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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19화
PAYLUA ORIGINAL · 제19화

19화. 왼손으로 쓴 반성문

신탁이 잘못 배송되었습니다 · 6,144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우편마차의 종점에는 플랫폼이 없었다. 우편함으로 만든 긴 다리와 그 아래 검은 바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편지 다발만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자 따뜻한 종이 냄새가 밀려왔다. 토비는 문턱 앞에서 세 명의 여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모두 루나와 닮았다. 같은 보조개, 같은 눈매, 심지어 어린 시절 토비가 흉내 내며 놀리던 입술 모양까지 같았다. “오빠.” 맨 앞에 선 여인이 말했다. 토비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나섰다가 멈췄다. “미안해요. 누구신지 아직 모르겠어요.” 두 번째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는 아무 말 없이 토비를 바라봤다. 피엘은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누군가를 찾으러 왔다고 해서 상대에게 자기 신원을 증명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었다. “우린 세 사람입니다.” 토비가 말했다. “저는 토비고, 보리골에서 왔어요. 루나라는 동생을 찾고 있어요.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 여인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중 가장 왼쪽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편지야.” “편지요?” “어떤 사람이 루나를 기억하며 쓴 말들을 모아 만든 모습이지. 루나가 아니야.” 두 번째 여인이 뒤이어 말했다. “나는 공식 기록에 남아 있는 루나야. 실종 당시 여덟 살, 그날 보리골에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어. 그 기록이 오늘까지 이송됐지.”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고요?” 피엘이 물었다. “실제로 죽었다는 뜻은 아니야. 기록에서만 그렇게 적힌 거야.” 세 번째 여인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토비의 낡은 장화와 손에 쥔 나무 이름표를 바라봤다. “난 말하고 싶지 않아.” 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괜찮아요.” 피엘의 수첩은 세 여인의 신원을 전부 ‘확인 불가’로 표시했다.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동 판정할 수는 없었다. 세 명의 여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기묘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여인은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빚어진 편지였다. 손가락을 뻗으면 종잇결이 보였다. 두 번째 여인은 사망 처리 기록이 만든 그림자였다. 자기 의지로 걸어 다닐 수는 있었지만 다리를 벗어나면 글자가 흐려졌다. 세 번째 여인에게는 오래된 상처와 손때 묻은 옷이 있었다. 벤이 낮게 말했다. “저 둘도 자기 존재를 설명할 권리가 있어. 하지만 누가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신분을 차지할 수는 없지.” 피엘은 동의했다. 편지나 기록이 만들어 낸 모습이라 해도 무턱대고 없애 버릴 이유는 없었다. 그 안에는 누군가가 잃은 시간과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세 분 모두 먼저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확인할 일과 여러분이 선택할 일은 구분하겠습니다.” 첫 번째 여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손목을 움직이자 작은 종이 조각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내가 루나는 아니지만, 누군가 그녀를 기억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어.” 토비는 작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그 기억도 분명 필요했어요.” 두 번째 여인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었다. 자신을 살아 있는 루나라고 우기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가 거짓말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때 다리 끝의 가장 큰 우편함이 열렸다. 안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피엘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남자의 얼굴은 자신과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눈가의 작은 흉터와 왼손에 든 깃펜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그가 피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잘 왔어. 