉투를 다시 빼앗을 수는 없잖습니까.” 니메르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대리 피엘이 보내 온 통신이 도착하기 전까지, 네 사람은 제8문 앞에 임시 대기소를 세웠다. 창고에서 가져온 책상 하나와 벤이 마련한 보온 화로, 오스벨의 비바람을 막는 돔이었다. 토비는 우편함 뒤의 좁은 길을 다듬어 발이 불편한 사람도 지나갈 수 있게 했다. 니메르는 대기소의 간판을 손수 썼다. '답장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먼저 질문하세요.' 그 아래에는 작게 '지금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글을 덧붙였다. 첫 방문객은 아이가 아니었다. 손이 떨리는 노인이었다. 그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고 대기소 앞에서 멈췄다.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피엘이 다가가 이유를 묻자 노인은 느리게 말했다. “내가 쓴 답장을 받고 누군가 화를 낼 것 같소.”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잘못한 거요?”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쓸지는 충분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노인은 서류를 가슴에 품고 의자에 앉았다. 그는 차 한 잔을 마신 뒤 그날에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토비는 돌아가는 노인에게 작은 손수건을 건넸다. “다음에 오셔도 되고 안 오셔도 돼요.”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그를 붙잡지 않았고 누구도 놓쳤다고 보고하지 않았다. 피엘은 대기소의 첫날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상담 1건. 접수 0건. 본인 의사 존중.' 그들은 투입구가 더 넓어지지 않는지 살폈다. 빈 발신인의 위조 시도는 막혔지만 문 뒤쪽에 남은 신탁들이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종이들이 바스락거리며 서로의 이름을 흉내 냈다. 어느 것은 피엘의 목소리로 ‘업무 효율을 위해 한 사람만 결정하세요’라고 속삭였고, 어느 것은 토비의 목소리로 ‘내가 모두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오스벨은 지팡이로 돌바닥에 선을 그었다. 선 안쪽은 외부에서 쓰인 글자가 당사자의 발화인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임시 장벽이었다. “이 선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걸세.” “몇 시간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정확히는 누구도 몰라. 그런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피엘은 마라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0경로의 미해결 오배송은 여전히 1,006건이었다. 새로 제출된 열한 명의 답장은 복원 완료 건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사실도 분명하게 적었다. 절차 중인 사람들의 결정을 완료된 실적으로 계산하면 이전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었다. 마라는 곧 회신했다. ‘나머지 여덟 명은 지금도 답장을 보내길 원합니다. 다만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경로를 만든 뒤 출발시키겠습니다.’ 피엘은 그 답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때 루셀의 연락이 들어왔다. 제9명령의 강제 회수는 임시 집행자들의 거절로 중지됐지만, 이 사안은 상급 발신 권한 심의회에 회부됐다는 소식이었다. [임시 심리 결과: 일괄 회수 집행 정지.] [원본 발신자 신원 공개 요구 등록.] [정식 심리 전까지 당사자별 회신 통로 보호.] 벤은 휘파람을 불었다. “천계 역사상 처음으로 명령을 멈추고 질문한 날이네.” 이시아는 기뻐하지 않았다. 여신은 열여덟 해 전의 편지들이 묻힌 곳을 보고 있었다. “정식 심리회가 열리면 제8문을 봉인했던 내 판단도 검증받게 되겠지.” “그래야 합니다.” 피엘이 대답했다. “너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느냐?” “그때 당장 봉인해야 할 위험이 있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아무도 답장을 보낼 수 없게 된 일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시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예전의 너는 내가 정답을 말하면 안심했을 텐데.” “지금은 정답을 받는 것보다 질문할 수 있는 편이 낫습니다.” 토비는 옆에서 가볍게 박수를 쳤다. “천사님, 승진하셔야겠네요.” “승진 심사 대상에서 이미 제외됐습니다.” “그럼 편하겠네요.” “전혀 안 편합니다.” 웃음이 잠깐 흐른 뒤, 피엘은 원본 봉투를 대리 피엘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았다. 제0경로를 통해 단방향으로 통신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달 확인이 필요했다. 그는 마라에게 우편마차 종점의 대리 관리자에게 직접 연락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뒤 수첩에 낯익은 왼손 글씨가 떠올랐다. [대리 피엘. 내용 전달 전 수신 여부부터 알려 줘.] 피엘은 한 번 깊게 숨을 쉬고 썼다. [피엘. 당신 앞으로 온 편지가 있습니다. 받아 보시겠습니까?] 답장은 늦게 왔다. [받을게. 다만 네가 함께 읽어 줬으면 좋겠어. 우리 둘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분이 함께 읽자고 했어요.” 피엘이 말했다.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읽어 보세요.” 두 사람은 원격으로 같은 봉투를 펼쳤다. 종이 안에는 간단한 대화 기록이 있었다. 기억을 내놓기 전 피엘이 자신과 닮은 존재에게 한 말이었다. ‘한 사람을 구하려다가 열 사람의 목소리를 지웠어. 나는 다시 그런 결정을 할까 봐 무서워. 네가 기록을 맡아 줘. 대신 어떤 사정이 있어도 사람들에게 답장할 방법만은 없애지 마.’ 대리 피엘의 답변은 한 줄이었다. ‘기록을 지키겠어. 하지만 너는 네가 했던 일에서 도망치지 마.’ 그 아래에는 공동 서명이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으로 한 번씩, 같은 이름을 두 번 적었다. 피엘은 눈을 감았다. 그가 기억을 내놓은 것이 단순한 희생이었는지, 죄책감에서 도망친 일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약속은 분명했다. 대리 피엘이 뒤에 한 행동은 그 약속을 어긴 것이었고, 자신 역시 책임을 남에게 떠맡긴 부분이 있었다. 대리 피엘이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사람들을 지키려다가 다시 가둬 버렸어.” “저도 사과하겠습니다. 