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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26화. 여섯 시간짜리 새 부서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5,032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원이 창고 바닥을 집어삼키는 동안, 피엘은 가장 먼저 숫자를 보았다. [미회신 신탁 회수 준비.] [회수 예상 규모: 산정 불가.] [현재 회수 대상의 첫 번째 항목: 아직 선택하지 않은 내일.] “내일을 회수한다니요?” 토비가 성검을 빼 들었다. 바닥에 생긴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어느 틈에는 비가 내리는 들판이 보였고, 다른 틈에는 같은 들판이 말라 있었다. 서로 다른 날씨가 한순간에 겹쳐 있는 광경이었다. 오스벨은 지팡이 끝으로 틈을 건드렸다. 마른 들판이 잠깐 살아났다 사라졌다. “미래 자체를 가져가는 게 아니야. 미래를 고를 가능성 중 하나를 지우는 거지. 마치 아직 씨앗을 심지도 않았는데 수확량을 정해 버리는 것처럼.” “그럼 사람들이 원래 하려던 일을 못 하게 되나요?” 토비가 물었다. “원래 하려던 일이라는 것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오스벨이 말했다. “그저 하나의 길만 남을 수도 있네.” 이시아가 창고의 위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신성한 흰빛이 날아올라 문을 때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 권한이 막혔다.” 벤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신도 접속 권한이 없다고?” “감찰국의 격리 명령이야. 내가 승인한 봉인 규칙을 사용해 나를 가뒀다.” “완벽하게 배운 제자군.” 피엘은 수첩을 펼쳤다. 창고에 들어온 뒤부터 잠긴 메뉴 옆에 작은 버튼 하나가 생겨 있었다. ‘규정에 없는 사태 신고’. 그 버튼 밑에는 아주 작은 경고가 있었다. '해당 신고를 진행할 경우 발의자는 보고 누락 및 운영 실패에 관한 조사에 출석해야 합니다.' 피엘은 손을 멈췄다. 감찰국의 독립 감사 신청만으로도 남은 업무 이력이 잠겨 있는데, 또다시 조사를 받으면 자기 이름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 그가 잠시 고개를 돌리자 토비가 제 손에 든 보리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걸 보세요.” 안에는 싹이 트지 못한 씨앗이 섞여 있었다. “작년 봄에 잘못 보관해서 못 심은 씨앗이에요. 제가 실수했다고 밭 전체를 없애지는 않죠. 씨앗을 다시 고르고 땅을 돌보면 돼요.” “저는 천사인데요.” “그러면 천사 일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피엘은 웃음이 나왔다. 멋진 위로는 아니었다. 그러나 실패를 기록할 사람을 없애는 조직이 정상일 리 없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버튼을 눌렀다. 그는 조심스럽게 눌렀다. [해당 사건을 신고할 소관 부서가 없습니다.] [새 소관 부서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왜 천계는 위험할 때마다 저한테 부서를 만들라고 합니까?” 토비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안 만들면요?” “그러면 아무도 책임자가 아니게 됩니다.” “만들면 천사님이 책임자가 되죠?” “그렇습니다.” “그럼 혼자 하지 마세요. 우리도 같이 서명해요.” 피엘은 잠깐 망설였다. 예전 같으면 신성한 업무에 인간과 악마, 마법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9명령이 겨냥한 것은 그들 모두의 미래였다. “공동 신고서를 만들겠습니다.” 바닥의 검은 원을 바라보던 토비는 짐 속에서 보리골의 말린 씨앗 한 줌을 꺼냈다. 그는 틈 하나에 조심스럽게 씨앗을 떨어뜨렸다. 씨앗은 한 번 자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자랐다. 검은 원이 없는 곳에서는 평범한 씨앗일 텐데 이곳에서는 수십 가지 수확의 모습이 겹쳐 있었다. “저건 곡식이 자라지 않는 세상도 보여 주네요.” “그렇게 되는 원인은 수없이 많겠지.” 오스벨이 말했다. “하지만 원인을 알기도 전에 결과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없앤다면, 아무도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걸세.” 창고가 크게 흔들렸다. 토비는 몸을 낮춰 씨앗이 떨어진 자리를 들여다봤다. 검은 원을 통과한 씨앗에는 작은 글자가 돋아나 있었다. ‘농부가 되고 싶다면 허가를 받으시오.’ “농사짓는 것도 허락받아야 돼요?” 피엘은 토비가 던진 질문을 그냥 웃어넘기지 않았다. 그 문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규정이었다. 제9명령은 미래를 하나로 묶으면서 사람들의 작은 선택까지 서류로 만들고 있었다. “이 명령은 재난을 막는 데만 쓰이지 않을 겁니다.” “그럼 더더욱 막아야죠.” 피엘은 씨앗 하나를 종이 위에 올렸다. 그 위의 문장이 여러 번 바뀌더니 마침내 '아직 정해지지 않음'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수첩이 보호해야 할 진짜 데이터였다. 그는 빈 칸에 이름을 적었다. 토비, 벤, 오스벨, 니메르. 이시아의 이름을 적는 순간 수첩이 붉어졌다. [해당 인물은 명령 발신 권한 보유자입니다. 이해충돌 검토 필요.] 여신은 그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지적이구나. 내 이름은 증인으로만 남겨라.” 벤이 웃음을 거두었다. 그는 처음으로 이시아가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을 보았다. 신고서를 제출하자 검은 원의 가장자리에 얇은 흰 선이 생겼다. 미회신 신탁들을 일괄로 회수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떤 신탁을 받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피엘이 적었기 때문이다. [회수 대상의 개별 수신인 확인 요청.] [일괄 집행 일시 대기.] 순간 창고의 압력이 조금 풀렸다. 높은 선반에서 오래된 책들이 쏟아졌다. 