나.” 벤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네가 대리 피엘이군.” “그렇게 불리는 편이지. 이름을 둘로 나누기 전에는 우리 둘 다 피엘이었으니까.” 토비는 성검을 겨눴다. “루나를 어디로 데려갔어?” 대리 피엘은 토비를 바라봤다. “그 질문을 들을 줄 알았어. 하지만 대답하기 전에 너희가 모르는 일을 설명해야 해.” “거짓말하면 바로 알 겁니다.” 피엘이 말했다. “그래. 넌 원래 꼼꼼했으니까.” 대리 피엘은 다리 위에 낡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종이에는 열여덟 해 전 제0경로 개설 당시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최초 발신인: 인간.] [발신 문장: 아무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버림받을 사람으로 결정되지 않게 해 주세요.] [천계 접수 상태: 처리 불가.] [제0경로 임시 보관.] 피엘은 종이를 바라봤다. 신탁이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올라온 말이 천계의 신탁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최초 기도입니까?” “이건 기도였지. 그런데 누군가가 그 기도에 답장을 썼어.” 대리 피엘은 다음 장을 펼쳤다. [응답 초안: 선택받지 못한 사람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결재 보류 사유: 기존 신탁 체계와 충돌.] [원본 수신인: 미정.] “천계의 누군가가 그 응답을 없애려 했어. 응답이 전달되면, 앞으로 신탁을 만들 때 수신인의 의사부터 물어야 하거든. 그렇다면 천계가 지금처럼 명령만 내려 보내는 방식은 유지될 수 없지.” “그걸 막으려고 사람 천 명을 지웠다는 겁니까?” 피엘이 물었다. 피엘은 원본 서류에 적힌 열여덟 해 전의 시간표를 대조했다. 자신이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대리 피엘이 보여 준 문서가 진짜라고 해도 모든 사실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왜 하필 당신과 저를 갈라 놓았습니까?” 대리 피엘이 잠시 웃었다. “하나가 모든 걸 기억하면 천계가 그 하나를 지우기 쉬웠거든. 네가 신탁을 배달하는 동안 나는 보관 기록을 감췄어. 누군가 한쪽을 지워도 다른 쪽에는 흔적이 남도록.” “누가 결정했죠?” “우리가.” “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증명해야겠지. 네가 동의했는지, 내가 그 동의에 따라 행동했는지도.” 피엘은 대리 피엘이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무거웠다. 둘이 같은 영혼에서 시작했더라도, 지금의 피엘에게 과거의 책임을 무조건 씌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남의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원본 승인서를 보여 주세요.” 대리 피엘은 즉시 꺼내지 못했다. “지금 여기에는 없어.” “그럼 당신 설명은 진술로만 남겨 두겠습니다. 다른 기록과 대조하기 전까지는 사실로 확정하지 않겠어요.” 대리 피엘은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원했던 것도 그런 절차였을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너무 오래 혼자 처리했어.” 대리 피엘은 잠시 눈을 감았다. “막으려고 한 게 아니야. 찾지 못하게 숨기려고 했어.” “숨겨 두면 안전합니까?” “원래는 그랬어. 열두 건만 바꿔서 보호하려고 했지. 이시아 여신도 거기까지만 승인했어. 하지만 라베른이 방식 자체를 알아냈어. 그 뒤로 다른 사람들까지 따라 숨기기 시작했지. ‘보호’라는 이름으로.” 벤이 낮게 웃었다. “책임을 라베른에게 넘기는 솜씨가 제법인데.” “내 책임을 없애겠다는 말은 아니야.” 대리 피엘은 왼손으로 글자를 썼다. [나는 모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날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름을 숨겼다.] [내가 내린 판단을 되돌릴 권리는 나만이 갖고 있지 않다.] 피엘은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변명인지 반성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럼 지금 그분들에게 돌려주면 되겠네요. 이름과 선택권을.” “쉽지 않아. 일부는 돌아갈 주소 자체가 없어졌어.” “그건 왜 그렇죠?” “오랫동안 숨겨진 사람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세계는 그 사람 없이도 굴러가도록 바뀌거든. 누군가가 갑자기 돌아오면 잃은 시간을 메울 수 없어.” 토비가 성검을 조금 내렸다. “그래서 그냥 여기에 가둬 두는 거예요?” 대리 피엘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안전한 건지, 편한 건지 당신은 구분할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듣던 오스벨은 종이 아래에 찍힌 연도를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이 기도는 정말 그때 쓰인 것인가? 종이의 성분은 더 오래된 것 같네.” 대리 피엘은 잠시 표정을 바꿨다. “기록된 날짜와 실제로 보낸 날짜가 다를 수도 있어. 제0경로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최초 발신인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겠군.” “그래. 내가 아는 것도 전부는 아니야.” 