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다리는 이미 통행이 막혀 있었다. 새로 세운 난간 위로 하늘의 신탁 문장이 일렁였다. ‘구조 우선권 박탈’이라는 붉은 글씨를 읽은 주민 몇 명은 오히려 다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도움이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토비가 가장 앞에 선 노인의 수레를 붙잡았다. “가지 말라고 명령하려는 게 아니에요. 수레 바퀴가 빠진 곳을 봐 주세요. 사람이 지나가기도 위험합니다.”
노인은 다리의 벌어진 목재를 살펴보고 수레를 뒤로 돌렸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하나둘 멈췄다. 모두가 순순히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피엘은 대피 선택이 엇갈리는 만큼 필요한 안내를 반복했다.
세아는 제7문의 긴급 구조 회선을 연결했다. 거기서는 이미 이상 명령을 받은 주민을 ‘자발적 위험 선택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이건 강요된 문장 뒤에 붙은 선택입니다. 동의로 처리할 수 없어요.”
“분류가 바뀌려면 원본 서명이 필요합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원본 서명 검증 중입니다. 그동안 현장 구조 요청은 별도로 받으세요.”
하린이 임시 심리 명령을 보냈다. 이름이나 주소가 정확하지 않아도 위험 지역의 구조 연락을 접수하라는 내용이었다. 대피 중인 사람들이 실제로 다친 상황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에르다는 회중시계를 들고 다리 아래의 오래된 물살을 바라봤다. “실험에 참여한 네 사람이 서명한 서류를 보관해 두었어요. 그 서류를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최초 발송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서 두 마을 떨어진 여울 마을, 물레방앗간 지하에.”
피엘 일행은 긴급 구조선을 마을에 남겨 두고 에르다와 함께 움직였다. 모라가 처음 요청을 올렸던 여울 마을은 그동안 여러 번 이름을 바꿨지만, 오래된 물레방앗간은 강변에 남아 있었다. 바퀴는 멈춘 지 오래였고 지붕에서는 억새가 자랐다.
입구를 지키던 젊은 여성이 낯선 사람들을 보자 경계했다. 이름은 단이었다. 그녀는 방앗간을 고쳐 작은 자료실로 운영하고 있었다. 옛 종이를 태우거나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마을에서 관리권을 받은 사람이었다.
“마르켈 쪽 사람들이 또 온 거라면 돌아가세요.” 단이 말했다. “이미 세 번이나 가져가려고 했으니까.”
피엘은 영수증의 네 개 원과 에르다의 도면을 보여 주었다. 단은 잠시 살펴보다가 방문 목적과 복사 범위를 먼저 적으라고 했다. 그곳에서 보관 중인 문서를 통째로 가져가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
여울 마을까지 가는 길에 토비는 세 번이나 수레를 세웠다. 첫 번째는 앞바퀴에 걸린 수풀을 떼어 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길가에 넘어진 과일 바구니를 치워 주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수레의 무게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벤은 그제야 묻지 않고 수레 뒤쪽을 받쳐 들었다.
“급한데 계속 멈추면 언제 도착해요?” 서온이 물었다.
“수레가 부러지면 아예 못 가죠.” 토비가 말했다. “급할수록 일을 두 번 할 수는 없어요.”
여울 마을의 방앗간 앞에는 작은 추모 명패들이 걸려 있었다. 큰 재난 하나로 모두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 각자의 날에 떠난 주민들의 이름이었다. 단은 명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이 죽은 날짜만 알고 싶어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도 함께 남기려고 했어요.”
그녀는 자료실 운영 규칙도 설명했다. 자료를 보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물건을 복제할 때에는 무엇을 위해 쓰는지 적고, 개인 기록은 당사자나 적절한 증명 절차를 거쳐야 했다. 관리실은 그것을 번거롭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했다. 삼백 년 전 수신인을 한 칸으로 줄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피엘은 방앗간에서 처음 만난 단에게 자신의 소속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도 천계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독립 심리의 증인이라는 점, 소멸 명령은 정지됐지만 책임 조사는 남았다는 점까지 설명했다. 단은 한참 듣고 말했다. “그 말을 처음부터 해 줘서 고맙습니다. 좋은 말을 한다고 무조건 문을 열어 줄 수는 없으니까요.”
자료실 바닥에는 납작한 돌 네 개가 놓여 있었다. 첫 돌에는 모라의 손바닥 자국, 둘째에는 리오의 작은 신발 자국, 셋째에는 빵 바구니의 둥근 자국, 넷째에는 배의 노 끝이 찍혀 있었다. 사람을 번호로 세지 않으려고 각자가 남긴 표식이었다.
“이름을 없애려던 게 아니었네요.” 세아가 말했다.
“누가 실종되더라도, 누구였는지는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둔 거예요.” 단이 답했다.
단은 네 개의 돌 주변을 청소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음 이 자료실을 만들 때는 방문객이 거의 없었어요. 어떤 사람은 네 명의 영웅이 마을을 구했다고 적자고 했고, 어떤 사람은 사고가 아니라 전설이라고 했죠. 하지만 사진 속 사람은 영웅이 되기 위해 배를 저은 게 아니에요. 그날 자기 옆 사람을 도운 거예요.”
피엘은 단의 이야기를 들으며 첫 실험을 다룬 회색 공책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시험 배송 성공’이라는 한 줄이 모든 일을 설명하는 것처럼 적혀 있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다른 페이지에 있었을지 몰랐다. 그는 단에게 돌 밑 편지를 확인할 허락을 구했다.
넷째 돌 아래에서는 묶인 편지가 나왔다. 편지에는 사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든.’
피엘은 보관 기록을 확인했다. 그 이름은 리오에게 합쳐진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동시에 배를 젓고 강가의 관측기를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었다.
“왜 합쳤을까요?” 토비가 물었다.
서온이 답했다. [복구 비용을 줄이려던 거야. 사망이나 실종된 사람의 이름이 줄면 구조가 성공한 것처럼 계산되니까.]
단이 벽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희미한 유리판 사진 속에는 네 사람이 서 있었다. 뒤편에 급식소의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그런데 사진 구석의 그림자가 사람보다 하나 더 길었다.
“촬영한 사람이 있었네요.” 벤이 말했다.
에르다는 빛이 바랜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이 사진은 처음 보네요. 저날은 내가 배달 장치를 수리하느라 없었는데.”
단이 뒷면의 글씨를 읽었다.
‘확인자 마르켈. 시험 배송 성공. 책임자 한 명으로 정리.’
피엘의 손에서 사진이 거의 미끄러졌다. 실험이 끝난 뒤에야 설계를 승인했다던 관리실 간부가, 그날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승인을 늦게 받았을 뿐, 개입은 처음부터 시작됐을지도 몰랐다.
제18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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