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 자료실에는 오후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왔다. 피엘은 유리판 사진을 바로 가방에 넣지 않았다. 오래된 빛은 쉽게 사라지는 증거였다. 단이 직접 사진을 받침대에 놓고 촬영 각도를 맞췄고, 세아는 원판의 흠집과 복제본의 흠집을 대조했다. 벤은 마계 계약 감정인의 자격으로 시간에 따른 마력 잔류를 확인했다.
“사진 한 장에 이렇게 요란해야 하나요?” 토비가 작은 반사판을 들고 투덜거렸다.
“누군가 반대로 찍었다고 하면 끝이잖아요.” 단이 대답했다. “다들 한 번씩 그런 말을 듣고 원본을 잃어버렸어요.”
에르다는 사진을 만지지 않았다. 마르켈의 젊은 얼굴을 알아본 순간부터 그녀는 수리소에서처럼 차분하지 못했다. 사진 속 마르켈은 강물 쪽이 아니라, 빵 바구니를 든 아이를 보고 있었다.
“저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어요.” 에르다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이가 구조 신호를 보냈으니, 한 사람만 책임자로 적으면 기록이 간단해진다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세아가 물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사고를 낸 만큼, 구조를 거절한 사람은 거절한 만큼, 고치지 않고 방치한 사람은 또 그만큼. 그런데 그때 우리는 누가 배달했다는 사실과 누가 결정했다는 사실을 한 칸에 써 버렸어요.”
사진 뒷면에는 희미한 직인이 두 개였다. 하나는 제1문의 시험 발송 검인, 다른 하나는 ‘완전성 관리 준비위원회’. 관리실은 아직 정식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시기에 시험에 관여하고 있었다.
서온은 그 직인을 현재 관리실의 공고와 겹쳐 보았다. [모양은 같지만 모서리의 홈이 다르다. 누군가 나중에 직인을 다시 판 거야. 진짜인지는 원래 금형과 대조해야 해.]
원판을 감정하는 동안 단은 지하의 항아리에서 빵을 꺼냈다. 아침에 구운 호밀빵이었다. 모두 먹었지만 에르다는 손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림에 있는 날짜를 기억하는 건 확실해요. 그런데 당시 누가 뭐라고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오래된 기억이니까.”
“그 부분은 ‘기억 불확실’이라고 쓰면 됩니다.” 하린이 통신으로 말했다.
“그러면 누가 믿겠습니까?”
“불확실한 부분을 숨겼다가 나중에 틀린 것이 확인되는 편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기억이 없는 순간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은 에르다에게 물었다. “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돌아올 수가 없었죠. 내 이름을 쓴 문서를 찾아가면 그 문서가 저를 책임자로 만들었으니까요. 어느 날은 구조를 늦췄다고 벌을 받았고, 다른 날은 구조를 너무 빨리 시켰다고 벌을 받았어요. 제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가려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있습니까?”
“지금 그 일을 해 보려는 겁니다.”
단은 에르다에게 호밀빵을 건넸다. “그럼 일을 하다 쓰러지지 않게 먹어요. 우리 할머니가 옛 기록이 어지러울 땐 먼저 밥을 먹으라고 했거든요.”
에르다는 빵을 뜯어 아주 작은 조각부터 먹었다. 오래된 이야기를 정면으로 확인하러 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거창한 사면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한 끼였다.
한편 세아는 사진에서 인물의 그림자 길이를 계산했다. 오후 두 시쯤 촬영된 것으로 보였지만, 당시의 계절과 강변 고도에 따라 오차가 있었다. 서온은 오차 범위를 함께 적어 주었다. 이 사진이 현장 참관의 증거일 수는 있어도 특정 서류에 도장을 찍은 순간의 증거는 아니라는 한계도 명시했다. 피엘은 그 설명을 복제본 첫 장에 붙였다. 증거를 강하게 만드는 일은 때때로 그것이 증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방앗간 바깥에서 마차 바퀴 소리가 멈췄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하얀 장갑, 금박이 새겨진 문서함. 그들 가운데 선 여자는 자신을 ‘원본 열람 조정관 비라’라고 소개했다.
“공식 공고를 전달하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기록물은 이미 총괄 원장에 편입됐습니다. 무단 촬영을 중지하십시오.”
단이 문턱 밖으로 나왔다. “마을 자료실에 기증된 물건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총괄 원장에 편입됐다는 거죠?”
비라는 태연히 서류를 펼쳤다. “완전성 관리 규정 제칠십이조. 관련 문서가 총괄 원장과 충돌하면 총괄 원장이 우선한다.”
“그 규정이 언제 만들어졌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이백구십 년 전.”
“그러면 삼백 년 전 문서의 최초 보유자를 지울 근거는 없군요.”
비라의 눈썹이 움직였다. “규정은 소급됩니다.”
벤이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악마들도 계약에 소급 조항을 넣을 땐 상대에게 읽어 주거든.”
하린이 원격으로 열람 조정 명령에 이의를 접수했다. 하지만 비라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문밖 제복들이 붉은 봉인을 꺼냈다. 종이에 손대지 않고 자료실 전체를 ‘보관 중 폐기 예정’으로 분류하려는 봉인이었다. 책은 그대로 남지만 어느 기관에서도 증거로 읽을 수 없게 된다.
“이건 소각보다 편리하군요.” 세아가 말했다. “있는 물건을 없다고 하는 거니까.”
단은 창문을 열어 마을 주민들을 불렀다. 누구나 방앗간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물건을 가져가려면 주민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규칙을 크게 읽었다. 비라는 주민들이 모이기 전에 처리를 끝내려 했다.
그때 오래된 물레바퀴에서 물소리가 났다. 물이 흐르지 않던 바퀴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단이 갑자기 웃었다.
“우리가 관리하는 자료실은 밑층입니다. 지금 봉인을 걸려는 곳은 방앗간의 지상 창고이고요.”
그녀는 지하문을 닫았다. 마을 주민들은 밖에서 수레를 끌고 와 접근로를 막았다. 그저 시간을 벌 뿐이었다. 관리실의 공고는 창고를 넘어 마을 전체 기록망으로 퍼지고 있었다.
하린이 다급하게 연락했다. [마르켈 본인이 긴급 심리를 요구했습니다. 본문은 ‘에르다 설계 원본의 불법 유통 중단’. 심리 개시까지 두 시간.]
“우리가 먼저 심리를 청구할 수도 있습니까?” 피엘이 물었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 원본의 존재뿐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부분까지 직접 증언해야 합니다.]
에르다가 유리판을 바라보았다. 한때 자신이 만든 기계 때문에 사람들이 구조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명령을 받았다. 그녀는 창문 밖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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