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가 되자 천계의 일곱 문에서 종이 울렸다. 제8문에는 종을 치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서로가 직접 창구의 등불을 켰다. 제1문 광장의 시계는 남은 십칠 분을 세고 있었고, 마을마다 수동 구조 연락망이 정상 작동하는지 마지막 확인이 이루어졌다.
제2문의 제인은 폭우 관측치를 보냈다. 제6문의 로마는 야간 진료소가 열려 있다고 알렸다. 제7문 관측소에서는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는 예보가 도착했다. 아무도 우편이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실제 담당자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05:08.
비라가 공용 직인의 임시 사용 중지 기록을 열었다. 원본 직인은 아직 봉인대 안에 있었다. 하린은 독립 심리회가 인정한 제한 조항을 낭독했다. 마르켈은 참관석에서 자신의 과거 승인 기록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에르다는 원본 설계 도면의 분리선을 탁자 위에 펼쳤다.
서온의 화면이 검게 변했다.
[최종 신탁 준비.]
[수신인: 전체.]
[대리 확인자: 피엘.]
“피엘.” 토비가 불렀다. “이건 당신이 혼자 싸울 일이 아니죠?”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 이름을 전체 수신인 칸에 쓰지 않겠습니다.”
피엘은 답장 종이를 펼쳤다. 190화에서 발견했던 작은 빈칸이었다. 그동안 수천 건의 응답을 모았지만, 그것을 한 장으로 압축해 한 가지 뜻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답장만 그 칸에 썼다.
‘나는 이 최종 신탁을 수령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답장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에 연락이 간 동안 토비는 제1문 광장에 세워 둔 수동 게시판을 올려다봤다. '임시 구조선 연락처' 옆에 '실제 응답을 남기는 방법'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는 전쟁터에 선 사람처럼 긴장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한 가게 주인은 새벽 빵을 오븐에서 꺼냈고, 배달부는 잘못 적힌 골목 주소를 다시 묻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날인데도 빵은 굽는군요.” 토비가 중얼거렸다.
피엘은 제8문으로 보낼 마지막 우편 자루의 봉인을 확인했다.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은 저런 평범한 일들이 계속되게 하는 것이겠죠.”
광장 끝의 아이가 어른에게 물었다. “빨간 하늘 글씨가 나오면 꼭 따라야 해요?”
어른은 창구 안내판을 읽고 아이에게 설명했다. 위험 경보가 오면 위험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무엇을 직업으로 삼고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하늘이 정해 줄 수는 없다고.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제 엄마의 손을 잡았다. 피엘은 그 대답이 어떤 공식 문서보다 정확하다고 느꼈다.
05:11.
검은 우편함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그곳에서 잉크가 아니라 숫자들이 쏟아졌다. ‘동의한 수신인 전체’라는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실제 답장을 제출한 사람들도, 아무것도 답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예 주소를 받은 적 없는 사람들도 여전히 하나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서온이 빠르게 설명했다. [자동 집계가 예전 장부를 기준으로 돌아가. 우리가 새로 만든 기록을 넣어도 무응답은 동의로 읽고 있어.]
“그럼 원본을 부숴야 하나요?” 토비가 물었다.
“아닙니다.” 피엘은 심리회에 말했다. “수신 확인과 동의가 서로 다른 사실이라는 증거를 제출합시다.”
하린이 제1문부터 제8문까지 독립 봉인된 답장 기록을 연결했다. 원본의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고도, 각각 본인이 보낸 응답이 존재한다는 검증 결과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제3문의 하루가 남긴 손짓 기록, 제4문의 아린의 실제 음성 인증, 제5문의 자발적 기억 보관 기록, 제6문의 이름 복원 신청, 제7문의 미래 채무 거절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사실을 가리켰다.
‘모든 사람의 뜻이 동일하지 않다.’
05:13.
기계가 답했다.
[수신인 전체의 동의 불일치.]
[예외 허용 불가.]
[완결 진행.]
제8문의 우편함이 한 번 흔들렸다. 봉투들이 반송구 밖으로 튀어나왔고, 어느 창구에서는 돌려보낸 편지가 다시 ‘수령 완료’라고 찍혔다. 서로가 손바닥으로 문틀을 짚었다. 창구 직원들은 위험 구역의 작업을 멈추고 안전 통로로 물러났다. 그동안 각 문에 남겨 놓은 수동 창구가 급한 편지부터 이어받았다.
05:15.
이시아가 제8문의 문 앞에 나타났다. 여신의 눈빛에는 오래전의 확신이 없었다. 그녀는 제0경로 전체를 지워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반송 기록도 함께 사라졌다. 그는 손을 뻗어 모든 글씨를 지우는 대신, 문이 닫히지 않도록 양쪽 문짝을 붙들었다.
“시간을 벌겠습니다. 하지만 답장을 대신 쓰지는 않겠습니다.”
그때 사일이 야간 회수 기록을 펼쳤다. 첫 번째 피엘이 적은 제한 조항이었다. ‘마지막 근무자는 제0경로의 수신인이 될 수 없다.’ 사일과 마르켈의 과거 행위는 다르게 평가돼야 했지만, 기록이 확인한 사실 하나는 같았다. 공용 권한이나 마지막 근무자의 이름이 실제 수신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05:16.
서온은 대리 확인자 칸에 붙은 피엘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게 표시했다. [자동 추정. 본인 응답 아님.] 같은 방식으로 모든 무응답 항목에 ‘확인할 수 없음’이라는 원래의 상태를 되돌렸다. 이를 위해 사용한 것은 원본 훼손 권한이 아니라 독립 심리회가 인정한 검증 절차와 현장 담당자들의 확인이었다.
마지막 한 줄이 남았다.
[최종 신탁 배송을 승인할 것인가?]
피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제8문의 서로가 답장을 접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준비됐습니다.] 서로가 말했다.
피엘은 자기 이름으로만 답했다. “아니요.”
토비도 말했다. “저도 아닙니다. 대신 구조 요청이 오면 확인하고 돕겠습니다.”
제인, 로마, 미나, 하루, 아린, 모라.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답장이 기록됐다. 대답하지 않은 사람들의 칸은 빈칸으로 남았다.
05:17.
시계가 멈춘 것은 한 박자뿐이었다. 하늘을 덮던 붉은 글씨가 사라지더니 은색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최종 완결 신탁: 수신인 전체의 유효한 동의 확인 불가.]
[자동 집행 정지.]
[실제 답장 및 미확인 상태 보전.]
토비는 기뻐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나 피엘은 곧 구조 연락망의 종소리를 들었다. 제7문에서 작은 범람이 시작됐다는 실제 경보였다.
“아직 일이 남았습니다.”
“그렇죠.” 토비가 웃었다. “다행히 그건 진짜 일이네요.”
서로가 제8문의 창구를 다시 열었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수천 장의 편지가 한꺼번에 답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제 누구도 모든 사람의 침묵을 한 사람의 서명으로 만들 수 없었다.
제19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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