토비가 먼저 몸을 날려 상자 밑에 깔릴 뻔한 니메르를 끌어냈다. “괜찮으세요?” “내 몸보다 저기 세 번째 상자가 더 걱정이구나.” 니메르가 가리킨 상자에는 ‘원본 거절 서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안에는 한때 신탁을 거절했던 사람들의 말이 보관돼 있었다. 모두가 세상의 운명을 바꾸려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이는 부모가 원한 직업 대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들은 답을 보냈지만 제8문이 닫히면서 발신인에게 닿지 못했다. 원본 거절 서신 상자 아래에는 작은 서랍이 숨어 있었다. 서랍마다 오래된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곳에는 군인의 낡은 붕대가 있었고 어떤 곳에는 그림을 그리던 아이의 목탄이 있었다. 편지가 도착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던 여러 갈래의 증거였다. “이건 왜 여기까지 왔을까요?” 토비가 물었다. “답장을 보내려던 사람이 자기 말을 증명하기 위해 함께 맡긴 물건일 겁니다.” 니메르가 말했다. 그 말에는 이상한 울림이 있었다. 편지 한 장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봐 누군가는 자기 인생을 증명할 물건까지 내놓아야 했다. 피엘은 찢어진 붕대 옆에 쓰인 오래된 날짜를 읽었다. 지상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였고 기록상 그 사람은 여전히 '소집 중'이었다. “돌아갈 곳을 알게 되었어도 누가 편지를 받지 않았다면 평생 같은 명령에 붙잡혀 있을 수 있었겠군요.” “그래.” 니메르가 말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줄을 다시 연결하려 했어. 하지만 승인서가 오지 않았지.” 벤은 낡은 옷감에 손을 대려다가 그만두었다. 지상에서나 마계에서나 남의 소지품은 너무 쉽게 거래 품목이 되었다. “이런 걸 도장 하나로 없애려고 했다고?” 그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분노가 섞여 있었다. 피엘은 오래전 마계에서 벤이 서명한 계약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증인이 되었다가 한 마을의 기억을 지우는 데 가담한 경험은 그에게도 남아 있었다. 피엘은 한 장을 읽었다. ‘저는 병사로 뽑혔지만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다친 이를 돌볼 수 있습니다.’ 서류 오른쪽에는 붉은 글씨로 ‘전달 불가’라고 찍혀 있었다. “이 사람의 선택은 기록됐지만 발신인에게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다시 보내야지.” 토비가 말했다.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맞아요. 그분이 지금도 같은 마음인지도요.” 두 사람은 다른 서류들을 한꺼번에 열지 않았다. 원본 봉투가 여전히 개인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문을 열 권한이지, 그 안의 모든 말을 구경할 권한이 아니었다. 그때 계량기에서 라베른의 목소리가 울렸다. “새 부서를 설립해 권한을 확보하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피엘이 고개를 들었다. “불법이라는 근거 조항을 제시하십시오.” “제7물류국 내부 보안 규정 제구십팔조.” “그 조항의 발효 시각은 언제입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십 분 전입니다.” 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얘는 실력이 늘수록 더 뻔뻔해지네.” 피엘은 수첩에 시각을 기록했다. “제가 신고서를 작성한 것은 열한 분 전입니다. 소급 적용 조항은 없습니까?” 라베른이 대답하지 못했다. 천계의 명령은 절대적인 듯 보였지만, 정확히 읽기 시작하면 문장 사이에 작은 틈이 많았다. “이의 신청을 접수합니다.” 피엘이 말했다. [규정 적용 분쟁 접수.] [독립 심리 필요.] [제9명령 실행 보류: 06:00.] 여섯 시간. 피엘은 그 숫자가 너무 짧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던 순간에 생긴 시간이었다. 창고 뒤쪽의 작은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는 조그마한 사무실이 보였다. 사무실에 앉은 천사는 검은 날개 대신 먼지 쌓인 흰 날개를 가진 노인이었다. 그는 손에 도장을 쥔 채 졸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노인은 안경을 들고 그들을 보았다. “분쟁이 생겼으면 심리실을 열어야지. 그런데 왜 나를 이제 깨우나?” “누구십니까?” “제7물류국의 전직 민원 심리관 루셀. 퇴직 신청이 접수되지 않아 삼백 년째 야간 당직 중이네.” 벤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천계도 지옥이 맞군.” 루셀은 수첩을 받아 든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섯 시간 안에 제9명령의 수신인이 누구인지 밝혀야겠군.” “왜 수신인을 확인해야 합니까?” 토비가 물었다. “회수할 사람도 모른 채 내리는 명령은 누구에게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지.” 루셀은 오래된 규정집을 뒤적였다. “문제는 제9명령에 수신인이 단 한 명이라고 적혀 있다는 걸세.” 피엘이 숨을 멈췄다. “세상의 모든 미래가 하나의 수신인으로 묶였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루셀이 수첩을 돌려 보여 주었다. [수신인 고유번호: 00000000.] [등록명: 모두.] [개별 구성원 조회 불가.] 노인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누가 '모두'의 이름으로 답장할 수 있을까? 그걸 찾지 못하면 여섯 시간이 지나기 전에 세상이 하나의 봉투가 되고 말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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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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