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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27화
PAYLUA ORIGINAL · 제27화

27화. 이름 없는 명령의 수신인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5,103자

오프라인 책장
민원 심리관 루셀은 회의록을 작성하기 전에 빵부터 먹었다. 여섯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그는 작은 접시에 말린 과일과 토비가 가져온 보리빵을 가지런히 놓았다. 피엘은 참다못해 물었다. “지금 식사하실 때입니까?” “공복 상태로 사람의 말을 판단하면 대개 성급해지네.” “하지만 시간이……” “그래서 빨리 먹는 걸세.” 루셀은 보리빵을 단숨에 씹어 삼킨 뒤 종을 쳤다. 심리실 바닥에서 좁은 관람석이 솟아올랐다. 의자는 몇 개 없었다. 벽에 붙은 오래된 규정표에는 ‘발신인, 수신인, 기록 보관인은 서로를 대신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피엘. 네가 주장하는 쟁점부터 말해 보게.” “제9명령은 ‘모두’라는 가상 수신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실재하는 사람들 각각의 수신 여부와 동의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일괄 회수는 집행될 수 없습니다.” 루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아는?” 여신은 심리실 문가에 섰다. 신성한 빛이 약해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평온했다. “제8문 봉인 승인자입니다. 봉인이 필요한 당시의 사정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회수 명령의 발신인은 아닙니다.” “라베른은?” 빈 관람석에서 금속 날개 소리가 났다. 새까만 제복 차림의 라베른이 나타났다. 그의 왼손에는 감찰국의 금장 인장이 있었고 오른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명령을 집행할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누구한테?” 루셀이 물었다. “상위 권한입니다.” “상위 권한의 이름이 뭐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루셀이 도장을 내려놓았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이 내린 명령을 심리하자는 거로군. 아주 익숙한 일이지.” 토비가 옆에서 속삭였다. “익숙하다니요?” “몇백 년째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핑계를 들고 와서.” 벤이 답했다. 루셀은 방청석 맨 앞의 빈 의자를 가리켰다. “‘모두’가 출석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 아무도 모두를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부터 확인하세.” 라베른이 비웃었다. “그렇게 하면 아무 결정도 못 합니다.” “맞아. 그럴 때는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각각 물어야지. 불편해도.” 벽의 명단이 나타나기 전 루셀은 라베른에게 먼저 봉투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무슨 문서입니까?” 라베른이 물었다. “오늘 심리할 쟁점을 기록한 사본일세. 네가 직접 확인해.” 라베른은 읽지 않고 인장을 찍으려 했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루셀은 노인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읽고 서명하게. 그건 누구에게든 똑같은 원칙이야.” 라베른은 문서를 펼쳤다. 표제 아래에는 '발신인 권한 검증'이라는 글자가 있고, 구석에는 오늘 처음 제기된 문제들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그가 잠시 한 항목을 바라봤다. [집행자의 진술 능력 및 자발성 확인.] “이런 항목은 심리 규정에 없습니다.” “없다면 적어 두면 되지. 없다는 이유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빼서는 안 되네.” 라베른은 수첩을 내려놓았다. 금속 날개가 긴장으로 딸깍거렸다. 그는 천계 감찰국의 최고 감사관으로 살면서 정작 자신의 뜻을 공식 문서에 적어 본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이런 사람의 서명을 확인할 권한이 없다.” “그럼 확인하지 말고 읽어도 되네.” 루셀의 말에 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강제로 도장을 찍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도 심리가 달라질 수 있었다. 심리가 시작되자 창고 벽에 수많은 이름이 나타났다. 보리골 사람들, 도시의 구두장이, 바닷가의 등대지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이름표도 하나 있었다. 그 곁에는 '이름 미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엘은 그 명단을 보며 숨을 삼켰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과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을 하나의 수신인으로 묶은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이제야 또렷하게 보였다. “동의서를 모두에게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라베른이 말했다. “그게 지금 회수 명령을 실행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피엘이 답했다. 심리실에는 작고 낡은 축음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발언한 사람이 자기 말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면 음성을 확인하는 장치였다. 루셀은 그것을 켜 놓고 라베른의 방해를 받더라도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런 기계는 사전 허가가 필요합니다.” 라베른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심리를 진행하지 말아야겠군. 누구의 말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으니까.” 라베른은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감찰국에서는 기록이 상급자의 승인으로 확정되면 그 뒤의 증언은 대개 사라졌다. 루셀의 기계는 말이 바뀌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토비는 조그만 원통에서 자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기해했다. 벤은 자기 입으로 한 농담까지 기록되는 것을 보고 성가셔했다. 그러면서도 둘 다 원통을 끄라고 하지는 않았다. 피엘은 종이에 발언권의 순서도 적었다. 일방적으로 오래 말한 사람의 주장만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상급자의 말이 끝나는 즉시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오늘은 도장보다 확인할 질문이 훨씬 많았다. 