피엘은 수첩에 ‘발신 문장의 존재는 확인, 실제 작성자 미확인’이라고 기록했다. 선뜻 믿고 싶은 이야기였다. 모두가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문장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이야기라고 해서 아무 증거 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원본 발신인이 정말 인간이었습니까?” “기록상으로는.” “그 인간의 이름을 아십니까?” “아니. 이름을 지운 건 나도 아니야.” 그 대답에 피엘은 오히려 조금 안도했다. 대리 피엘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존재라면 그 역시 다른 얼굴을 한 절대적인 신탁에 불과할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함께 조사할 가능성이 생겼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때 세 번째 여인이 움직였다. 그녀는 대리 피엘에게 걸어가 그의 손에서 종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토비를 바라봤다. “내가 루나야.” 토비가 입을 열었다. “정말….” “열여덟 해 전에 데려와졌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날 찾지 못하게 숨겨 준다고 했어. 그 뒤에는 내가 나가면 다른 사람이 위험해진다고 했지. 나중에는 내가 돌아가도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했어.” “여기 와서 처음 배운 건 내 이름을 잊는 법이었어.” 루나가 말을 이었다. “기억하면 다른 사람이 위험해진다고 했거든. 그러다 이름을 잊고 나면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 있는지도 몰랐지.” 토비는 손끝이 차가워졌다. 자신이 동생을 잊은 세월 동안 동생도 누군가에게 이름을 잊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나중에는 편지 쓰는 일을 맡았어. 처음엔 남의 편지만 정리했는데, 어느 날 누군가 나한테 물었어. 정말로 한 번도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냐고.” “누가?” 피엘이 물었다. “작은 우편함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였어. 얼굴은 못 봤어. 하지만 그날 이후 내가 직접 내 주소를 쓰기 시작했지.” 루나는 대리 피엘을 돌아봤다. “당신은 내 주소를 잘 안다고 했어. 나는 당신이 나를 안전하게 해 준 줄 알았어. 그런데 결국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어.” 대리 피엘의 어깨가 내려갔다. “미안해.” “사과는 들을게. 받아들일지는 나중에 생각할래.” 루나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토비 역시 묻고 싶은 것을 모두 묻지 않았다. 방금 재회한 사람에게 열여덟 해의 빈자리를 당장 메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신탁을 강요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전부 맞는 말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걸 결정할 사람은 나였어야 해.” 대리 피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토비는 동생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렸다. “나한테도 기회를 주겠어? 늦었지만, 다시 인사할 기회.” 루나가 그를 바라봤다. “오빠는 나를 기억해?” “아직 다는 아니야. 하지만 나무 숟가락에 동그라미를 왼쪽부터 그렸던 거, 달리기하면 언제나 나를 이겼던 거, 아픈 병아리 옆에 앉아 있었던 거 기억해.” 루나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오빠는 항상 늦게 달렸어.” “너무 빨랐어, 네가.” 두 사람은 한참 웃다가 울었다. 그 뒤에야 서로를 껴안았다. 피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수첩을 닫았다. 지금은 누구도 서류를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리 아래의 바다가 갑자기 일렁였다. 금속 날개들이 수면을 찢고 올라왔다. 선두에는 검은 장갑을 낀 라베른이 있었다. “감동적인 상봉이군요.” 그는 하얀 봉투를 흔들었다. “불법으로 이송된 수신인을 확인했습니다. 원본 회수 절차를 시작하죠.” 대리 피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제 그 방식으로는 안 돼.” 라베른은 비웃었다. “누가 말합니까? 수신자들을 가장 오래 숨겨 둔 당신이?” 그는 봉투를 찢었다. [회수 대상: 루나를 포함한 무등록 수신인 전원.] [회수 방식: 존재 기록 영구 폐기.] 토비는 성검을 들어 올렸다. 피엘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대리 피엘을 돌아봤다. “반성문을 썼으면 행동으로도 보여 주세요.” 대리 피엘은 자기와 똑같은 얼굴을 한 천사를 바라봤다. 한참 뒤, 왼손의 깃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혼자 결정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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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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