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소 뒤 언덕의 바람이 차가워졌다. 풍차 세 대가 멈춘 자리에 기름 냄새만 남았다. 마을 시계탑의 종이 정오를 알린 뒤에도 시각은 오전 열 시였다. 사람들은 농기구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시계 수리공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모두가 시간을 물으러 오는 마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울리는 일은 불길했다.
서온이 발신 장치를 찾았다. [에르다의 이름이 쓰였지만, 그녀가 발신했다는 기록은 없어. 제4문과 비슷한 음성 위조가 아니라 오래된 서명 복제야.]
세아는 마을 회관으로 달려가 안내판을 세웠다. ‘일시적 시각 오류. 대피 명령 아님. 현장 확인 중.’ 그리고 마을 이장에게 직접 설명했다. 사람들이 불안해서 스스로 언덕으로 올라가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다리 하나는 보수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피엘은 에르다에게 회중시계의 원 네 개를 가리켰다. “이 네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첫째는 급식소에서 빵을 굽던 어머니 모라였어요. 둘째는 강물 높이를 재던 소년 리오. 셋째는 빵을 배달하던 아이, 넷째는 그 아이에게 배를 내어 준 사공이었죠.”
“네 번째 사람의 이름은요?”
에르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두 번째 사람으로 합쳐 기록됐어요. 이름이 사라진 게 아닙니다. 누군가 기록을 접어 다른 사람 이름 아래 넣었죠.”
모라의 구조 요청은 강이 위험하니 구조선을 준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요청은 제대로 된 주소를 찾지 못했고, 에르다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실험을 했다. 첫 시험 대상은 강 건너 보리밭에서 일하던 농부였다. 그는 구조의 총책임자가 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호 급식소에서 신호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배를 띄울 수 있었다.
“그 실험은 성공한 겁니까?” 토비가 물었다.
“예. 네 사람이 모두 살아남았으니까.”
“그렇다면 왜 회색 장부에는 ‘잘못 배송’이라고 적혔죠?”
에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소식이 도착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명령이 도착하도록 바뀌었으니까요. 성공한 실험을 조작의 근거로 쓰면 위험하다는 뜻에서 남긴 말이었죠.”
도면을 본 토비는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두 개의 물길을 그렸다. “물이 막히면 옆 논으로 돌릴 수 있죠. 그렇다고 옆 논 주인이 평생 물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물길을 만들 때 그 사람 땅을 함부로 파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에르다는 그 비유를 오래 바라봤다. 삼백 년 동안 우편 설계를 복잡하게 설명하느라 잊고 있던 말이었다.
“마르켈은 물길을 바꾸면 결국 모든 논이 안전해진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바꾸긴 했죠?”
“그랬어요. 실제로 살아난 마을도 있었죠.”
“하지만 물길이 잘못 나면 아래쪽 논이 잠깁니다. 그래서 둑을 맡은 사람 이름도, 물길을 돌린 사람이 누구인지도 남겨야 하는 건데.”
토비가 나뭇가지를 내려놓았다. “제가 세상을 구하라는 신탁을 받았을 때, 저는 그게 제 농사와 무슨 상관인지 몰랐어요. 처음엔 누군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죠. 나중엔 제가 거절하면 정말 누군가 죽는 건 아닐까 무서워졌어요. 제가 구해도 좋다는 사람과 제가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사람은 다른 거잖아요.”
에르다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자료실과 심리회에서 같은 원칙을 수없이 들었지만, 자기 앞에 실제로 편지를 받은 농부가 앉아 있으니 문장이 무거워졌다.
세아는 옆에서 마을의 비상대피 지도를 만들었다. 북쪽 다리 외에 두 갈래 오솔길과 마을 회관의 임시 쉼터가 있었다. 어떤 길은 휠체어가 지나가기 어렵고, 어떤 길은 밤에 조명이 없었다. 구조 명령을 수정할 때도 이 차이를 고려해야 했다. 사람들은 한 글자의 '대피' 명령으로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에르다는 수리소 벽의 오래된 달력을 뒤집었다. 뒷면에 초안과 수정안 두 장이 붙어 있었다. 초안에는 ‘혹시 도울 수 있습니까?’라고 쓰여 있었다. 수정안에는 ‘그대는 반드시 세상을 구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같은 노선 번호, 다른 문장.
“누가 수정했습니까?”
“관리실의 정책실장이 승인했습니다. 이름은 마르켈.”
마르켈은 제1문에서 이미 여러 기록을 숨긴 채 드러났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책실장이 삼백 년 전의 모든 오배송을 직접 설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피엘은 승인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실험이 시작된 날보다 넉 달 뒤였다.
“그럼 최초의 바뀐 편지는 당신이 아니라 마르켈에게서 나왔군요.”
“최초 개조 승인자는 그 사람입니다. 하지만 종이가 저 혼자 건너갈 수는 없었어요. 제 장치가 없었다면 그 수정안을 발송할 수도 없었겠죠.”
벤이 두 초안의 마법 잔류 흔적을 대조했다.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알림에는 의무 발생 표식이 없었다. 그러나 수정안 가장자리에는 ‘책임 고정’이라는 작은 도장이 있었다. 도장 안쪽에는 제7문의 미래 비용 징수 조항과 같은 배열이 숨어 있었다.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 실패 책임과 복구 비용까지 붙이는 방식이야.” 벤이 말했다. “도우라고 알리는 대신 도와야만 하는 사람을 만들어 버린 거지.”
그때 마을 회관에서 통신이 왔다. 보수 중이던 다리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글씨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에르다의 최종 신탁. 마을 주민 전원 즉시 북쪽 다리로 이동.]
“거긴 지금 못 건너요.” 토비가 외쳤다.
피엘은 서둘러 명령을 취소하는 대신 다리 수리 책임자에게 연락했다. 다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확인을 받고 마을 회관에서 대피 가능한 다른 길을 안내했다. 에르다는 방송 장치에 손을 얹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명령으로 듣게 만들지는 않았다.
“제 이름으로 온 글씨는 제가 보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디로 갈지는 직접 정하십시오. 다만 북쪽 다리는 위험합니다.”
사람들은 멈칫했고, 몇몇은 회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하늘의 신탁은 말을 바꿨다.
[거절한 주민은 구조 우선권을 잃습니다.]
에르다의 손이 얼어붙었다. 삼백 년 전 그녀가 막지 못한 문장이 오늘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제18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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