루셀은 양쪽의 말을 기록했다. 그는 권한을 임의로 확대하지 않았다. 질문을 바꾸었다. “제9명령으로 보호하려는 위험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시아가 검은 봉투를 가리켰다. “제8문을 열자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명령이 역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슬픔을 말하지 못했고, 슬픈 자들을 서로 의심했습니다. 그 위험을 막을 방법 없이 반송로를 열어서는 안 됩니다.” 토비는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는 그 말이 싫어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제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하세요. 그건 다른 말이잖아요.” “무슨 차이인가?” 루셀이 물었다. “어머니는 제가 슬퍼하면 같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그래도 울지 말라고 제 입을 막지는 않으세요.” 심리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이시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피엘은 그 차이를 기록했다. 바람과 명령의 차이. 권유와 강제의 차이. 그것은 숫자로 셀 수 없는 것이었지만, 신탁 제도의 중심에 있어야 할 구분이었다. 라베른은 문서를 한 장 펼쳤다. “그런 구분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재난이 닥치는데 사람들에게 각각 동의를 받을 시간은 없습니다.” 오스벨이 끼어들었다. “누가 강물에 빠져 있으면 바로 구해도 되지. 그렇다고 구조한 사람의 나머지 인생을 대신 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세.” “그 구분은 누가 정합니까?” “위험이 지나간 뒤 당사자에게 설명하고 검증받아야지.” 이시아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보낸 경고 신탁 중에는 실제로 사람을 살린 것도 있다. 그러나 맞은 경고가 있었다는 이유로 틀린 경고까지 묵살해도 된다고 믿기 시작한 건 잘못이었다.” 그 고백은 심리실의 공기를 조금 바꾸었다. 여신의 말이 전부 진실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명령도 심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때 벽의 이름 하나가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어느 항구 도시의 사공에게 '위험한 바다로 나가지 말라'는 신탁이 내려온 순간이었다. 경고는 폭풍을 피하라는 뜻이었지만, 사공은 그 신탁 때문에 어머니가 사는 섬으로 배를 몰지 못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금지 명령은 해제되지 않았다. 화면에는 배를 붙잡고 울던 젊은 사공의 모습이 나타났다. 토비는 그를 보고 문득 자기가 처음 세상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던 날이 떠올랐다. 남들은 흥분했지만 본인은 집의 닭장과 어머니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영웅이라는 이름이 반갑지 않았다고 말하는 일이 어쩐지 배신처럼 느껴졌었다. “저 사공이 잘못한 건 없잖아요.” 토비가 말했다. “명령을 따르면 안전할 확률이 올라갔을 겁니다.” 라베른이 답했다. “그렇다고 평생 못 나가요? 바다가 잔잔해져도?” 라베른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는 명령이 발송된 시각과 집행 여부만 알았다. 사공의 어머니가 무슨 병을 앓았는지,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장부에 없었다. “제가 가진 기록에는 그 뒤가 없습니다.” “그러면 저 사람한테 물어야죠.” 라베른은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잠깐 어떤 감정이 스쳤다. 지키려던 사람의 삶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부분만 알고 있었는지 처음 깨닫는 표정이었다. 라베른은 잠시 침묵하더니 장갑을 벗었다. 손등의 아홉 구멍이 선명했다. 여덟 개는 반송 통로와 닮았고, 아홉 번째는 손목 가까이 불규칙하게 파여 있었다.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단호한 감사관의 말투가 아니라 깊은 우물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제8문이 열렸던 날, 반송되지 못한 서류들은 발신인을 찾지 못해 다른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미래라는 빈자리로. 그래서 누군가 그것들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피엘이 손을 들었다. “그 일을 당신이 맡았습니까?” “네.” “자원했습니까?” 라베른은 답하지 못했다. 벤이 구멍 난 손등을 가리켰다. “여덟 개는 문이고 하나는 네가 돌아갈 문인가?” 라베른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렸다. “아홉 번째 구멍은 제 이름이 빠져나간 자리입니다.” 심리실의 판넬에 기록이 떠올랐다. [감찰 기능: 라베른.] [원본 인격 기록: 폐기.] [대체 원칙: 명령을 거절할 수 없음.] 피엘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지우는 일을 하는 자가, 자신도 선택을 빼앗긴 존재라면. 라베른은 서둘러 장갑을 꼈다. 얼굴에는 다시 차가운 표정이 돌아왔다. “그 사실은 명령의 유효성과 관련 없습니다.” 루셀이 책상을 두드렸다. “관련 있네. 명령을 집행하는 자가 거절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제출한 동의도 강요된 것일 수 있으니까.” “저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라베른이 말했다. “그 주장은 누가 심리했지?” 금속 날개들이 동시에 떨렸다. 라베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리실 벽의 명단 가장 아래에서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제9명령의 최초 수신인 발견.] [이름: 라베른.] [분류: 인간 출신 / 권한 대행 중.] 벤의 웃음이 사라졌다. 피엘은 라베른이 처음으로 두려움에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남의 미래를 거두기 전에 자기 미래부터 회수하라는 명령을 받았군요.” 라베른이 이를 악물었다.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 순간 종이 울렸다. 심리실의 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붉은 문구가 떴다. [원본 인격 발견으로 명령 집행자 불안정 상태.] [제9명령 즉시 실행 전환 요청.] [승인까지 남은 시간: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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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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