당신에게 기록을 맡기고, 어떻게 지키는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같이 할 수 있을까?” “네. 다만 당신이 제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은 여전히 없습니다.” “알아. 그걸 먼저 쓰자.” 대리 피엘이 잠시 망설이며 물었다. “우리 둘의 이름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문제도 알아봐야 합니다.” “네 이름을 빌렸으니 돌려줘야겠지. 하지만 그걸 돌려주면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어.” 피엘은 수첩을 쥐고 생각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왼손으로 쓴 서명, 때로는 남을 해치기도 했던 존재.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고 해서 계속 남의 이름으로 살도록 만드는 것도 옳지 않았다. “새 이름을 정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피엘이 답했다. “제가 대신 붙이지는 않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게.” “그동안은 기록에 '대리 피엘'이라고 적되, 그것이 본명이 아니라 임시 표기임을 남기겠습니다.” 잠시 후 상대가 보내 온 글자는 평소처럼 왼쪽으로 기울었다. '고마워. 너와 별개로 살려면 먼저 네가 겪은 일을 외면하지 않을게.' 피엘은 그 편지를 지우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와 분리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첫 번째 문장이었다. 피엘은 수첩에 공동 작업 규칙을 적었다. 모든 복원은 당사자의 확인을 거친다. 임의로 봉투의 이름을 채우지 않는다. 위험을 이유로 정보를 감출 때는 그 사유와 기한을 남긴다. 누구든지 자신에 관한 결정에 질문할 권리를 가진다. 니메르는 규칙을 읽고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첫 문장이 돌아왔구나.” “어떤 첫 문장입니까?” 피엘이 물었다. “‘편지는 사람을 위해 있다.’ 그 문장을 제8문 옆에 새겼었지.” 그 말을 하는 순간 절벽 전체에서 바람이 멎었다. 우편함들이 하나둘 밝아졌다. 잠긴 것들은 잠긴 채였고, 열린 것들은 작은 빛을 내보냈다. 모든 편지가 한꺼번에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답장을 보내겠다고 한 사람들의 우편함에만 길이 생겼다. 절벽 표면에서 여덟 번째 문의 윤곽이 드러났다. 거대한 금빛 문이 아니라 비바람에 닳은 나무문이었다.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아래에 작은 투입구 하나가 열려 있었다. 피엘은 토비를 돌아봤다. “열어 볼까요?” “제가 대신 정하면 안 되죠.” “맞습니다. 함께 들어갈 사람들에게 물어야겠어요.” 벤은 손을 들었다. 오스벨도 손을 들었다. 니메르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 남아 기다릴게. 반송 종을 울릴 사람이 필요하니까.” 이시아 역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있으면 문이 다시 봉인을 명령하는 곳으로 착각할지도 몰라.” 문 앞에는 발판 대신 작은 저울이 있었다. 누군가 올라서면 반대편 접시에 자기 이름을 적은 종이가 나타났다. 피엘이 먼저 올라서자 낡은 이력서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그가 누구의 명령을 따랐는지가 길게 적혀 있었다. 반면 그가 직접 결정한 일은 겨우 세 줄이었다. 피엘은 주머니에서 낡은 보리골 장부를 꺼냈다. 네 사람이 썼던 날짜와 의견이 다른 글씨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장부를 저울에 올렸다. 이름을 적은 종이는 여전히 반대편에 있었지만 저울은 서서히 균형을 찾았다. 토비가 올라섰을 때는 풍성한 곡식 자루와 성검이 서로 다른 접시에 나타났다. 저울은 어느 쪽도 무겁다고 판정하지 않았다. 토비가 뭘 선택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딱 좋네요.” 토비가 말했다. “저도 아직 모르는 일이 많거든요.” 벤은 지하 거래소에서 가져온 잘못된 계약의 영수증을 저울에 올렸다. 오스벨은 마법 논문 대신 닭들을 돌보며 적은 일지를 올렸다.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기록이 남자 문 앞의 공기가 조금 따뜻해졌다. 피엘과 토비, 벤, 오스벨이 앞에 섰다. 네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투입구에 적었다. 문은 잠깐 떨리더니 바깥으로 열렸다. 안에서 오래된 종이 냄새가 흘러나왔다. 문 너머에는 창고도 법정도 없었다. 작은 책상 하나와 의자 한 개, 손때 묻은 깃펜이 놓인 빈 방이었다. 책상 위의 우편함에는 받는 사람을 적는 칸만 있었다. [첫 번째 반송 편지 접수 대기.] [받는 이: 최초 발신인.] “이름이 없네요.” 토비가 말했다. 피엘은 종이를 뒤집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최초 발신인은 아무 신도,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최초 발신인은 신탁을 받고도 자기 목소리를 끝내 전하지 못한 자.] 오스벨이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 사람이겠군.” 피엘은 책상 위에 있는 낡은 명찰을 집어 들었다. 명찰에는 이름 대신 숫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원본 수신자 00000000.] [기록 상태: 분실.] 그가 명찰을 만지는 순간 방 전체가 흔들렸다. 책상 뒤의 벽이 열리고 여러 시대의 보리밭과 폐허, 바닷길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중 가장 오래된 풍경에는 눈 내리는 작은 마을과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발신인과 수신인이 모두 비어 있는 편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피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 답장을 정말 읽어 줄 거야?” 피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아이의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음 제8문에 배치받았던 날, 오른손에 깃펜을 쥐여 주며 미소 짓던 인간 아이였다. 그는 아직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편지를 받아 든 손끝에는, 오래전 스스로 지워 버린 약속의 무게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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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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